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났다.
어릴적에는 마냥 행복할 걸로만 상상했던 순간도 '현실'이란 썰에 대입해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안다. 그 괴리를 참을 수 없을 땐, '부조리'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다시 명명한다.
전셋집을 구했다고, 전세 대란이 왜 문제인지 이제야 알겠다는 친구는 나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벽에 한가득 곰팡이가 핀 집을 봤단다. 돈을 맞추려니까 어쩔 수 없이 계약하겠다고 했는데 5분후 다른 곳에서 전화가 왔다며 2000을 올려달라고 했단다.
1년 2년을 꼬박 모아야할 돈이 몇 분새로 마구 올라가는걸 볼 때 스스로 무력함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서러웠다고 한다.
문득 친구가 물었다.
자기가 뭐 그리 잘못했냐고.
좋은 부모님 만난 덕분에 등록금대출받은 것도 없었다.
마이너스 없는 출발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래도 멀쩡한 직장을 잡아서 나름 아껴쓰고 나름 저축하고 나름 재테크도 신경썼단다.
이십년 가까운 기억속엔 열심히 공부했나 열심히 일했거나. 두 가지가 전부였다.
해외여행을 질펀하게 다닌것도 명품빽을 들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근데 돌아온 결과가 '고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초라한 것이어서 억울하다고 했다.
자기가 무얼 잘못했느냐고 물었다.
문득 조세희 씨가 철거촌 세입자 가정의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그집 가장과 나누었다는 대화가 떠올랐다.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하셨습니까?"
"열심히 일했어."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은 없으십니까?"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까?"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친구에게 대답을 해줄 순 없었다.
나 역시 우리들의 불행은 누구의 탓인지 묻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