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사색

소소한 수다 2009. 11. 20. 15:23

아침을 늦게 먹고 느즈막히 출근했다. 내 위장이 아무리 고무줄이라도 밥먹은지 한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사무실 사람들 점심먹으러 가는 대열에 낄 수는 없었다. 간단하게 프리뷰 하고 점심시간을 조금 빗껴간 여유 있는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1시 20분. 맥도날드 런치까지 40분의 시간이 남았다. 문래동에 신혼집을 차린 오양에게 프로포즈 했건만, 그녀는 오늘 바쁜일이 있다고 했다. 혼자 먹지 뭐. 나는 꿀릴것 없는 당당한 청춘이다. 다른 한국사람들 보다 잘하는게 있다면 혼자서 밥을 잘먹는다는 거다. 그걸 열아홉살때 체험했다. 이번주 읽다만 시사인과 한겨레 21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니 그만큼 두둑할 수가 없었다.

만든지 20분은 됐음직한 퍽퍽하고 식어빠진 베이컨토마토디럭스 버거와 만든지 10분은 지났을 법한 졸짜진 후렌치 후라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한겨레 손바닥 문학상 공모작을 읽으려고 했는데... 첫줄이 어땠는지는 읽으신 분들과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남겨 두겠다. 못썼다는게 아니라 식사시간에 읽기엔 다소 부적합했다. 굉장히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손바닥 공모상 뒷장에는 농성에 대한 역사가 쓰여져 있었다. 내가 알던 참 많은 사람들이 농성을 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은 '농성을 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알고 있었는데 농성을 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고 나의 일이 되곤 했었다.

졸업을 하고 많은 것이 바뀌긴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을 아직도 그 소식과 함께 듣는다. 농성. 시위. 점거. 투쟁.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 거기에 남아 있기에 그 일들은 아직도 남의 일이 아니다. 소설 <외딴방>처럼 먼 옛날의, 20년 전 30년 전 나와 상관 없는 시대가 토해 놓은 부산물이라면 참 좋을텐데,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내 곁에 더 가깝게 다가와 있어서 그게 슬프고 참 안타깝다.

이번주 시사인의 메인은 '잠을 허하라'였다. 근데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씹으면서 이런 기사를 읽고 있다니 참나. 생각이 참 많다. 지난주 본사 시사를 위해서 새벽 출근해야 했던날. 새벽 5시 30분 신촌 맥도날드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 새벽시간 밤샘 근무를 보며 카운터를 보고 있던 얼굴. 서브점장도 아닌 것 같고 아르바이트에서 몇직급 더 오른 것 같은 명찰을 차고 있었다. 데모하는 동아리가 싫다고 뛰쳐나갔던 한학번 아래 후배 놈이었다. 그네나 나나 88만원 세대로 살아가면서. 서로의 꼬라지를 보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는척을 하고 싶었는데 딱 보니 아는척을 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았다. 얼굴을 처음 마주할 때도 그렇고, 돈 거슬러 줄 때도 피하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고.
그때 그런 확신이 있었다면 나는 그애를 붙잡을 수 있었을까? "너나 나나, 부자가 되기 보다는 가난해질 확률이 훨씬 높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그때 붙잡았다고 그애가 바뀔 수 있었을까, 적어도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알면서 살아갈까?

근데 요즘에 나는 그렇다.
그게 무슨 소용이람.
노신의 <광인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상자 안에 갇힌 것을 깨달은채 평생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 상자안에 갇힌 것을 깨닫지 못한채 그냥 살아가는 삶. 무엇이 더 잘했다고 말하기란 참 어렵다.

날씨가 춥다. 다 날아가면 좋으련만 자꾸 자꾸 무거워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이 말이, 내가 믿고 있는 이 생각을 전할 수 있으면 그래서 공감하고 변화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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