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많고 말잘하기로는 조선 최고라던 허균이
역적참수 당하기 전에 외친 외마디 비명이 이거라던데...
"할 말이 있다!"
나 역시 할말이 있었다.
아니 아직도 할 말이 있다.
나름 열심히 진행하고 있었는데, 윗선에서 막혀버려서 말할 수 없게 돼버렸다.
노골적인 의도를 지우란다.
빙빙 돌려 말해도 충분하다고 주문했다.
가장 무서운 건 그 순간 자위 하는 내 자신이었다.
나는 말하려고 했잖아, 근데 위에서 허락을 안해준거잖아.
가져다 붙이면 핑계 아닌게 없었고,
알량한 양심은 위로하기 참 쉬웠다.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도 뒤집어질 그 안일함이, 그 얄팍한 위로에 안도하는 너무 창피했다.
조연출은 작가님 이번 말고 다음에, 다음에 좀 나아지면 그 아이템을 해요 라고 위로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해야할 말이다.
그때는 너무 늦다.
강태공 부인이 쏟아버린 한바가지의 물과 다를바 없다.
그때는 오히려 알고 있었음에도 '제때 말하지 못했음'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할 시기다.
입을 다무는 것도 죄다.
그 죄값에 벌써부터 마음이 찝찝하다.
이제 다섯편.
기술적으로도 전혀 늘지 않는 내 자신도 부끄럽지만,
묵직하지 못하고 팔랑거리는 내 자신이 더 부끄럽다.
땅이 있으면 파고들어가고 싶은 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