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손 작은 건 우리 할머니를 닮았어.
발 작은 것도 우리 할머니를 닮았지.
코 못생긴거랑 뚱뚱한거 살 단단한거
얼굴 똥그란거 조급하고 성질 급한거.
승부욕 강해서 지고는 못사는 거.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까정 할머니를 닮았어.
안 닮은게 하나 없이 우리 할머닐 꼭 닮았어.
그 옛날 밥 차리기 귀찮다고 할머니랑
고추장에 밥비벼 먹던 가리봉동 집.
나 옆집 놀러가 있는데 우리 집서
승*야 승*야 할머니가 귀청 떨어지도록 소리 지르면
놀다 말고 입이 나발 나와서 집에 가야했던 거.
기지배가 기지배가 이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내가 기지배면 할머니도 기지배야 라고 했다가
빗자루로 두둘겨 맞은거.
뭐 하나 사와서 얼마냐고 할머니가 물어보면
뭐가 그렇게 비싸냐고 핀잔주니까
항상 반값도 안되는 가격 말해야 했던거
연예인들 야하게 옷 입고 나와서 춤추면
티비 보다말고 지랄하네 하고 할머니가 욕하던 거.
요 몇 달 우리 할머니 같지 않게 너무너무 마르고 기력도 없어서,
할머니 더 드실려 물어보는건 대답도 안하면서,
할머니 나 누구야 하면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승희!'하고 이 이름은 꼭 불러주던 거.
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할머니 없이 살아본 적이 없어서.
기억나는 것도 참 많고 기억하면서 살고 싶은거 투성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서 그게 참 슬퍼.
그게 서러워서 눈물 나고 막 그래.
할머니.
나 할머니한테 꼭 한번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물어볼 기회가 너무너무 많아도 물어보질 못했어.
이거 물어 보다 말고 막 목소리 떨리다가
펑펑 울어 버릴까봐 차마 물어 보질 못했어.
달덩이 같은 할머니새끼 우는 거 보면
더 속상 할까봐 일부러 묻질 않았어.
그리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꺼 같아서 그랬어.
할머니.
그 옛날 우리 고모들이 호박댕이 호박댕이
나 못생겼다 그렇게 놀려도
그 드센 고모들 다 후려치면서
조선 최고 부잣집 맏며느리로 시집갈꺼라고
뭘 믿고 그렇게 큰소리로 말했어?
머리털도 제대로 안나서 꾸역 꾸역 주는 우유만 받아 먹던
달덩이 같은 손주가
뭐가 그렇게 예뻐서, 어디가 그렇게 예뻐서
안바꾼다 안바꾼다 세상 다 줘도 안 바꾼다고 했어?
이 못생긴 내가 뭐 그리 예뻤냐고,
아직도 그렇게 이쁘냐고 물어 볼 수도 있었지만
나 아직도 할머니한텐 너무너무 이쁜 손주인거
말 안해도 알아서 일부러 안물어봤어.
묻지 않아도 너무 잘 알아서 안물어봤어.
그러니까 할머니.
거기서 더 행복하게 더 재미나게 살어.
우리 할머니한테 최고 이쁜 달덩이 같은 손주도 여기서 잘 살께.
할머니 말처럼 세상 복 다 누리면서 살께.
할머니. 그리고 나도 말야.
나도 우리 할머니 세상 다 준다 다 준다 해도 안 바꿔.
그 누구랑도 안 바꿔.
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