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를 풍미한 한국 만화가를 고르고자 한다면 정말 수 많은 이름이 스쳐지나간다. 그럼에도 내 첫 번째 손가락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강경옥. 그야말로 한국 순정만화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십대가 등장하는 만화는 무수히도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녀는 내게 국내 최고의 순정 만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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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 해도 나는 ‘사람’이다.
단지 ‘사람’앞에 보통이란 단어를 받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낄 뿐이지.
그것이 17세의 어린 객기에서 오는 것이든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오는 것이든
알 수 없는 미래가 남아 있기에 지금의 나는 어떤 특별한 가능성을 꿈꿔보는 것이다.
설사 현실은 같은 일의 반복이더라도 그래서 결국 보통 사람이다 하더라도 말이지.
오늘도 어제의 연속일 뿐인 이 생활
어제의 연속인 이 생활에서 나는 어떤 특별한 꿈을 꾸고 싶어하는 것일까.

평범한 열일곱이 꿈꿀 수 밖에 없는 오늘. 그리고 그 나이가 아니면 하기 힘든 고민들. 학교, 친구, 진로, 이성문제... 턱없이 작았다 비웃을지 모르는 이야기지만, 그 나이는 목숨을 걸 만큼 커다란 문제였고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였다.

내 이름은 강세영. 고등학교 1학년에 별 배역 맡아본 적 없는 연극부원.
현재 좋아하는 남자애는 소꼽동무 정현우에다
라이벌 비슷한 애도 한명...
그리고 집과 학교, TV, 분식집, 친구들...
그런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에 싸여서
그렇게 어떤 시작도 끝도 없이
생활의 중간에 있었다.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만화. 평범한 세상 속 아이들은 예외 없이 자라나고, 그 과정 중 성장통을 앓기 마련이다. 그 시절. 내가 누구인지 현재가 어떤 과정인지 의문 갖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만화는 열일곱 살에 누구나 한번 쯤 써봤을 법한 일기장 같은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커다란 결론 없이 자잘한 결론들로 마지막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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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본인의 마음이다.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거다.
선아도 연호선배도 현정이도 현우도 혜미도 모두...
그리고 나도..

여우도...
누구를 위해 무얼 하는가는 여우의 마음인거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고민하던 시간들. 상처 받고 싶지 않아 외면했던 마음들. 나는 무엇이 될까 하는 두려움. 수 많은 고민은 등장하지만 어떤 끝도 결론도 낼 수 없었던 나이 열일곱.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라 말하기는 참 쉽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얼마나 열일곱이 안고 있었던 고민을 하는지.

아픈 통증을 수반하는 ‘성장기’. 그럼에도 다가오는 내일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그 때.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면면히 모여, 인생이 만들어지는거란 생각해본다. 그 사실을 깨닫던 깨닫지 못하던 그렇게 열일곱의 나이는 지난다.

  • 이 만화의 주제곡은 단연 김민우의 <사랑일 뿐야>이다. 혹시 세월이 너무 흘러 노래를 모른다면 꼭 노래를 먼저 듣고 만화책을 읽어주기 바란다. 연우 선배가 우연히 등장하는 씬에서 노래의 음향을 느낄수 있어야 만화의 극적인 묘미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실은 <17세의 나레이션>을 먼저 다룰까, <현재진행형 ing>를 먼저 이야기 해볼까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어릴 적에는 조금 더 경쾌한 톤의 <17세의 나레이션>을 더 좋아했는데, 커서 읽어보니 <현재진행형 ing>의 빼어남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작가가 그린 두 개의 성장 만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만화는 같은 톤으로 다른 두가지 이야기를 차분하게 읽어준다.
  • 세영이가 소꿉친구 현우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어린왕자>. 여우에 대비한 연극은 정말이지 적절한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여백을 살린 그림과 나레이션이 실제 <어린왕자> 이야기와 묘하게 어울려서 더욱더 깊은 감동을 준다.
  • 강경옥의 모든 만화가 그렇지만, 가볍게 줄거리를 읽어내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말칸 대사 하나하나가 한번쯤은 생각해볼법한, 그리고 생각해야만 하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화책 분량에 비해 속도가 더디다 하더라도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