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도앙증'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2.01.06 Havana Dream
  2. 2011.03.26 나는콜롬비아땅을사랑해 - 3월 26일(콜롬비아 소금성당 관광열차) 2
  3. 2011.03.19 인생의 오아시스-3월19일
  4. 2011.03.07 하늘과맞닿은곳에서경험하는 지옥 - 3월7일(코파카바나 태양의섬) 2
  5. 2011.03.03 소원을 현실로 이루어주는 사막-3월3일
  6. 2011.03.01 우유니 사막에서 첫밤 - 3월1일
  7. 2011.03.01 우리투어 만만세! - 3월 1일 우유니투어 첫번째날
  8. 2011.02.28 현지인의 동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2월 28일 아따까마 간헐천 투어
  9. 2011.02.27 피는못속여-2월 27일(산뻬드로아따까마)
  10. 2011.02.25 위인과 나의 공통점을 찾아서 - 2월 25일(발빠라이소)
  11. 2011.02.23 결국은 유로피안 - 2월 23일 (오소르노역)
  12. 2011.02.22 바릴로체에서 산띠아고로 - 2월22일
  13. 2011.02.20 내가 쓸 수 있는 평생의 휴가 - 2월 20일 (바릴로체)
  14. 2011.02.19 바릴로체에서 경험하는 잊지못할 추억 - 2월19일 두번째 일기 (바릴로체) 2
  15. 2011.02.19 한밤중에 외치는 땡고베르구엔싸(부끄럽습니다!) - 2월19일 (엘찰뗀-바릴로체이동)
  16. 2011.02.18 악몽의 바릴로체행 버스 - 2월 18일(엘찰뗀-바릴로체이동)
  17. 2011.02.17 남반구에서들통나는빠슨스런 나의 과거 - 2월 17일(엘찰뗀 산행)
  18. 2011.02.16 여.기.가.바.로.지.상.낙.원. - 2월 16일 (토레스델파이네 일일투어) 2
  19. 2011.02.15 Hasta ultima gota(마지막한방울까지!) - 2월 15일(모레노빙하투어)
  20. 2011.02.14 몇번의 난관 끝에 얻어진 환상의 파티 - 2월 14일(깔라파떼 둘째날)
  21. 2011.02.13 불행의 여신이 슬슬 미소짓는 2월 13일 (부에노스아이레스-깔라파떼 이동)
  22. 2011.02.12 인어공주 사람다리 달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질주중 - 2월 12일 (부에노스아이레스)
  23. 2011.02.11 여행이 소소하거든 카페인을 드링킹 - 2월 11일(부에노스아이레스)
  24. 2011.02.09 반갑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2월 9일
  25. 2011.02.08 2000피트 상공에서 쓰는 일기 2월8일



너무 그리우면
그립단 말조차

안나오는 법이다.











남미로 떠나기 전 친구 하나가 미치도록 날 부러워했다. 

"리얼이니 앙증? 너 정녕 버스가 고장나면 화를 내는게 아니라
버스에서 내려서 음악을 틀고 다 같이 춤춘다는 그 남미 땅에 가는게 사실이니?"

그 한마디가 나를 얼마나 큰 기대에 부풀게 했나?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버스가가  고장난 적은 없었다. 3시간 늦은 버스에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춤을 췄다.
기차에서...;;;;
그것도 생판 처음 보는 콜롬비아 아저씨들과.

보고타에서 조금 떨어진 소금성당까지 가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미리 챙겨온 여행정보에 따르면 주말에는 관광객을 위한 소금성당행 기차가 준비돼 있다고 했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들과 함께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소금성당행 기차를 예매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토록 흥미 진진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곤... 난 정말 몰랐었네~. 

9시 정각에 출발한 기차는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느렸나면, 기차가 놓인 철도 옆으로 달리고 있는 자동차 중에서 우리가 탄 기차를 앞지르지 못하는 차종은 없었다. 심지어 2륜차 마저 (자전거 포함) 우리를 죄다 앞지를 정도였다.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기차 같은 칸 저쪽 편 아저씨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들은 출발과 동시에 술병을 따고 있었다.... 왁자지껄하면서도 얼큰한 분위기. 이거 왜이래? 그야말로 남미와 한국의 일맥상통하는 정서가 존재한다는 또 하나의 현장이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 위아더월드 인가봐.
무한경쟁에 반대한다는 듯 느릿하게 걸어가던(?) 기차가 두번째 역에 섰을 때 였다. 뜬금없이 역사앞에서 밴드의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 왠지 모르게 신이 나요. 너무너무 신이나요. 쿵짝 쿵짝 울려퍼지는 살사 음악에 넋을 놓고 있는데 이 밴드가 우리가 탄 기차를 같이 타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그때부터 기차 안은 밴드와 함께 춤을 추는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변신!

기차 전용 밴드는 그렇게 두곡을 연주하더니 다음칸으로 떠나버렸다. 그 흥겨움을 참지 못하고 다음칸으로 달려가서 문을 벌컥 열었는데, 거기는 나이 지긋하신 중년여인석들 전용칸(?)이라고 할만큼 중년과 노년여성들의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흥겨움의 열기는 그곳이 더 들끓고 있었으니.... 소금성당 티켓을 끊던 담당자가 티켓을 끊다 말고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손에 쥐어진 티켓을 들고 추어지는 흥겨운 춤사위에 나는 반하고 또 반했다. 그들 눈에는 밴드 구경온 동양인(=나)이 퍽이나 신기했나보다. 다들 이말저말 말을 걸더니 누군가 내 손을 턱하고 잡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한분. 내 손을 붙들고 살사 스텝을 밟기 시작! 그때부턴 나도 모르겠다 싶은 마음에 같이 흔들 흔들 되도 않는 춤을 신나게.

그렇게 두곡을 신나게 흔들고(?)와서 다시 우리칸으로 돌아왔다. 진작부터 빈병을 손에 들고 목소리를 드높여 노래를 따라부르던 아저씨들은 계속해서 병을 따기 시작. 한국사람들 잔돌리는 거랑 왜이렇게 똑같은지. 물을 마시듯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그렇게 도착한 소금성당은... 아쉽게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금광산 속에 만들어진 교회는 멋있기도 했고 웅장하고 거대하기도 했지만 오늘 하루 중 있었던 일을 강약중간약으로 한다고 비하면 '약'에 해당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정말 하일라이트는 집에 돌아오는 기차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중간에 들린 레스토랑에서였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아저씨들이 본격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짧은 영어와 짧은 스페인어가 몇번 오갔고, 그들은 무척이나 우릴 반겨줬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이런 사진을 남길정도로 말이지.


역시나 사진에서 눈여겨 볼 것은 맥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저씨의 강렬함이랄까?

그렇게 통성명을 마친 뒤 함께 탄 기차는 각별하고 또 각별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저쪽 끝에서 '꼬레아나~심지어 우리 무리엔 버젓한 남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존재는 지워버린 채 꼬레아나스(한국인 여자들)만 불러제끼는 아저씨들의 센스. (스페인어권에선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을 때는 복수로 남성형을 쓴다 여기서 우리를 부르고 싶었다면 꼬레아노스 라고 불렀어야 맞는 표현) 뭐만 있으면 무조건 꼬레아나스! 래. 그게 괜시리 빵터지고 빵터져서, 손인사 나누고 휘파람도 불고 눈인사도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 기차 서비스 왜이렇게 끝내주나요? 밴드가 또 탄거다. 그때부터 정말 끝내주는 춤판이 벌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사업상 전화인 마냥 심각하게 통화하던 아저씨도 바로 핸드폰을 꺼버리고 손수건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 엠빠나다를 팔던 아가씨도 흔들흔들 춤울 추고.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를 불러 제끼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꼬레아나 꼬레아나~
일행 중 한 언니가 튀어나갔다. 좁디 좁은 기차 복도에서 한 아저씨와 맞잡고 살사를! 기차안은 그때부터 흥분의 도가니탕. 한곡 끝나고 일행 언니가 들어오고 나니 다시 휘파람에 꼬레아나 소리에 결국 이번엔 내가 튀어나갔다. 살사는 못추는 덕에 앞에 선 아저씨를 따라서 춤을 췄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목에 두르고 있던 손수건을 풀러서 덩실덩실 같이 따라추는데 이거 노래가 이렇게 길었나? 아무리 춰도 춰도 노래가... 안끝나;;;; 알고 보니 기차 보호차 차를 탔던 경찰 아저씨가 밴드연주하시는 아저씨들에게 한번 더 노래를 돌리라고 부탁했다고. 그래도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연주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너무 부끄러운거다. 수줍게 뺨을 가리고 아저씨들에게 외쳤다. "땡고 베르구엔싸(부끄러워요)!" 그 말에 아저씨들은 박장대소 하며 더더욱 좋아했다는 후문이.
그리고 기차 호위차 탄 경찰은 핸드폰으로 내내 춤추는 우리 일행들을 동영상 촬영했는데 언젠가 유투브에 '로까 꼬레아나(실성한 한국인)'라고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것.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땅 콜롬비아.   
오늘 밴드와 함께 다같이 합창했던 노래 중 하나는 '꼴롬비아 띠에라 께리다COLOMBIA TIERRA QUERIDA(콜롬비아 땅을 사랑해)'
콜롬비아 네 글자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노래와 함께 오늘을 기억하겠지.
나는. 콜롬비아 땅을. 사랑해.






오아시스 바로 앞 야자수 나무 그늘 앞에 앉아 있다.
이곳은 오아시스 마을- 이까

모든 것이 완벽하다. 책속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오후 4시까지는 할 일이 전혀 없는 까닭에
일기 쓰고 불의기억 다시 읽고 점저 한번 사먹고 뒹굴 예정이다.


아! 좋다.
초반에는 서늘한 바람만 불다가 지금은 후덥지근한 사막 바람으로 바뀌었는데 사로잡는 풍광이 너무 멋져서 그냥 의식의 흐름조차 놓어버리고 싶네.
절대 잘생긴 서양애가 내 앞에서 웃통 벗고 썬탠해서 그런건 아니고! 헤헤

호텔 수영장 앞에서 한시간 반을 죽치고 불의기억 2권을 읽다 나왔다. 이러다가 조만간 불의 기억을 두번 완독할 태세. 여행끝까지 쓰겠다 생각했던 하이테크 펜도 바닥을 보인다. 잃어버리거나 심이 빠져서 못쓸 줄 알았는데 잘도 들고 다닌다. 여행이 너무나 무사했단 증거다.

어제부터 자꾸 환타가 땡긴다. 물이 마시고 싶고 과일이 땡기니까 그 중간 선택으로 환타를 잡게 된다. 어제 저녁에는 호텔 직원이 불쑥 자몽 하나를 내밀더니 주고 갔다. 엄청 크고 달게 생겼는데, 난 칼이 없어요 흑흑. 차마 이것까지 말하기는 좀 그렇고 말이다. 


 





샌드보딩을 하고 왔다.
아~ ㅜㅜ 이런 레포츠도 너무 좋아하는데 풍경 마저 너무 좋아... 흑흑
차라리 낮에 한번 하고 저녁 해질무렵에 한번하고 두번 신청할걸...

프랑스 친구들이 '바모스'에 걸맞는 프랑스 표현을 가르쳐줬는데 너무 어려워서 기억을 못했다.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느라 투어 사람들과 떨어진 프랑스 애에게 너무 미안하다



해지는 사막은 아름다웠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왔을 때 또다시 노을 지는 사막을 볼 수 있을까? 문득 고정된 상수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를 떠올렸다. 나는 다시 돌아가서 가족과 추억을 나누고 동네파를 만나고 곰다방서 커피를 마시고 구모전에서 중국요리를 먹고 싶지만,
모두가 변한다. 빠르고 늦음의 차이만 있을 뿐.
그래도 나는 내가 자꾸만 변해가는 것을 알기에
내 변화의 척도를 가늠해줄 수 있는 고정된 장치들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 나는 내 인생에서 커다란 한가지를 결정지었다.

나는. 등산을. (엄청. 지독히도, 무지하게) 싫어한다.

오늘 하루의 시작은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살짝 날이 흐리긴 했지만, 하늘과 맞닿아 있는 띠띠까까 호수의 풍경은 얼마나 절경이었던가. 비록 꼴찌로 배를 탄 덕분에 내 의자 시트는 망가져 있었지만 참을만 했다.
태양의 섬 투어는 투어에 참가한 사람 모두가 처음엔 두시간 가량 등산을 한다. 약 3분의 1지점까지 왔을 땐 북쪽 선착장으로 돌아갈 사람과 태양의섬을 가로질러 남쪽선착장으로 갈 사람으로 나눈다. 이때 선택을 잘했어야 했다. 

여튼 그때부터 죽음의 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가파른 경사길에 저 멀리 바다 같이 끝없이 펼쳐진 호수. 그리고 손뻗을만큼 잡힐만한 구름. 푸른 하늘. 




하지만 정말 그런거 하나도 안보였고요. 안그래도 무겁고 쳐진 몸뚱이를 들고 해발 4000미터에서 산을 오른다는게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산티아고에서 새로산 등산화는 살때부터 발이 꽉 끼는가 싶었는데 고지대에 올라가고 나니까 그야말로 발이 퉁퉁 부어서 신발 앞창 단단한 부분에는 발가락 세개만 들어가는 불상사가! 
숨은 차오르고 갈길은 멀고 넷째 발가락은 부러질것 같고. 
중간중간 산소가 모자란지 머리도 아파오고.

그 언덕이 나오고 언덕이 나오고 또 언덕이 나오고. 경사를 내려갈땐 길이 미끄럽고. 그러다 넘어질것도 같고.
그렇게 한 예닐곱번의 언덕이 나오고 언덕이 또 보였을 땐 정말이지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운다고 해서, 섬 반대편에 대기하고 있는 배가 알아줄리도 없다. 안다해도  오후 3시에 출발하는 일정에는 변함이 없겠지. 
다행히 혜*언니가 나랑 호흡을 맞춰서 걸어주었지만, 정말 울고 싶고 짜증나고 싶은걸 참을 수가 없었다.
크헉 컥 헉헉 학학! 태어나서 그토록 격한 내 숨소리를 들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인 듯.  




그러다 북쪽선착장으로 향한지 한시간 만에 현지인을 만났다. 30분만 가면 남쪽 선착장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나는 행복의 나라 노래를 BGM으로 깔면서 견딜만하다고 스스로를 위로 했으나. 그 뒤로 한시간이 지나도 선착장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더욱더 험한 산봉우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을 뿐.
결국 거기서 만난 다른 현지인에게 길을 물었다. 30분 남았단 소리를 들었다. 한시간 전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왜 다시 30분이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이번엔 진짜겠지 그 믿음 하나가지고 산을 넘었다. 그렇게 가기를 또 다시 30분.

이번에 만난 현지인은 이제 높은데는 끝이라며 축하한단 인사를 건넸다. 그가 태양의 섬을 만든 창조자는 아니겠지만 고맙다고 고맙다고 그녀의 손을 붙들고 몇번이나 인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개의 언덕이 나왔던가?!?!?! 생각 같아선 그 현지인을 다시 붙잡아와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 눈에는 저게 오르막길로 안보이냐고! 설마 저걸 내리막길이라고 부르나요?!?!!?

여튼 체념의 상태로 몇개의 언덕을 더 넘었을 때 마주친 또다른 현지인이 이제 30분 남았단 소리를 했다. 난생 처음 보는 분이지만 그 분의 멱살을 붙잡고 '거짓말! 거어지잇마알!!'이라고 외치고 싶은걸 꾹 참았다. 
엉엉. 모두다 거짓말 쟁이들이야. 헛된 희망 따위 바라지도 않으니까 팩트만을 말해달라고!!!
그렇게 20여분을 걸은 결과 이번엔 관광객을 만났고 그는 15분 정도만 내려가면 북쪽 선착장이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간에 관해서 그의 말은 신뢰할만 했다. 다만 내려갈때의 그 길이 어떠했는지는 두번다시 떠오르고 싶지 않은 악몽인데....

수십미터의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가파르게 내려가는 그 길. 좁디 좁은 골목과 가파른 경사사 사이로 놓여진 그것은?!?!?!? 덩이 덩이 떨어진 커다란 당나귀 똥.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이 자기 집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뿌려놓은 빵가루 마냥 끊임없이 흩뿌려진 양 똥. 
따지고보면, 어차피 그 똥들을 모두 피해서 다닐 수는 없는 일이고 눈 딱 감고 밟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참 간사해서, 막상 눈에 보이면 밟고 느끼게 되는 그 찝찝한 감촉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러니까 안그래도 좁은 길. 흩뿌려진 똥을 피하다 보면 디딜데는 정말 몇군데 없고, 그냥 앞만 보고 전진하면 될 길을 돌아가고 돌아가고 점프까지 해대고.
정말이지 영영 선착장에 도착할 수 없을것만 같았다. 
수많은 똥들을 피해가며 그 높은 경사를 간신히 내려오고 나니 다행히 배는 출발하지 않았다. 

그렇게 배에 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또 다른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격한 등산으로 인해 너무나 격한 운동을 감행한 것일까? 나의 장이 10분에 한번씩 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내보내줘 내보내줘! 며칠 묵은 것들 다 해치웠다고!!'

하지만 내가 있는 장소는 (느림의 미학을 한없이 실천하는 느려터지기 짝이 없는 통통)배!
화장실도 없는 채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망망대호수! 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없이 아득하기만 했다. 고통속에서 끝없이 시위를 펼치는 그것들을 달래며 차마 배가 더 아플까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는 고통이 계속 됐다. 입은 바짝바짝 말라와. 다리는 퉁퉁 쑤셔와. 발가락들은 서로 떼어달라고 해. 

근데 배가 속절없이 가고 있는거다. 풍류도 풍류 나름이지. 이미 배안에 모든 사람들은 다들 쓰러지기 일보직전. (이른 8시 출발로 인한 이른 기상. 그리고 격한 등산. 고산지대로 인한 피로감 백배.) 하지만 배는 속력을 낼 줄 모르고요. 이번 투어에서도 함께한 브라이언은 차마 수영해서 가는게 더 빠르겠단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평생 해본적 없던 멀미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배는 아프고 먹은것도 없는데 속은 메식거리고.

나는 정말이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여기서 스쳐 지나가면 평생가도 기억한번 안해줄 사람들이 나를 '고작 2시간 동안 운행되는 띠띠까까 호수 배안에서 위로 쏟아내다 말고 뒤까지 쏟아낸 동양인'으로 나를 '평생토록'기억하는 것'그런 사람도 있었다~'라며 자기 친구들에게 떠벌리는 대상이 되는거.  

정말 그것만은 면하려고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모르겠다. 배를 움켜잡고 또 움켜잡고 바짝 마른 입안을 우물거리면서 입운동하고. 저 멀리 코파카바나가 보였을 때 폭우치던 내 배는 잠잠해져 갔다. 다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멀미나던 속도 많이 줄었다.

결국 나는 목표한대로,
같은 배를 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금방 기억조차 못할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만세!  

오늘의 결론: 사람이 정신력으로 안되는게 없다.
그리고 난, 등산을 싫어한다.


물이 들어 찬 사막을 봤다.
트럭 천장에 앉아 거울같은 공간을 봤을 때, 문득 작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가 기억난다. 왕언니 선배님이 우유니가 소개 된 네이버 메인을 보여줬었는데, 나는 정말 뭐에 홀린 듯이, 무심결에 말했었다.

"저 저기 갈래요 내년에"

그 말이 현실로 이뤄질줄이야
트럭 위에 타고 마리셀이랑 빠올라 마사에게 끊임없이 외쳤다.
"못믿겠다 언빌리버블!"
실은 보고 온 다음에도 못믿겠다.

 




그러다 저 편에서 구름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맨발에 부딪히는 굵은 소금비는 쓰렸지만, 색다른 날씨를 둘이나 만난 건 행운이었다. 

불규칙한 낙하 불규칙한 알갱이 불규칙이 만들어 내는 리듬
흐려지는 하늘 어느새 서서히 물러나는 구름
시간과 공간의 접점을 온 몸으로 느끼는 몇 안되는 경험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연주소리.

아르헨티나 남자애가 기타보다 작은 사이즈의 악기를 튕기면서 뚱당뚱당. 
내가 악기 들고 다니는 남미 애들 중에, 연주를 잘하는 애를 몇 못봤는데 발군의 실력이었다.
부에노~
칭찬 한마디에 수줍게 웃더니 직접 기타를 매주었다. 나 악기 연주 못해를 스페인어로 말할 자신은 없고...  R.ef 상실이란 노래가 있다. 기타를 두번 치면서 "탕탕! 사랑했던 나의 마음 속에~' 그 흉내를 내줬더니 빵하고 한참을 웃어줬다. 

아마도 나는 우유니 사막 내리는 빗속에서 들었던 그 기타연주를 평생 잊지 못하겠지.


아브라카다브라
모든 것이 말하는대로 이루어 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만큼은 소중하다.





바람이 불 때 하품을 하면 모래가 씹히고
밤하늘의 별은 끝내주지만, 먹는 물을 아껴서 양치를 해야한다.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담요와
보풀이 잔뜩 일어 살에 닿으면 쓰랄리 것만 같은 이불.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스무살 농활 때도 도망가고만 싶었다. 
그럼에도 트럭 위에서 맞받은 시골 바람은 얼마나 기분 좋았던지.
뙤약볕의 더위, 땀과 풀내에 찌들은 내들을 모두 날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 비포장 도로만 달리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루타40을 달릴때도,
검은빙하투어 내내 이리저리 흔들리는데도
나는 계속 웃고만 있었다.
그 옛날 농활때의 기분이 되살아나서. 
 
먼훗날 언젠가 어디선가
낡은 담요. 냄새나는 이불을 덮게 될 때.
나는 우유니 사막의 밤하늘을 떠올릴지 모른다.

토마토 소스의 스파게티. 너무 짠 감자 스프.
뽑기띠도라고 외쳤음에도 한잔 가득 따라진 와인.
이 모든 것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그래서 결론은 오늘밤 베드벅에 물리더라도 잘 참아내자는 것?!?!?!?!?!
푸하하.







칠레 아따까마 쪽에서 출발하는 우유니 투어. 
첫번째 날 : 라구나 블랑까 (흰호수) ->  라구나 베르데 (녹색호수) -> 노천온천 -> 라구나 꼬로나다 (주황색 호수) 

칠레 아따까마에서 우유니로 출발할 때의 준비물 : 유우니 국립공원으로 들어갈 때 필요한 볼리비아 볼(볼리비아 화폐)가 어느정도 필요하다. 물도 많이 싸가는 것이 좋다. 대부분 5리터짜리를 사서 트렁크에 넣고 다닌다. (나처럼 고산병의 위험이 있는 사람에겐 특히나 많이 필요한데 4리터 넘게 싸용한 기염을 토했다.) 여행책자마다 나와있긴 하지만, 휴지나 물티슈, 썬크림, 자외선 차단하는 물품들은 당근 필수사항이다. 햇볕은 미친듯이 따갑고 바람은 미친듯이 춥다. 물이 차 있는 소금사막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쓰레빠를 준비하는게 좋다. 가지고간 모든 준비물이 소금에 절여질 것을 대비해야한다. 


난 투어가 좋다. 정확하게는 투어가 만들어주는 인연이 좋다. 
너 영어하는거 맞니? 라는 소리를 들어보질 않나, 서양애들 얼굴을 구분못해서 어 이아저씨 아까 물은거 왜 또 묻지? 란 생각을 하는 나같은 애들에게도 친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못알아 듣는 얼굴로 멍하니 있으면 (불쌍하게 여기고) 알아서 챙겨주는 투어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푸하하하. 
아까 우유니쪽에서 아따까마로 넘어가는 우리투어 브라질 애들이랑 아침 먹을 때도 느꼈다. 아 투어란 참 좋은거구나! 아침먹고 헤어지는 길. 딱봐도 190가까이 되는 그들이 나란히 줄서서 스페인식 인사를 해줬을 때도, 또 한번 느꼈다.
아! 투어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좋은거구나. 푸하하.


아침한끼 같이한 브라질 친구들. 자기네랑 같이 바이크 타고 아따까마로 넘어가지 않겠냐고 권했을 때, 나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음. 운전면허만 있었다면 지금도 진심으로 그러고 싶음. 
(하지만 어차피 그들은 역방향. 우유니에서 아따까마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여튼 우유니 투어 때 투어 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르헨티나 민박에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스라엘 단체 관광객에 한국인 꼴랑 하나 끼어서 2박3일동안 입다물고 지냈단 이야기, 한국인 단체관광객 4명에 꼴랑 일본애 하나 끼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애매한 웃음만 짓고 외톨이가 되었단 이야기. 일본남자애 일곱명 사이에 낀 우울한 아르헨티나 여자애 이야기. 투어 사람 모두가 스페인어를 할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영어를 써서 영어 못하는 이스라엘 여자애와 한국인을 묘하게 갈라 놓은 미국남자애 이야기.
같이 투어할 한국 사람이 없다면, 되도록 다양한 인종을 만나는게 중요하다고 들었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못하는 나로선 이곳에서 2박3일 쟈크채우기 십상이니까. 

다행히 어제 마사랑 이곳저곳 투어정보 알아보러 다니는데, 마사가 어떤 투어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인종이 좀 다양했으면 좋겠다. 한무더기 단체 관광객은 피하자고 말했다. 다행히 마사는 그럼 그런 투어를 찾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만나게 된 환상의 우리 투어팀!! 꺄악 꺄악! 


1. 마사 (미쯔이 마사하시. 그의 한국 이름은 정기라고 한다) 
일단 난 마사가 없었으면, 우유니에서 죽을 뻔 했다.
아따까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사랑 헤어지고 하루 정도 더 묵을까 했었는데 마사 없이 우유니 투어 참가했다간 정말 송장돼서 나올 뻔 했음. 투어회사를 알아보면서 나는 칠레억양이 섞인 영어를 거의 못알아 들었다. 대게는 5리터의 물을 준비해 온다는 것도, 볼리비아 페소로 환전이 필요하단 것도 못알아들었다. 그냥 투어 회사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만 있었는데 마사가 죄다 챙겨줬음. 나 침낭 없는걸 알더니 침낭 없는 사람도 잘수 있는지 꼬박꼬박 물어주고, 나에게 너 돈 환전해야한다고까지 귀띰. 환전하러 가서는 여기 환율 정말 그지같으니까 쫌만 환전하고 나머지는 볼리비아 넘어가서 하란 충고까지. 다시금 생각해 보지만 정말 마사는 내 생명의 은인임.
 
2. 마리셀
여기나이로 스물아홉이니까 나보다 한살 위인것 같다. 통통한 몸매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시원시원함이 참 좋았다. 예전에 부산에서 근무한적이 있었다면서 몇개 말해주는데 양곱창을 알아서 빵터졌다. 내가 진짜 끝내준다고 하니까, 그게 맛있냐며 진심 되물었음. 이사람이 아직 음식의 진정한 컬쳐쇼크 양곱창 맛을 못봤구나. 한국 데려와서 먹여볼수도 없고 슬프다.  
여튼 마리셀은 내가 못알아 듣고 멍하게 있을 때면 주저 없이 영어로 번역해준다. 너무너무 고맙다.

3. 빠올라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왠지 모르게 해리포터 론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의 소녀. 마리셀과 친구다. 우유니 투어만 세번째래. 오늘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기념으로 맨 앞자리 앉았는데 알아서 선곡하는데, 선곡 존잘이심. DJ이가 따로 없다. 게다가 댄스 뮤직나오면 중간 중간 댄스도 춰준다. 얼마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잠시 쉬는 중. 칠레보단 다시 아르헨티나에서 일하고 싶단다. 비냐델마르 산다기에 나 다녀왔다고 끝내준다고 아는 척 했다. 침낭 없는걸 아니까 자기는 침낭 가져왔다면서 자기 이불을 얹어 줬는데 추운것도 추운거지만 저걸 다 덥고 잤다간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4. 스위스 커플
여자는 컬러테라피 치료사. 채식주의자. 야채는 여자친구가 고기는 남자친구가 알아서 먹어주는 궁합좋은 커플. 남자친구가 무지 개구진데, 완전 익스트림 퍼니맨. 오늘도 굉장히 위험한 곳 다 기어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근데 아주 익살스럽고 사람 기분 안상하게 하는 선까지 농담을 던져서 빵빵 터진다. 

5. 소피아와 소피아의 어머니
산띠아고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프랑스인. 스페인어를 할 때 불어처럼 둥글게 둥글게 발음하는데 정말 발음이 끝내줌. 언제나 상냥하게 웃어준다. 근데 어머니 사진사로 오신거 같다. ㅋㅋㅋ 어머니는 통 사진을 찍지 않으시고 소피만 연신 찍어대네. 

6. 오로라 
오로라는 프랑스 친구. 내가 오로라란 이름을 처음 안건 <별나라 손오공>이라는 만화영화에서였는데, 그 손오공에 나오는 오로라 공주보다 더 이쁘다. 사람들이랑 잘 섞이는거 같지는 않고, 언제나 말없이 니콘카메라를 집어들고 나간다. 


여튼 우리 투어 조는 아주 마음에 든다. 왠지 끝내주는 2박3일 투어가 될 것 같은 느낌. 우유니의 물이 아직 차있어야 할텐데. 오늘밤 빌고 또 빌어봐야겠다. 일단 여기가 친환경화장실이라 물이 안나오기 때문에 세수는 불가능 하겠지만 식수로 어떡해든 이라도 닦아봐야겠다. 아까 물티슈로 얼굴 닦았는데 정말 가관이었음. 흑흑. 
 
 


 





오늘 간헐천 투어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났어야 했는데, 어제밤에는 10시 11시가 다 되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 안그래도 24시간 버스타서 피곤해야 맞는데 잠은 안오고 새벽에 일어날건 걱정이 되고 괴로웠다. 그러다 간신히 잠 들었다가 눈 뜬게 새벽 2시반이었다.

숙소 밖에서 약 30분간 투어버스를 기다리는데 기분이 쏠쏠했다.새벽 별도 떠 있고 달도 떠 있고 운치도 있고. 그리고 여기는 바로 사막!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투어버스에 올라탔는데, 역시나 동양인은 나 혼자. (마사는 간헐천 투어 스킵할거라고 했다) 게다가 투어 가이드 아저씨는 스페인어 밖에 모른다고 한다. 아흙 ;ㅁ;
근데 옆에 앉아 있는 애들이 자기네가 간단한 내용은 영어로 통역해주겠다고 한다. 세살과 파뜨리씨오. 산띠아고에서 대학생이란다. 구세주를 만났다.

투어 버스에서 잠을 안자려고 발버둥을 쳤다. 간헐천 투어는 고도 4000미터까지 올라가는데 자다 깨는데 고도가 훅 올라가 있으면 정말 대책이 없을거 같아서. 화장실 가려고 내렸는데 정말 숨이 안쉬어지더라. 간신히 연신 숨을 들이키면서 버텼다. 껌 씹고 물도 계속 마쉬어주고
(고산병 팁 : 물에도 나름 산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고산병엔 물을 많이 마셔주는게 좋다. 단 화장실을 자주가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화장실을 갈때 숨을 멈출 수 없으므로, 각종 악취를 벌름거리며 모두 들이켜야 한다는 단점이 추가된다)

그러니까 나는 나름 (고산병을) 잘 이겨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헐천 투어하면서 숨 쉬기가 어렵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쉬어지는 것도 아니고
걸을 때 어지럽긴 하지만, 일단 투어하고 있는 간헐천이 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중력이 어그러진 같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재밌기도 했고.
 
새벽 4시에 시작돼서 동트는 걸 바라보는 간헐천 투어는 해발 4000미터까지 올라가는데 무척 춥다.이 투어의 하일라이트는 동트는 새벽에 하는 온천. 
추위와 온천을 대비하기 위해 나는 수영복에 내복 깔깔이까지 다 챙겨서 입고 갔다. 근데도 너무 추워서 '께프리오(추워요)'만 한 이백번 외쳤던가? 그런데 그 추운 와중에서도 반바지 입고 등장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너무 추워보인다니까 피식 웃는다. 스웨덴에선 겨울에 얼음 깨서 수영다며;;;; 할아버지는 10년전쯤 유행했던 '고조 우리 연변에서는 이런것쯤 아무것도 아닙니다.'개그를 떠올리게 했다. 나이불문 인종 불문 남자들의 허세란. 하지만 카일 할아버지는 나에게 무척 상냥했으므로 패쓰!

별거 없는 증기수(?) 폭발과 간헐천을 구경하고 온천에 당도했다. 나 정말 빵터졌다.
물.... 드러워.
이건 온천이 아니라 진흙탕인데;;;; 근데 투어온 서양애들은 죄다들 좋다고 좋다고 물에 텀벙텀벙 들어가는거다. 그 와중에 고개를 절래절래 지으면서 물에 절대 안들어가겠단 표정 짓는 일본애들과 너무 상반되길래 더더욱 웃겼다.
언제나 내 인생의 모토는 이왕이면 경험하고 체험하자 이기 때문이니까, 나는 과감히 옷을 벗어던지고 온천 입수. 근데 물은 너무 뜨겁고 물 위는 너무 차갑고. '아뜨거 아뜨거' 하니까, 투어에서 만나게 된 세살과 빠뜨리씨오 소피아가 웃더라. 그들은 아무리봐도 머드로 봐줄 수 없는 (자갈과 알갱이가 섞인) 진흙을 자기 얼굴에 바르더라. '구아뽀(잘생겼어)'라고 해줬으나, 나도 모르게 '좋냐? 그게 좋아?'라고 냉소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칠레 친구들보다 온천에서 나왔다. 온도차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칠레 친구들 사진 찍어주면서 해뜨는 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나 온천들어가면서 싸왔던 물을 다 마셨던거다. 숨이 안쉬어지니까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머리가 안돌아가고 뒤로 그냥 넘어가 버릴거 같은 느낌이 막든다. 다짜고짜 아무나 붙잡고(심지어 물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음) '아구아 빠뽀르(물 좀)'이라고 매달렸다. 그에겐 물이 없었다. 저멀리 봉고운전기사가 물을 마시는게 보였다. 나는 그 사람한테 다가가서 물 좀 달라고 매달렸다. 근데 그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자기가 마시던 물을 한병 통쨰로 줬다. 다시 돌려주려니까 괜찮다면서 받아가랜다. 흑흑. 지금 생각해도 그 물 없었으면 나 투어에서 살아서 돌아왔을지 모를일이다.

물을 마시고 나서부터 간신히 숨이 쉬어지긴 했지만, 머리는 핑핑 돌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저 멀리 우리투어버스 운전기사가 보이더라. 그에게 우리 차 어딨냐고 물었다. 근데 그 사람이 웃더니 나는 네 운전기사가 아니랜다. 헐! 헉! 비슷하게 생겼다고 내가 착각했나보다. 근데 그때 상황에서 나는 우리 투어차를 찾을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간헐천 투어버스는 2,30대가 와 있는데 여기저기 떨어져 서 있었고 난 한걸음 두걸음 걷는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자, 그 사람이 내 투어 티켓을 보여달라더라. 내 티켓을 받아든 그 남자는 그때부터 2,30대 버스를 오가면서 내 버스를 찾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내 버스를 찾아줬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그 아저씨의 친절에 나는 감복 또 감복. 흑흑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요 ㅠㅅㅠ
아저씨가 찾아준 버스로 돌아가니까 세살 빠뜨리씨오 소피아 얼굴이 보였다. 눈물이 왈칵. 흑흑 얘들아 나 죽을뻔했어. 브라질 친구들은 툭툭 치면서 장난걸고. 인간들아! 나 죽을뻔 했다니까.

여튼 여러 현지인들의 동정을 구하면서 나는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다시 한번 고산병의 두려움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정대로라면 내일 우유니 투어 출발인데, 나 가능할까?

여튼 칠레사람들 짱짱 정말 짱짱! 나의 부질없는 목숨을 구해주었쒀.... ㅠㅅㅠ b 
Chilenos son simpàticos y amables!
(칠레 사람들은 친절하고 상냥합니다.)




피는 못속여
산띠아고에서 아따까마행 버스를 타는데 한 동양인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남미와서 생긴 능력중에 하나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얼굴을 식별하는 능력이다. 딱 보니까 잰 한국사람이다 싶었다. 근데 어랍쇼? 가방이나 옷의 브랜드가 아무리봐도 한국인이 아닌거다. 그렇다고 교포 삘이 나는건 아닌데 말이지....
그에게 웃으면서 말을 걸어보니, 그는 일본인이었다. 마사. 30대 중반으로 봤는데 42세였다. 다시 한번 일본인의 동안에 탄복 또 탄복! 마사와 나는 같은 숙소를 찾았다. 둘이 가서 쇼부치면 좀 더 싸게 우유니 숙소를 묵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유니 투어도 같이 떠날까 한다.

아따까마에 도착하자 마자 약간 어지럼증도 있는거 같고 산소도 부족한거 같길래 내가 고산병 같다고 하니까 (심지어 고산병도 일본어 한자와 한국한자가 같았음) 마사가 코웃음 쳤다. 꾀부리지 말라고. 자기 아르헨티나에서 6000미터에도 올라가봤다 왔는데 여기 2500미터 될까 말까라고. 된다고 전세계 산이란 산은 안타본적 없다는 마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사와 코카잎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사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너무 잘아는거다. 삼성은 물론이고 LG 횬다이(현대;;; 이거 알아듣느라 한참 애먹었다) 한나라당 민주당 노무현 이명박 모르는게 없쒀! 한참 친해진 다음에 그는 웃으면서 말해줬다. 자기 재일교포3세라고. 할머니 할아버지 경상북도 사신다고;;;
그럼 그렇지 피는 못속인다.

마사와 묵게된 호스텔이 무척 마음에 든다. 숀체크 호스텔인데 100배즐기기에 나와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여튼 론리플래닛에는 나와 있다.
여튼 오늘 태어나서 사막은 처음 겪어봤다. 낯선 풍경이 마음에 쏙 든다.
내일 새벽에 떠나게 될 간헐천 투어에서 나의 고산병이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난다. 떨린다. 그리고 무섭다. 고산병으로 우유니에서 돌아가신 60대 주부의 사건 따위는 듣지 않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흑흑




오늘의 곰인형 : 버스에서 만난 까롤리나
아따까마로 넘어오는 버스 내 옆자리에 앉았다. 연신 남자친구와 통화하고 (깨가 쏟아졌다 쏟아졌어 젠장;;) 22살 대학생이라고 한다. 아주 두꺼운 고대문화역사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길래 나도 사학과 졸업했다고 말했는데 나는 영어로 그녀는 스페인어로 말했으니까 통했는지는 의문이다. 사학과를 나오면 뭐하나, 만리장성과 용 중국황제에 대해 나름 설명해주고 싶은게 너무너무 많았는데 그녀는 심볼 조차도 못알아들었다 ;ㅁ; 나의 짧은 영어와 그녀의 짧은 영어가 맞부딪혀서 낸 결말은 서로를 향한 미소와 배려 선물만이 전부. 흑흑.

한밤중에 헤어져서 후레쉬터뜨린 사진밖에 없다 흑흑 미안해 까롤리나~

 




 



안녕하세요? 네루다.
저는 세울에 살고 있는 마음만은 아직 소녀인 녀성이에요.
쏘이 꼬레아나. 라고 하면 될까요? 푸하하.

내가 700페이지짜리 빠블로 네루다 평전을 읽으때부터 생각한건데요.
당신이 인정할 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꼭 한번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군요.

당신과 나는 닮은 점이 많아요!

음 그걸 처음 느낀건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였어요. 이번 여행 무사안전하게 마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6년전 유럽여행 때 일기장을 펼쳐 들었죠. 근데 너무 이상한게 일기 첫머리마다 시작되는 문구가 다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비범한 문구'를 다시 발견한건, 당신이 동생 라우라에게 쓴 편지에서였어요.
당신도 가족에게 편지를 쓸 때면 어김없이 그 문구를 편지마다 집어 넣었더군요. 

돈이 없다.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에서 나의 상황과 처지와 전반적인 모든 상태를 알릴 수 있는 한마디의 문구. 6년전 배낭여행 일기장 시작마다 등장한 그 문구는 가족에게 쓰는 당신의 편지에도 항상 서명처럼 첨부돼 있었죠.  

그 뒤로도 저는 당신에게 많은 부분, 동질감과 공감을 느꼈답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당신의 입장이나 자잘한 사건 사고 때마다 분노하고 격앙된 감정을 표출했던 당신. 당신도 사주를 보면, 저 처럼 불 화(火)자가 많을 거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그리고
산띠아고와 발빠라이소 두군데 있던 당신 집을 방문하면서 저는 또 다시 당신과 나의 공통점을 찾아냈어요. 바로 수.집.벽. 그것도 이쁘고 귀여운거 보면 못참는 수.집.벽. 망명시절 그 예쁜 물건들은 당신에게 꽤 커다란 짐이었겠어요. 저도 물건 세트로 모아두는데 하나 없어지면 잠 못자거든요. 완전 죽어요. 진짜 아끼는거면 흐느끼면서 울 때도 있어요. 같은 거 다시 구할 때가지 인터넷을 뒤지고 뒤지고, 그러다 못 구하면 수년이 흐른 뒤에도 다시금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고문하죠. 그거 어쨌니? 어따둬서 이렇게 못찾는거니? 당신의 일렬로 서 있는 러시안 인형을 볼 때마다, 부엌에 미친듯이 서 있는 조각장식들을 볼 때마다 벽에 박혀 있는 배모양 창문을 볼 때마다 그 모든게 탐나고 예뻐보일 때마다 저는 당신과 저의 공통점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평전을 읽다가
당신이 당신이 나고 자란 곳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당신의 첫번째 딸에게 '말바 마리나 뜨리니다드(뜨리니다드의 자주색 말바꽃)'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만일 제가 당신같은 상황에 처해 외국을 망명해야할 때 가장 그리워 할 것을 꼽아보라면, 저 역시 제가 자란 동네를 고를 거예요. 그곳에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제가 보내온 시간들도 제가 간직한 기억들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곳이니까요. 저는 아마도 제 딸에게 '연희'란 이름을 붙여 주겠죠. 당신 처럼 말이에요. 

방명록에 남긴 문구는 마음에 드셨나요?
저 그래도 나름 당신의 집에다 꼭 남겨야 겠다고 한국에서 부터 준비해서 간 시구예요.
아는 단어는 몇개 없지만, 운율이 참 아름답더군요. 시(詩)가 노래 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 봐요. 당신은 많은 것을 노래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를 했던 사람으로 언제까지고 기억할께요.


Adiós te digo, pero no me voy
me voy, pero no puedo decirle adiós




-tu cariño
(알고 계신진 모르겠어요.
cariño를 한국에서는 '앙증'이라고 한답니다!
바로 제 별명이지요. +_+ 푸하하)


2


결국은 유로피안
에... 음... 그니까..... 그 미남이 잘생겼다고 생각한 것은 엘찰뗀 버스부터였다. 인상 쓰는데도 멋있어. 옆모습이 완죤 조각이야. 털도 제법있어. 푸하하. 나는 다시금 내 취향은 조금 사납게 생긴 코뾰족한 서양인임을 자각했다. 게다가 자기 어머니에게 잘하는 그 모습이 더더욱 훈훈! 게다가 소란한 미국애들에게 한마디 던지길래, 난 진짜 그 남자가 화끈한 라틴 남자인줄 알았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그 미남마저 영어로 단 한마디도 못하길래, 나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아르헨티나 가족이라고 그렇게 굳게 확신했었는데....

바릴로체에서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오소르노 역에서 한번 쉬었다. 출발할 버스가 9시임을 손짓발짓으로 가르쳐준 그들에게 나는 이름을 물었다.  꼬모떼 야마스 (¿Cómo te llamas?) 근데.... 근데...... 정말 한글로 받아 적을 수 없는 모음으로만 이루어진 아주 독특한 이름이었다. 
엥? 스페인어권 이름이 이렇게 어려운 이름이었던가?!?!?!?! 까밀라 끌라라 로사 뻬드로 빠블리또 까밀로 이런식의 센발음으로 이루어진 쌈빡한 이름 아니었어??

조심스레 나는 그들에게 출신지를 물었다. 니네 어느나라 사람이니.

럴수럴수 이럴수. 그들은 프랑스 사람이었다.
버스에서 백번 천번 무차수에르떼(행운을 빕니다) 딴또구스또엔베를레아끼(여기서 만나다니 반가워요) 따위를 외운 나는 등신중에 상등신. 이사람들아 그런건 진작 말해줘야 내가 메르시 봉보야쥐 본뉘 이런거 좀 연습했을거 아냐??!?!? 
더불어 그들이 생글생글 웃어주면서도 왜 그렇게 나에게 말걸기를 힘들어하고 당황해 했는지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여튼 여기에 와서도 남미 남자가 아닌 결론은 유로피안인가보다. 흑흑. 허탈한 마음 감출수가 없네-. 

오늘의 곰돌이
한복 치마 입은 곰돌이를 그 터프가이 아저씨에게 차마 건넬 수는 없어서, 어머니에게만 하나 건넸다. 오소르노역에서 산티아고행 버스 탈때까지만 해도 우린 마지막 까지 같은 버스를 타는 줄 알았는데, 아뿔싸 15분 차이가 나는 버스였다. 버스 타는 일이 워낙 시급한지라 사진 한장 못찍고 헤어지고 말았다. 더불어 15분 뒤에 온다는 나의 버스는 연착의 연착을 거듭한 결과 3시간 뒤에 나타났으므로, 그들을 아니, 그 프랑스 미남을 다시 볼 길은 더더욱 묘연해 졌다. 흑흑



2. 우리 고모들이 왜 오소르노역에?

프랑스 미남의 관할 하 그의 어머니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을 떄였다. 근데 한무더기의 칠레 사람들이 우리 옆에 서서 히히덕 대고 있었다. 딱 봐도 가족 구성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딸 둘 아들 하나. 둘째 딸이 까불까불 하면서 춤을 추길래 나도 모르게 픽 하고 웃었다. 그 대가족은 둘째딸을 후려치면서 야 너 땜에 쟤(=나)까지 빵터지잖아. 라고 하면서 더더욱 신나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선 오소르노 역에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왜이렇게 가족들이 많아. 버스타고 가는 사람 한 명당 스무명 정도는 기본으로 나와서 마중해주는 칠레의 퀄리티. 정겹기도 정겹고 사람사는 동네 같단 느낌이 들어서 마음도 훈훈 표정도 훈훈.
여튼 그러다 프랑스 모자를 떠나보네고 내 버스를 기다리고 섰는데.

나 정말 놀랬다.
왜 우리 고모들이 오소르노 역에 있는거지?!?!?!?!?!?
왜 (목청크고 시끄럽고 수다스런) 우리 고모들이 칠레 오소르노 역에 와 있는거지?!?!?!?!

조카로 보이는 이십대 초반 남자에 하나 버스로 태워보내는데, 고모뻘 되는 여자들(과 그의 자식들)이 우르르 나와서 스페인식 인사 (뺨 부비면서 쪽 소리내기)를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화를 유추해보면 이런거 같았다.

아 고모 완젼 화장품 다 씹힘. 나 뺨에 파운데이션 묻었뜸.
짜샤 고모만한 미인이 어딨다고 고마운 줄 알아!
헐. 말도 안됨.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고모 나이에 고모만한 피부를 유지하긴 힘듬.
헐. 못들은 걸로 하겠뜸.
왜이래 나 진짜 동안인 여자임.

뭐 여튼 이런식의 대화 같았다. 자기들끼리 빵터지고 시끄럽고 떠들어대고 그거 또 받아쳐서 빵빵 터지고. 그쪽 가족의 고모님들이 일단 우리 고모들이랑 너무나 닮았고, 볼륨 세기도 닮았고, 목소리도 닮았으므로 일단 칠레판 우리 고모로 인정!

그 외에도 오소르노 역에 볼거리는 꽤 많았다.
엄마한테 군것질 거리 사달라면서 안사주니까 역바닥에 드러누워 자기 옷으로 걸레질을 하는 꼬마 여자애를 봤고 (역시 사람 사는건 다 똑같다는 진리를 깨우쳐줌)
친구 하나 버스타는데 친구들 열댓명이 몰려와서 기타치고 노래해주는 것도 구경하고. (기타를 너무 못쳐서 깜짝 놀랐단 말을 덧붙이겠다) 바릴로체 오또 산에서 만났던 세명의 뮤지꼬(뮤지션)들도 그랬지만, 참 여기애들은 기타를 못쳐. 근데 꿋꿋해. 구김 없어. 좀 못난 자기 자신이면 움츠러 들어서 표출 안할만도 하건만 구김없이 드러내고 발산하네. 그것도 멋이라면 멋이고 간지라면 간지다.

여튼 오소르노 역의 칠레인들은 세시간 연착하는 버스에도 짜증 한번 부리지 않고
세시간이 지나 등장하는 버스에 박수를 쳐주는 훈훈함을 보여주었다.
사실 난 반바지 차림이라 너무 춥고 짜증났는데, 칠레사람들의 훈훈한 모습에 감화감동해서 도저히 짜증을 낼 순 없었던거 같다.




오전 10시 10분이다. 바릴로체 센트로에 앉아 있다. 버스는 오후 1시 출발이니까 아직도 시간은 정말 널널하다. 생각해 보니 난 이제 칠레로 넘어가잖아? 아르헨티나가 어땠는지 이 시점에서 정리를 시작하긴 해야겠는데 말이지. 일단 스위스가 미친듯이 넓게 늘어나서 우리나에 40배 크기로 놓인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자면 쇠고기?!?!!??!(미안하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부스 데 떼르미날에 앉아 있다.

사람들도 많고 큰 개도 많다. 무려 터미널 안 실내인데도 개가 많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터미널 안에 앉아 있었던건 아니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훌륭하길래 바깥을 좀 서성이다가 터미널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근데 정말로 덩치 좋고 힘좋게 생긴 큰 개 한마리가 오더니 자꾸 꼬리로 내 트렁크를 탁탁 쳐낸다. 처음엔 무시했다. 근데 계속 꼬리로 트렁크를 쳐댄다. 어이가 없어서 트렁크를 치웠다. 그랬더니 당당하게 그 자리에 드러누우시네요. 예 형님, 형님 자리셨는데, 미쳐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게 쭈그리가 되어서 터미널 안으로 들어왔던 말씀.
뭐 사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평등한 동물권이란게 있는거 아니겠어요? 저는 고기는 좋아하지만 동물권은 인정되야할 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모순된 삶을 사는 녀자니까요.


비바 부스!
산티아고 행 버스에 탔다. 일단 심호흡 좀 하고 널뛰는 내 심장 좀 억눌러 볼께요.
얼씨구 어절씨구 비바! 아르헨띠나-! 비바 비바 올레!!

버스가 꽉 차서 바릴로체에 하루 더 묵게 된 게 너무나 감사하다!!!! 하나님 부처님 너무 사랑해요 너무너무 좋아염~ 엘찰뗀에서 바릴로체로 넘어올 때 만났던 버스 최고 미남이랑 또 마주쳤다. 무려 같은 버스다. 가장 먼저 날 알아본건 그 미남의 어머니. 아주머니가 먼저 툭툭 치면서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더라. 나도 아는척하고. 버스표 비교하니까 둘이 같이 오소르노 역에서 대기하다가 버스 타는것 까지 똑같네. 엘찰뗀 버스에선 오만상을 찌푸리던 미남이 환하게 웃으니까 주변이 다 환해지고 버스 짐칸도 환해지고 버스 안도 환해지고 내 마음도 환해지네요.
일단 그 미남과 어머니가 어느나라 국적일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지금 현재로선 국적을 묻는 스페인어를 모르고 있으므로, 스페인어 회화책을 다시 꺼내야겠다.


정말 살기 싫다. 아아 망신 망신 대 망신. 이런 망신이 없다 흑흑.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을 넘는데 세관검사가 있었다. 무슨말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께 프리오(춥네요)'란 말을 걸어야 겠다고 결심 결심을 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도 날 보더니 환하게 웃어주더라. 나 역시 미소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가는 찰나!

바로 앞에 둔턱을 못보고 넘어졌다.
흑.

더 창피한건
"께 빠 소? (영어로 치면 How are you?에 해당하는 안부 표현)"
라고 묻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무이 비엔 (완전 좋아요!)" 정도로 대답한거?!?!?!?!?
무릎에 정말 피가 처절철철철 흐르는데! 완젼 좋아? 완젼 좋아? 완젼 쪼아! 진짜 좋아!?!?!?!?!? 대답을 그따위로 하다니. '아씨아씨(그럭저럭)'이라고 대답했어야지 이여자야!!!!!!! 아님 '께빠소(괜찮니?)'라고 묻는데 피를 철철 흘리면서 '께프리오(추워요)'라고 대답하지 않은거에 대한 안도를 표해야하는 걸까?
뭐 그 때부터 빵터진 어머니와 미남아들은 내내 날 보면서 함박 웃음 지어주고 계시다. 미남의 미소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근자감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걸까?  



이동하기로 마음먹은 날은 버스티켓이 매진돼 있었다. 덕분에 바릴로체에 예정보다 하루 더 묵어야 하는데 내가 묵는 호스텔에 방이 없었다. 묵었던 호스텔의 체크아웃 시간과 묵어야할 호스텔의 체크인 시간에 텀이 있길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바릴로체 센트로에 앉아 있다. 탁트인 파란 하늘과 호수가 보이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못한다. 내 옆에 놓인 배낭과 트렁크 덕분에 심정적으론 갈곳 없는 이민자의 심정. 흑흑

18일 금요일 날 같은 버스를 타고 헤어진 세이지를 마지막으로 며칠째 동양인 콧배기도 못보고 있다. 그토록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낸가 한국말은 커녕, 짧은 영어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어젯밤 같은 방 프랑스 여자애에게 '신, 너 영어 하는 거 맞니?' 라는 굴욕을 당했지만 뭐 난 괜찮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흑흑.

(생각하면 만난다고 방금 세이지와 마주쳤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버스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센트로는 정말 발도장만 찍고 사라진다고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면 깔라파떼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이 많겠지. 갑자기 엘찰뗀 버스 터미널에서 들었던 쓸쓸한 마음이 엄습한다. 에잇! 이 우울한 감정을 떨치기 위해 싸놓은 사과라도 먹어야겠다.)

 


 

오또 산으로 향하는 길
만세 만세! 그토록 소원하던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투어가격을 아끼느라 여행안내소에서 대충 버스 노선을 묻고 빠뉴엘로 항구로 향했다. 유람선은 안타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그냥 항구 구경이라도 해야겠단 심정이 들어서 여기저기 서성이다가. 자리를 잡고 주저 앉아서 싸왔던 점심을 먹었다. 도시락을 먹을 때마다 점점 드는 생각인데. 내가 싸온 샌드위치는 참 맛 없다. 그냥 시중에서 사는 빵이랑 쥬스를 사마시는 게 나을 정도. ㅠㅅㅠ 그냥 아무 빵이나 사먹는 것보다 훨씬 진짜 훨씬, 맛이 없는데 계속 요리를 해야하는 걸까 커다란 의문이 든다.

여튼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가기 위해서 20번 버스를 한 없이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애정행각을 보이는 커플이 보였다. 제길 이놈의 남미 휴양지! 남녀만 있다하면, 부둥켜 있고 얽혀 있네! 속으로 외치며 당연히 나와 일말의 공통점 없는 서양 사람이겠거니 그들을 지나쳤다. 근데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
 
“저기요,”

대체 며칠만에 들어보는 한글로 완벽 표기 가능한 언어인가? ‘꺄악’하는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둘의 손을 얼싸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깜빠나리오 언덕으로 GOGO. 언덕에서 리프트를 타고 전망을 다 구경하고 난 다음에는 잠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기로 했다.



다시 만난 언니 오빠는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여*언니와 철*오빠. 직장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4년차 부부. 둘은 세계 일주를 목표로 한국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둘이 여행을 떠나게 된 동기는 우연히 보게된 BBC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죽기 전에 꼭 봐야할 100가지’를 보고 정말 죽기전에 가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어느 날 내가 계산을 해봤어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운 좋게 휴가를 많이 얻어봐야 1년에 15일이 정도. 그것도 월차 같은 걸 눈치 안보면서 썼을 때 이야기더라고요. 운 좋게 직장이 망하지 않아서, 오래 한 직장을 다닌다고 쳐도 20년. 그럼 15(일) 곱하기 20(년)은 300. 1년도 안 되는 날짜예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전세금을 빼서 딱 1년간의 휴가를 갖기로 했어요.”

그토록 긴 인생에서 딱 일 년. 전세금을 빼서 시작한 세계 여행. 하지만 주변에서 말리는 만류의 목소리도 많았다고 한다. 미쳤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무모한 용기 아니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게 바로 이 여행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거라고 언니와 오빠는 말해줬다.
한국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던 1년이라는 공백. 하지만 인생은 길다. 수십번의 일년이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 수십번 중에서 1년도 짬내기 어려운 삶이란 무언가 고민이 든다.
 
떠나기 전 비행기에서 심심풀이로 읽었던 동물농장의 대사가 떠오른다. 동물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죽어가는 가축들을 일깨우기 위한 지도자의 말이었다.

“영국에서는 어떠한 동물도 태어나서 1년이 지나면 행복이나 여가란 말의 뜻을 모르게 됩니다. 영국에 있는 동물들에게는 자유가 없고 불행과 예속이 전부입니다.”

백여년 전. 당시 노동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쓰였던  저 문장이 나와 내 친구들이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불과 몇시간 전 새벽. 호스텔 입구를 몰라서 헤매고 또 헤맸던 것이 모두 꿈 같다. 간신히 입구를 찾아 자고 있던 직원을 깨우는 민폐 끝에 받게 된 도미토리 룸. 짧은 다리로 2층 침대에 올라가지 못해 나는 고요한 암흑속 침대에 매달려 몇분간 바둥거려야 했다. 서너번의 추락도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나는 간신히 2층 침대 위에 안착. 깔깔이를 입은 채로 꿈나라로 들어갔다.

강렬한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발딱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눈파란 서양인 아저씨 둘이 나를 향해 좌우대칭으로 손을 흔들고 있넹-. 대머리 영국인 아저씨의 이름은 팀. 미국인 할아버지뻘 아저씨의 이름은 탐. 이름을 듣고 빵터졌다.
그리고 나는 초면이고 하나도 안친하다는 무례를 무릅쓰고 둘에게 (그어떤 말라깽이도 살을 찌우고야 마는 저주받은 악마의 간식)'팀탐'을 아냐고 물었다. 그들은 아쉽게도 모르고 있었다. 캐나다산 과자인데 무척 맛있다는 간단한 설명만 덧붙였다.
보기만해도 나 활달해 나 기분좋아 온몸으로 말하고 조증돋는 아저씨 탐은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다. 그에게 짧은 영어지만 '이프유고잉투샌프란시스코~'라며 노래를 불러줬더니 더더욱 기뻐했다. 

오늘의 가장 큰 과제는 떠날 버스표 예매하기였는데, 불행하게도 내가 원하던 날짜에는 버스표가 없다. 할일도 없는데 하루를 더 머무르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게다가 정말 오늘 하루종일 동양인을 단 한명도 마주치지 못하는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슬슬 불행의 화살이 날 겨누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기운내기로 했다.

여튼 오늘의 계획.
1. 저녁을 먹는다. 쇠고기를 먹는다. 배터지게 먹는다. 
2. 없군. 

불의 기억이나 마저 읽어야겠다. 




  
저녁을 먹은 뒤에 쓰는 일기
나이 서른을 먹었지만 신세대 돋게 '헐...?'이라는 한 단어로 스스로에게 반문 중이다. 지금 내가 본게 맞는지, 정말 제대로 본게 맞는지 몇번이고 다시 새기고 있다. 나 지금 팀의 엉덩이를 본거 같아;;;; 내가 유럽유스호스텔에서도 돈아끼느라 대부분 믹스 룸에 있었는데, 그때도 남자 엉덩이를 본적은 없었다. 근데 나 지금 방금 전 이 방에서 물론 살짝 뒤돌아 있긴 했지만 팀의 엉덩이를 본거 같아;;;;; 팀 내가 지금 버젓히 짐 정리하고 있는데 대놓고 옷갈아 입은거 맞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맹세컨데 중요부위는 못보고요 일단 엉덩이를 봤는데요 그게 엉덩인줄 어떻게 알았냐면 썬텐자국난 백인의 피부색이 그대로.....

담배맛은 모르지만, 그냥 오늘은 왠지 담배가 피우고 싶다.

사실 나는 팀을 붙잡고 말하고 싶다. 팀 나를 남자로 아는거 아니지? 아니면 동양인 여자는 여자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건? 너따위로 생겨서 레이디 대접은 바라지 말라는 뜻인가? -_- (그 옛날 그림그린다고 난리 쳤을 때 누드크로키도 다녀봤던 나지만)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튼 일기를 다 쓰고 할일이 없을 예정이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일단 <불의 기억>이나 마저 읽어야겠다;;;





페리코 호스텔에 도착했다. 나의 후각을 자극하던 발냄새와 암내들이여 안녕!
지금은 이렇게 상쾌하게 웃고 있지만 오늘 새벽 웃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


한밤 중에 외치는 "땡고 베르구엔싸"!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예정시간은 새벽 1시 반이었다. 밤에 비몽사몽 버스에서 깼는데 하나둘씩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크로머는 나보다 한정거장 먼저 내리는 크로머가 내리는 뒷모습이 보였다. 근데 어라라? 크로머의 론니플래닛이 바닥에 고이 모셔져 있네. 나는 론니플래닛을 들고 뛰쳐나갔다. 

"크로머! 크로머! 너 책두고 내렸다!"

크로머는 느긋하게 담배피는 중이었다. 그리고 크로머가 내리는 정류장은 앞으로 두시간도 더가야 나온단다. 창피 창피 왕망신. 넓게 펼친 오지랖을 다시 돌돌 말고 싶은 순간이었다.

여튼 난 버스를 다시 탔고, 담배 다 피고 들어온 크로머는 웃고 있었다. 땡고 베르구엔싸.(창피합니다) 아는 말하니까 빵터지면서 책을 챙겨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사건이 여기서 일단락됐다면 오지랖 넓은 동양여자애의 한번의 착각으로 끝났을 것이다.

다시 버스는 달리고 달려서 눈을 떠보니까 새벽 3시. 옆자리를 보니까 크로머가 없다. 건너편 자리를 보니까 세이지도 없다. (세이지랑 나랑은 둘다 바릴로체에 숙소가 있다.) 어라라. 여기가 바릴로체 맞구나. 나는 부랴부랴 배낭을 매고 내렸다. 그리고 화물칸에서 내 트렁크를 꺼내서 질질 끌고 가는데 세이지와 눈이 마주쳤다. 세이지는 굉장히 의아한 눈길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또 여기가 아닌가?!?!? 어리버리하고 있는 사이 뒤를 돌아보니 크로머가 보였다.
짐을 내리고 있는 크로머는 나를 진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 너 (내리는 곳도 이렇게 못찾는데 너의 두달짜리) 여행... 가능하겠니?"
라는 진심이 눈빛에 절절히 맺혀 있었다.  

그 앞에서 '땡고 베르구엔사'로 크로머를 두번 웃기는건 못써먹을 저질 개그였다.
크로머의 걱정을 한몸에 받은채 나는 다시 트렁크를 재저장!
그 옆에 있던 세이지 역시 나를 매우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차저차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크로머는 나보다 먼저 내리고. 내리면서 다음에 내리는 곳이 바릴로체라고 신신당부를 남겨주더라. 우여곡절끝에 바릴로체에 닿았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각. 세이지에게 숙소 예약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노숙한단다. 정말 괜찮겠냐고 물으니까 씩씩하게 괜찮단다. 방한용으로 싸온 깔깔이를 줄까 하다가  너무 최악의 저질패션이라 차마 내밀지 못했다. 

택시타고 오는데 우리 버스에서 내가 꼽은 최고 미남이 엄마와 같이 따라왔다. 내 생각인데 난 인상쓰고 사나워보이는 서양남자가 취향인거 같다. 아까 미국애들 막 떠드는데 좀 조용히하라고 팍 소리지를 때부터 어머어머 저 남자 잘생겼다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안그래도 에어콘도 안나오는 버스 안에서 미국애들이 너무 떠들어대서 나도 짜증이 나던 차였다.)    
밤에 택시타는 게 무서워서 그와 그의 어머니를 붙잡고 숙소가 어디냐고 같이 택시타지 않겠냐고 묻고싶었다. 근데 아까 화장실에서 몇번 마주쳤는데 그와 버스최고미남의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것 같았다. 나는 포기가 빠른 여자니까 바로 포기했다.  
그냥 내 운명을 신에게 맡기고 혼자 택시를 잡아탔다. 다행히 기사아저씨는 친절했다.

그렇게 도착한 페리코 호스텔.
우왕 산장모양을 한 호스텔이 너무너무 이쁘다. 간지 좔좔 주변 동네도 한적하니 너무 좋아.
새벽 4시에 입구에서 벨을 찾을 수 없단 것만 빼면 완벽한 숙소였다.
이대로 호스텔 문앞에서 밤을 새게 되는 것인가?!?!? 그냥 세이지랑 같이 역에서 밤이나 샐껄. 다시 한번 세이지에게 내(남동생) 깔깔이를 주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구나! 이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줄 미리 알았구나 아이고 아이고.
더듬더듬 숙소 입구를 살펴보기를 30여분. 간신히 구탱이에 박혀 있는 벨을 찾았다. 실례를 무릎쓰고 벨을 눌렀다. 자다 깬 호스텔 직원이 눈을 부비며 문을 열어줬다. 2층 내 방으로 들어갔다. 2층침대에는 계단이 없었다. 정말 대롱대롱 매달려서 간신히 2층 침대로 올라갔다. 깔깔이를 벗을새도 없이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크로머와 세이지의 눈빛이 다시 한번 생각난다.
나 여행.... 진짜 가능할까?!??!?!







여튼 간신히 바릴로체 도착하니까 새벽 4시.


악몽의 바릴로체 행 버스안을 추억하며 쓰는 2월 18일 일기

버스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한없는 외로움으로, 앞으로 (두번다시) 한국말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괴로움으로, 나는 버스로 향했다. 근데 어디선가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후지 여관에서 만났던 세이지. 다시보고 눈을 다시 비벼봐도 세이지는 18살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엄연한 '오빠.'(저번 후지여관서 술마실때 어디서 '오빠'란 단어를 알았는지 강조해서 빵터졌다)
여튼 둘은 같이 인사 나누고 짐 싣고, 버스를 타는데...  순간 나는 턱하고 막혀오는 고통과 조우했다.... 
죄다들 60리터 배낭은 껌으로 들고 다닐 것 같은, 야생을 사랑하고 야생을 추구하고 야생에 남겨져도 무병장수할 것 같은 아웃백 사나이(+아가씨)들이 한버스 가득! 한 다스 가득! 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냄새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초조해 하며 내 좌석으로 가는데 곧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어머~ 죄다들 등산화를 벗고 계시네. 

내 옆좌석에 앉아 있는 독일남자애 크로머 역시 발냄새에 동참중이었다. 오늘은 엘찰뗀 트래킹을 7시간 하고, 그 전에는 토레스델파이네에서 3박4일인지 4박5일 W를 찍었다는 씩씩한 크로머. 산악인 크로머... 어머~ 그래서 다들 이렇게 초면인데 샤이함 없이 발을 바깥으로 내놓는구나. 나중엔 후각도 마비되는거 같고, 나만 맡을 수 없다는 억울함도 발동해서, 결국 나도 그 발냄새 행렬에 동참했다는 슬픈 이야기....

밤 10시 넘어서 탄 버스는 달리고 또 달리고. 아르헨티나의 자랑이라는 루타 40번 국도를 달리고 달리고. 28시간 정도의 버스 운행시간. 비포장도로라고 다들 죽을 각오 하라고 했는데 난 비포장도로가 취향인가보다. 완전 신나. 자꾸 대학때 농활기간에 트럭뒷자석 탄것 같은 기분이 든다. 루룰루 신나게 타고 달렸다. 지평선도 보여. 풍경도 색달라 완젼 씬나. 그러나 행복은 점심때에 여지없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바로... 에어콘의 고장.

서양애들은 헐벗고라도 있지. 난 긴팔긴바지에 바람막이까지 껴 입었는데 이게 왠 난린가요;;; 결국 (서양인들 앞에선 한 없이 작아지는 수줍은)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버스 기사에게 한마디 할 수 밖에 없었다. '버스가 데절트네요' 게다가 버스 안이 너무 더우니까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친절까지~~ 나 바릴로체에 새벽 1시에 떨어지는거 왕무서운데 대체 새벽 몇시에 떨어지라고 이런 친절을 베풀어 주시나 흑흑흑.

여튼 고생은 내 옆에 앉은 크로머가 많이 했다. 나는 장거리 버스도 처음인데다가 창가쪽에 앉아 있었으니까 크로머가 내 수발 다들었다! 이걸 일반화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예전 유럽 배낭여행때도 그랬고 독일애들의 특징이 있다. 표정은 완전 무뚝뚝한데 행동은 완죤 친절. 처음 만났을 때도 짧게 인사 나눴는데 애가 표정이 영 밝지가 않더라. 엥 내가 동양인이라서 싫어하나 싶었다. 창가쪽 자리가 내 자리인데다가 새벽에 춥다 싶어서 꼼지락 꼼지락 거리고 있으니까 나를 흘낏 보더니 알아서 '가방꺼내줘?'라고 한다. 근데 표정은 완죤 무뚝뚝. 나는 급 쫄았고요... 그 다음으로 버스에서 주는 도시락이 나왔다. 난 먹을생각이 전혀 없었다 멍하니 들고 있는데 또 무뚝뚝한 표정으로 '올려줘?' 그러더니 알아서 올려준다. 표정이 안좋기에 나는 계속 쫄아만 있었습니다. 여튼 그 뒤로도 나는 잠바를 벗었다 다시 입었다. 가방을 올렸다 내렸다. 그 와중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섬세하게(?) 나를 챙겨주는 그애의 배려는 계속됐다.
아침에 일어난 다음에 창밖만 보는것도 지겹길래 한마디를 던졌다. '구텐 모르겐' 근데 갑자기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어젯밤 그렇게 무서웠던 그 표정은 어디로 갔니? 너 동일인물 맞니? 너무 감동하길래(?) 아는 독일어 단어는 다 말했다 구테라이제. 당케. 비게데스이네. 이리히베디히. ㅋㅋㅋㅋ 그 뒤로도 계속 눈이 반짝 반짝해! 뭐 그게 대수라고 그러니... 크로머는 베를린 근처 지방 아주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단다. 말해줘도 모를거라고. 사실 말해줬어도 몰랐겠지. 내가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건 7년전 독일에 다녀온게 전부란 것밖에 없기에 그거 말해주고 나는 레겐스부르크가 최고였다. 간단한 말밖에 건네지 못했다.

여튼 사막화를 버스에서 느껴보는 기이한 체험을 하며 28시간 예정인 버스는 33시간 넘게 계속 달리고 있었다. -_-




코지 선화 고모님과 헤어진 뒤 엘찰뗀 버스 터미널에 혼자 앉아 있다. 생각해 보면 유럽여행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였다.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고 외로워도 지고. 문득 생각났던게 유럽여행에서 잔세스칸스를 다녀왔던 날이었나? 영국 IN할때 만났던 민혜랑 언니들을 다시 만났다. 그렇게 하루를 시끌벅적하게 같이 돌아다니고 헤어지는데, 어찌나 우울하던지. 근데 뭐 덴마크로 올라가는 길에 정연언니를 만났던걸 생각해 본다면. 헤어지는거야 아쉽지만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믿어봐야겠다.

엘찰뗀 트래킹은.... 암.... 나쁘진 않았다. 선화도 있고 고모님도 있고 코지도 있었으니까 더욱 그랬지. 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로 챙겨주고 웃어주고. 오늘 올라만 한 삼백번 외친거 같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엔 탐스러운 버찌가 한가득 있었다. 근데 고모님이 자꾸 무리해서 따시는거다. 난 왠지 모르게 미국해안서 전복캐다가 몇천만원 벌금문 사건이 자꾸 생각나서 불안했다. 고모님을 말리면서 내려오는데.... 숲길에 배낭 두개가 버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좀 더 내려가보니까 키큰 외국인 둘이서 버찌를 정말 한가방 가득;;; 버려진 배낭이 시사하는 바가 참 커서 한참을 웃었음. 
 

우수아이아까지 내려간 것도 아닌데 이놈의 남반구는 해가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바릴로체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 28시간! 그것도 엘찰뗀을 들렸기 때문에 단축시긴 시간이다. 내리면 새벽 1시인데 강도만나지 않게 해주소서.
여튼 아직까지 여행은 다 좋다. 체력이 저질된것만 빼면 진짜 좋다. 40리터 60리터짜리 배낭메고 친구들과 함께 캠핑장 가는 서양애들을 보니까 마냥 부럽다. 나도 동네파랑 여꼴통이랑 이런데 오고 싶다고요. 이렇게 끝내주는 산과 풍경들을 혼자만 보고 있다니. 한국에서 끙끙댔던 월급 10만원 20만원 야근을 하네 안하네 죄다 부질없고 자잘한 소꿉놀이같이 느껴진다. 왠지 용기가 솟는다. 남은 기간 여행도 최선을 다해서!!! 지평선 28시간 보는것쯤이야 우습잖아?






남반구에서 들통나는 나의 빠순스런 과거 - 오늘의 곰인형 코지
코지랑은 모레노 빙하투어도 같이 한데다가, 엘찰뗀까지 함께했다. 짧은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는데 '알고 보니'란 단어를 쓸만한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일단 1982년생으로 나이가 같았다. 게다가 .... 루나씨 팬. 이란 말에 빵! 나 루나씨 은퇴비디오테이프도 가지고 있다고 종막 기억나냐고. (종막은 한자로 썼다) 코지는 아예 종막 콘서트를 갔다고 한다. 아 놔. 여기서 나의 빠순이 같은 과거를 들킬 줄이야. 내가 "고토바니 데키나이" 노래 너무 좋다고. 오다카즈마사 왜이렇게 노래 잘하냐고. 코지는 일본인 답게 K의 1리터의 눈물 좋다고. 보신탕 이야기랑 남미 남자 좋냐? 브라질리언 아르헨티나 여자들은 왜이렇게 이쁠까 등등 여러가지 이야길 나누었다. 6개월 후에 결혼한다는데 선화랑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근데 왜 여자친구는 떼고 혼자 여행왔니? 가기 전에 곰인형 챙겨줬는데 쳥겨주길 잘한것 같다. 이틀이나 함께한건 정말 긴시간이니까 말이다.



토레스델파이네 일일투어에 와 있다. 여행책자에는 없는 정보였는데, 후지민박에 가보니 토레스델파이네 일일투어가 있더라. 비록 새벽 5시에 출발하고 밤 11시에 돌아오는 강행군이지만 나처럼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4박5일 W코스가 왠말인가. 하루짜리 일일투어는 진정 나를 위한 투어인거 같다. 파하하.
새벽에 버스를 탄뒤 잠을 자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화장실은 진정 해우소구나! 이름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면서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나왔는데 나의 복통이 해결됨과 동시에 바깥 풍경도 달라졌다. 하늘도 개이고 저멀리 산들도 보이고 끝없는 지평선도 있고.

토레스델파이네 트레킹은 진짜 최고! 이거 안했으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을 듯. 작은 과수목같은 나무들이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데 귓가에 사운드오브뮤직 오에스티가 막 흘러나오는거 같아서 완죤 흥얼 흥얼. 흐르는 물은 빙하가 녹은 물이라 죄다 에메랄드 빛. 내가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에메랄드 빛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진짜 에메랄드 색깔이어서 에메랄드 빛이라고 한다. 보석을 원액 그대로 갈아 놓은것 같음. 게다가 저 멀리 펼쳐진 산은 (차마 오르지는 못하겠지만) 어찌나 거대하고 광활하고 담대하게 생겨먹었나요. 푸른하늘 아래 펼쳐진 배경이 정말 말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나는 손가락만 계속 들어 올렸습니다. 
짱짱짱!

산행을 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행여 내가 재수 없는 일을 당해서 (이를테면 가진돈을 모두 털린다든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던지)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를 한것만으로도 나는 이 여행에 쏟아부은 돈 몇백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여튼 오늘 본 것들은 사진으론 절대 표현안되는 절경들이었다. 이런건 직접 봐야해. 죽기 전에 봐야해. 판타지 장르가 있다면 이런 곳에서 촬영해야한다. C.G도 필요 없고 돈도 굳겠지. 여튼 남아메리카는 정말 엄청난 대륙이다. 다이나믹 라틴 아메리카! 께 에르메소! 무이 보니따!

토레스델파이네 트래킹에서 백미인 곳만 버스로 이동해서 사진을 찍는 이 완벽한 내 취향의 투어는 약 두시간의 트래킹을 하고 끝이 났다. 다시 칠레국경을 지나 깔라파떼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고민은 오늘의 곰인형(한개 밖에 안가져왔다)을 누구에게 주느냐다.

기호 1번 제시카.
멕시코 시티 대학교 졸업반이라는 친구. 얼굴이 약간 나탈리 포트만을 닮은 훈녀다. 칠레 국경에서 환전하는거부터 이거저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둘다 혼자 왔기 떄문에 같이 앉게 됐다. 짧은 영어로 토막토막 말하는데도 다 들어주고. 아까 절벽에서 폭포보고 내려올 때 기다려도 주고. 진짜 고마웠음

기호 2번 리짜르도 할아버지
새벽에 버스를 탈때부터 할아버지는 날 보면서 웃고 계셨다. 나 알아서 출국신고서 쓸 수 있는데 자꾸 부인을 불러서 내 출국신고서를 검사해주는 거다. 버스가 쉴때마다 두리번 대면서 걸어다니면 꼭 다가와서 사진 찍어주겠다고... ㅋㅋㅋ 근데 너무 웃긴건 그렇게 챙기면서 내가 짧은 영어로 말걸려고만 하면 혼비백산을 하며 자리를 뜬 채로 부인을 부른다. (부인은 영어 왕잘함)

리짜르도 할아버지가 더 기뻐할 거 같은데, 사실 하루종일 같이 다닌건 제시카고.
아.. 정말 우짜나....


오늘의 곰인형
오늘의 곰인형은 결국 제시카에게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손쓸 틈도 없이 (버스가 2층버스였다) 1층버스에 타고 있다고 내려버렸기 때문에 선택이 필요 없었음.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제시카에게 건냈다. 이제 간신히 숙소다. 밤 10시가 넘는 시각이지만 나는 오늘도 쟁여놓은 쇠고기를 씹을꺼다. 화이팅 화이팅.








많은 걸 봤다. 무지개만 네 번. 빙하가 낙하하는 것 세 번. 빙하위를 걸으면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장관들.(이건 세지 않겠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더욱 특별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깨달은게 있는데, 나에겐 외국인을 식별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거다. 투어 가는 길에 버스 옆에 미국인 아저씨가 앉았다. 짧은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지개도 같이 보고, 아니 빙하투어도 비싸죽겠는데 입장료는 왜 따로냐면서 함께 수다도 떨고. 근데 돌아가는 길에 또 내 옆에 미국인 아저씨가 앉았는데 나에게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또 물어;;; 이걸 왜 또 묻나 싶었더니 자기는 혼자 여행왔대. 아까 그 아저씨는 분명 부인이랑 같이 왔었거든. 결국 그 때부터 나는 그 두 사람을 식별하기 시작했다.
 
남미를 다녀보면 아르헨티나 남자들이 제일 잘생겼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통감하지 못했다. 근데 오늘 모레노 빙하 투어하는데 우리팀 가이드 아저씨가 너무 간지였다. (서양남자들은 썬그라스 벗어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모레노 빙하도 절경인데 가이드 아저씨가 더 절경임. 아저씨가 말하는 영어의 20퍼센트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 자신을 책망했지만 말 잘듣고 쫄쫄 열심히 쫓아 다녔음. (빙하에서 낙오하면 큰일이자나요....)

빙하 투어가 끝나면 모레노 빙하 얼음에 위스키를 넣어서 한진씩 돌린다. 민중의 집 중남미 소모임에서 배운 말 언제 써먹겠나 싶어서 아르헨티나 관광객들에게 위스키 잔을 치켜들고 "Hasta la última gota(마지막 한방울까지)"라고  말하고 쭈욱 들이켰다. 여기저기서 저 동양애가 뭐래?뭐라니?하더니면 원샷이래 그리곤 자기들끼리 빵빵 터지기 시작.  
-진정으로 다행이었다. 열심히 외운거 한번은 써먹을 수 있어서 ㅠㅅㅠ b




동행자가 있어서 더욱 씬나는 투어! 코지, 선화, 고모님








하루를 돌이켜 보며

시작은 최악이었다. 새벽 3시경 배가 너무 아파서 일어났다. 후레쉬 대신 쓰기 위해 아이폰을 켰는데 아이폰이 안켜지는 걸 발견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일단 그 고민은 위급한 고민이 아니었다. 나의 뱃속에서 천둥이 치고 폭풍이 불었고 있었기에-.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그 다음부터 나는 아이폰에게 애원을 시작했다. '아이폰아 아이폰아 왜 안켜지고 그러니? 나한테 삐진게 있으면 말로해.... 응? 응? 너 고칠려면 두달도 더 있어야 한단 말야'
우울해 하다보면 어느새 다시 뱃속에서 천둥과 벼락과 우뢰가;;; 그럼 다시 화장실로! 침대로 돌아오면 다시 아이폰아 아이폰아 울부짖고. 그렇게 새벽을 지샜다. 
그 피로 때문일까(?) 아침에 눈을 떴는데 8시 30분. 근데 또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느새 10시.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근데 바깥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트렁크를 끌려면 트렁크 짐을 비닐로 한번 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숙소 같은 방 홍콩친구 우엉이랑 잎은 아직도 쿨쿨 자는데, 부스럭 부스럭 소리 내려니까 너무 미안했다.(이봐들 아침 안먹니?!?!? ;ㅁ;) 그들에게 미안함을 감수하고 후다닥 짐을 다 싼 시각은 10시 20분. 잠 자는 잎을 깨워서 곰인형을 쥐어주고 안녕을 고했다. '안녕 잎! 나는 여기보다 15페소 싼 후지민박으로 떠나.... 여행 잘해. 건강하고. (너 쇼핑 너무 많이해서 짐이 너무 많다고 큰일이라고 남자친구 우엉이 어제 니 흉보더라. 근데 가방 두개는 좀 심했다. 저 짐 다 들고 이과수까지 어떻게 가니;;;;)'
*진하게 칠한 대사만 말했음을 밝힌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작별하며 비가 휘몰아치는 빠따고니아 평원을 가로질러 후지민박으로 GOGO.

호스텔에서 주는 아침밥도 사양하고 (후지여관으로 가는 길에 배가 아프면 진짜 대책이 없을 것 같았다) 용감무쌍하게 호스텔 문을 나섰다. 근데 후지여관이 유스호스텔촌에서 너무 멀더라;;;;; 트렁크는 무겁고 여기저기 진흙탕 천지라 끌 수가 없고, 비는 세차고 안경은 다 젖어서 보이는게 없고. 게다가 지도에는 빠져 있는 길 투성이. 한걸음 한걸음이 고역이고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가 내 인생에서! 그것도 빠따고니아 평원 한가운데서 언제 비를 맞을 수 있겠는가!!!!!

마음씨를 곱게 고쳐먹어서 일까? 그때 차가 한대 내 앞으로 서더니 금발에 완전 이쁜 언니가 나를 태워줬다. 그리고선 타고 들어간 후지여관은.... 걸었으면 정말 40분은 더 걸렸을 거리. 곰인형을 하루 한개 이상 뿌리지 않기로 했지만, 너무 고마웠기에 언니에게 쥐어 줬다. 금발 언니가 이름을 적어줬는데;;;; 못읽겠다.... 이바나...라고 읽는게 맞긴 한거 같은데, 이거 필기체는 아닌거 같고 뭔글씨야?!?!?!!? 대체 뭔글씨야?!!?!? 여튼 금발언니 너무 고마워요! 언니가 나에게는 깔라파떼 최고 미인임! 아냐 아냐 아르헨티나 최고 미인임!!!!

여튼 그렇게 천신만고 끝네 후지민박에 오니까 우왕! 깨끗해! 그리고 한국집 같애! 아늑해! 완전 좋아! 거기다 한국 사람도 있어 완전 씽나!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날이 활짝 개더라. 그래서 나는 대한항공에 이번에 합격했다는 친구와 깔라파떼에서 가장 큰 슈퍼로 고기와 와인을 사러 출발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이게 왠일! 숙소에 또 한국인이 네명이나 와있네. 진짜 반가왔던건 그들이 아이폰을 썼단 거다. 그들은 나에게 강제시작 버튼을 알려주었다..... '언니 이걸 아직 모르세요?'란 타박이 빈소년합창단이 불러주는 상투스 처럼 울려퍼졌음. 흑흑흑 이래서 한국인이 있어야 합니다!
근심걱정 (설사를 동반한 천둥번 집중호우 내 위장+아이폰 시작)이 해결되고 난 뒤 마주한 깔라파떼의 풍경은 또 달랐다. 어제도 감탄했지만 오늘은 더욱 아름답더라. 호수 구경겸 책을 들고 나가서 한두시간 볕을 쬐고 돌아오고, 새로 온 한국인들이랑 저녁거리 사러 다시 한번 장보러 나갔다.

그리고 저녁에는 후지민박에 묵는 일본인 친구들과 고기 굽고 술 따고 파스타 볶고 피자 만들어서 씬나게 놀았단 이야기.







스릴러 무비를 찍고 아에로빠르께 공항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내선 공항에 와 있다. 멀쩡히 잘 와있긴 한데, 이 느낌을 뭘까? 뭔가 수차례의 위기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것 같은 이 느낌...은 대체 뭘까?!??!?!?

괴담은 민박집에 들어간 순간부터 돌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센뜨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평일 오전이나 낮에는 복작이는 대신 주말 오전에는 사람 하나 지나지 않는 한산한 거리다. 그리고 얼마전 건장한 한국 남성하나가 토요일 환한 오전에 칼을 들이댄 사람에가 싸그리 털렸다고.
일요일 그것도 오전 8시 30분 경에 시내버스를 타야하는 나로서는 간의 부피를 줄여버리는 괴담이 아닐 수 없었다. 출발부터 불안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1. 민박집 같은 방. 세계일주중이며, 나에게 아프리카를 권해주고, '누나 누나'하면서 씩씩한 모습을 보여줬던 '호기심 천국'군이 나를 데려다 주다가 새똥에 맞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새똥은 진짜 새똥이 아니라 소매치기들이 이상한 오물을 묻힌 뒤 '당신 새똥 맞았다면서 정신을 쏙 빼놓고 그 사이 가방 속 지갑이나 카메라를 노리려는 수작이다) ㅠㅠ 호기심천국군이 새똥에 맞은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가방을 부여잡은 채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그리고 그 시점을 경계로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2. 공항으로 가는 시내 버스 안. 버스도 텅텅 비었는데 잘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서서 내 앞으로 온 아저씨. 아저씨 저 안그래도 간이 작아질대로 작아져서 머릿고기만큼 눌렸거든요. 그 아저씨 때문에 트렁크를 손에서 놓지를 못했네. 아저씨 한번 보고, 공항인지 아닌지 창문 한번 보고, 다시 아저씨 한번 보고. 불안 초조하게 한시간을 달렸다. 결국 그 아저씨는 그냥 공항 근처 해변으로 낚시 온 사람으로 밝혀졌지만. (아저씨 의심해서 미안해요!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3. 주머니 속에 넣어둔 80페소가 실종됐다. 이건 아침에 짐챙기다 없어진걸 확인한거니까 숙소에서 옷갈아 입다가 흘린거 같다. 흑흑 80페소면 맛있는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몇덩이임?!?!?!?!!?!? 무려 1200그람 아님?!?!!? 그러면 네끼는 배터지게 먹는데 아흙 아흙


여튼 공항에 앉아 있으니 좀 살만하다. 무사히 도착해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방금 전에 한 가족이 내가 앉은 자리 쪽으로 오더라. 자리를 비켜서 셋이 앉게 해주었다. 근데 아버지로 보이시는 분이 너무 구슬프게 울고 계시는거다. 어머니도 옆에서 흐느끼고 있고. 무슨 일인걸까? 온 가족이 이민가는 것 같은 커다란 짐보따리가 보이긴 하는데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안좋다. 안그래도 며칠 전 메데 지역에서 아르헨티나의 빈부격차를 눈으로 보기도 했고...

 








남들은 탱고슈즈를 살 때에
남들은 아르헨티나에 오면 탱고를 배우겠다고 탱고슈즈를 산다. 나름의 취미를 즐기고 문화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스테이크를 썰어먹을 칼을 샀다. 아까 호스텔 주방을 보니까 스테이크 칼이 없더라. 나는 오늘 꼭, 반드시, 기필코, 고기를 먹어야하는데 말이다. 남들은 몇십페소짜리 탱고슈즈를 사는 마당에, 4페소가 아까워서 고기를 포기해야 쓰겠나? 오늘 산 부위는 초리소. 주로 아사도 해먹는 부위다. 숙소에 굵은 소금이 없어서 가는 소금으로 간을 했지만 역시 고기가 끝내준다. 먹으면서 울면 추하다는데, 울고 싶었음. 맛있어서. 

아르헨티나 산 고기여 너는 왜 그리 아름다운가!!!?!??!?


본래 후지민박에서 묵을 예정이었는데, 방이 꽉 차서 가질 못했다. 내일은 가서 투어 정보 좀 얻고 해야겠다. 오늘 이동한 것도 없는데 발과 무릎 관절 쑤신다. 푹 쉬는 걸 목표로 쉬어야겠다.



오늘의 곰인형
깔라파떼 공항에서 내리면 후지민박에 방이 있는지 전화를 해야하는데 동전이 없었다. 이걸 어쩌나 종종종 대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아주머니가 자기 돈 넣고 전화를 걸어주는거다. 친절도 이런 친절이. 너무 고마운 마음에 곰인형을 꺼내주니까 그 자리에서 자기 열쇠거리에 바로 걸고 얼굴에 부벼보기까지;;;; 심지어 리무진 타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주셨음.









인어공주 사람다리 달고 다닌 고통을 느낀지 이틀째
어제 또 일기를 못쓰고 잤다. 한인 민박에 오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보내는 시간이 태반.... 수다 떨면서 밤은 밤대로 지새우는데, 시차 때문에 새벽에 눈뜨기 일쑤. 게다가 다리는 어제보다 더 쑤시고 아파오고 있다. 인어공주의 고통이 이 정도였을까? 아프다고 말도 못했을 텐데, 새삼 그녀가 더욱 불쌍하다.
 오늘도 역시 나는 아메리칸 델리에서 카페인을 들이부은 맛있는 꺄페꼰라체를 들이키고 있다. 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여유 있게 맞이하는 아침 식사는 이것이 마지막. 미친 설탕을 뿌린 빵들도 마지막 흑흑. 그러나 나는 오늘 꼭 고기 요리를 먹을테야.
지금 온몸에 꼭 끼는 옷을 입은 여자를 봤다. 어제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제법 웃음이 난다. 남미 여자들이 옷 입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1. 마음에 쏙 드는 옷을 발견한다. 옷을 산다. 사이즈를 불문하고 산다. 맞지 않아도 산다.
2. 옷을 입는다.
   (여기서부터 한국여자와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한국여자였다면 그 옷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갖은 노력을 해서 옷에 자기 몸을 맞추겠지.)
3. 옷을 내 몸에 맞춘다. 
 
그야말로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 아아 나는 남미 땅에서 발상의 전환을 배운다. 사람나고 옷 났지 옷나고 사람난게 아니다.



레꼴레따 구경과 땅고쇼를 보고 난 뒤
레꼴레따 잔디밭에 앉아서 사람들이 연주하고 춤추는걸 여유롭게 감상했다. 내가 진짜 이러려고 여기 왔구나. 내가 정녕 남미에 왔구나 가슴 설레더라. 비록 땅고는 아니고 보사노바 풍의 연주였지만, 뭐 여기가 남미라는 인증 아니겠나 싶다.

게다가 인*언니 덕에 본 땅고는 어땠나? 인*언니가 땅고 추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아다 준 덕에 식사도 하지 않고 단돈 50페소에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땅고 참피온들의 쇼를 볼 수 있었다. 땅고에 대해선 모르지만, 그래도 오기 전에 유투브에서 땅고 영상도 무지 찾아보고, 음악도 들어보고 했는데... 아이고 아이고. 나 세상에서 그렇게 박진감 넘치고 스릴넘치는 춤은 처음 봤어요. 에로틱이 느끼하지도 않고 어쩜 그렇게 절도 있게 박자 딱딱맞추고 화려한가요.
연주도 연주지만 나 정말 아르헨티노 들이 그렇게 멋있는줄 오늘 처음 알았음. 꽃달고 춤추는 언니들도 어찌나 예쁘던지. 가슴이 선덕선덕. 끝나고 뚜리스따(관광객)이라는 철판을 깔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BUT! 무대에서 볼땐 그렇게 크고 멋있어 보이던 사람들이... 그냥 평범한 아르헨띠노로 변신하는 순간이었음.



두번째 곰인형 : 레꼴레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할아버지.
버스 안에 있는데 뭔가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다, 그 분이 내 옆에 앉을 때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뚫어져라 그야말로 나를 인식하고 타셨다. 한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거다. 옆을 돌아보니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신 부에노스 할아버지가 한 스무번쯤 윙크를.... 빵하고 터지니까 어디서 왔냐면서 환영한다며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의 성함은 아마도르. 남미 사람 답지 않게 쉬지 않고 말씀하시는데 20퍼센트 정도 밖에 못알아들었다.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곰인형을 선물하니까 너무 좋아하셨다. 이 곰인형이 입고 있는게 한국인 전ㅌ통 의상이라는 말 정도는 해드리고 싶었는데. 회화책을 좀 찾아봐야겠다.  




땅고가 끝나면 평범한 아르헨띠노로 변하는 땅고의 마법!



아침 10시
어제도 아침을 해결했던 센뜨로 아메리카노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식사를 때우고 있으니 된장이라면 된장질이다. 하지만 팁을 포함해서 11페소. 2500원도 안되는 돈에 까페꼰라체 크로와상 세종류 탄산수 후고 한잔이 나오는 된장질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까페 또르또니도 그렇고 이곳 까페에는 카페인을 들이 부엇나보다. 어제도 커피 한잔에 두근두근대더니, 오늘도 짱이다. 두근두근 고동소리가 여행의 낭만을 더해주는 구나. 코딱지만한 소소한 일도 심장 뛰는 소리와 듣다 보면 신나고 재미나고 박진감 넘치게 기억되는 법.

어제는 5월광장 어머니회의 데모 모임에 다녀왔다. 수십년전부터 한결같이 같은 구호를 외친다는 것. 그 현장을 직접 보는 것. 다시 한번 이번 여행지로 남미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슬슬 라보까로 출발해야겠다.

 




오후4시. 
 마요거라 까페 또르또니 건너편에 앉아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벤치는 돌로 됐는데, 무척 시원하다. 겨울엔 아마 더 시원하겠지 -_-.
방금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꼭 해봐야할 것 서른가지 중에 한가지인 지하철(Subte) A선을 타봤다. 150년의 역사 답게 나무로 만들어졌다. 문은 손으로 열고 닫아야한다. 창문은... 다 열려 있다. 아무도 닫을 생각을 안한다. 근데 그게 낡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 운치 있는거다. 은은한 조명. 나무로 된 의자. 그리고 그 옆에는 백발 성성한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니까 그야말로 유럽의 살롱에 앉아 있는 느낌.  
아직까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설레는 느낌.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잔뜩 기대된다. 아아 짜릿해라~ 



*첫번째 곰인형.
라보까에서 64번 버스를 같이 기다려주던 대만 아주머니와 아저씨 부부.
처음엔 중국인인 줄 알고 대화를 텄다. 오래도록 오지 않는 버스를 함께 기다리고
어숩잖은 영어 한자(?)가 뒤엉킨 이야기를 했다. 대장금을 알고 계시기에 한복 입은 곰인형도 무척 반가워하셨다. 

 


토론토 0시 32분
토론토 공항의 동양인 여자는 바로 인경 언니였다. 노트북으로 네이트온 하는 걸 보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우다다다 한국말을 쏟아냈다. 푸하하.
땅고 선생님이고 아르헨티나만 무려 3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경 언니는.... 언니는..... 언니는.....;;;;  음... 무려 서른살까지 방송 작가였다고 한다. 서른살에 방송일의 불투명함을 느끼고 관뒀다는데.... 이거 이거 나의 고민과 너무 맞닿아 있는거 아닌지. 결국 나도 이 여행을 끝으로 관둬야겠다라고 결심하는거 아냐?
인영 언니에게 나의 여행계획 표를 보여줬는데, 언니가 빵터졌다. '버릇 남 못주고 촬영스케쥴짰구나 그래, 섭외는 다 됐니?'라고. 나도 한참 웃었다.
언니가 스케쥴을 보면서 말해주길 시간이 딱 두달이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면 리마와 키또를 빼고 보고타로는 비행기로 넘어가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일주일이나 남게 되고 있고 싶은 곳에 좀 더 있고 새로운 곳을 추가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도 있었고 말이다. 언니가 뿌노에서 아만따니 섬 투어를 강추해줬는데, 이야길 들으니 나도 급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캐나다를 떠나 칠레 산티아고행 비행기에 앉아 있다. 이번에는 창가 자리로 앉았는데 찬바람이 새로새록 스며들어오네. 다행히 옆자리는 비어 있어서 대 만족이다. 여튼 드디어 남미 상공에 떠 있는 기념으로 이 여행의 시작점이 어딜까를 생각해 봤다.

단연 첫번째로 꼽히는 게 축구의 신(神) 마라도나 였다. 길거리에서 바이올린 켜면서 탱고 추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외쳤다. 저건 가서 봐야해! 죽기 전에 봐야해!
두번째로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불의 기억> 정도가 되겠다. 근데 사실 이 책 선물받고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남아메리카 땅을 직접 밟고 싶단 생각은 안했는데 말이다. 내용 자체가 비극의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고, 혁명의 열기가 너무 펄펄 끓어서. 그 땅에 있으면 나도 휩쓸릴거 같고 그랬다.
여튼 그 두 개가 아프리카 보다는 남아메리카를 선택하는데 한몫했다. 결과가 어떻든,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칠레 산띠아고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길 칠레 시간 오전 10시 55분
길고긴 (35시간정도 되는) 2월 8일이 끝났다. 나 저녁 6시에 비행기 탔는데, 진짜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출발 전에는 시차 적응을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 따위. 장거리 비행기가 모든걸 해결해 줍니다~ 그야말로 몸빵으로 때우는 인생이다. 주희 말로는 대륙간 이동이 노화의 최고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대륙을 넘나드는 이동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피곤하지 않아.

공항에 내리면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다. 2시간 걸리긴 하는데, 그냥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도 구경해보고 돈도 아끼고. 근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가 굉장히 의문이다. -_-
장기 여행은 두번째이기 때문에 자꾸만 예전 유럽배낭여행이 생각난다. 그떄 영국으로 어떻게 in했더라? 같은 민박집으로 이동하는 언니들을 우르르만났고, 다같이 지하철 타고 이동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런던에는 형석이가 있어서 마음 편히 시작했기도 했고. 부활절이 끼어 있던 런던은 다 좋았다. 아주 드물게 날씨도 화창했고 공원도 좋았고 구획된 작은 가정집들도 사랑스러웠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어떨까.



불행이 자꾸 내 주변을 서성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
자꾸만 불행의 화살이 내 주변을 쏴대고 있다. 어제는 충북 아주머니가 비행기를 못타시더니 이번엔 인경언니 트렁크가 도착하지 않는 불상사가;;;; 거기다 리무진 버스는 파업 중이라 운행을 안한단다.
물론 나야 시내버스 타고 이동할 예정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자꾸만 드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불행의 화살이 실은 나를 조준하고 있었는데, 애꿎은 내 옆사람들이 죄다 맞고 있는거 아냐?!?!?!? 이러다가 내가 제대로 한방 맞는거 아냐?!?!?!?!


첫번째 숙소 남미사랑에 도착했다.
엉망진창인 나라 아르헨티나에 와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근데 여기서 엉망진창은 부정적 의미가 절대 아님!

공항에서 숙소에 도착하기까지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내가 동전 2페소를 버스통에 넣는 법을 몰라서 헤매였고, 결국 내 대신 카드 찍어주는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 때부터 버스 안에 모든 사람들은 나만 바라보고 수근덕 수근덕.
하뽀네소 하뽀네사 이런 소리가 들리더니, 자기들끼리 아는 일본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카와이-' 이 단어가 나왔을 땐 나도 모르게 빵터졌다. 하지만 나는 시크한척 창밖만 내다봤다.(왜냐면 스페인어를 못하니깐요 흑흑 ;ㅁ;) 여튼 두시간 남짓 수 많은 아르헨트노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가방 쓰러지지 말라고 잡아주는 사람들부터 내가 한마디 하면 백마디로 대답해주는 아르헨티나 아주머니(물론 알아듣는 말은 없었습니다. 흑흑) 시내 구경하는 기분도 쏠쏠하고. 야자수가 가로수로 서 있는 이국적인 느낌도 신선하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정말 제대로 균형을 갖춘게 없다는 점이다. 수백년은 되어보이는 스페인식 건물 옆에 현대식 아파트가 뒤죽박죽 섞여 있고, 벽면이 거의다 헐어있어도 애써 고쳐서 획일화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근데 그게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애써 고치지 않는다. 낡아버리고 퇴물이 되어도 밀어내고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그 가치만으로 인정받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이곳에 있으면 소모되고 버림받는 인생 같은건 없지 않을까? (건축이 사회를 반영한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재개발과 재건축이 판치는 한국이야 말로, '퇴물이 되면 꺼져'라는 구호처럼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버스 안을 들여다 봤는데, 흑인 백인 인디오 그리고 황인종(=나)까지 뒤엉켜서 인종의 전시장 같다는 느낌이 한가득. 이방인으로 있지만, 지켜볼 수 있는게 너무 좋았다.

버스에 내려선 잠시 사고(?)가 있었다. 내가 묵을 숙소는 800번대. 센트로 가까이였는데, 친절이 너무 과한 아저씨가 2700번대에서 내려줬다. -_-;;; 버스를 다시 타려면 동전이 있어야하는데 동전이 없었다. 결국 그냥 걷기로 했다. 여기 100번지 정도면 100m가 넘는 거리인데, 결국 2km가 넘는 길을 트렁크를 끌고 배낭을 매고 걸어 왔다.
그러면서 또 다시 느낀건. 아! 여기는 보도블럭도 온전한게 없구나. 한국에선 과거 80년대 시절 전경과 대치하고 있으면 데모꾼들이 보도블럭을 깨서 던졌다는데, 여기도 데모 하나요? 맨날 하나요? 보도브럭 던지고 그러나요?!?!? 심지어 중간에 보도블럭이 제멋대로 디자인을 바꿔;;; 트렁크가 보도블럭에 적응하느라 고생좀 했다.나 역시 2km를 걸어오는 동안 트렁크 바퀴가 나가는게 아닌가 걱정 좀 하고. 

여튼 그렇게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다. 아직까진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무척 마음에 든다.
사워하기 위해선 슬리퍼로 쓸만한 신발이 필요하다고 간절히 느꼈다.





시작이다.
다들 여행의 첫날을 이동하는 날로 잡는지, 도착한 첫날로 잡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6년 만에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분명 나에겐 모험(?)이었으므로 나는 오늘부터를 여행의 첫날로 잡아야 겠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예상밖의 일을 경험했다.
아 놔.... 비행기 티켓 보는 법을 모르겠더라. 어느게 게이트 번호이고 어느게 좌석번호인가.-_-;; 으앙 엄마! 방송생활 4년이 나를 이렇게 삭막하고 멍청하게 만들었어요. 지금이야 한국공항 한국사람 천지라지만, 당장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깔라파떼 행 비행기를 탈 땐 어쩌지? 아무나 툭툭치고 그냥 티켓만 백번 들이밀어?!?!?!?

아! 예상 밖의 일은 또 하나 있었다. 내 여행경로에 콜롬비아가 쿠바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보험회사에서 여행자 보험을 들 수가 없었다. 콜롬비아가 그렇게 위험국가인가? 수 없이 반문했는데 기억해 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콜롬비아를 각인했던건 94월드컵. 자살골 넣은 선수 귀국선물로 총알세례를 퍼부었었지. 뭐 그런 기억이 기억나긴 하는데.... 근데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으면 보험금이라도 있어야 남은 가족들에게 쓸쓸한 위로라도 되는거 아닌감요? 보험사에서의 퇴짜는 콜롬비아 가서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만은 나를 소심하고 겁많은 애로 만드는데 한몫하셨다. 콜롬비아 여행객은 보험사고객대접도 못받는 외로운 존재;;;; 갑작스레 콜롬비아를 넣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브라질과 이과수 폭포를 뺀 과감한 결정이었는데 말이다. 그냥 리마에서 점핑 쿠바에 도전해 볼 걸. 아니다! 브라질은 언젠가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브라질 월드컵도 있겠다. 하지만 왜이리 힘이 빠지고 들고 있는 하이테크펜이 천근만근짜리 방망이로 느껴지나요..?

한국시간으로 따지면 지금쯤 잠을 자고도 남을 시간인데, 왜이렇게 잠이 안올까? 이 비행이 제일 긴 비행이기 때문에 조금 자둬야할텐데. 방금 꺼내 읽은 책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한마디를 읽었다.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 6년 여의도에서 견고해질대로 견고해진 나의 성을 얼마나 허물 수 있을까? 기대해봐도 좋을것 같다.



6000피트 상공 성층권에서 마저 쓰는 일기
한시간 정도 간신히 눈을 붙였는데 사람들이 다 깨있다;;; 하는수 없이 나도 깼다. 이제부터 잘 시간이라 지금 자둬야하는데... 나는 왜이리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일까. 벌써부터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게 생각났다.

롯데월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지금 비행기 흔들리는게 딱 롯데월드 후렌치레볼루션의 움직임과 같아요~. 지금 흔들리는대로 조금만 더 흔들리면! 그러다가 헤드백같은데 좌우로 좀 부딪혀 주다가 하강하면 바로 후렌치레볼루션! 비행기니까 좌로꼬고 우로꼬고 180도 회전은 좀 힘들수도 있겠구나.
여튼 되살아난 기억을 더듬어본 결과, 놀이동산 안간지 3년이나 지났다. 이쯤 한 번 갈 떄가 됐지. 아무리 그래도 비행기에서 놀이동산의 정취를 느끼는건 좀 아닌거 같기도 하고.

벤쿠버에서 토론토까지 이동할때 한국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토론토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더욱 없겠지. 아! 짧은 스페인어로 기내식이나 제대로 골라 먹을 수 있을까? 세관 작성서는 어떻게 쓰지?
해야할 걱정목록은 한아름. 부디 성층권 상공의 해가 빨리 지기만을 바랄뿐이다. 



벤쿠버 공항 토론토행 비행기 안이다. 캐나다 시간으론 2월 8일 오후 1시 30분. 집에서 오후 3시에 출발했는데 아직도 2월 8일이다. 심지어 2시간 당겨졌어! 시간을 벌었습니다 어머니! 여튼 시차에 대한 감회는 각설하고!

일단 걱정이 돼서 미치겠다;; 벤쿠버행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충북사시던 아주머니가 아직 안오셨다. KOREA 스펠링도 못쓰시던 분이시라, 내가 챙겨 드리겠다고 했다. 근데 잠깐 캐나다 사람에게 내 짐 어느 공항에서 찾냐고 묻고 있었는데, 그 사이 내 뒤를 따라오시던 아주머니는 빡꾸를 먹고 사라지셨다. 대체 아주머니는 뭐에서 걸리신걸까? 담배? 여권번호? 세관? ㅜㅅㅜ
20여분 넘게 기다렸으나 끝끝내 아주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결국 지금 비행기는 출발하고. 나는 세 좌석 중 한 좌석을 독차지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흑흑흑. 괜찮으실꺼야. 그래도 벤쿠버 공항에는 한국인안내원도 있었어.... 흑흑

잠시 내렸던 벤쿠버. 공항 건너편 침엽수 숲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곳에 살면 동화같은 마음씨가 생기고 동화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복작복작한 한국을 벗어나니 어디든 좋은 세상같이 느껴지고 그렇다.
집에서 공항버스로 가기 직전 아이폰을 사면서부터 한시도 놓지 않았던 게임 스머프빌리지를 폴더 안으로 넣었다. 금댕이의 추천으로 시작한 갓핑거도 집어 넣고. 한국에 도착해서 이 두개를 다시 시작하면 진짜로 컴백느낌이 날것 같다. 동네파 애들은 지지리 궁상이고 지긋지긋하다고 구박하겠지. 허나, 지금으로선 그것마저 기대된다.


토론토 시각 밤 10시 35분
토론토 공항이다. 한국인의 자취를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아니다. 저쪽에 동양인이 하나 앉아 있다. 어느나라 사람인지 동태를 슬슬 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