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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8 2000피트 상공에서 쓰는 일기 2월8일


시작이다.
다들 여행의 첫날을 이동하는 날로 잡는지, 도착한 첫날로 잡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6년 만에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분명 나에겐 모험(?)이었으므로 나는 오늘부터를 여행의 첫날로 잡아야 겠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예상밖의 일을 경험했다.
아 놔.... 비행기 티켓 보는 법을 모르겠더라. 어느게 게이트 번호이고 어느게 좌석번호인가.-_-;; 으앙 엄마! 방송생활 4년이 나를 이렇게 삭막하고 멍청하게 만들었어요. 지금이야 한국공항 한국사람 천지라지만, 당장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깔라파떼 행 비행기를 탈 땐 어쩌지? 아무나 툭툭치고 그냥 티켓만 백번 들이밀어?!?!?!?

아! 예상 밖의 일은 또 하나 있었다. 내 여행경로에 콜롬비아가 쿠바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보험회사에서 여행자 보험을 들 수가 없었다. 콜롬비아가 그렇게 위험국가인가? 수 없이 반문했는데 기억해 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콜롬비아를 각인했던건 94월드컵. 자살골 넣은 선수 귀국선물로 총알세례를 퍼부었었지. 뭐 그런 기억이 기억나긴 하는데.... 근데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으면 보험금이라도 있어야 남은 가족들에게 쓸쓸한 위로라도 되는거 아닌감요? 보험사에서의 퇴짜는 콜롬비아 가서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만은 나를 소심하고 겁많은 애로 만드는데 한몫하셨다. 콜롬비아 여행객은 보험사고객대접도 못받는 외로운 존재;;;; 갑작스레 콜롬비아를 넣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브라질과 이과수 폭포를 뺀 과감한 결정이었는데 말이다. 그냥 리마에서 점핑 쿠바에 도전해 볼 걸. 아니다! 브라질은 언젠가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브라질 월드컵도 있겠다. 하지만 왜이리 힘이 빠지고 들고 있는 하이테크펜이 천근만근짜리 방망이로 느껴지나요..?

한국시간으로 따지면 지금쯤 잠을 자고도 남을 시간인데, 왜이렇게 잠이 안올까? 이 비행이 제일 긴 비행이기 때문에 조금 자둬야할텐데. 방금 꺼내 읽은 책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한마디를 읽었다.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 6년 여의도에서 견고해질대로 견고해진 나의 성을 얼마나 허물 수 있을까? 기대해봐도 좋을것 같다.



6000피트 상공 성층권에서 마저 쓰는 일기
한시간 정도 간신히 눈을 붙였는데 사람들이 다 깨있다;;; 하는수 없이 나도 깼다. 이제부터 잘 시간이라 지금 자둬야하는데... 나는 왜이리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일까. 벌써부터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게 생각났다.

롯데월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지금 비행기 흔들리는게 딱 롯데월드 후렌치레볼루션의 움직임과 같아요~. 지금 흔들리는대로 조금만 더 흔들리면! 그러다가 헤드백같은데 좌우로 좀 부딪혀 주다가 하강하면 바로 후렌치레볼루션! 비행기니까 좌로꼬고 우로꼬고 180도 회전은 좀 힘들수도 있겠구나.
여튼 되살아난 기억을 더듬어본 결과, 놀이동산 안간지 3년이나 지났다. 이쯤 한 번 갈 떄가 됐지. 아무리 그래도 비행기에서 놀이동산의 정취를 느끼는건 좀 아닌거 같기도 하고.

벤쿠버에서 토론토까지 이동할때 한국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토론토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더욱 없겠지. 아! 짧은 스페인어로 기내식이나 제대로 골라 먹을 수 있을까? 세관 작성서는 어떻게 쓰지?
해야할 걱정목록은 한아름. 부디 성층권 상공의 해가 빨리 지기만을 바랄뿐이다. 



벤쿠버 공항 토론토행 비행기 안이다. 캐나다 시간으론 2월 8일 오후 1시 30분. 집에서 오후 3시에 출발했는데 아직도 2월 8일이다. 심지어 2시간 당겨졌어! 시간을 벌었습니다 어머니! 여튼 시차에 대한 감회는 각설하고!

일단 걱정이 돼서 미치겠다;; 벤쿠버행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충북사시던 아주머니가 아직 안오셨다. KOREA 스펠링도 못쓰시던 분이시라, 내가 챙겨 드리겠다고 했다. 근데 잠깐 캐나다 사람에게 내 짐 어느 공항에서 찾냐고 묻고 있었는데, 그 사이 내 뒤를 따라오시던 아주머니는 빡꾸를 먹고 사라지셨다. 대체 아주머니는 뭐에서 걸리신걸까? 담배? 여권번호? 세관? ㅜㅅㅜ
20여분 넘게 기다렸으나 끝끝내 아주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결국 지금 비행기는 출발하고. 나는 세 좌석 중 한 좌석을 독차지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흑흑흑. 괜찮으실꺼야. 그래도 벤쿠버 공항에는 한국인안내원도 있었어.... 흑흑

잠시 내렸던 벤쿠버. 공항 건너편 침엽수 숲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곳에 살면 동화같은 마음씨가 생기고 동화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복작복작한 한국을 벗어나니 어디든 좋은 세상같이 느껴지고 그렇다.
집에서 공항버스로 가기 직전 아이폰을 사면서부터 한시도 놓지 않았던 게임 스머프빌리지를 폴더 안으로 넣었다. 금댕이의 추천으로 시작한 갓핑거도 집어 넣고. 한국에 도착해서 이 두개를 다시 시작하면 진짜로 컴백느낌이 날것 같다. 동네파 애들은 지지리 궁상이고 지긋지긋하다고 구박하겠지. 허나, 지금으로선 그것마저 기대된다.


토론토 시각 밤 10시 35분
토론토 공항이다. 한국인의 자취를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아니다. 저쪽에 동양인이 하나 앉아 있다. 어느나라 사람인지 동태를 슬슬 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