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내 인생에서 커다란 한가지를 결정지었다.

나는. 등산을. (엄청. 지독히도, 무지하게) 싫어한다.

오늘 하루의 시작은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살짝 날이 흐리긴 했지만, 하늘과 맞닿아 있는 띠띠까까 호수의 풍경은 얼마나 절경이었던가. 비록 꼴찌로 배를 탄 덕분에 내 의자 시트는 망가져 있었지만 참을만 했다.
태양의 섬 투어는 투어에 참가한 사람 모두가 처음엔 두시간 가량 등산을 한다. 약 3분의 1지점까지 왔을 땐 북쪽 선착장으로 돌아갈 사람과 태양의섬을 가로질러 남쪽선착장으로 갈 사람으로 나눈다. 이때 선택을 잘했어야 했다. 

여튼 그때부터 죽음의 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가파른 경사길에 저 멀리 바다 같이 끝없이 펼쳐진 호수. 그리고 손뻗을만큼 잡힐만한 구름. 푸른 하늘. 




하지만 정말 그런거 하나도 안보였고요. 안그래도 무겁고 쳐진 몸뚱이를 들고 해발 4000미터에서 산을 오른다는게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산티아고에서 새로산 등산화는 살때부터 발이 꽉 끼는가 싶었는데 고지대에 올라가고 나니까 그야말로 발이 퉁퉁 부어서 신발 앞창 단단한 부분에는 발가락 세개만 들어가는 불상사가! 
숨은 차오르고 갈길은 멀고 넷째 발가락은 부러질것 같고. 
중간중간 산소가 모자란지 머리도 아파오고.

그 언덕이 나오고 언덕이 나오고 또 언덕이 나오고. 경사를 내려갈땐 길이 미끄럽고. 그러다 넘어질것도 같고.
그렇게 한 예닐곱번의 언덕이 나오고 언덕이 또 보였을 땐 정말이지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운다고 해서, 섬 반대편에 대기하고 있는 배가 알아줄리도 없다. 안다해도  오후 3시에 출발하는 일정에는 변함이 없겠지. 
다행히 혜*언니가 나랑 호흡을 맞춰서 걸어주었지만, 정말 울고 싶고 짜증나고 싶은걸 참을 수가 없었다.
크헉 컥 헉헉 학학! 태어나서 그토록 격한 내 숨소리를 들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인 듯.  




그러다 북쪽선착장으로 향한지 한시간 만에 현지인을 만났다. 30분만 가면 남쪽 선착장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나는 행복의 나라 노래를 BGM으로 깔면서 견딜만하다고 스스로를 위로 했으나. 그 뒤로 한시간이 지나도 선착장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더욱더 험한 산봉우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을 뿐.
결국 거기서 만난 다른 현지인에게 길을 물었다. 30분 남았단 소리를 들었다. 한시간 전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왜 다시 30분이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이번엔 진짜겠지 그 믿음 하나가지고 산을 넘었다. 그렇게 가기를 또 다시 30분.

이번에 만난 현지인은 이제 높은데는 끝이라며 축하한단 인사를 건넸다. 그가 태양의 섬을 만든 창조자는 아니겠지만 고맙다고 고맙다고 그녀의 손을 붙들고 몇번이나 인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개의 언덕이 나왔던가?!?!?! 생각 같아선 그 현지인을 다시 붙잡아와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 눈에는 저게 오르막길로 안보이냐고! 설마 저걸 내리막길이라고 부르나요?!?!!?

여튼 체념의 상태로 몇개의 언덕을 더 넘었을 때 마주친 또다른 현지인이 이제 30분 남았단 소리를 했다. 난생 처음 보는 분이지만 그 분의 멱살을 붙잡고 '거짓말! 거어지잇마알!!'이라고 외치고 싶은걸 꾹 참았다. 
엉엉. 모두다 거짓말 쟁이들이야. 헛된 희망 따위 바라지도 않으니까 팩트만을 말해달라고!!!
그렇게 20여분을 걸은 결과 이번엔 관광객을 만났고 그는 15분 정도만 내려가면 북쪽 선착장이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간에 관해서 그의 말은 신뢰할만 했다. 다만 내려갈때의 그 길이 어떠했는지는 두번다시 떠오르고 싶지 않은 악몽인데....

수십미터의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가파르게 내려가는 그 길. 좁디 좁은 골목과 가파른 경사사 사이로 놓여진 그것은?!?!?!? 덩이 덩이 떨어진 커다란 당나귀 똥.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이 자기 집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뿌려놓은 빵가루 마냥 끊임없이 흩뿌려진 양 똥. 
따지고보면, 어차피 그 똥들을 모두 피해서 다닐 수는 없는 일이고 눈 딱 감고 밟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참 간사해서, 막상 눈에 보이면 밟고 느끼게 되는 그 찝찝한 감촉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러니까 안그래도 좁은 길. 흩뿌려진 똥을 피하다 보면 디딜데는 정말 몇군데 없고, 그냥 앞만 보고 전진하면 될 길을 돌아가고 돌아가고 점프까지 해대고.
정말이지 영영 선착장에 도착할 수 없을것만 같았다. 
수많은 똥들을 피해가며 그 높은 경사를 간신히 내려오고 나니 다행히 배는 출발하지 않았다. 

그렇게 배에 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또 다른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격한 등산으로 인해 너무나 격한 운동을 감행한 것일까? 나의 장이 10분에 한번씩 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내보내줘 내보내줘! 며칠 묵은 것들 다 해치웠다고!!'

하지만 내가 있는 장소는 (느림의 미학을 한없이 실천하는 느려터지기 짝이 없는 통통)배!
화장실도 없는 채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망망대호수! 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없이 아득하기만 했다. 고통속에서 끝없이 시위를 펼치는 그것들을 달래며 차마 배가 더 아플까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는 고통이 계속 됐다. 입은 바짝바짝 말라와. 다리는 퉁퉁 쑤셔와. 발가락들은 서로 떼어달라고 해. 

근데 배가 속절없이 가고 있는거다. 풍류도 풍류 나름이지. 이미 배안에 모든 사람들은 다들 쓰러지기 일보직전. (이른 8시 출발로 인한 이른 기상. 그리고 격한 등산. 고산지대로 인한 피로감 백배.) 하지만 배는 속력을 낼 줄 모르고요. 이번 투어에서도 함께한 브라이언은 차마 수영해서 가는게 더 빠르겠단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평생 해본적 없던 멀미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배는 아프고 먹은것도 없는데 속은 메식거리고.

나는 정말이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여기서 스쳐 지나가면 평생가도 기억한번 안해줄 사람들이 나를 '고작 2시간 동안 운행되는 띠띠까까 호수 배안에서 위로 쏟아내다 말고 뒤까지 쏟아낸 동양인'으로 나를 '평생토록'기억하는 것'그런 사람도 있었다~'라며 자기 친구들에게 떠벌리는 대상이 되는거.  

정말 그것만은 면하려고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모르겠다. 배를 움켜잡고 또 움켜잡고 바짝 마른 입안을 우물거리면서 입운동하고. 저 멀리 코파카바나가 보였을 때 폭우치던 내 배는 잠잠해져 갔다. 다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멀미나던 속도 많이 줄었다.

결국 나는 목표한대로,
같은 배를 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금방 기억조차 못할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만세!  

오늘의 결론: 사람이 정신력으로 안되는게 없다.
그리고 난, 등산을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