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화사하게 피고, 순결하게 지네 - 대혁명의 장미 오스칼


씨네 21에서 국방부가 선정 할 불온작품에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올려 놓았다.
아! 정말 이제사, 이 만화의 반사회적 코드를 알아주는구나. 앙뜨와네트의 휘황찬란한 드레스와 보석, 가장무도회와 불륜에 가리워져 이 만화의 참된 존재의 이유를 몰라주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 엄마도 개중 일원이었다. 바람난 왕비 애기가 뭐 그리 재밌냐고 질색했었지. 엄마! 난 적자부인의 사랑놀음 따위를 좋아했던건 아니거던뇨!)

이 만화에 대해서 내뱉고 싶은 말 투성이다. 그리고 내뱉고 싶은 만큼 간직하고 싶은 것 투성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 만화가 시작이었다. 16년 만화 오타쿠 인생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아우라! '베르사이유'라는 이름만 해도 상당한 부담인데(여성들이 애용하는 명품 이름같다;;) '장미'까지 더하라면 문제가 좀 심각해 진다. 18세기 서유럽의 궁중 문화와 파티, 화려한 목걸이와 고데기로 만 머리, 지름 2미터는 됨직한 과한 드레스. 30여년이 지난 지금이야 난감하게 다가오는 철지난 코드지만, 70년대 소녀적 감성에서는 이 만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유혹적이었을지.... (오그라드는 부끄러움에 대비해) 상상력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이 만화는 진정한 묘미는 역사에 스며드는 스토리 라인과 팩트와 픽션을 오가는 서사 구조. 시대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해주면서도 순정만화의 기본기를 놓치지 않는 충실함이라고 하겠다.

엔틱 문양이 금박으로 새겨진 가죽 하드 커버 책이지만 열어보면 깜짝 놀랄만한 혁명서랄까? 모양새는 이리 갖추고 있지만 제목과 내용은 엄연히 다른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이 만화 한권만 떼면 절대왕정을 지나, 산업혁명을 거친 프랑스의 한세기를 아울러 당시 유럽의 패권 분포까지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신분의 차이를 사랑으로 포장해 모두에게 감정이입시키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 (초등학교 4학년 어린 맘에 앙드레가 잔디에서 풀뜯으며 절규할 때, 나의 마음도 오그라드는거 같았더랬다! )  

일본 순정만화가 제 틀을 잡기 시작할때 캔디캔디와 더불어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은 이 만화. 더불어 순정만화의  거대한 신화로 이후 무수한 아류작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김혜린과 황미나도 데뷔 당시엔 이 만화와 엇비슷한 코드의 작품을 그려냈었다)

세계사수업 따위로 배울 수 없는 당 시대가 직면한 수 많은 일화들.
민중을 알고, 귀족과 부르조아를  배우고, 생쥐스트 로베스피에르 당통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하다 못해 루소의 소설 누아엘로이즈까지 소개해주는.
18세기 로코코 시대가 화려하게 꽃피운 궁정문화에서 그 끝자락에 휘몰아쳐 대던 대혁명의 시대까지! 역동과 격정의 시절, 프랑스 혁명. 진정 그 시대를 알고자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만화를 추천하고프다.

그리하여 나는 이 만화의 제목을 다시 짓자면, '대혁명의 장미'라고.....(-_-;;) 수 많은 소녀들을 울렸던 오스칼 (그러나 여자;;). 신분의 벽을 넘어 총탄에 피흘리면서도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던 그녀. 장미처럼 순결하게 져가던 혁명 전사에게 진정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 만화는 대원동화에서 1권부터 11권까지(1-9권. 10권 11권은 내용과 별도의 외전), 애장판 전 3권 (3권사이즈를 한권으로 합쳐 놓은 것, 책이 잘 갈라지고 보관이 어렵다)으로 나왔다가 2001년에 아주 작은 사이즈(보통 일본만화가 나오는 사이즈로 A5보다 작다. 총 11권) 로 한번 더 출간되었다. 외전에 등장하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그림체는 믿기 어렵겠지만 동일 작가 이케다 리요코의 그림이다. 다만 십수년이 흐른 후, 그림체가 상당히 손상된 뒤 팬들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 솜씨가 변질되버렸다.
2001년판은 인쇄가 마모되거나 흐릿하게 나온 선이 많아서 이게 과연 20년 이후의 인쇄술인가? 의문이 든다. 본 내용을 다 안다면 차라리 일본 헌 만화책 가게에서 전권을 더 구입하는 편이 아름다운 오스칼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겠다.  


* <베르사이유의 장미 - 미스테리와 진실> 이란 책도 나왔는데, 그닥 추천하지 않는다. 일단 미스테리가 별로 없고, 진실이랄 것도 없다. 정보가 진부하기 그지 없을 뿐더러, 팬이라면 대다수 알고 있는 내용이 전부다. 일러스트도 제대로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진정 베르사이유의 장미 오타쿠가 되길 원한다면 굳이 책을 사서 보기 보다는 웹상에서 넘쳐나는 베르사이유 장미 관련만 찾아보아도 충분하다.


* 우리나라 락 그룹인 <네메시스>가 <베르사이유의 장미>란 노래를 불렀다.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기본 스토리에 충실한 노래기 때문에 노래방에서 부를땐 오그라드는 친구들의 손발을 감상할 수 있다. 덧붙이면 가사 중, '잠들지 말아요 아직은 안돼요'부분은 오스칼이 앙드레에게 하는 말이고,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랑보다 더 큰 변화'란 프랑스 대혁명을 의미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마이크를 쥐고 가사를 음미하면 오그라드는 '자신의 손가락'도 발견할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