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떠나기 전 친구 하나가 미치도록 날 부러워했다. 

"리얼이니 앙증? 너 정녕 버스가 고장나면 화를 내는게 아니라
버스에서 내려서 음악을 틀고 다 같이 춤춘다는 그 남미 땅에 가는게 사실이니?"

그 한마디가 나를 얼마나 큰 기대에 부풀게 했나?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버스가가  고장난 적은 없었다. 3시간 늦은 버스에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춤을 췄다.
기차에서...;;;;
그것도 생판 처음 보는 콜롬비아 아저씨들과.

보고타에서 조금 떨어진 소금성당까지 가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미리 챙겨온 여행정보에 따르면 주말에는 관광객을 위한 소금성당행 기차가 준비돼 있다고 했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들과 함께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소금성당행 기차를 예매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토록 흥미 진진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곤... 난 정말 몰랐었네~. 

9시 정각에 출발한 기차는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느렸나면, 기차가 놓인 철도 옆으로 달리고 있는 자동차 중에서 우리가 탄 기차를 앞지르지 못하는 차종은 없었다. 심지어 2륜차 마저 (자전거 포함) 우리를 죄다 앞지를 정도였다.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기차 같은 칸 저쪽 편 아저씨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들은 출발과 동시에 술병을 따고 있었다.... 왁자지껄하면서도 얼큰한 분위기. 이거 왜이래? 그야말로 남미와 한국의 일맥상통하는 정서가 존재한다는 또 하나의 현장이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 위아더월드 인가봐.
무한경쟁에 반대한다는 듯 느릿하게 걸어가던(?) 기차가 두번째 역에 섰을 때 였다. 뜬금없이 역사앞에서 밴드의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 왠지 모르게 신이 나요. 너무너무 신이나요. 쿵짝 쿵짝 울려퍼지는 살사 음악에 넋을 놓고 있는데 이 밴드가 우리가 탄 기차를 같이 타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그때부터 기차 안은 밴드와 함께 춤을 추는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변신!

기차 전용 밴드는 그렇게 두곡을 연주하더니 다음칸으로 떠나버렸다. 그 흥겨움을 참지 못하고 다음칸으로 달려가서 문을 벌컥 열었는데, 거기는 나이 지긋하신 중년여인석들 전용칸(?)이라고 할만큼 중년과 노년여성들의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흥겨움의 열기는 그곳이 더 들끓고 있었으니.... 소금성당 티켓을 끊던 담당자가 티켓을 끊다 말고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손에 쥐어진 티켓을 들고 추어지는 흥겨운 춤사위에 나는 반하고 또 반했다. 그들 눈에는 밴드 구경온 동양인(=나)이 퍽이나 신기했나보다. 다들 이말저말 말을 걸더니 누군가 내 손을 턱하고 잡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한분. 내 손을 붙들고 살사 스텝을 밟기 시작! 그때부턴 나도 모르겠다 싶은 마음에 같이 흔들 흔들 되도 않는 춤을 신나게.

그렇게 두곡을 신나게 흔들고(?)와서 다시 우리칸으로 돌아왔다. 진작부터 빈병을 손에 들고 목소리를 드높여 노래를 따라부르던 아저씨들은 계속해서 병을 따기 시작. 한국사람들 잔돌리는 거랑 왜이렇게 똑같은지. 물을 마시듯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그렇게 도착한 소금성당은... 아쉽게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금광산 속에 만들어진 교회는 멋있기도 했고 웅장하고 거대하기도 했지만 오늘 하루 중 있었던 일을 강약중간약으로 한다고 비하면 '약'에 해당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정말 하일라이트는 집에 돌아오는 기차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중간에 들린 레스토랑에서였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아저씨들이 본격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짧은 영어와 짧은 스페인어가 몇번 오갔고, 그들은 무척이나 우릴 반겨줬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이런 사진을 남길정도로 말이지.


역시나 사진에서 눈여겨 볼 것은 맥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저씨의 강렬함이랄까?

그렇게 통성명을 마친 뒤 함께 탄 기차는 각별하고 또 각별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저쪽 끝에서 '꼬레아나~심지어 우리 무리엔 버젓한 남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존재는 지워버린 채 꼬레아나스(한국인 여자들)만 불러제끼는 아저씨들의 센스. (스페인어권에선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을 때는 복수로 남성형을 쓴다 여기서 우리를 부르고 싶었다면 꼬레아노스 라고 불렀어야 맞는 표현) 뭐만 있으면 무조건 꼬레아나스! 래. 그게 괜시리 빵터지고 빵터져서, 손인사 나누고 휘파람도 불고 눈인사도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 기차 서비스 왜이렇게 끝내주나요? 밴드가 또 탄거다. 그때부터 정말 끝내주는 춤판이 벌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사업상 전화인 마냥 심각하게 통화하던 아저씨도 바로 핸드폰을 꺼버리고 손수건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 엠빠나다를 팔던 아가씨도 흔들흔들 춤울 추고.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를 불러 제끼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꼬레아나 꼬레아나~
일행 중 한 언니가 튀어나갔다. 좁디 좁은 기차 복도에서 한 아저씨와 맞잡고 살사를! 기차안은 그때부터 흥분의 도가니탕. 한곡 끝나고 일행 언니가 들어오고 나니 다시 휘파람에 꼬레아나 소리에 결국 이번엔 내가 튀어나갔다. 살사는 못추는 덕에 앞에 선 아저씨를 따라서 춤을 췄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목에 두르고 있던 손수건을 풀러서 덩실덩실 같이 따라추는데 이거 노래가 이렇게 길었나? 아무리 춰도 춰도 노래가... 안끝나;;;; 알고 보니 기차 보호차 차를 탔던 경찰 아저씨가 밴드연주하시는 아저씨들에게 한번 더 노래를 돌리라고 부탁했다고. 그래도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연주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너무 부끄러운거다. 수줍게 뺨을 가리고 아저씨들에게 외쳤다. "땡고 베르구엔싸(부끄러워요)!" 그 말에 아저씨들은 박장대소 하며 더더욱 좋아했다는 후문이.
그리고 기차 호위차 탄 경찰은 핸드폰으로 내내 춤추는 우리 일행들을 동영상 촬영했는데 언젠가 유투브에 '로까 꼬레아나(실성한 한국인)'라고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것.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땅 콜롬비아.   
오늘 밴드와 함께 다같이 합창했던 노래 중 하나는 '꼴롬비아 띠에라 께리다COLOMBIA TIERRA QUERIDA(콜롬비아 땅을 사랑해)'
콜롬비아 네 글자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노래와 함께 오늘을 기억하겠지.
나는. 콜롬비아 땅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