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무비를 찍고 아에로빠르께 공항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내선 공항에 와 있다. 멀쩡히 잘 와있긴 한데, 이 느낌을 뭘까? 뭔가 수차례의 위기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것 같은 이 느낌...은 대체 뭘까?!??!?!?

괴담은 민박집에 들어간 순간부터 돌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센뜨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평일 오전이나 낮에는 복작이는 대신 주말 오전에는 사람 하나 지나지 않는 한산한 거리다. 그리고 얼마전 건장한 한국 남성하나가 토요일 환한 오전에 칼을 들이댄 사람에가 싸그리 털렸다고.
일요일 그것도 오전 8시 30분 경에 시내버스를 타야하는 나로서는 간의 부피를 줄여버리는 괴담이 아닐 수 없었다. 출발부터 불안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1. 민박집 같은 방. 세계일주중이며, 나에게 아프리카를 권해주고, '누나 누나'하면서 씩씩한 모습을 보여줬던 '호기심 천국'군이 나를 데려다 주다가 새똥에 맞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새똥은 진짜 새똥이 아니라 소매치기들이 이상한 오물을 묻힌 뒤 '당신 새똥 맞았다면서 정신을 쏙 빼놓고 그 사이 가방 속 지갑이나 카메라를 노리려는 수작이다) ㅠㅠ 호기심천국군이 새똥에 맞은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가방을 부여잡은 채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그리고 그 시점을 경계로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2. 공항으로 가는 시내 버스 안. 버스도 텅텅 비었는데 잘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서서 내 앞으로 온 아저씨. 아저씨 저 안그래도 간이 작아질대로 작아져서 머릿고기만큼 눌렸거든요. 그 아저씨 때문에 트렁크를 손에서 놓지를 못했네. 아저씨 한번 보고, 공항인지 아닌지 창문 한번 보고, 다시 아저씨 한번 보고. 불안 초조하게 한시간을 달렸다. 결국 그 아저씨는 그냥 공항 근처 해변으로 낚시 온 사람으로 밝혀졌지만. (아저씨 의심해서 미안해요!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3. 주머니 속에 넣어둔 80페소가 실종됐다. 이건 아침에 짐챙기다 없어진걸 확인한거니까 숙소에서 옷갈아 입다가 흘린거 같다. 흑흑 80페소면 맛있는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몇덩이임?!?!?!?!!?!? 무려 1200그람 아님?!?!!? 그러면 네끼는 배터지게 먹는데 아흙 아흙


여튼 공항에 앉아 있으니 좀 살만하다. 무사히 도착해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방금 전에 한 가족이 내가 앉은 자리 쪽으로 오더라. 자리를 비켜서 셋이 앉게 해주었다. 근데 아버지로 보이시는 분이 너무 구슬프게 울고 계시는거다. 어머니도 옆에서 흐느끼고 있고. 무슨 일인걸까? 온 가족이 이민가는 것 같은 커다란 짐보따리가 보이긴 하는데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안좋다. 안그래도 며칠 전 메데 지역에서 아르헨티나의 빈부격차를 눈으로 보기도 했고...

 








남들은 탱고슈즈를 살 때에
남들은 아르헨티나에 오면 탱고를 배우겠다고 탱고슈즈를 산다. 나름의 취미를 즐기고 문화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스테이크를 썰어먹을 칼을 샀다. 아까 호스텔 주방을 보니까 스테이크 칼이 없더라. 나는 오늘 꼭, 반드시, 기필코, 고기를 먹어야하는데 말이다. 남들은 몇십페소짜리 탱고슈즈를 사는 마당에, 4페소가 아까워서 고기를 포기해야 쓰겠나? 오늘 산 부위는 초리소. 주로 아사도 해먹는 부위다. 숙소에 굵은 소금이 없어서 가는 소금으로 간을 했지만 역시 고기가 끝내준다. 먹으면서 울면 추하다는데, 울고 싶었음. 맛있어서. 

아르헨티나 산 고기여 너는 왜 그리 아름다운가!!!?!??!?


본래 후지민박에서 묵을 예정이었는데, 방이 꽉 차서 가질 못했다. 내일은 가서 투어 정보 좀 얻고 해야겠다. 오늘 이동한 것도 없는데 발과 무릎 관절 쑤신다. 푹 쉬는 걸 목표로 쉬어야겠다.



오늘의 곰인형
깔라파떼 공항에서 내리면 후지민박에 방이 있는지 전화를 해야하는데 동전이 없었다. 이걸 어쩌나 종종종 대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아주머니가 자기 돈 넣고 전화를 걸어주는거다. 친절도 이런 친절이. 너무 고마운 마음에 곰인형을 꺼내주니까 그 자리에서 자기 열쇠거리에 바로 걸고 얼굴에 부벼보기까지;;;; 심지어 리무진 타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주셨음.









인어공주 사람다리 달고 다닌 고통을 느낀지 이틀째
어제 또 일기를 못쓰고 잤다. 한인 민박에 오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보내는 시간이 태반.... 수다 떨면서 밤은 밤대로 지새우는데, 시차 때문에 새벽에 눈뜨기 일쑤. 게다가 다리는 어제보다 더 쑤시고 아파오고 있다. 인어공주의 고통이 이 정도였을까? 아프다고 말도 못했을 텐데, 새삼 그녀가 더욱 불쌍하다.
 오늘도 역시 나는 아메리칸 델리에서 카페인을 들이부은 맛있는 꺄페꼰라체를 들이키고 있다. 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여유 있게 맞이하는 아침 식사는 이것이 마지막. 미친 설탕을 뿌린 빵들도 마지막 흑흑. 그러나 나는 오늘 꼭 고기 요리를 먹을테야.
지금 온몸에 꼭 끼는 옷을 입은 여자를 봤다. 어제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제법 웃음이 난다. 남미 여자들이 옷 입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1. 마음에 쏙 드는 옷을 발견한다. 옷을 산다. 사이즈를 불문하고 산다. 맞지 않아도 산다.
2. 옷을 입는다.
   (여기서부터 한국여자와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한국여자였다면 그 옷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갖은 노력을 해서 옷에 자기 몸을 맞추겠지.)
3. 옷을 내 몸에 맞춘다. 
 
그야말로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 아아 나는 남미 땅에서 발상의 전환을 배운다. 사람나고 옷 났지 옷나고 사람난게 아니다.



레꼴레따 구경과 땅고쇼를 보고 난 뒤
레꼴레따 잔디밭에 앉아서 사람들이 연주하고 춤추는걸 여유롭게 감상했다. 내가 진짜 이러려고 여기 왔구나. 내가 정녕 남미에 왔구나 가슴 설레더라. 비록 땅고는 아니고 보사노바 풍의 연주였지만, 뭐 여기가 남미라는 인증 아니겠나 싶다.

게다가 인*언니 덕에 본 땅고는 어땠나? 인*언니가 땅고 추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아다 준 덕에 식사도 하지 않고 단돈 50페소에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땅고 참피온들의 쇼를 볼 수 있었다. 땅고에 대해선 모르지만, 그래도 오기 전에 유투브에서 땅고 영상도 무지 찾아보고, 음악도 들어보고 했는데... 아이고 아이고. 나 세상에서 그렇게 박진감 넘치고 스릴넘치는 춤은 처음 봤어요. 에로틱이 느끼하지도 않고 어쩜 그렇게 절도 있게 박자 딱딱맞추고 화려한가요.
연주도 연주지만 나 정말 아르헨티노 들이 그렇게 멋있는줄 오늘 처음 알았음. 꽃달고 춤추는 언니들도 어찌나 예쁘던지. 가슴이 선덕선덕. 끝나고 뚜리스따(관광객)이라는 철판을 깔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BUT! 무대에서 볼땐 그렇게 크고 멋있어 보이던 사람들이... 그냥 평범한 아르헨띠노로 변신하는 순간이었음.



두번째 곰인형 : 레꼴레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할아버지.
버스 안에 있는데 뭔가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다, 그 분이 내 옆에 앉을 때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뚫어져라 그야말로 나를 인식하고 타셨다. 한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거다. 옆을 돌아보니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신 부에노스 할아버지가 한 스무번쯤 윙크를.... 빵하고 터지니까 어디서 왔냐면서 환영한다며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의 성함은 아마도르. 남미 사람 답지 않게 쉬지 않고 말씀하시는데 20퍼센트 정도 밖에 못알아들었다.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곰인형을 선물하니까 너무 좋아하셨다. 이 곰인형이 입고 있는게 한국인 전ㅌ통 의상이라는 말 정도는 해드리고 싶었는데. 회화책을 좀 찾아봐야겠다.  




땅고가 끝나면 평범한 아르헨띠노로 변하는 땅고의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