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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9 앞판이 주는 교훈


어제 영화보러 이대를 가로지르다가 모교의 교복을 발견했다.

이럴수가.
우리 하복 바뀌었다;;;;
완전 심플해. 완전 편해보여. 완전 시원해.
회색과 흰색이 배합된 PK셔츠. 자주색이 포인트로 들어가서 간지까지 난다.

나는 억울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왜? 여름마다 하복 입는게 스트레스였으니까!
하복으로 인해 박해라면 박해요, 수난이라면 수난의 과정을 무수히 당해왔으니까!

우리 당시 학교 하복은 와이셔츠와 스커트 외에 구성품이 더 있었다.
바로  앞치마와 멜빵.
상상하면 꽤 이쁜 하복구조 같은데, 그런건 날씬하고 늘씬한 애들한테만 해당사항이었다.
3년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여고생들의 똥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최악의 옷이었다.

나는 종종 우리반 남자아이들의 질타를 받아왔는데
(다행히 앞치마를 경험하고 있는 여자아이들은 '앞치마를 하고 있는 쪽'이 '앞치마 하는걸 지켜보는 쪽'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주변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신*희를 보기만 해도 덥다! 저리 꺼우져 라고 외치는 강경파와,
신*희를 보기만 해도 너무 더우니까 앞치마를 떼고 다니게 해달라 는 선생님께 요구하는 온건타협파.

비교적 자유로운 구성으로 복장 검사를 안하던 학교였는데,
나 고1때부터 교풍이 바뀌더니, 2학년 때는 한달에 한번씩 학생부장 선생님이 반에 들어와서 애들 복장 검사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그 상황이 정말 가관이었다. 조금이라도 수업하기 싫은 애들 입장으로썬, 친구를 팔아 노는 시간을 더 벌려고 하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곧잘 지목받았다.
"선생님 신*희 날라리에요. 남자애중에 신승*만 3,2,1(남자아이들 머리 자르는 사이즈를 의미:앞머리3 옆머리2 뒷머리1) 아니래요."
같이 성별을 초월한 밀고와

또 다른 밀고가 있었다.
"선생님, 신*희 날라리에요. 교복 줄였어요!"
라는 억울한 밀고.

그럼 칠판 앞으로 불리워서 심문아닌 심문을 당하는 건 물론,
어디 줄였냐 살펴보게 한바퀴 돌아보란 소리까지 들었다;;;
나에 관한 심문이 한동안 이루어지고, 아무리 찾아봐도 줄인 곳을 발견하지 못하면
학생주임의 시선이 이동하는 곳은 나를 밀고한 아이다.  
그럼 곧이어 밀고자의 항변이 이어진다.
"정말이에요."

억울하다는 듯한 뉘앙스의 음성이 이어진다.
"교복 앞판 줄였대요."
"맞아요, 신*희 날라리예요!"


거드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또 다른 아이템을 내놓는 밀고자도 있다.

"하복 와이셔츠도 줄였대요"
"치마 허리도 줄였대요"
"급식도 많이 먹어요"


라는 상상도 못할 밀고가 (수업이 끝날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여튼 교복 앞치마 판은 나에게 작았다.
다른 아이들에게 딱 맞는 사이즈였지만,
다른 아이들 배의 체격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작았다.

허리사이즈가 다르면 앞치마 판도 사이즈가 다르게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세상은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더욱더 다양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하겠다.

여튼, 나와 같이 하복 앞치마로 인하여 고민을 덜 후배들이 없어졌다니 다행이긴 하면서도 나같은 핍박을 경험해 봐야 다양성의 권리를 고민해볼 수 있을터인데 하는 아쉬움도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