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못속여
산띠아고에서 아따까마행 버스를 타는데 한 동양인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남미와서 생긴 능력중에 하나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얼굴을 식별하는 능력이다. 딱 보니까 잰 한국사람이다 싶었다. 근데 어랍쇼? 가방이나 옷의 브랜드가 아무리봐도 한국인이 아닌거다. 그렇다고 교포 삘이 나는건 아닌데 말이지....
그에게 웃으면서 말을 걸어보니, 그는 일본인이었다. 마사. 30대 중반으로 봤는데 42세였다. 다시 한번 일본인의 동안에 탄복 또 탄복! 마사와 나는 같은 숙소를 찾았다. 둘이 가서 쇼부치면 좀 더 싸게 우유니 숙소를 묵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유니 투어도 같이 떠날까 한다.

아따까마에 도착하자 마자 약간 어지럼증도 있는거 같고 산소도 부족한거 같길래 내가 고산병 같다고 하니까 (심지어 고산병도 일본어 한자와 한국한자가 같았음) 마사가 코웃음 쳤다. 꾀부리지 말라고. 자기 아르헨티나에서 6000미터에도 올라가봤다 왔는데 여기 2500미터 될까 말까라고. 된다고 전세계 산이란 산은 안타본적 없다는 마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사와 코카잎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사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너무 잘아는거다. 삼성은 물론이고 LG 횬다이(현대;;; 이거 알아듣느라 한참 애먹었다) 한나라당 민주당 노무현 이명박 모르는게 없쒀! 한참 친해진 다음에 그는 웃으면서 말해줬다. 자기 재일교포3세라고. 할머니 할아버지 경상북도 사신다고;;;
그럼 그렇지 피는 못속인다.

마사와 묵게된 호스텔이 무척 마음에 든다. 숀체크 호스텔인데 100배즐기기에 나와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여튼 론리플래닛에는 나와 있다.
여튼 오늘 태어나서 사막은 처음 겪어봤다. 낯선 풍경이 마음에 쏙 든다.
내일 새벽에 떠나게 될 간헐천 투어에서 나의 고산병이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난다. 떨린다. 그리고 무섭다. 고산병으로 우유니에서 돌아가신 60대 주부의 사건 따위는 듣지 않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흑흑




오늘의 곰인형 : 버스에서 만난 까롤리나
아따까마로 넘어오는 버스 내 옆자리에 앉았다. 연신 남자친구와 통화하고 (깨가 쏟아졌다 쏟아졌어 젠장;;) 22살 대학생이라고 한다. 아주 두꺼운 고대문화역사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길래 나도 사학과 졸업했다고 말했는데 나는 영어로 그녀는 스페인어로 말했으니까 통했는지는 의문이다. 사학과를 나오면 뭐하나, 만리장성과 용 중국황제에 대해 나름 설명해주고 싶은게 너무너무 많았는데 그녀는 심볼 조차도 못알아들었다 ;ㅁ; 나의 짧은 영어와 그녀의 짧은 영어가 맞부딪혀서 낸 결말은 서로를 향한 미소와 배려 선물만이 전부. 흑흑.

한밤중에 헤어져서 후레쉬터뜨린 사진밖에 없다 흑흑 미안해 까롤리나~

 




 



오전 10시 10분이다. 바릴로체 센트로에 앉아 있다. 버스는 오후 1시 출발이니까 아직도 시간은 정말 널널하다. 생각해 보니 난 이제 칠레로 넘어가잖아? 아르헨티나가 어땠는지 이 시점에서 정리를 시작하긴 해야겠는데 말이지. 일단 스위스가 미친듯이 넓게 늘어나서 우리나에 40배 크기로 놓인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자면 쇠고기?!?!!??!(미안하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부스 데 떼르미날에 앉아 있다.

사람들도 많고 큰 개도 많다. 무려 터미널 안 실내인데도 개가 많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터미널 안에 앉아 있었던건 아니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훌륭하길래 바깥을 좀 서성이다가 터미널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근데 정말로 덩치 좋고 힘좋게 생긴 큰 개 한마리가 오더니 자꾸 꼬리로 내 트렁크를 탁탁 쳐낸다. 처음엔 무시했다. 근데 계속 꼬리로 트렁크를 쳐댄다. 어이가 없어서 트렁크를 치웠다. 그랬더니 당당하게 그 자리에 드러누우시네요. 예 형님, 형님 자리셨는데, 미쳐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게 쭈그리가 되어서 터미널 안으로 들어왔던 말씀.
뭐 사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평등한 동물권이란게 있는거 아니겠어요? 저는 고기는 좋아하지만 동물권은 인정되야할 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모순된 삶을 사는 녀자니까요.


비바 부스!
산티아고 행 버스에 탔다. 일단 심호흡 좀 하고 널뛰는 내 심장 좀 억눌러 볼께요.
얼씨구 어절씨구 비바! 아르헨띠나-! 비바 비바 올레!!

버스가 꽉 차서 바릴로체에 하루 더 묵게 된 게 너무나 감사하다!!!! 하나님 부처님 너무 사랑해요 너무너무 좋아염~ 엘찰뗀에서 바릴로체로 넘어올 때 만났던 버스 최고 미남이랑 또 마주쳤다. 무려 같은 버스다. 가장 먼저 날 알아본건 그 미남의 어머니. 아주머니가 먼저 툭툭 치면서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더라. 나도 아는척하고. 버스표 비교하니까 둘이 같이 오소르노 역에서 대기하다가 버스 타는것 까지 똑같네. 엘찰뗀 버스에선 오만상을 찌푸리던 미남이 환하게 웃으니까 주변이 다 환해지고 버스 짐칸도 환해지고 버스 안도 환해지고 내 마음도 환해지네요.
일단 그 미남과 어머니가 어느나라 국적일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지금 현재로선 국적을 묻는 스페인어를 모르고 있으므로, 스페인어 회화책을 다시 꺼내야겠다.


정말 살기 싫다. 아아 망신 망신 대 망신. 이런 망신이 없다 흑흑.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을 넘는데 세관검사가 있었다. 무슨말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께 프리오(춥네요)'란 말을 걸어야 겠다고 결심 결심을 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도 날 보더니 환하게 웃어주더라. 나 역시 미소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가는 찰나!

바로 앞에 둔턱을 못보고 넘어졌다.
흑.

더 창피한건
"께 빠 소? (영어로 치면 How are you?에 해당하는 안부 표현)"
라고 묻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무이 비엔 (완전 좋아요!)" 정도로 대답한거?!?!?!?!?
무릎에 정말 피가 처절철철철 흐르는데! 완젼 좋아? 완젼 좋아? 완젼 쪼아! 진짜 좋아!?!?!?!?!? 대답을 그따위로 하다니. '아씨아씨(그럭저럭)'이라고 대답했어야지 이여자야!!!!!!! 아님 '께빠소(괜찮니?)'라고 묻는데 피를 철철 흘리면서 '께프리오(추워요)'라고 대답하지 않은거에 대한 안도를 표해야하는 걸까?
뭐 그 때부터 빵터진 어머니와 미남아들은 내내 날 보면서 함박 웃음 지어주고 계시다. 미남의 미소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근자감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