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스델파이네 일일투어에 와 있다. 여행책자에는 없는 정보였는데, 후지민박에 가보니 토레스델파이네 일일투어가 있더라. 비록 새벽 5시에 출발하고 밤 11시에 돌아오는 강행군이지만 나처럼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4박5일 W코스가 왠말인가. 하루짜리 일일투어는 진정 나를 위한 투어인거 같다. 파하하.
새벽에 버스를 탄뒤 잠을 자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화장실은 진정 해우소구나! 이름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면서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나왔는데 나의 복통이 해결됨과 동시에 바깥 풍경도 달라졌다. 하늘도 개이고 저멀리 산들도 보이고 끝없는 지평선도 있고.

토레스델파이네 트레킹은 진짜 최고! 이거 안했으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을 듯. 작은 과수목같은 나무들이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데 귓가에 사운드오브뮤직 오에스티가 막 흘러나오는거 같아서 완죤 흥얼 흥얼. 흐르는 물은 빙하가 녹은 물이라 죄다 에메랄드 빛. 내가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에메랄드 빛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진짜 에메랄드 색깔이어서 에메랄드 빛이라고 한다. 보석을 원액 그대로 갈아 놓은것 같음. 게다가 저 멀리 펼쳐진 산은 (차마 오르지는 못하겠지만) 어찌나 거대하고 광활하고 담대하게 생겨먹었나요. 푸른하늘 아래 펼쳐진 배경이 정말 말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나는 손가락만 계속 들어 올렸습니다. 
짱짱짱!

산행을 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행여 내가 재수 없는 일을 당해서 (이를테면 가진돈을 모두 털린다든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던지)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를 한것만으로도 나는 이 여행에 쏟아부은 돈 몇백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여튼 오늘 본 것들은 사진으론 절대 표현안되는 절경들이었다. 이런건 직접 봐야해. 죽기 전에 봐야해. 판타지 장르가 있다면 이런 곳에서 촬영해야한다. C.G도 필요 없고 돈도 굳겠지. 여튼 남아메리카는 정말 엄청난 대륙이다. 다이나믹 라틴 아메리카! 께 에르메소! 무이 보니따!

토레스델파이네 트래킹에서 백미인 곳만 버스로 이동해서 사진을 찍는 이 완벽한 내 취향의 투어는 약 두시간의 트래킹을 하고 끝이 났다. 다시 칠레국경을 지나 깔라파떼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고민은 오늘의 곰인형(한개 밖에 안가져왔다)을 누구에게 주느냐다.

기호 1번 제시카.
멕시코 시티 대학교 졸업반이라는 친구. 얼굴이 약간 나탈리 포트만을 닮은 훈녀다. 칠레 국경에서 환전하는거부터 이거저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둘다 혼자 왔기 떄문에 같이 앉게 됐다. 짧은 영어로 토막토막 말하는데도 다 들어주고. 아까 절벽에서 폭포보고 내려올 때 기다려도 주고. 진짜 고마웠음

기호 2번 리짜르도 할아버지
새벽에 버스를 탈때부터 할아버지는 날 보면서 웃고 계셨다. 나 알아서 출국신고서 쓸 수 있는데 자꾸 부인을 불러서 내 출국신고서를 검사해주는 거다. 버스가 쉴때마다 두리번 대면서 걸어다니면 꼭 다가와서 사진 찍어주겠다고... ㅋㅋㅋ 근데 너무 웃긴건 그렇게 챙기면서 내가 짧은 영어로 말걸려고만 하면 혼비백산을 하며 자리를 뜬 채로 부인을 부른다. (부인은 영어 왕잘함)

리짜르도 할아버지가 더 기뻐할 거 같은데, 사실 하루종일 같이 다닌건 제시카고.
아.. 정말 우짜나....


오늘의 곰인형
오늘의 곰인형은 결국 제시카에게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손쓸 틈도 없이 (버스가 2층버스였다) 1층버스에 타고 있다고 내려버렸기 때문에 선택이 필요 없었음.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제시카에게 건냈다. 이제 간신히 숙소다. 밤 10시가 넘는 시각이지만 나는 오늘도 쟁여놓은 쇠고기를 씹을꺼다. 화이팅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