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첫사랑을 꿈 꾸기 시작한 그때가 언제였더라?

대게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5학년 열두살. 만화 대여점에서 300원에 책 한 권을 빌려 하루 종일 읽고 또 읽던 무렵이었다. 어른이라 부르기엔 미숙하지만, 어른의 모습을 하고. 풋사랑이라 부를지언정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 이 만화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런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그 나이'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겨울. 나는 교회 겨울 수련회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두 뼘 내지 세 뼘 키가 큰 ‘오빠들’. 신발에 질질 끌리는 청바지. NIX와 GET USED, Calvinklein 따위의 메이커들. 문화적 충격과 세대간 격차를 몸으로 새기던 시절 나는 이 만화를 떠올렸다. 무언가 비슷해. 묘하게 닮았어. 두 손을 움켜쥐고 중얼거렸다.

나는 나에게도 ‘그 시절’이 왔음을 상기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유혜진’은 빨리 발돋움해서 오빠 같이 자라고 싶다. 자신의 오빠가 회장으로 있었던 고교 동아리 <JUMP TREE A+> 가입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오빠와 비슷한 승주 오빠를 만난다. 당연히 동아리 활동을 같이하는 단짝친구가 등장하고 한 살 차이일지언정 그 나이만큼 어른의 역할에 다가간 선배들이 등장하고. 그리고 첫 사랑도 나타난다.

만화는 순정만화답게, 보잘 것 없고 울보인 유혜진에게 4명의 남자가 쏠리는 러브라인을 구축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의 선택은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남자인 승주보다는 이미 동아리 내에 오랜 연인 이 존재하는 있는 태준이를 향한다.

만화의 마지막, 혜진이는 자신의 친오빠보다는 조금 작은 키로 자신의 열일곱을 함께해준 사람들과 사람들과 함께 웃는다.

아주 가끔 생각을 해본다. 당연히 그 나이가 되면 ‘꼭 만날 수 있을거라’ ‘당연히 존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 나는 한번도 ‘어른스러운 미성년’의 존재를 부정해본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비록 그러한 고교시절을 보내지 못했지만, 내가 겪지 못했다고 해서 그 존재가 없는 거라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난 십년이나 더 어린 그 애들보다 더 어린 스물 일곱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88만원 세대로 세상을 마주쳤을 승주오빠와 태준이 오빠는 무얼 할까? 꿈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꿈을 선택한 터프한 민휘경은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었을까? 나보다 ‘선배’로써 ‘첫사랑’을 앓았던 만화 속 주인공들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참 많다.

여하튼 이 만화를 읽고 나면 그렇다.

백뮤직으로 등장하는 이오공감이나 푸른 하늘의 노래, 90년대초 이승환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듣고 싶어지고. 그 시절, 그 거리, 명확하게 지칭되지 않았던 그 때가 떠오르고. 누구라 허공에 발차기 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울 지언정 잊지 못할 첫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오공감이라니, 누구에게는 개유치할지 모르겠지만, 90년대 첫사랑을 해본 나에게는 아직 세상 최고의 낭만이고 순수고 열정이고 그렇다.



*다른 이에겐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오공감’만큼 낭만적인 노래가 아직 없다. 10점 만점의 10점을 부르는 세대 속에서. 관리 소홀로 늘어나 버릴지도 모르는 가냘픈 테잎에 녹음된 ‘한사람을 위한 마음’ 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 모든 순정만화가 그러하듯이 만화는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든 설정이 전개 된다. 사랑받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주위에 등장하는 수 많은 남자들의 애정과 헌신... 그리고 그녀에게 마냥 관대한 주변 인물들... 잊지 말자.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자 상기시키자. 이 만화는 여자들의 판타지와 희망을 그린 ‘순정 만화’다.

* 역시 모든 순정만화가 그러하듯, 남자 등장인물 중 장발이 등장하지 않으면 순정만화가 아니다. 남자 고교생의 머리가 어떻게 허리까지 오는지 헤비메탈 그룹과 비슷한 퍼머까지 가능한지 스타일인지는 묻지 말자. 이 만화는 90년대 ‘순정만화’라는 면죄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캠프파이어 시간에 나오는 BGM 가사를 읽어보라. 어쩌면 당신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의 그대>의 노래가사를 그냥 지나쳤을지도 (아예 모를지도) 모른다. 94년 당시에 고교생이었던 그들의 현재나이를 곰곰이 계산해보길 바란다.

*당시 순정만화지 <댕기>에 연재되었던 이 만화는 한국 순정만화 최고의 르네상스시기를 구축하며,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었다. 90년대 인기가 많았던 만화가 재판 삼판 수어번의 재탕 출판되는 것에 반해 이 만화는 단 한 번의 재판 외에 새로 판을 찍지 않았다. 특별한 근황이 전해지지 않는 작가인데 책이나 더 찍어주지 두문불출 뭘 하고 지내는지(아울러 그녀의 수입원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책을 구하고 싶은 팬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그것도 대여점을 한번 거친 상태인 나쁜 상태의) 옥션 책의 가격을 보면 바짝바짝 애가 탄다. 헌책방을 지나다가 이 만화책을 본다면 주저말고 구입하라! 팬이라면 만화를 소장했단 기쁨에 몸부림을 칠 것이고, 팬이 아니라면 옥션에 올려 짭잘한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만화를 보면서 드는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이 대사를 고등학생이 읊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다. 어릴 때야 아 고등학생이 되면 저런 말을 할 정도로 ‘진지해’지나보다 싶었지만, 나는 서른이 돼서도, 마흔이 되서도 저런 대사를 읊을 일이 없을것 같다....(일단은...)

예시가 될 만한 몇 개의 컷을 붙여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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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의 나도 한번 읊어 본적 없는 이 대사. 집착은 커녕 소유조차 해보지 못한 내 인생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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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사를 후배 앞에서 읊을 수 있는 용기. 열 아홉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객기이리. (비록 십년후 손발이 오그라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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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라니 누가 병아리란 말인가. 열아홉살의 입장에서 보자면 열일곱도 병아리로 보일수 있을 게다. 하지만 이 치밀어 오르는 씁쓸함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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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여덟이 되더라도 평생을 걸쳐
읊어보지 못할 듯한 대사다.




하지만 이 수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이 만화를 꺼내볼 때마다 설레이는 서정적인 <녀성>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이 만화를 읽을 때는 ‘90년대 감성’을 잊지 않은 채 만나야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