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두번째 자격증'으로 운전면허를 따보겠다고 틈틈히 시간을 쓰고 있다. 
1차 시험에서는 한개 틀리고 2차시험은 백점. 
아직까진 준수한 성적인데 도로연수는 솔직히 좀 무섭다. 아니, 많이 무섭다.
 
여튼 며칠전 페이스 북에 도로주행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적으려는데,
이상하게 전송버튼 누르는 걸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남들 다 보는 공간인데, 무섭다고 써도 되는 걸까?
내가 이런 일에 겁내는 사람이라는걸 보여도 되는 걸까? 
그런 검열을 나열하고 있다가 그런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무섭다는 감정표현을 하지 못하게 됐을까?
왜 무언가가 두려우면 안된다는 금기를 가지게 됐을까?
이런 모습을 왜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남들 눈에 '겁쟁이'로 보이는 게 '겁'나는 이상한 상황을 두고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런 성격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리는 없고
분명 어떤 경험이 나의 자아와 만나 반응하고 결합된 결과일텐데...

어느새 나에게 장착된 강박에 대해서 생각중이다.
왜 자꾸 씩씩하려고 할까?
왜 모두가 망설일 땐 혼자 총대를 지려고 할까?
왜 지나치게 맡은 역할에 부담을 가지고 있을까? .
분명 그런 강박들이 시작된 시점이 있을텐데 말이다. 

이를테면 현재 추측 되는 강박장착의 순간은 이거다.

칠남매의 장남의 딸, 삼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나는
열한명이 한달에 두어번 주말이 되면 친가쪽 아이들
열한명이 2층집을 뛰어다니는 가정에서 자랐고
작은엄마들과 사촌동생들과 한집에서 생활한 시간도 몇년된다. 

추측컨대, 어쩜 그 시간
'그래 니가 듬직하구나, 동생들 돌보는 니가 참 착하구나' 하는 칭찬에 길들여졌는지 모른다. 밑으로 동생을 주렁주렁 단 맏이가 친척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몇안되는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그게 좋든 나쁘든.  

앞으로 삼사십년은 더 살 인생인데 스스로의 연원을 잘 파악했다
버릴 버릇은 버리고 치유할 수 있는 것들은 치유하고
연마할 수 있는 것들은 잘 갈고 닦아야 겠다.

'겁 내는 모습을 겁'내는 습관은 고치긴 해야겠다. 
쓸데 없는 만용으로 넘어갈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