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닥 사람들 중엔 싸이 메인에 자신의 프로그램 이름을 띄워놓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내 전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는 일이 내 자신의 전부가 되나. 앞으로도 그 철학이 바뀔것 같지는 않다. 근데 뒤집어 말하면 그건 단 한번도 내가 내 전부를 바쳐서 일하지 않았단 소리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내 싸이 메인에 올라갈까?
아마 아닐걸.
금요일엔 술을 마셨다.
전에 다니던 회사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새벽 5시까지 달렸다. 아~ 내가 존경하는 우리 왕선배님이 나와주셨어. 흑흑. 생각해 보면, 내가 일하던 첫프로그램 그만두던날 술을 사줬던것도 우리 왕선배님이셨고, 입봉할 곳 없어서 K본부에서 쭈구리가 돼 가던 시절 날 건져서 입봉시켜준것도 우리 왕선배님이셨고. 개떡같은 원고 몇번이나 봐준것도 우리 왕선배님. 흑흑. 신세지고 고맙고 죄송한거 투성인데 이번에도 또 술까지 사주셨어. 엉엉 ㅜㅁㅜ 난 우리 왕선배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이돌 피디님도 그렇고 만날때마다 '저런 사람이 되야겠다'고 언제나 마음 먹는다.
근데 난 조급하고 성질머리가 나쁘잖아... 아마 난 안될꺼야...
토요일엔 술병이 났다.
여꼴통들 만나서 대낮부터 기름진 음식으로 위장칠하고 얼음장같은 생맥 좀 들이키는데 갑자기 숨이 턱하니 막히고 입술이 파래졌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구토를 동반한 심호흡 좀 해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 여기서 쓰러지면 이 문을 열고 날 꺼내줄 사람이 없다는 일념하나로 버텼다. 헉헉. 하지만 술병은 좀처럼 달래지지 않고... 결국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인 홍대서 택시타고 집에왔다. 여꼴통들 미안. 나 땜에 작파해서.... 다음부턴 작작마실께.
여튼 과음한 다음날 낮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녜녜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이제 전 서른이죠. 이제 알았습니다. 다음부턴 안그럴께요.
월요일엔 재수가 없었다.
아이템 회의가 화요일로 미뤄졌다. 아이템이라도 더 찾아볼까 하는 마음에 마포도서관을 찾았는데 휴관일이었다. 원고 쓸 게 좀 있어서 곰다방을 찾았는데 노트북 전원을 연결할 데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서영까페로 발길을 돌리는데 소나기가 세차게 세차게 아주 세차게 내렸다. 내리는 온비 다맞고 서영까페 도착. 젖은 운동화도 벗지 않고 꿋꿋히 원고 쓰고 있는데 한시간만에 전화가 왔다. 집에서-. 와서 설거지 좀 하라고. 아아 정녕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이었다.
방송이 한달 밀렸다.
조금 널널해 질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느낌. 이게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센스로 칠해줘야하는 작업인거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이 와중에 저번 프로그램해서 책까지 나온게 반응이 좋아서 두번째 편이 나오게 됐다. 일하고 있는 것도 빡빡하니 괴로운데 책원고까지 병행하는 중이다. 어제는 회사에 남아서 책원고를 썼다. 열시 반에 버스를 타고 돌아와 원고 수정을 마저봤다. 아침 여덟시에 일어나서 눈뜨자마자 다시 원고 수정했다. 그리고 다시 자료찾으러 국회도서관으로.... 여의도랑 나는 끊지 못할 인연인거 같다.
나도 꼰대가 다됐다.
<최종병기 활>을 보는데 그렇게 거슬리는게 많을 수가 없었다. 반드시 도망가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매달려서 거사를 그르치게 만드는 민폐덩어리 여주인공이나, 조선남자들이 뭐해준게 있다고 저놈에 또 정절드립;;;; 뭐 이런 반(反)남성적인 시각말고도 그냥 그런게 세세하게 눈에 밟히더라.
박해일이 귀마개라니 어서 귀마개야 정3품 당상관 이상만 쓸 수 있는 귀마개를 어따써!!!
같은 옹졸하고 치졸한 역사적 고증에 딴지 걸고픈 마음?
옛날 학부시절에 사학과전공자 여섯이서 동시에 <스캔들>보러간 날이 생각났다. 영화 보고 밥먹는데 그때부터 서로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들이 총동원. '저게 말이 돼'라며 아는 역사적 지식 가지고 영화 까는 자리로 변질... 그때부터 그랬나보다. 팩트만 가지고 옹졸하게 쪼물락쪼물락. 그때 상상력을 키워놓지 못해 지금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ㅜㅁㅜ
설렜다.
사무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책상위에 붙어 있는 글귀를 봤을 때.
"발명은 그때까지 따로 떨어져 있던 아이디어의 결합"
"서로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짝지을 생각을 해보지 않는 조직들을
건방진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연습을 한다."
"논리적인 방법은 난간처럼 우리를 떨어지지 않게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는 않는다."
마지막날까지 설레고 싶다.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