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유학원에 다녀왔다.
세달 일정 대략적인 금액을 따져보기 위해서.
그리고 이번주 월요일부터는 비행기표 끊는데 골몰했다.


어제 비행기표를 결재했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3일간 얼마나 골머리를 썩었던가.

이번 여행은 다섯달 장기간이라면 장기간이고,
그간 저금해놓은 모든 돈을 탈탈 털어 가는 여행이므로,
값 싼 대신 융통성이 없는 비행기를 선택했다.
덕분의 나의 9월 달과 내년 2월 말의 이동 경로는 빼박 확정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세달 후, 여섯달 후, 나의 입장과 처지를 알 수 없을텐데
무언가를 미리 결정한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연말 연시 크리스마스를 어학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작별을 고하며 술잔을 높이 치켜들 것인가?
이역만리 남반구 남극과 붙어 있는 땅 케이프타운 호스텔 도미토리에서
쌩판 모르는 양놈들 사이에서 쭈구리로 앉아 있을지 모를 가능성 앞에
나를 던져 놓을 것인가?


그래도 어쩌면
호스텔 부엌에서 잡히지 않는 와이파이에 기대어
시차도 맞지 않는 카톡울림을 기다리고 있을 지언정,
그래서 90여일 새로 사귀고 정든 친구들이 떠오르고
익숙해진 땅 몰타가 그립고
서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생각나 눈물콧물을 쏟을지 모를지언정,
결정했다.


그때 나는 시간은 넘쳐나고 돈은 없을것이 뻔하므로,
되도록 풍요로운 시간을 활용하기로.


아직 트럭킹 티켓은 끊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전 출발하는 트럭킹을 탄다면
어쩌면 아프리카 국립공원에서 트럭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새해복 많이 받아'를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기린이 지나가는 모습과 거대한 코끼리와 거대한 신의 형상들을
마주하며 특별한 서른 다섯을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옛날 내가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싸이월드 제목에 자기가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 적어 놓는 거였다. 꼭 나의 전부가 내 '일'인것 같은 느낌을 주니까.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내가 프로그램이 '내 전부'가 되는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나름 노력하고 있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우울하다. 내 존재확인이 어려워진 셈이니까. 출장간 피디랑 새벽 한시 두시 아침 여덟시 아홉시 통화를 마다 않으며 국회의사당 의원실을 하루 두번세번 들락날락 하면서 하고 있는데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일거라고 생각했던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이렇게 우울함이 극에 달한다. 꼭 해야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럴수도 없고.

 

페이스북은 푸념용으로 블로그는 기록용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푸념차 올려본다. 더 우울할 때 찾아보고 위안을 얻거나, 기쁠때 열어보고 안도하기 위해 올려본다.  

 

 

 



감정이란 건 스스로 판단 불가능할 때가 있고, 겹겹이 옷을 입고 나타날 때도 있으니까. 
이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 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미련'같은 찌꺼기를 남기기 보다는 명확하게 인지하고 행동하는 편이 훨씬 이롭다.고 
생각했고, 대게 나는 생각하면 행동하는 편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운 셈.
이번에도 하길 잘했다.



세어보니 얼추 십년만이다. 금요일엔 대학 학생회관 동기들을 만났다. 자대 사대 소프트웨어대... 같은 전공 하나 없었지만 1학년 봄 총학선거때 만나서 대학시절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하고 가장 많은 일들을 해온 애들이었다. 그 얼굴들을 다시만나니까, '아, 이제야'란 탄식이 나왔다. 숨이 트이듯 참아왔던 밭은 숨 같은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을 할 사람들과 마주했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과정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지 말자고, 그러지 말자고 자기 부정같은 것 하지 말자고 수백번을 되뇌여도 실은 아픈건 아픈거다. 스물 하나 스물 둘에 꾸던 꿈들은 결국 미완으로 남았고, 끝내 현실이 되지 못할 것을 예감하면서, 때때로 나는 그것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견디기 힘든 것 투성이인 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고, 용납할 수 없는 허물 투성이인 나 자신의 일부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비슷한 꿈을 꾸면서 같은 것을 말하던 그들을 만나서 말을 하고 싶었다. 

구운 새우는 맛이 있었는데 소주가 무척 썼다. 해물라면을 시키면서 나는 2002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할 때 이야기를 꺼냈다. 마땅히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친구들이어서 말했다. 그때의 꿈을, 그때 그렸던 5년 후 10년 후를 이야기 했다. 

이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다.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걸론 부족했다.
내게 필요한 건 나도 아프다고 나도 아파하고 있다고 말해줄 사람이었다. 들이킨 술잔의 숫자는 자꾸 늘어갔고 밤은 깊어지고 드문드문 비가 내렸다. 다같이 10년 전 꾸던 꿈을 조금씩 더듬어갔다. 화석처럼 남아 먼지를 거둬내지 않고서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희미한 흔적들... 그 흔적이 스무살 한 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반짝반짝 빛을 내는 보석같은 존재였는지... 그 존재를 알아줄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는 수다는 계속됐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한 부분을, 날것처럼 내보이는 내 상처를, 그 선명한 통각을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과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것이 없었다. 이만한 위안이 또 있을까. 아마도 위로 받을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토록 이 친구들이 보고싶었나 보다. 


2002년도에 민주노동당 가입한 이후로, 당적이 없었던 적은 없다.
지난주 즈음이던가 통장에서 빠져나간 2만원이 (처음으로) 아깝단 생각이 들면서 12년 만에 처음으로 당적 없이 지내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 

뭐 사실, 대단하게 활동하는 당원은 아니었다.
당비 밀리지 않고, 간간히 모임에 나가고, 가끔씩 특별당비나 보태고, 선거 앞두고 몇번 선거운동 뛰는 것이 당원 활동의 전부였다.

하지만, 2002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진 당적이 내 에고의 한부분이자, 내 생각과 행동의 기반이 되는 하나라고 여겨왔다. 설령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내 본질의 하나이며,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싹다 갈아 엎고 싶은 여당이 아니라, 등신 천치같이 미적거리는 야당이 아니라 
더 많은 변화를 말하고 더 자유로울 것을 더 평등해질 것을 말하는 '작은 진보 정당'은 내게 얼마나 큰 자랑이었던가. 언젠가는 열망하는 꿈이었고, 현실로 다가올 날이 있다는 예언이었으며, 나를 움직이고 외치게 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나의 한 부분으로 위치해왔다.

그런데 그런 요즘엔 그런 자부심이 생기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내가 소속된 우리 당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제 더이상, 노동장이 녹색당과 무엇이 다른지, 정의당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세상이 얼마나 변할지도 말 할 자신이 없다. 사실은 우리가 과연 집권할 수 있는가를 헤아리는 것 조차 우스운 일이 돼버렸다.

탈당을 할지, 말지는 아직 결정하진 못했다.
나의 결정이 어떠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아직 모든 희망을 버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진보정당 12년. 이렇게 처참하게 흩어지고 깨어져 부서진다면, 다시 합쳐져 변화를 마들어내는 '힘'이 될 날이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지금 이렇게 투덜대고, 투정 부리는거라 생각하고 싶다.


옹졸해서 겉치례 번드르르 들기름바른거 같은 은근한 자기자랑 들어줄만큼 도량이 넓지 못하다


나이를 먹을 수록 감지할 수 있는 맛의 범위는 줄어든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수백개의 미각의 차이를 경험하고 맛을 깨닫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지할 수 있는 맛의 수가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언젠가 나는 공감을 다양한 맛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 미각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인지할 수 있는 감정의 개수는 확장되는 것 같다. 
시야가 트이고, 사고가 확장되며, 이해의 범위가 넓어질 수록
타자를 통해 다양한 맛과 다채로운 색의 감정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살아가는 날이 많아 질수록 그 범위가 커져서 최근에 소소한 영화의 한장면까지 그렇다. 
이해 할 수 없었던 영화의 한 장면이 내 삶의 한 부분과 겹쳐지는 순간.
있는 듯 없는 듯 무의미했던 장면은  
떠올릴 때마다 콧끝을 따겁게 찌르는, 눈물을 시큰하게 뽑아내는
명장면으로 재탄생한다. 

얼마 전  <러브레터>의 한 대사가 그랬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건 
거무죽죽한 딱지처럼 떼어내고 나면 속시원할,
너덜거리는 궁상이고 청승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순간 그 장면이 새롭게 보여졌다.  
잘지내냐는 안부의 인사는
이미 저세상사람이 됐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건네는 인사다.
알고는 있지만 차마 놓아줄 수는 없는 보내고 싶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
바꿀 수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걸쭉하고 질긴 마음들이 세상 천지엔 얼마나 많은가.   
그걸 '미련'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마음만큼은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계획한 대로 흘르는 것이 아니니까. 

요즘, 간간히 버스타고 집에 가다가
오겡끼데스까의 의미를 혼자 곱씹어 봤다. 
자꾸 울컥하고 눈물이 나서 훌쩍이기도 해봤다.  
맵고 쓰린 통각에 가까운 맛이나는 '그 감정'에서는 꽤나 깊은 감칠 맛이 새어나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또 몇 장면을 새롭게 이해하고 
공감을 통해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될까?

서른 셋에 펼쳐질 날들을 기다리고, 축복한다. 



약 2년 가까이 두장을 넘기지 않는 원고만 쓰다가
20여페이지 넘게 빡빡한 구성안을 쓰려니 역시 어색하다.
예전엔 쳐내고 쳐내는 게 일이었는데, 이번엔 채우는게 일이다.

그래도 방송일이란게 구성을 한다는게 늘 비슷하기 마련이다.
칸이 촘촘하게 선 쟁가를 쌓는 것과 비슷하다.
아랫돌을 잘 깔아야 높게 쌓을 수 있고,
의표를 날카롭게 찌를 수 있을 정도로 길고 뾰족한 날을 세울 수 있는 것 처럼...
짜임에 대해, 던져야할 화두와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끝없이 나열된 팩트(사실) 중에서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어디에 어떻게 놓아 사용을 극대화 할 것인가 
예전 프로그램이 몇개 되지 않는 커다란 블럭으로 완성시키는 일이라면
이번엔 자잘한 블럭으로 끝없이 상공을 향해 쌓아나가야 한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같은 애에게 참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이젠 무엇을 말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지 고민할 때다. 

 


생각만 하는 내가 비겁하고 초라해 보여서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만이 주어진 전부가 아니다
오늘의 나를 가지고 내일을 살 사람이니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무수한 생각들이 언젠가 무언가를 만들리라
단 하나의 생각이 이상을 만들고, 이상이 언젠가 혁명을 만든다는 
안네 브런의 'One' 노래 가사를 믿기로 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하기로 했다


먼지가 바위를 만들고
공포가 분노를 만들고
심장박동이 시가 되어

이상은 혁명이 되리라

이상이 혁명을 부르리라
이상이 혁명이 되리라

어디선가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
아주 작은 하나로부터

모든 것엔 시초가 있는 법
태초에 하나가 있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단 하나가






춤을추며절망이랑싸울거야
우리들은얼어붙지않을거야

사랑하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우리집에 이 사랑스런 생명체가 온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사랑하는 우리 통이에 대해 글을 쓴다면 백페이지도 쓰고 포스팅도 이억만개 정도 할 수 있다만, 이 모든 것이 늦은 이유는 단 하나!
포스팅할 시간 있으면 옥상에서 통이랑 노는게 더 좋았던 탓이겠지. 

여튼 이 사랑스런 생명체는 성장에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결과... 
 


회사에 있는 나를,
친구랑 있는 나를
언제나 집으로 소환하던 순도 100%의 싸랑스러움을 조금씩 벗어던지게 되었는데...
어느날 동생이 말했다.

"언니 나 우리 통이가 창피해서 차마 사진을 보여줄수가 없어."
"왜?"
"너무 못생겨서...."
"아니 어디가?!?! 우리 통이가 어디가!?!?!? 어디가 못생겨?!?!?!?"



동생은 자신 핸드폰에 찍힌 통이 사진을 한장 넘겨주었다. 

그 후로부터, 누가 개사진 좀 보여달라고 하면 
나는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 마는 것이다.

저희는 학대 안해요.
밥을 굶긴적 없어요.
때리지도 않아요.





빼어나오는 사랑스러움 
이 모습의 3개월 후...












.......................!!

 








다시 한번 종합

우리는 말못하는 강아지를 학대하지 않습니다.
때리지 않고요.
물론 밥을 굶긴 적도 없습니다.








여튼 신통은 산책길마다 다량의 니코틴을 섭취하며
(비행청소년임. 산책 1회시 약 한 번정도 담배꽁초 섭취. 입에서 빼려면 이미 꿀떡 삼켜버린 후.....)
오늘도 엄마가 일궈놓은 대야 위 파밭을 밀림마냥 헤치며
옥상에서 쑥쑥..;;; (요즘 앞발차기를 하면 내 가슴팍까지...;;;) 잘자라고 있는 중.



신통 사랑해♥
오늘도 고백했다 히히.





일일일. 하면서 보내느라 몇마디 적을 짬을 못냈다. 
이번에 마감한 건 자료 찾을게 많은 아이템이라 애 먹었고
그 와중에 알바까지 하느라 이리저리 휘둘리며 중심 못잡고 있었다.

며칠전 지하철을 탔는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노숙인 아저씨 한분이 누워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아무도 그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풍경에 마음이 싸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걸까
같이 살아야하는게 맞는데 뭐 그렇게 두려울까, 
그 풍경을 곱씹으며 그 자리에 앉아서 왔다. 

좀 짬이 나서 이거저거 뉴스를 검색하는데 동네가 또 잔뜩 바뀐다.
홍익문고가 없어지고, 아트레온이 CGV가 되고, 민들레 영토가 없어진다.
10년뒤 내가 누구인지를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것들이 자꾸 없는 것 같아서
맘이 좋지 않다.
증명해줄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참 쓸쓸한 세상이다.  서울은.

대선으로 사람들이 어수선하다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세 명중 누구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노숙자도 사람이고,
아파트에서 자기 자녀들과 뛰어내린 베트남 이주 여성도 사람이고,
전기가 끊겨 촛불에 의지한 할머니와 손자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알아 안다고!
엉망이고 부족한거
어디 내놓기 부끄럽게 엉망으로 방송됐다는 걸
어쩌면 그 부족함은 노력으로 채워질게 아니라는 걸
그래도 잘하고 싶은 걸 어떡해
'언젠가'에 기대고 싶은걸 어떡하냐고


유난함을 지양하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서른 하나를 축하한다

너는 적극적이어서 사랑스럽고
너의 노력은 분명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올한해 조금더 납득할만한 결과를 만들자. 
삶이 좀 더 신나고 좀 더 살찔 수 있도록...



달이 크다.
너 지구한테 들이대니...? 라고 생각될 정도로 달이 크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큰 달을 봤던게 작년 이맘때 였다. 그땐 (나름) 큰 꿈을 안고 매일매일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다. 소원에 순위도 매겼었는데 큰거 하나 해줬다. 어쩌다 1년을 돌고 보니 그 소원의 자리에가 있네. 고마워요! 달님. 

하지만 나란 사람 욕심이 끝 없는 사람... 하나 해치웠더니 다음 소원이 올라왔다. 올해는 작년 두번째 소원을 열심히 빌어봐야겠다. 이런 사람이라 미안해요.달님! 참 힘드시겠어요. 60억 인구중에 열에 하나는 칭얼대고 있을것 같은데, 그럼 6억. 한명당 소원 한개도 아닐거 아냐 한명이 두세개 비는 경우도 있으니 어림잡아 10억건... 돈받고 해결해주시면 때돈버시겠다~ 하지만 달님이 이뤄주는 소원은 공짜니까, 사사건건 참견하고 소원 이뤄주시려면 통이 좀 크셔야겠음. 

여튼 달님이 지구한테 들이댈때! 달님이 그나마 좀 가까이 있을때 말해야 할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잘 안들릴거 같아. 그래서 나는 운동장을 돌때마다 중얼중얼~  

고거요 고거, 내가 작년에 빌었던거~ 고거에서 두번째거


선배들 구성안 뽑아서 꼼꼼히 살피고 있다. 영상 보고, 대조와 대구와 대비는 어떻게 이뤘는지 본다 어떤 일화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지 10자 20자 한마다 두마디의 말로 어떤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이제 세편 째, 사실 좀 조급하기도 하다. 어느날 쭈구리가 돼서 이불 둘둘 말고 침대에 '나못해!'하고 드러누울지 몰라. 어느날 공부하는 원고 위에 연필로 적었다. '설마.. 이랬는데도 안늘겠냐?' 

그래 내가 그렇게 바보냐? 븅딱이냐? 아닐거야... 아니겠지.. 

이것역시 스리슬쩍 끼워서 달님에게 날릴 소원에 첨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날도 있고,
담배를 태우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갑갑하기도 했다.
살맛 안나는 세상사를 겪고 있는데
17년간 고질적으로 괴롭혔던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오기도 하고,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놈의 직업군에 대해 고민도 들고
사실 난 재능이 없는건 아닐까란 회의도 곁들이고..

미련은 버려야 하는 것이 맞고
기대 또한 너무 크다면 줄이는게 맞다.

시은이 덕에 강신주의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강의를 듣고 있는데
사랑을 믿으라는거야 말라는거야?
사실 나도 사랑은 믿지 않지만, 내 얘기가 되면 믿고야 마는 창과방패같은 인간이니까

남녀간의 사랑은 언제나 특별하하고 유일하지만  
그 사랑의 예시가 다른데 쓰일 때도 있다. 
나는 이 미움과 오래묵은 정(情)과 연민과 동정과 더불어 용서할 수 없음의
복잡다단한 해묵은, 케케묵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런 날이 올줄이야.
내가 아이린(BBC 셜록 시즌2)이 남긴 명대사에 빙의될 날이 올줄이야.

강조점이 제대로 살 때는 비슷한 색끼리 엉켜 있을 때가 아니다. 
선명하게 명도가 대비되고, 바탕과 포인트 각자 색이 살아서 채도가 눈아플만큼 대조될때지. 그래서 내가 고작 그 두장짜리 구성안에 정반대의 상황에 지지부진한 설명을 넣고 결론을 도출하는거 아니겠어?!?!!?(라고하지만 아직도 이리저리 까이고 까이고 또 고쳐쓰고 있지만...)

여튼 아이린은 셜록이 미친놈 마냥 속사포로 추리해댈때 진정 섹시하다고 했잖아...
난 진쌤이 미친듯이 달려드는 심빠, 황빠, 최근엔 나꼼수빠들한테 가차없이 가혹하고 혹독하게 멘션 날릴때 섹시까진 못느끼고, 후련함까진 느껴봤거든...

근데 오늘

"대한민국 남성 중에서 마초기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많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남성들은 나꼼수에 대한 비난보다는 자기 내면에 들어와 있는 우익 마초 근성을 반성하고, 나꼼수 멤버들과 더불어 여성들에게 함께 사과를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다정한 멘션엔
나 정녕 가슴이 설렜네...

그러니까 이를테면 조조백만대군 앞에서 장팔사모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괴력의 사나이가,
갑자기 나한테 다가와선 계급장 떼고, 조근조근하게 사과하는 느낌! 심지어 지가 잘못한것도 아닌데! 나같은 쫄병한테 사과해주는거야?!?!! 계급도 높은데?!?!!?!?! 아놔 감화감복이란 표현은 이런때 쓰는건가봐... ㅠㅠ

이게 바로 왓슨이 나한텐 친구는 하나도 없다는 셜록한테 치를 떨며 삐쳐있다가, 나에게 유일한 친구는 너하나다. 너는 나에게 (해까지는 아니고) 달 정도의 존재다라는 사탕발림에 홀딱 넘어가는 그 수법인가?!?!?! 남들에게 죄다 매몰찬 남자가 나한테는 상냥해(?)라는 희소성으로 매력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건가!!? 그게바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신분 떼고, 전지전능한 능력 박차고 이 땅에 재림하고 난 뒤 2000년도 넘게 수십억명 감화감동시키고 앞으로 어쩜 천 년을 더 해쳐먹을지도 모르는 매력의 진정한 진실인거야??!??!! 이게 바로 츤데레의 매력인건가... 이런 진부한 매력에 나 넘어가고 만건가?!!?!?!

여튼 오늘 진심 설렜다.
진교수님 멋쟁이.. ㅠㅠb
만일 내가 느낀 선덕선덕함이 섹시함과 비슷한류의 감정이라면...  오늘 하루만큼은 진교수님은 정녕 섹시함! ㅠㅠb 대한민국 남자가 쉽지 않은데, 계급장 떼고 남의 잘못에 지가 사과한다니 정녕 멋지다.... 오늘 하루만큼은 송호창변호사보다 더 미남으로 인정하겠음.




이제부터 난 진빠!
트위터에서 미친듯이 워리어짓할 때 더더욱 섹시텐션 폭발하는 진빠! 

 


친구와의 약속을 기다리며 뻘글로 정리해보는 이공일일 년!

이제사 고백하지만
이제야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2011년 가장 큰 수확이다.

내가 나한테 사랑에 빠지게 된 시간은 정확하게 2011년 2월 16일.
또레스 델파이네의 만년설과 빙하녹은 물과 눈앞에 펼쳐진 연녹색의 동산을보면서...
한번에 차마 담기도 아까울만치의 광경 앞에서
비로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좋아...'

사소한 것이 작은 차이를 만든다.
만일 내가 부자였더라면, 남미 여행을 팩키지로 떠났을 것이고
만일 내가 가난했더라면 차마 그곳까지의 경비를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고
결혼을 했거나, 애인이 있었더라면 그곳까지 단신으로 떠나기 어려웠을 것이고,
안정된 직장이 있었더라면 두달이라는 시간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불투명함과 불확실함 보증되지 않는 것들이 언제나 단점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게 아니란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비로서 나를 매우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남들과 다른 찰나의 차이. 그 차이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낸 세상 유일한 '나'라는 존재. 한동한 용납할 수 없었던 나에  대한 긍정과 애정.
그런것들이 작용을 해서 꽤 괜찮은 상승작용들을 만들어 낸 해가 아닌가 싶다. 

정착하지 못하고 무작정 부유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불안해 해왔던가. 그리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나의 잘못으로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 '불안함'이야 말로 언제든 주저 없이 떠날 수 있는 '자유'의 다른말이란 걸 깨달았던 한 해. 
거기다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왔을 때에 '여전'하던 고향이 있었기에 더욱더 감사한 한해였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내게 일생 중 다시 돌아가고 싶은 '한 해'를 꼽으라면
나는 정말 한치의 주저 없이 '반짝 반짝 빛나던' 나의 서른을 꼽겠다.
나의 서른은 '반짝 반짝 빛나던 나'와 사랑에 빠진 멋진 한 해였다.









백설기 부스러기 같은 눈이 떨어진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인 날, 선물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별로 춥지 않았다. 택시 탔기 때문만은 아닐거고. 그냥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금요일 저녁이다. 평소 같으면 동네파 퀴즈문제를 내거나 동네파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로 정신 없을 시간이지만, 올해는 일정을 간소화 한덕분에 이렇게 내 시간도 있다.

선물을 포장하고, 새로산 다이어리를 채워넣고 스티커를 붙이고... 올 한해를 떠올려봤다. 아직 마지막 날은 아니지만, 올한 해는 만족스런 한 해였다. 행운이 많았다. 그치만 그 행운을 위해 스스로가 한 노력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내 자신을 듬뿍 사랑할 수 있었다. 행복한 한해였다.

내일은 섭이네 모여서 놀 예정이다. 생각해 보면 교회놈들은 중등부를 시작으로 거의 매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왔었다. 20대 중반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반복이 얼마나 삶을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만드는지 잘 안다. 거창한 꿈을 꾸는게 아니다. 대단한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것 내 인생과 내 주변이 평화로운 것처럼 그 평화가 여전하고 오래가길... 자잘한 걱정들도 멀리서 보면 아주 작은 모래알 같았을 뿐이길...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살아야 할 것 투성이, 싸워야할 것 투성이지만 말이다.

올해는 청년회를 정리했고(아직 인사도 못했다 ;ㅁ;) 당적은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중이다. 딱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결정하겠다. 무슨결정을 하든 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니까-.

오늘 나의 밤이 이렇게 고요하고도 평안하듯 사랑하는 이들 모두가 평안하길-.
아주 오래간만에 나는 두 손을 모아야 겠다. 



예전같지 않은게 참 많다.
체력도 그렇고 추위를 타지 않는 체질도 그렇고 예전같지 않은 것들을 꼽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데, 요즘들어 심히 거슬리는 건 욕설섞인 친구의 말이다. 아니 그걸 대하는 내 태도겠지.  
한때는 약간의 욕설정도야 친근함의 표시고, 우리 철없을때부터 지속해온 이 정도로 오래되고 깊은 사이야 과시하는 표현으로 사용했었는데-. 요즘엔 그렇지가 않다. 부담되고 어색하고 (보고) 듣는 순간 피곤하고 그렇다. 철 덜난거 같고, 창피하고 막그래. 그래서 스무살을 갓넘겼을 때 내가 섞어쓰던 비속어를 애들이 창피해 했나봐...
다늦어서 반성해본다.


좋아해서 즐겨찾기에 저장해둔 블로그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시집가서 안면몰수 하신다는 분, 여행을 떠나버린 분, 등등... 차마 가서 참견하고 댓글은 달지 않았지만 왠지 서글프다. 떠나지 말아요. 라고 말하고 싶음. 정녕.


오늘은 한바도 사에 있어서 기록할만한 날들 중 하나다.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틀전이 되겠구나. 여튼 오늘을 나는 새벽출근에 실패했고, 오래간만에 곰다방에서 사온 커피를 너무 찐하게 타서 지금 어질어질하게 굴고 있다. 

 
 12월 마지막주에 쉬게 될것 같다. 점을 뽑을까? 여행을 떠날까? 스키라도 배워볼까(아무래도 혼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내게 보드는 무리란 판단이 들었다)? 아니면 그냥 확 따뜻한 나라로 떠나볼까 싶기도 하다. 여튼 이 모든건 이번주 말이 되야 결정난다는 사실. 그때가진 아무것도 못하고 있겠군. 슬프다. 


올해는 동네파에서 마니또를 생략했다. 매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내가 받고싶은(?) 선물을 포장해서 동네파 멤버의 집앞에 몰래 가져다 주는 스릴감만큼 재미난게 없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올해 선물 보낼 사람을 찾았다(?). 결코 대단한건 아니지만 박스 안에 담긴 정은 잘 전해졌으면 싶네. 




퇴근길이었다. 내 옆으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둘이 섰다. 유심히 들으려고 했던건 아닌데, 이어폰이라는 장애물은 가볍게 건너뛸정도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으려고 해서 들은건 아니었다. 들려오니까 어쩔 수 없이 들은거지. 

군대에서는 내 대화는 끝났다를 표기하기 위해서 '오바'란 단어를 쓴다.
그 친고들은 내 대화가 끝났다를 표기하기 위해서 'ㅆㅂ'이란 단어를 쓰더라.
그렇게 'ㅆㅂ'이란 단어를 약 사만천오백쉰일곱번쯤 들었을 때 였을까??

그 다음부터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죽여'였다. 무슨말만 끝나면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뭐 그리 세상에 죽일 사람 천지인지...
말그대로 죽였다간, 그야말로 전세게 인구 6분의 1은 줄었을 태세;;;;

여튼 요 며칠전에도 회사에서 연극성성격장애의 한 단면을 보았는데, 어제 집에 가는 길에도 구경하게 됐네~. 연극 대사처럼 들리는 과잉 발언과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과잉행동...
그들은 언제쯤 철이 들까. 따위의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말하는데로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을 때쯤이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게 말이란걸 알고,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걸, 그 힘은 실천에서야 나온다는 걸 저절로 깨닫겠지.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지만 나는 오늘도 말한다.
새벽 출근 좀 그만하고 싶다.
야근도 그만하고 싶다.




하루이틀일은 아니라지만, 눈을 돌리면 입력되는 정보가 너무 많다.
포화상태다. 부글부글 쌓이다가 전산처리가 에러날것 같아;;;.

연예인 모씨가 왜 아이라인을 그렸는지, 안그렸는지
누구의 뒷태가 숨이 막히는지 안막히는지 
남이 땅을 사든 말든 땅이 알짜배기건 말건
나랑 다 상관 없잖아!!!!!!

여튼 정보가 과잉을 넘어선 포화상태다.
쓰잘데기 없는 글자들은 그림으로 받아들이고 흘려야 하는데,
또 나는 그걸 주저리주저리 읽고 있고...

여튼 요즘들어
문자말고 다른 정보가 가득한 곳으로 떠나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단 생각이 든다.
굳이 글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언어가 아니더라도
읽고 느끼고 오감으로 느낄수 있는 정보들은 얼마나 많은가.
근데 그 모든걸 왜 꼭 사람의 언어로 걸러내고, 문자로 남겨야 한단 말인가.
여튼 잠시 떠나고 싶다.
그럼 대체 어디가 좋을까 깊게 고민 중.




나약해진 인간이 덧댈 곳은 정녕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도 모르는 극단의 절대적 존재인가;;;
...는 너무 거창하고 완전 우울한 나날에서 좀 우울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1년사주 보는 데서 봤더니 10월 8일부터 11월 6일까지 올해 최악의 운세라고 한다.
3분의 2 가량 지나갔으니가, 힘내서 버텨보겠다.
나아진다고 하니 버텨야지 무슨 수가 또 있겠나.

색깔테스트가 유행인거 같길래 나도 해봤다.
공리주의자 이상주의자 뭐 허울 좋은 소리로 들릴수도 있는데, 스스로는 흡족한 말이다. 
맨 마지막 문장이 디게 인상적이었다.

"직장에서는 책임감이 강하여,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입신양명이 중요하니 쉼없이 노력하고, 절제있는 생활을 한다. 배우자를 잘 만나고 배우자 덕을 많이 본다."

배우자 덕을 많이 본다...
배우자 덕을 많이 본다.......
배우자 덕을 많이본다.........

원인이 있는데 어떤 성질을 만났고 그래서 결과가 있다. 
수많은 역사철학서들이 시시콜콜 떠드는 말이 대게는 다 그렇다.
배경이 있고 사건이 끼어들고 그게 융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러니까 구성에서 중요한 점은 초반에 배경을 설명하는 일이겠지.
그래야 전개의 과정이 이해가가고 개연성이 있으니까.

오늘 같은 날 배경의 시점은 무당소속의 광풍이 돌고 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지하는 후보자'가 아닌, '대안'후보를 찍었다. 그리고 일단 투표를 했고, 결과를 기다린다.

배우자 덕을 많이 본다는 운세를 타고 났는데
일단 그걸 가로막는 성질의 '내'가 있다.
오늘따라 사뭇 결과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꼭 그런 느낌이었다.
투우하는 검은 소가 벽이고 철문이고 무시하고 아무대나 막 들이받는 느낌. 
살아 날뛰는, 퍼덕이는, 요동치는,
나. 시방 지금 위험한 짐승이여~의 느낌. 

운 좋게 <워리어>시사회에 당첨됐다. 
시사회 신청은 처음해보는 건데, 바로 당첨이길래. 아무나 되나보다 싶었는데 막상 그게 아니었나봐. 주위에서 용케 당첨됐다며 축하해주네;;;
뭐 상관 없다. 톰하디 빠순이인 나로선, 애초 극장서 다섯번 볼 생각이었다. 이제 네 번만 더 극장가서 보면 되겠다 싶다. 

영화 참 잘뽑혔다.
초반부는 조금 퍽퍽하긴 했지만, 나름 몰입할만 했고. 자잘한 장치들이 마지막에 감동을 불려주고 터뜨려주는 역할을 잘하는 것 같다. 가족애를 다루기 때문에 내용이 약간 빤한건 어쩔 수 없다 치자.
특히 군더더기 없는 장치가 퍽 마음에 들었다. 특히 옛날 가정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과거 회상씬이 없었는데 그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간결미가 넘치는 영화다.
마지막 마무리야 가족애를 표방한다니까 훈훈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우리 오빠는 말예요.....
우리 우리 오빠는 말이죠...

아 놔 톰하디 빠순이 평생할꺼야.
평생 부르짖을(이름에 추가해둘)꺼야.
이제 톰하디 빠순인거 부크러워도 않을거야.

뭐 이렇게 인간이 (또라이) 연기를 잘할 수가 있는건가요?!?!?!
특별히 얼굴 밖으로 꺼내놓은 감정이 분노 또는 분노를 누르는 절제 두가지 밖에 없는데도,
우리 오빠 연기 잘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잘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나저나 영화 중간 중간, 슬펐다.
아무래도 지난주에 <리얼스틸>을 본탓이겠지. 로봇 보고 자기처럼 싸우라고 레프트 라이트 잽을 휙휙 휘두르는 휴잭맨은 팔을 한번 뻗으면 끝이 없었다. 
근데 우리 오빠... 안그래도 180(이 안될거라 예상하는) 단신의 우리 오빠는 팔이 짤바아~ 너무 짧아~ 게다가 <브론슨>찍는다고 불리고, 인셉션 찍는다고 빼고, <워리어> 찍는다고 불리고, <디스민워>찍는다고 빼고, 불리고 빼기를 반복한 결과 숭모근이랑 팔근육이 상체가 너무 발달해버렸다. 그니까 그런 느낌. 뭔가 더 뻗을것만 같은게 있는데 이미 다 뻗어버린것 같은거지. 

그래도!! 
정말 왜 우리 오빠한테 성난황소 운운하고 말론브란도의 현신 운운했는지 제대로 깨달았음.ㅜ_ㅜ 이렇게 우리오빠가 (또라이) 연기를 (또 다시) 잘했는데, 왜 왜 왜 미시간에선 흥행을 못했니이이이 ;ㅁ; 

백현진 <무릎베개> 같은 노랠 듣다가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이정도로 미친사람이 사랑을 퍼부어 준다면, 아무리 개망나니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지. 평범한 인간들이 줄 수 있는 사랑의 크기가 10이라면 백현진 같은 목소리는 30이나 40의 광활하고 방대한 어마어마한 사랑을 퍼부어 줄 거 같으니까.
그 절대성으로. 그 희소성만으로도. 그 사랑은 분명 목숨을 걸만큼 값어치 있는거니까.  

그니까 <워리어>에서 톰하디가 연기한 토미가 딱 그짝이었다. 저렇게 미쳐 날뛰는 사람이니까 비교가 불가능하다. 다 쏟아 놓으니까 절대적이 돼버린다. 존재자체가 유일해지고 희귀해지고 그래서 매력적이고.

여튼 11월 3일 개봉일이 너무 멀다.
벌써부터 다시 보고 싶다 ㅠ_ㅠ
벌개진 눈이 미쳐 날뛰다가도 언뜻언뜻 스치는 외로움이 자꾸 아른거리네.
고독을 씹고 또 씹고 질겅이는 우리 오빠 멋있쪄... 진짜 멋있쪄.... :Q.....






어떻게 나왔느냐를 물으면 대답을 통해 어떤 곳에서 일했는지가 드러난다.
나와 같은 직군에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만뒀다"고 말하지 않는다.
"탈출했다"고 말한다.



따져보면 우리 엄마는 상위 1%로 안에 들거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로 말이지.

학교 다닐 때도 공부하라 닥달한번 안해, 뭐해라 이거해라 지시한적 없다.
만화가 하겠다고 깝죽대면서 2년을 놀았는데 언제 취직할래 한번을 안묻고,
아빠의 타박에 우리딸 나중에 유명해지면 신세나 지지말라고 나서서 내 방패가 돼줬음.
지금도 시집가라 말 한번 한적이 없다.

모자람 없이 자랐고, 그건 풍족했단 증거고,
그게 다 엄마의 희생아래서 치러진 것들이란걸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난 좋은 딸은 안되는거 같아서.
오늘도 곰곰히 생각하다 눈물이 울컥.



잊고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그냥 한귀로 흘러버린지 오래였다.
다시 주섬주섬 이말을 주워올 날이 올줄 몰랐지. 정녕 몰랐지. 

지난 6월에 찾아갔던 점쟁이의 말.

"너 거기 무지 가고 싶지? 너무 가고 싶잖아.. 그치? 근데 큰데라고 다 좋은건 아니야. 그런데 가면 또 그런데로 모셔야할 사람이 너무 많아. 니 맘대로 못해. 속 끓어. 그니까 작은데 있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지말고 거기 간다고 마냥 좋아해도 말고"

사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인데, 지금 상황과 딱 떨어맞으니까 다시 떠오른거겠지.

여튼 그 말과 같은 상황을 살고 있다.
이것이 나의 요즘 근황 "끗!"













얼마전 정말 사랑스러운 꽃병을 선물받았다.
우유통 모양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게 어떤색 꽃을 꽂아 놓아도 간지 작렬! 두어번 꽃사다가 꽂아 놓고 만날 헤헤거리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놔둬도 좋을 것을 '굳이 꺾어다' 집안에 들여놓는 잔인함. 사실 꽃의 입장에선 일생이 끝나버리는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 곁에 두겠다는 소유욕 등등.
그 뒤로 꽃을 살때마다 매번 망설여 졌고 꽃병은 한동안 빈병으로 놓여 있었다.
며칠전 친구랑 꽃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그동안의 이야길 했다. 자꾸 망설여져서 꽃을 살수가 없다고.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언니, 그냥 고기나 끊어."

그말이 정답!





참 모르겠다.
이력서 쓰고, 스팩 뻔지르르하게 써서 팩트 불리고 해당기업에 구미에 맞는 자소서 쓰는건 어렵지 않다. 대충 몇번 해보니가 감이와~ 실제로 그렇게 취업도 됐고, 취업도 시켜봤고 말야. 근데 대체 연애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푸념을 친구한테 했더니 요즘 세상은 연애보다 취업이 더 어려우니 노력해보란다.  
이말을 해준 친구는 남편이 있는 '가진자, 유산자, 부르주아' 인데 '자본가'의 과연 믿을수 있을 것인가?!?!? (본래 있는자가 '노력해봐 니 정성이 부족한거야' 라고 말하는것만큼 쉽고 모순적인 일이 없거니와) -_-;;;





이대 후문 어느 커피숍에서 쿠키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커다란 유리병을 봤다.  비싸서 차마 과자 맛은 못봤는데, 내가 탐나는건 그 '병'이 주는 따땃한 느낌이었다. 필시 백발이 성성한채 콧등에 흘러내리는 안경을 쓰고 남는시간 흔들의자에서 뜨개질을 취미로 하는 눈 파란 할머니가 가끔씩 놀러오는 손주들을 위해 한아름 과자를 구웠다 저장해 두었을것 같은 유리병. 그리고 조르고 조르면 마지 못해서 손주 손바닥에 하나씩 올려주주었을것 같은 유리병! ㅠㅅㅠ
그 물건을 갖는다해서, 그 기억을 소유하게 되는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탐난다. 아아 정녕, 인간은 소유하려고 사는 존재인가봐. 선물받지 못할거라면 선물이라도 좀 해보고 싶다.
동네파 마니또를 빨리 했으면 좋겠다. 리본으로 이것저것 포장하고 싶다. 진정!




돌규가 카메라를 샀다.
지난주에 섭이네 가서 컴퓨터 설치를 맡기고 빈둥빈둥 대면서 퍼즐을 맞췄는데, 그때 기막힌 타이밍에 우리 둘을 찍어줬다.
오. 완죤.... 나 사진작가가 찍었는 줄 알았어!
껄껄대며 장군감마냥 웃는 나랑 남탓하고 있는 섭맨의 얍삽한 손가락하며 퍼즐 늘어져 있는 한적한 섭맨네 거실하며 분위기가 완젼! ㅜㅜ 내가 머물던 섭이네집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놈의 카메라가 또 왜곡미화포샵질을 끝장나게 해주네. ㅠ ㅠ b
돌규의 수중 안에 5D마크2가 있는 한 친하게 지내야겠다. 낙엽이 물들고 잎이 떨어지고 한적한 한강 눈이오는날 쉬지 않고 돌규를 불러내서 좀 찍어보라고 해야겠다.
이런 칭구라 미아내.... ㅋㅋㅋㅋㅋㅋ





오래간만에 옛애인(?) J를 만났다.
처음으로 일했던 프로그램팀. 나는 막내작가였고 그'녀'는 조연출이었다. 세상이 나(혹은 우리) 빼놓고 모두 행복하던 시절. 일이 주는 무게에 눌려 기댈곳이 필요했고, 그때마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여의도 밤하늘을 함께하며, 서로의 무거운 짐을 기댔던 나의 옛애인 J~. 
그덕에 우리는 사귄다는 소문마저 회사내에 파다해었더랬지;;; (나 남자 좋아해요. 나 진짜 남자좋아하거든요?!?!? 백번말해봤자 모두의 의구심만 짙어졌었음..) 

여튼 그 밤하늘을 보면서 우리는 좋은 작가가 좋은 피디가 되기로 헤아릴 수 없는 다짐을 흘렸었다. 성실한걸 빼면 내세울 것 없는 나에 비해 J의 능력은 정말로 대단했다. 예체능계 아이들이라면 모두 목을 메고 몇수를 하는 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그해 대통령상까지 거머쥐고. 아아 남들 몇년씩 공부하는 본사 자리도 떡떡 붙곤 했었지. (빡센 외주 조연출 일정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한 덕택에 떨어지고 말았지만.) 여튼 그녀를 다시 본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가슴이 떨렸다.

여의도를 떠나 선택한 장소는 강남. 그녀는 예전보다 화사해졌고, '을의 을(외주인력)'이 아닌 '갑의을(정규직)'의 혜택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았다. 근데 그런 그녀가 너무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해서 가슴에 스크라치가 났다.

-씅 나, 요즘 일에 대한 열정이 이제 눈꼽만치도 없어. 근데 욕심도 없어. 여기서 20년 채우면 연금나오거든.
-씅도 그냥 살빼서 시집이나 가.

한남대교를 건너오는데 입이 썼던건, 마음 가득 씁쓸함의 맛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한텐 '내 일(직업이 아니라 하더라도)'이나 '내 이름'이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자아의 만족'이 무엇보다 중요할것 같은데. J마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니 나름 단단하게 세워둔 확신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모습으로 이렇게 사는건, 사실 '특별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평범할 자신이 없어서가?'인가.

올해 이 물음에 답을 내고자 부산을 다녀오고 남미를 다녀왔건만,
또다시 의문이 다시 새어나온다.
아아. 이러지마아... o<-<;;;;







난누군가또여긴어딘가
십수년전 듀스 노래 가사를 입에 담은 건 아침에 눈떴을 때였다. 
깨질것 같은 머리와 비어 있음에도 매식거리는 위장. 술에 쩔여져 노곤노곤해진 몸을 다독일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제 신촌길바닥에 버려두고 온 기억의 조각을 다시 찾을 필요성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위험수위까지 넘어간 것이 한두번은 아니나,
총 4차까지 달렸던 긴 여정 속에서 절반가까운 시간이 망각의 저편으로 넘어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니까 1차 때도 나름 천천히 선방하면서 달렸고 2차 다모토리에서 이문세 노래 따라 부를 때까진 좋았는데 말이지.... 3차 횟집에서부턴 정말 기억나는 장면이 몇개 안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핸드폰을 열었다.

망했따.
고등학교 때 동창이었던 애들한테 전화돌렸던 흔적이 핸드폰 통화목록 언저리에 흩뿌려져 있었다. 가정이 있건 없건 애가 딸렸건 말건 새벽 1시에 이리저리 전화해서 나와라 왜못나오냐 주정주접을 떨었음이 분명한 기록들;;;;

페이스북을 열었다.
새벽 2시반에 글을 올렸다. 집에 좀 보내달란 글이다. 대체 술에 취해서 이런글은 왜 쓴걸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정말 졸려서 미칠것 같았는데, 애들이 자꾸 집에 못가게 했던게 장면이 언뜻 스친다.

핸드폰 케이스를 봤다. 오병강의 명함이 왜... 들어있지? 오병강은 어제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한참생각했다. 새벽 4시반에 신촌에 등장해 내 택시를 잡아줬던 흐릿한 그림자. 단신의 키로 추정하건데, 오병강맞는거 같은데... 더불어 내가 오래간만이라며 얼싸 안고 신촌바닥에서 소리소리를 질렀던게 기억났다.

두통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짜내며 고뇌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어제 3차까지 함께한 그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맥주로 달렸던 그녀는 제법 멀쩡한 편에 속했는데, 어제 다들 취기가 말못할 정도였단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한 녀석이 울기까지 했다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난다;; 정말 안난다. 그정도 자극적인 장면이면 기억이 나야 정상 아닙니까요?!?!!?!? 흑흑 어디갔니 기억아! 어디로 도망가서 제자리를 못찾니!!
그리고 충격적인 증언이 또 하나 나왔는데;;;
술자리에 있던 두 놈이 과거 추억에 대해서 아웅다웅했단다. 그건 예전 우리반이었다가 이전퇴학다녔던 A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참을 아웅다웅하는데 내가 벌떡 일어나서 판결을 내려주겠다며 A의 친구 B에게! 새벽 1시 40분에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다는 거다;; 새벽 1시 40분에 가정있는 남자한테 전화해서 A의 연락처를 따내는 퀄리티....
아 인셉션같은 기술을 배울수만 있다면 B의꿈속에 들어가서 전화통화했던 내용을 싹다 지워버리고 싶따아. 아아. 왜그랬니 대체 왜 그랬니!!! ㅠㅠ

낮에 몇몇 놈들에게 전화가 왔다.
덕분에 스스로찾아내지 못했던 기억의 조각을 몇개 더 건졌다.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말들을 어제 몇시간동안 지껄였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 놈들 너무 소중하다느니, 사랑한다느니, 우리 고등학교 최고였다느니, 니들과의 추억이 너무 값어치 있다느니...
수십만원을 쥐어준다해도 내뱉기 힘든말을 단돈 2500원짜리 소주마시면서 무슨깡으로 잘도 내뱉은거니...? 너무 졸린데 애들이 집에 안보내줘서 막 벤치에서 졸고 그랬던거 기억나는데 아아! 죽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보통 고등학교 때 거국적으로 모이는 모임은 추석 설에 있는데,
다음번엔 주최하지 않을 예정이다.
뭐 어차피 내가 연락 안돌리면 술자리가 아예 안생기니까....
애들 연락돌리고 시간맞춰나가는게 은근 귀찮았는데 이럴땐 장점이군.

최근들어 필름 끊길때까지 마시는 술자리가 계속되고 있는데,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스타일이니 앞으론 그냥 술을 안마시는게 최고의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왜그랬니왜그랬어왜그랬었니...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