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덟

카테고리 없음 2019. 12. 26. 12:32


올해 마지막 출근이다.
연말에 약속이 많아서 집에서 노트북을 켜지 않을 것 같아서 
노트북 앞에 있을 때, 재빨리 서른 여덟에 대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올해는 몇가지 일들을 해냈다.

 

기획안을 완성했다.

혼자서 공부하고 써보고 수정하고 사람을 섭외하면서 해낸 일이다.
늘 돈을 받고 해오던 일을 아무런 보상 없이,

그것도 마감이라는 기한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만의 노력과 아이디어를 버무려가며

게다가 자비까지 털어가며 완성했다.

그래도 지금보다 내 삶이 더 재밌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 하나만으로 묵묵해 써내려가봤다.
좀 더 상급기관(?)에 넣어보자는 제의에 뛸듯이 기뻤고,
좋은 번역가를 만나고 기획안을 꾸며줄 사람을 거치면서
기획안을 완성했다.

다행히도 내 마음에 들었다. 

 

메일을 발송하던 일요일 밤....
<보내기>를 마우스를 클릭하고 난 뒤에 찾아오던 여운.
그 순간의 기쁨을 오래도록 곱씹어보고 싶다.

 


내 명의로 된 집을 하나 장만했다.
(물론 그 집에는 "오래됐으며 허름하고

미래에 값나갈 가망은 거의 없으며

투자가치는 제로에 수렴하는"이란 형용사가 붙는다)
안일할 수 있었겠지만 안일하지 않고

조금더 행복하기 위한 노력이라 생각된다.

요즘은 집안 도면을 구해서 틈날때마다
어떤 가구를 어떻게 배치할까를 그리고 또 그린다.

나의 선택들로 채워진 내 공간...

그곳에서 만들어 낼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  

 


마지막은 역시나, 나의 일.일.일.

귀찮고 번거롭고 피곤하고 괴롭히지만

그래도 내게 주어지고, 나의 일부인 일. 

 

데일리 시사를 하면서 이런 기쁨을 느끼게 될 줄 몰랐는데,
몇가지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4.3 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70년 설움을 해소하며 무죄라고 선고해줄 때,
나의 일로, 방송을 선택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아이들에게 졸업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적을 때 눈물이 났다. 

그렇게나마, 축하의 말을 건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여의도 공장에서 목동 공장으로 이동해 3개월간 두편의 다멘터리를 완성했다.

목동공장 동료들은 내가 하나를 해달라고 말하면

서너개는 물론이고 열개를 만들어주는 세상 멋진 친구들이다.

열악한 상황에서 멋드러진 결과물이 나왔을때의 쾌감!

좀 더 잘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제한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있다.

시청률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기뻤다.

 

다큐가 끝나면 뭘로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여의도 공장에서 다시 와주겠냐는 연락이 왔다.

돌아온 탕아를 받아주셔서 감사하단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아고 있다.

3일을 쉰다는건 얼마나 달콤한 휴식인지...

마음 착한 동료들과 능력 있는 후배들 덕에

큰 어려움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삶을 누렸다고 말할 수 있는 서른여덞이었다.

후회보다 안도가 앞서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