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봐도
태국 꼬따오에서의 12일은 내 기준에서는 여행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그럴까 생각해 보니, 낯선 장소에서 '낯섬'에 익숙해질 시간이 없어서 인듯.
12일 내내 내 옆에는 동행인 친구가,
숙소에는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들이 한가득이었으니까.
여백이 없는 왁자지껄한 시간도 좋았지만
비좁음으로 인해 서울에서 느끼던 갑갑함을 여전히 달고 살았다.
어제 연대를 걸은건, 정코치의 당부도 있었지만
그냥 오래간만에 밤하늘을 보면서 혼자 있고 싶단 생각이었다.
(통이랑 산책 나가면 통이한테 신경쓰느라 뭔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한두방울 내리던 비가 굵어지고 잦아졌고,
나는 가방 속 우의를 꺼내서 입고 계속 트랙을 돌았다.
비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운동장의 사람들은 체에 걸러지듯 빠져나가
결국엔 운동장에 나 혼자 있게 됐다.
그리고 마침 <백야>가 흘러나왔는데,
얼마만의 느낌인가?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나'와 데이트하는 시간
남미 띠띠까까 태양의 섬 꼭대기에서,
비오는 깔라빠떼 평원에서 혼자 트렁크를 질질 끌며
느꼈던 진공의 느낌
온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 '나'를 지켜보는 시간.
그 짧은 한시간이 너무나 풍요로워서 정신이 흠뻑 살찌고 자란 느낌이었다.
비가오는 밤이면 꼭 혼자서 우의를 입고 길을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