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게 정확하게 13일 전 지난주 월요일의 일이었다. 월요병에 골골대며 평소와 같이 출근하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 같은 프로그램에서 있던 선배였는데, 뜬금없이 K본부 '****들'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거기 있는 작가들이 물론 나보다 연차가 모두 높긴 한데, 메인으로 있는 작가님이 널 이뻐라 하셨던 분이니까 문제 없을거라고.
그니까 정확하게 K본부 '****들'이라 함은 내가 요즘 하고 있는 교양프로그램 중에서 두번째로 가고 싶은 프로그램이었다. 묻고 따지고 잴것도 없이 그러겠노라고, 지금 당장 이력서 메일 넣겠노라고 진짜 하고 싶다고 소리지르듯이 외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둥둥 뜬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날 오후였다. 또 전화가 왔다. 내가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로 일하고 싶어서, 작가를 안뽑는데도 불구하고 민망과 송구함을 불구하고 이력서를 넣었던 그곳에서.... 이력도 마음에 들고, 전에 보냈던 구성안도 마음에 들었으니 따로 면접을 보지 않아도 될것 같단다. 되도록 빠른 시간안에 출근해줬으면 좋겠단 소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하루 동안 가장 일하고 싶었던 프로그램과, 두번째로 일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에서 동시에 연락이 오는 일이 발생...하다니. 대타 후임이 정해졌건, 정해지지 않았건 이미 기분은 하늘을 날고 있었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수요일날 제작팀을 만났다. 만족스런 미팅이었고, 이대로 천년만년 그팀의 지박령이 되겠노라 결심했다.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설레고 떨리는 상황에서 생방을 맞이했고, 그날 20분짜리 원고 중 11분을 리허설 50분 전에 받는 기염을 토했다;;; 테잎을 내릴 수 있느니 없느니 난리도 아닌 상황에서 간신히 방송을 마쳤다. 무사했다는 것 단 하나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었던 다급한 순간이기에 스스로도 대 만족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약간에 우려가 있었던 장면이 그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 다양한 욕설이 올라왔다. 제정신이냐를 묻는 글은 안부에 지나지 않을 만큼 격앙된 글들이 올라왔다. 내가 욕먹는 건 견딜 수 있었는데, 출연자가 욕먹는 건 정말 괴로웠다. 출연자를 욕먹이는 피디 작가만큼 바보 같은 사람이 없다고 그 옛날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배웠던 말들을 떠올릴 때면 더욱 가슴이 싸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일은 더 커졌다. 우리 출연자를 RT가 돌았고, 기사화 되기 시작했고, 방송을 보지 못한사람들까지도 기사만 보고 출연자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가장 고통스러웠던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변명 같지만, 내가 책임 질 수 있는 부분이 정말 단 하나도 없더라.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는 일주일이 시작됐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이토록이나 짜릿한 순간이 찾아올까 싶을 만큼 행복한 일을 만났는데, 내 인생에서 이정도로 비난받고 욕먹을 순간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할만큼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일요일엔 S본부로 출근해서 사과문을 올렸고,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 싶었다.
근데 그 다음날 내 대타로 오기로 한 작가가 안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후임이 없다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또 다른 서브의 도움으로 간신히 땜빵을 구했다. 하지만 지금 일했던 팀에서 욕을 먹어야 했다. 사실 욕이라도 먹으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하더라.
그렇게 수요일부터 출근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짜릿할 만큼 행복한 순간인데 행복할 새가 없었고, 죽고 싶도록 좌절해야할 타이밍인데 그걸 견딜디고 버티게 해줄 위로가 있었다.
너무 행복해서 너무 들뜨지말라고, 준 불행인지 너무 불행해서 좌절하지 말라고 준 행복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이제서야 토로할 수 있는건 그 행복과 불행의 감정이 모두 소모 됐기 때문인듯.
여튼 이번 일로 깨우친 인생의 진리라면..
두드리면 열릴 때도 있습디다! 참말 입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