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파에게 길고긴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내가 억지 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모두 나를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마냥 고마웠다. 흑흑.

솔직히 나에겐 트라우마가 하나 있다.
나 대학교 4학년 때 한학기 휴학하고 배낭여행 다녀와보니까. 대학 내내 같이 다녔던 애들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서로 까대(?)고 있었다. 스물세살에 차마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표현이지만 정말 서로 까댔(?)다는 표현 외에는 적합한 표현이 없었다. 과사람들은 우리 열댓명이 평생 갈 인연이며, 진짜 친한 애들인줄로만 생각했기에 더 창피했다.
그렇게 싸우고 있는데 중립이란게 없다. 결국 나도 내욕했다는 소문에 분노폭발(?) 그 사실을 제공한 한쪽 편들고 넘어가면서 졸업식날엔 나머지들을 썡까고 말았다;;; (아아 유치해 ㅠㅠ)

그게 꼭 6년 전 일인데, 이번에 나는 또 배낭여행을 간다. 행여 6년전 트라우마가 그대로 실현되는게 아닌가 적잖이 불안했다. 이번에 대판 삐지면서 만두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날 한껏 안심시켜주었다.

"걱정마. 걔들은 다 커서 만난거고, 우린 이미 서로 알만큼 아는 사이니까 그런일 없을거야."

예상대로 동네파애들은 넓은 아량으로 나의 모난 마음을 다 감싸주고 받아주고 토닥여주고 흐극흐극ㅜ_ㅜ 우린 마치 다시 만난 연인처럼(?), 재결합한 부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여튼, 동네파에게 큰은혜 입었다.



올해 첫시작을 내 제법 큰 역경(?)으로 시작하고, 그 역경을 빠져 나오니 또 다른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란항공의 예약건(?)이라든지(ㅠㅠ), 여행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의문. 준비할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에 대한 불안(초조안달복달다리떨기...)
그리고 시간이 남다 보니 최근 당한 일(?)에 대한 분노 정도가 되겠다.

연도는 작년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1차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2차자리부터 낀 당 송년회에서 나는 목청이 찢어져라, 목소리야 쉬어라. 껄껄껄 큰소리로 웃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느즈막한 시간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옆자리 앉은 한당원이 조금 취해계셨다.

첫마디를 꺼냈을 때, 거기서 단칼에 끊어버렸어야 했는데;;;;

"여자들은 연애할때 대체 왜 그러죠?"

대화주제가... 내 서른 인생과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이었다.
하나의 집단군을 놓고 절절한 평가를 내릴 때는 내가 해당 집단군이 되어 변명과 옹호를 덧댈것인지, 아니면 반대집단이 되어 가열찬 분노를 함께 토론할 것인지 영민하면서도 민첩한 판단이 중요하다. 빠져나갈거라면 초반에 치고 빠져나갔어야 한다. 1분 이상 들어주고 난 뒤에 뒷모습을 보여주는건 창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 4시를 넘긴 시간 소주 맥주 뒤섞여 마신 상태에서는 그 판단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분은 연애하는 여자들의 고루하고 낡디 낡은 습관과 행태에 대한 가열찬 비판을 시작하셨다. 왜 뭐든 사달라고 하는지에서 시작됐다. 이십여분 가까이 떠들어대셨는데, 솔직히 어떤 내용이었는지, 초반에만 듣고 나머지는 멍하니 소주병에 그려진 효리 언니만 들여다 보고 있어서 기억은 안난다.

쫄대로 쫄아서 소금을 소태로 부은것 같은 묵은지돼지찜을 한입 떠먹었다.

"죄송합니다..."

남아 있는 소주 반잔도 들이켰다.

 "근데 저는 연애를 한번도 못해봐서요..."

아니, 연애 못한것도 서러운데 내가 왜 연애하고있는 여자애들 몫까지 사과까지 하고 앉았지? 니미... 근데 그 분 눈초리가 '그럼 그렇지...'란 눈초리였음. 그때부터 열이 빡 받아 있었다. 그때 자리를 떴어야 한다. 초반에 석봉어머니 떡 썰듯 단칼에 끊고 그 자리를 끝냈어야 한다.

이야기는 번지고 번져, 나중에는 왜 엠넷에 원서를 넣지 않느냐는 역사 프로그램을 하려면 이런 아이템을 해야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냥 무슨일한다고 할때 논다고 거짓말할 걸...내가 왜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인생 설계까지 듣고 프로그램 아이템에 대한 지적까지 받아야하지;;;; 그러다 다시 한번 엠넷에 원서 진짜 안넣을꺼냐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사람아! 김수현이 연예오락프로그램 대본쓰는거 봤어? 무도 작가가 드라마 쓰는거 본적있냐고?'라고 들이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자리를 깽판 놓을 순 없는 노릇이라 참고 있는데,  마지막 한마디가 나를 경악시켰다.  

"근데 역사다큐 작가가 있긴 있어요?"

불끈 쥔 산만한 내 주먹을 간신히 방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거기서 한마디 더 나왔으면 난 짜디짠 김치짐을 뒤짚어 없었을지도....





서른살.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동네파와는 달리) 세상이 날 내버려 두지 않는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