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To Write

카테고리 없음 2020. 8. 27. 14:10


*** Born   To Write 
인생 부제를 정해봤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물건을 사면 책이 부록으로 따라오게 된다는 알라딘 사은품 카피 ‘본투리드’ 를 보고 따라한 글귀.  
태어나자 마자 아빠 친한 친구 아버지가 봐주었다는 내 사주에는 글을 써서 먹고 산다고 나와 있었다. 그러니 사실상 이 정도 부제는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 부제를 정하고 나니, 이제는 이게 더 궁금하다.  앞으로 내가 쓰게 될 글은 어떤 글일까? 지금까지 뭘 쓰며 먹고 살았는지 너무 잘 아는데, 앞으로 뭘 더 쓰게 될까?

그 글을 다시 읽고, 만족스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 재난영화 프롤로그 장면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대하여
올해는 전업으로 두고 있는 일에 지장이 많다. 2월에는 코로나, 여름에는 기상이변이었던 장마, 그리고 다시 코로나. 이대로 가다간 생활이 안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기감을 느낀다. 탄탄한 정규직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대부분이 느끼는 공포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지만, 그렇다고 불안이 해소되는건 아니니까. 
이번주 방송도 죽는다는 통보를 듣고 어제까지는 몹시 우울했는데 오늘 다시 아름다운 창이 돋보이는 공동작업실(?)같은 공유오피스에 나와 해와 나무를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제부가 삼성 무선 키보드를 양도해주었는데 이제 매 번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수고를 덜어도 될거 같아서 흡족하다. 지금 이 글도 키보드를 휴대폰에 연결해 휘갈기고 있다는 거... 그래 쓰려고 태어난 인생이니 재난 영화 프롤로그도 쓰는 장면으로 시작해 주마. 부디 이 영화가 꽉찬 해피엔딩이길 바란다. 


*** 몰타에 대해서 
몇주전이었다. 기후변화의 일환인 관측역사상 최장장마로 인해 나는 근 두달간 해를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날 내 방송은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의 증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거에 누리던 삶이 더이상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경고였다. 그 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정말 세차게 비가 내렸다. 쨍쨍한 해를 본 게 한달이 넘었다는 셈을 마쳤을 때였다, 절망감이 침대 위 가득 차올랐다. 그 속에서 나는 몰타를 떠올렸다. 공부벌레, 일벌레 평생을 열심히 열심히 살라고 재촉하는 한국회에서 탈출해 딱 세달. 놀고 먹고 판판히 즐겼던 지중해 푸른 바다로 둘러 싸여 있던 섬. 떠날때 작별인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이제는 영영 작별을 고해야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 마흔되기 전에 잘한 일들 
트위터는 정말 덕질 눈팅용으로 쓴지 한 5년 된 것 같다.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야할 나의 공식적인 심정같은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에.., 내 트위터 공식용도는 덕질용 눈팅용 가끔 공감가는 말에 하트 정도 박아주고 아주 중요한 정보는 알티로 저장하는 백업용이다. 요 며칠 타임라인에는 이십대 삼십대때 잘한일을 정리하는게 유행이던데..,

누가 묻더라도 내 대답은 여행여행여행여행. 백번을 물어도 배낭을 메고 떠나는 한달이상의 긴 여행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은... 이제 당분간 더이상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주어지지 못할 것이니까. 

 

‘여행’의 다른말은 나에겐 ‘도망’이기도 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총학생회 선거에 또 출마하기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학기를 휴학하고 7학기 졸업하는 거였다. 그 한학기 휴학 기간에 첫배낭여행을 시작했다. 47일간의 유럽. 그대로 뷔페(?)코스로 단기간 유럽 각 도시를 찍었다. 태어나 처음인데, 취향이란게 어디 있나? 그저 여행책에 나오는데로 없는 돈 탈탈 털어 먹는데 아껴쓰며 가봐야할 박물관 미술관 관광지 정말이지 성실하게 돌았다. 
두번째 도망은 서른살이었다. 방송일 시작한지 한 4년쯤 됐을 때였는데 입봉 달고, 원하던 역사프로그램도 한번 했는데, 일하던 외주사에만 계속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남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총 여행자금 800만원. 토레스델파이네를 처음 본 날 생각했지. 여기서 이 여행이 끝나더라도 나는 그 돈을 아까워하지 않겠다고. 

세번째 도망은 서른다섯. 준비된 탈출이었다. 35년 산 한국사회가 지긋지긋할 즈음이었다. 몰타에서 3개월 어학연수를 빙자한 백수 생활을 하고 아프리카 남부지역을 돌았다. 남미를 흠뻑 사랑했던 나는 아프리카도 사랑할수 있을줄 알았는데.., 그러진 못했다. 푸하하.  대신 언제든 자기 집을 에어비앤미로 여기라는 소중한 친구들을 많이 얻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ㅎㅎ 

 

앞으로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라 생각하니 더욱더 값어치 있게 느껴진다. 그래도 역시 그걸로는 부족해. 6월초의 알래스카 빙하도 보고 싶고, 몽골 대 초원에서 하루종일 말을 타고 다니다 직접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독특한 경험도 하고 싶고, 여튼 내 인생 모험이 여기서 멈춘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코로나 백신이여 ㅠ 제발 빨리 나오너라.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친구들이 언제 다시 놀러올거냐고 물었단 말이다 ㅠ 

 

 

***내 장례식장에서는

 

종종 듣는 팟캐스트에서 본인 장례식장에서 틀었으면 하는 노래를 정하는 코너가 있었다. 

동네파 친구들에게 곡명을 말해줬는데, 친구들이 기억하기 어려우니까 찾기 쉬운데가다가 적어두라고 한다.  

그래서 적어둔다 (2020년 8월 VER) 

 

The Beatles - Ob-la-di ob-la-da 
Somewhere over the Rainbow - Israel "IZ" Kamakawiwoʻole
Julie London - Fly Me To The Moon (플라이투더문은반드시 줄리런던 버전으로 완전 신나야한다)

Debussy Claire de lune (이왕이면 조성진버전으로) 
김건모 2집 - 우리스무살때
veinte años - Silvia perez (원곡말고 실비아버전)

 

어디선가 읽었는데, 최후 승자는 마지막에 웃는자가 아니라 자주 웃는자라고 했다 

장례식 온 지인들이 내가 최후 승자임을 알 수 있도록 활짝 웃는 사진을 많이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서른 아홉 8월이 며칠 남지 않은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