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빼빼로 데이도 어김없이 남들이 받은 빼빼로를 질겅이는 것이 전부였다.
낭만을 기대할 나이는 지났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무 것 없이  보내고 싶단 말은 아니고.
종잡을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휩싸인 채로 나는 오늘도!
옆팀 막내작가에게 온 빼빼로, 우리팀 에이디가 받아온 생초코렛을 주워 먹었다.  


빼빼로 데이가 전국적으로 홍보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즈음. 올해로부터 근 10년. 아몬드 빼빼로 통빼빼로 나오기 전의 일이다. 우리 학교에서 별나지 않은 애를 찾는 일이 더 힘들다지만, 말 수 없음으로 유명한 남자애가 있었다. 말이 적던, 벙어리던 상관하지 않았던 나의 오지랖은 그때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특별한 친분은 없었던 그애. 근데 그날 정말 뜬금없이 그 애가 나에게 빼빼로를 던져줬다.

"너 먹어."

'평소 천성이 밝고 남을 의심할줄 모르던' 나는 여꼴통들과 신나라 하면서 '진짜 주는거야? 나 먹어도 되는거지? 무르기 없는거지' 터진 입이라고 주절대면서 그 빼빼로를 까먹었고, 그 일은 곧 잊혀졌다. 당시 빼빼로 가격 500원. 특별한 날이라곤 하나, 같은 반 애들 사이에서 빼빼로 한통에 별 의미를 다는게 더 이상한 시절이었다.

일주일 중 6일이야 학교에서 마주치는 게 다반사였고 기억할 이유도 없다. 내가 그 애를 아직도 생각하는 건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기 떄문이다. 한달에 3만원, 저렴하기 그지 없는 모 단과학원 같은 교실 안에서. 왕따처럼 각자 다녔던 우리 둘은 그 뒤로 저녁밥(=떡볶기)를 함께 먹으며 학원을 다녔다. 주로 내가 주절대고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사이였지만, 나는 눈치 깔 수 있었다.
그 빼빼로는 원래 임자가 있었음을.

십년 전 그 빼빼로.
아마도 그애가 마음에 둔 그애에게 주려고 준비했다가
꼭꼭 손에 쥐고 또 쥐고 있다가 너무 떨린 나머지
그냥 눈에 띄던 '시끄러운 나' 에게 던져준 것이리라.
그걸 좋다고 까먹던 나와 여꼴통들은;;; 정말이지...


여튼 이런 날이 되면 그애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두 눈을 감은 채 사과하고 싶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고백하자면,
네 순정을 짓밟아 놓아서 미안타. 성*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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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고등학교 동창생 남자애를 만났다.
그애는 내리는 역이었고, 나는 그애가 내리는 찰나 입구 앞에 서 있는 그 애를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가 나눈 말은 몇마디 되지 않았다.

"으앗! 김*석!"
"오! 신승*!"

남자애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며 웃었다.
그리고 열려진 문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너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톡쏘아 받아칠 내 말은 마저 듣지도 않고 그렇게 황망히 가버리다니...



작년 최*빈 결혼식.
근 7년 8년만에 처음으로 보는 얼굴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렇기 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자리에 나선 건 그때문이었다. 이제 다시는 못볼지도 모르는 애들이 궁금하다는 호기심...) 그리고 예상 그대로 최*빈의 결혼식은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애, 심지어 전학간 얼굴까지 다시 모여 있는 만남의 장이었다. ㅋㅋ

고등학교 때보다 더 훤칠하게 자란 남자애들은 키작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말을 똑같이 남겼다.

"넌 어떻게 하나도 변한게 없냐."

내가 그날 코트를 입고 목도리로 이중턱을 가리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더 쪘다.




작년 가을, 상상마당.
영화 한편 때리고 나타나서는 고등학교 동창생 여자애를 만났다.

"꺄아! 신승*!!"

헤어스타일이 변하고 옷차림도 몹시 변해 그야말로 '홍대'스런 마인드를 가지게 된 그녀의 변화를 나는 단박에 눈치챘다. 그녀는 나를 보고 폴짝 뛰었다.

"어쩜 하나도 안변했구나."

나 나름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준답시고 앞머리 일자로 잘랐는데 그거 안보이냐??
끝내 그녀는 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듯.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짠듯, 언제나 나에게 같은 말을 건넨다. 
자주 보는 친구들이야 내 성장의 과정을 듣고 보고 느끼고 공감해주겠지만,
그들은 그 길고 긴 시간을 뛰어 넘어 '여전하고', '그대로인' 모습만 눈에 담는가보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사건과 함께할 공간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 시절 꾸었던 꿈을 꾸고 있다.
그게 비록 '언제나'가 되지는 못하지만,

가끔, 변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면 쓸쓸해진다.
나만 이 자리 혼자 남아, 몽상으로 치부 될 부질없는 꿈을 꾸는 것 같아, 외롭다.
그 때 꾸던 꿈이 허황됐나. 이루지 못한 꿈이라 미화되었나?
작년 봄, 대학에 찾아가 나이든 교수님을 봤을 때도 그랬었지.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본다.
영영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세월에 부대끼다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하더라도
그 꿈이 있어서, 그 꿈만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 '꼬꼬마시절 감수성 풍부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낭만스런 소녀 마인드'로 돌아갈 수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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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것은
청춘의 꿈을 레몬색으로 덧칠하는 허황된 만화.
'허니와 클로버'를 읽고 잤기 때문.

서른이 가까워오니 이루지 못한게 많아서 부질없이 꿈만 꾸고 상상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