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카테고리 없음 2014. 7. 15. 13:32

덕질은 나에게 기쁨과 행복 충만함과 치유를 주지만
내 인생의 시간과 돈을 빼앗아 감으로
더 이상 덕질의 범위를 늘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 의지가 얼마나 굳세냐면, 댄싱나인 시즌2도 안볼 정도다. ㅋㅋ...ㅋㅋㅋㅋ

그러다 엄청난 소식을 들었는데
은퇴했던 오빠의 (감독) 복귀.

인자기를 좋아했던건 02년부터였고, 2012년 은퇴했으니까 한 십년정도 좋아했던거 같다.
말년에 오빠는 폼이 떨어져서 (사실 공격수 나이론 상상도 할수 없을만큼 나이가 많았음)
선발출장, 전경기 출장보다는 골필요할 때 투입돼서 어슬렁거리다가 한골 주워먹고 한골주워먹고 정도의 수준이었다. 덕분에 시간은 많이 아꼈다. 다음날 경기 결과 확인하고 오빠 출장여부정도만 본 다음에 하일라이트 정도 챙겨보면 됐으니까...

하지만
축구는 감독의 경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독이 안나오는 경기란 있을리가 없잖아!!!!
우리팀 골 넣을때, 상대팀 골 넣을떄, 인저리타임, 교체, 부상 등등
오빠를 얼마나 쉴새 없이 잡아줄지.... (그래서 내가 새벽마다 베개 부여잡고 오빠를 부르짖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아.. 안봐도 비디오야. 이탈리아산 우리 오빠는 더우면 셔츠 핏에 맞게 걷어 붙이고, 겨울되면 추워죽겠는데 폼나는 머플러에 딱떨어지는 T코트 입고 나오시겠지.... 흑흑 
 
여튼 복귀다.
빠졌다고 생각한 덕질 목록 중에 해외축구가 다시 귀환했다.
이번 월드컵을 워밍업으로  슬슬 해외축구에 눈 좀 돌리고 있다.

로번이 언제적 로번이야, 뢈쥐는 여전히 귀엽구나.. 정도 시전하고 있고
AC밀란 아가 발로텔리도 구여워 해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여튼 나에게 시간과 돈을 가져가도 좋으니
부디 오빠에게 좋은 결과가 있길....
세리에 2군선수들까지 미친듯이 분석해서 매번 얻는 좋은 위치선정이 감독의 실력으로 빛나길!!


조금더

카테고리 없음 2014. 7. 15. 10:14

곰언니가 꿈속에 나왔다.
너무 오래간만이라 꿈을 깬 뒤에도 어벙벙했다.
한달 전쯤 대학 동기 결혼식에서 언니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인지 모르고,
어쩌면 매번 내 꿈속에 등장했지만 기억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고

다른 무엇보다 언니의 눈빛이 기억난다.
참으로, 여전했다.

단단한 심지가 곧추 세워져 흔들림 없이 확고하고 확신있고...
내가 좋아하던 꼭 그대로의 눈.
'앙증!'하고 조금 혀짧은 소리로 나즈막히 불러주면서도 따뜻함이 담겨있던 음성.   

언니가 꿈에 나온 김에 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행동과 행위에 대한 의미.

2000년 겨울 만일 언니가 학교를 상대로 끝까지 싸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토록 언니를 믿지 않았을지 모른다. 
언니의 말과 생각에 대한 설득력은 덜했지 모른다. 
그 치열한 싸움을 지켜볼수 없었다면,
 언니를 향한 애틋함이 지금같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에는 힘이 없다. 하지만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져 다른 사람을 자극하교 변화하고 행동학 만드는 그 힘은 분명 존재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행동이 열두명의 제자를 변화시키고 행동하게 만들어 겨자씨에서 바오밥 나무와 같은 팽창을 만들었듯. 행동은 물질적인 것 외에 정신을 감화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후회와 부정보다는 일단은 좀 더 믿기로 한다.
조금 숨을 고르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2002년도에 민주노동당 가입한 이후로, 당적이 없었던 적은 없다.
지난주 즈음이던가 통장에서 빠져나간 2만원이 (처음으로) 아깝단 생각이 들면서 12년 만에 처음으로 당적 없이 지내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 

뭐 사실, 대단하게 활동하는 당원은 아니었다.
당비 밀리지 않고, 간간히 모임에 나가고, 가끔씩 특별당비나 보태고, 선거 앞두고 몇번 선거운동 뛰는 것이 당원 활동의 전부였다.

하지만, 2002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진 당적이 내 에고의 한부분이자, 내 생각과 행동의 기반이 되는 하나라고 여겨왔다. 설령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내 본질의 하나이며,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싹다 갈아 엎고 싶은 여당이 아니라, 등신 천치같이 미적거리는 야당이 아니라 
더 많은 변화를 말하고 더 자유로울 것을 더 평등해질 것을 말하는 '작은 진보 정당'은 내게 얼마나 큰 자랑이었던가. 언젠가는 열망하는 꿈이었고, 현실로 다가올 날이 있다는 예언이었으며, 나를 움직이고 외치게 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나의 한 부분으로 위치해왔다.

그런데 그런 요즘엔 그런 자부심이 생기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내가 소속된 우리 당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제 더이상, 노동장이 녹색당과 무엇이 다른지, 정의당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세상이 얼마나 변할지도 말 할 자신이 없다. 사실은 우리가 과연 집권할 수 있는가를 헤아리는 것 조차 우스운 일이 돼버렸다.

탈당을 할지, 말지는 아직 결정하진 못했다.
나의 결정이 어떠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아직 모든 희망을 버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진보정당 12년. 이렇게 처참하게 흩어지고 깨어져 부서진다면, 다시 합쳐져 변화를 마들어내는 '힘'이 될 날이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지금 이렇게 투덜대고, 투정 부리는거라 생각하고 싶다.

일요일

카테고리 없음 2014. 6. 17. 17:36

내 책상 위에 있던 통이를 옥상 위 화분 속에 묻었다.

운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는데 자꾸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미련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을 바꾸어야 할텐데, 그렇게 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안부를 묻는 일은 여전히 힘들어서 
그냥 조용히 속삭였다. 

누난 잘지내.  

덧갈피

카테고리 없음 2014. 6. 17. 17:33
http://amind.co.kr/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331&page=11
두고두고 읽어두면 좋을것 같아서...

푸념

카테고리 없음 2014. 6. 9. 14:03

친구들은 자기가 뽑은 후보가 많이 당선된 편이라고 기뻐한다. 
나는 선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거대야당이 한번도 "우리당"이 었던 적이 없다.
속이 좁고 꼬여서 좋겠네 란 말을 차마 건네지 못했다.

그래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들에 일희일비 하지 않으며 사는 건 어떤 삶일까 궁금하다. 외롭다.


옹졸해서 겉치례 번드르르 들기름바른거 같은 은근한 자기자랑 들어줄만큼 도량이 넓지 못하다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더빙이 간신히 끝나고 자막 확인만 하며 숨돌리고 있는 종편실이었다. 발신인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대학 동아리 동기. 결혼을 앞두고 짐을 싸다 발견한 것 같았다. 
문자에는 별 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저 사진 한장. 십수년 전 친구가 받았던 짧은 편지 한통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 떠올리는 것이 더 낯선 이름이 돼버린 언니의 이름.
만날 가능성보다 이대로 평생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이 돼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아직 내 삶의 기준점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할 것 행동 할것과 참아야 할 것, 
여전히 나의 지향점이고 거름망이며 이정표다.
언니의 존재를 잊고 살 지언정, 나는 아직도 어떤 선택에서 그 선택의 바운더리가 언니인 것은 확신한다. 최소한의 변명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선택인지, 혹시 다시 언니 앞에 섰을 때 쪽팔린 사람은 돼버리는 건 아닌지, 부끄러운 후배는 되지 말자고, 그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최소한의 선은, 꽤 많은 행동을 만들었고, 그 행동은 많은 부분의 '나'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남긴다. 
운동권스럽고 엔엘스럽고 30년은 더 된것같은 그 오글거리는 멘트가  진리라면 진리고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이름조차 낯선 선배들의 흔적이 아직도 나의 일부분을 만들고 있으니까.



방송은 무사히 나갔고, 뒷풀이 자리였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대학시절을 이야기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인지도 모른다. 전부를 말하진 않았지만 일부를 말하고 있었다. 차마 중심을 이야기할 순 없어서, 겉핥기식 그 시절 일과만 시부렁대던 밤이었다. 근데 그러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기륭전자 노동자로 TV속에서 투쟁하고 있던 선배의 인터뷰, 
금속노조 노동자로 싸움하던 선배의 얼굴.
지하철 노조에서 일하고 있던 동아리 언니의 목소리

머리 속에는 내내 그런 선배들의 모습이 가득했는데 
그 시절 그들이 나의 무엇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는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데,
농활을 가고 학생회에서 일하고 선거를 치르고 그냥 그 시절의 웃겼던 일화들만 잔뜩 늘어놓고 떠벌리고 있었다. 껍데기만 한껏 말할 수 밖에 없는 밤이었다.

오늘,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마주하고,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웃고 싶었던 사람들은 정작 저 멀리에 있었다.
  



움직여라

카테고리 없음 2014. 4. 28. 19:34
http://www.youtube.com/watch?v=xXTXsAle0S8&feature=player_embedded

이번 사건을 취재하고, 프로그램까지 제작하면서 나는 계속 말을 아끼고 있다. 말을 내뱉기는 쉬워도 내뱉은 말에는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근데 이제 우리는 말을 그만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이들을 구조하러 나가는 이들을 붙잡아 세워둔 것이 우리가 그간 만들어오고 유지해온 관료주의 혹은 꽉막혀 짜여진 체계질서같은 이 따위 나부랭이것들이라면 이제 그 견고한 벽을 깨부수고 박살내야 할 때가 아닐까. 사상이나 생각 이념 담론 이따위 것들이 너무나 지겹고 끔찍하다. 물리적인 힘이 필요하다. 유지하는 관성 대신, 옮기고 뒤바꾸고 깨어부수는 게 필요하다. 움직여라. 세상아, 견고한 담을 뒤흔드는 힘이 필요하다. 제발 좀 움직여라. 세상아.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비가 목사와 마주하며 수다를 떠는 '지난한' 시퀀스다.
마음이 갔던 건 영상보다는 두 배우가 주고 받는 '대화의 내용'이었다.

세상 만사가 유물론적 사고로 결론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재하는 것들에는 힘이 있다.

어떠한 생각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변질되는 임계점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생각이 그 지점을 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 아주 작고 사소한 범위를 지나 임계점을 넘었을 때 
때론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을 선동하는 역할을 해낸다.

행동 하나마다 당위가 필요하고 그 행동을 변명하고 옹호하는 순간 삶은 그 당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임계점을 넘은 생각에는 가속이 붙고 날이 갈수록 더 큰 힘이 생겨난다. 
   
그가 선지자가 될 수 있었고,
마땅히 영웅의 역할을 해냈으며,  
능히 제단 위 어린양으로 바쳐졌던 투쟁.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
흡수하는 것과 뱉어내는 것.
산다는 것, 생이 가진 본능 전부를 쏟아내며 완성하는 보시(布施). 

그리고 그 보시를 통해 임계점을 넘어가기 시작한 수많은 생각들. 
그 모든 연결고리가 완벽하게 이어지는 대화였다.

선구자는 위대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부딪히는 삶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완성된다는 그 진실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그것이 아주 사소한 시작점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서
손가락이 담배재를 톡톡 두드리며 대사를 읊는 그 시퀀스를
다섯번 정도 돌려 봤던 것 같다. 

 
 



요즘들어 책보다 더 많이 섭렵하는 장르가 된덕에
간단한기록이라도 남길까 해서 페이지를 만든다.
가끔씩 추가해주고 내키는대로 감상평도 몇줄 남길듯

2014.1.1
THIS IS THE END - 영진이와 치킨 뜯으면서 집 TV연결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든 팝콘과 MSG를 들이부은 감자칩 그리고 혀까지 썩을 것 같은 설탕이 녹아 있는 탄산 음료수와 함께 해야 어울릴법한 영화. 팝콘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 자리를 양념치킨의 저렴함이 채웠다. 영화 이야기에다가 양념치킨 이야기를 넣는 건 딱 양념치킨 맛 같은 저렴함이 돋보이는 수작이기 때문에 ㅋㅋ 파인애플익스프레스2 찍어줘요.

2014.1.4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신촌 메가박스 조조 동네파와
Ground control to major Tom!
나도, 나도, 우주 공간에서 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에 바오밥 나무 사이로 해가 저무는 풍경 정도는 보고 싶다.

2014.1.5
반지의 제왕 코멘터리 시청 - 카인님댁에서
왜 DVD를 소장하고 블루레이 디스크를 사는지 알게 됐습니다.
덕질은 함께 하면 배가 되는걸요.

2014.1.18
셜록 시즌3 - 집에서 TV연결
추리보단 팬픽이 좋아요.

2014.1.29
겨울왕국 - 신촌 메가박스

2014.3.5
레고무비 - 목동 메가박스

2014.3.6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아트하우스 모모

2014.3.7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재시청) - 집에서 TV 연결

2014.3.9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 만두네 작업실
웨스 앤더슨은 어떻게 자신의 '추억'에서 자신의 '세계'로 확장했나.

2014.3.12
노예 12년 - 신촌 메가박스 은지와
보는 내내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의 구절구절이 떠올랐다.
+마이클 패스벤더 이 미친자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신촌메가박스 금댕이와
규정에 대한 투쟁, 사람은 누구나 변화하고 맞설 수 있다는 또 다른 확인.
+같이 본 친구에게 살폿이, 자레드 레토의 본판 얼굴 사진을 검색해주었다.

2014.3.14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블루레이 부가영상 시청 - 집에서 TV연결
감독은 피잭이나 마블의 스페셜 피쳐와 확장판을 본받으라!
메이킹 필름이 9시간은 돼줘야 블루레이를 사도 잘샀다 싶은거 아닌가요? 
토르2 블루레이 부가영상 시청  - 집에서 TV 연결

2014.3.15
300 II - 신촌 메가박스 조조
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뇌가 으깨지는데 졸음과 피로감을 준 영화.
이 영화가 준 데미지를 씻어내고자 나는 다음날부터 질좋은 영화 를 미친듯이 탐닉하게 됐다

2014.3.16
300 II 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싶어서 이날 세편의 영화를 들이부은 날
원티드 - 집에서 TV연결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 집에서 TV연결
셰임 - 노트북
어머어머 이건 반드시 극장에 혼자가서 혼자 관람하고 혼자 곱씹으며 집으로 왔었어야할 영화!

2014.3.21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 아트하우스 모모
프로메테우스 - 집에서 TV연결

2014.3.23
300 - 노트북
300 II가 얼마나 거지같았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해 시청

2014.4.2
만신 - 아트하우스 모모
벨과 세바스찬 - 아트하우스 모모 
큰 개, 그리고 알프스의 사계절. 
열시간 스무시간도 넘게 볼 수 있는 이 영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2014.4.3
캡틴아메리카 원터 솔져 - 신촌 메가박스 조조 임지랑

2014.4.5
문라이즈 킹덤 - 만두네 작업실
로열테넌바움 - 만두네 작업실
헝거 - 노트북

2014.4.6
카운슬러 - 노트북

때론

카테고리 없음 2014. 3. 27. 11:35


일이 재밌다.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답은 아니지만,
얼추 맞아 떨어지는 구성이 있고, 
이렇게 하면 좀 더 효과적인 장치도 있다.
그걸 배워가는게 재미지다.

'재미'면에선 나름 성공적인 삶이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v=516788135105919


명료한 구성과
시퀀스마다 배치된 적절한 사연.   
하나를 향해 달려가는 명쾌한 결론.
그리고 이것이 '실재하는 사실'이라는 무시무시한 힘.  

이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로 존재하는
들국화의 노래에 엔딩스크롤이란 게 있다면
나는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을 것 같다.




십여년만에 잡아본 외할머니의 손은 무척 차가웠다. 
힘이나 의지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었고
그저 남은 세월만 간신히 헤아릴 수 있는 손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유해가 납골당에 모셔지고,
목사님은 마지막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발음은 무척 불분명했다. 
중얼 중얼 방언같기도 하고, 주문같기도 한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감사하옵나이다... 
다시 만날 날을 믿사오며...  
우리 죄를 사하신 것 처럼....
그곳에서 평안을 허락하시옵고...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고 그곳에서의 축복을 갈망하는 내용이었다

그날을 믿는다기 보다는
믿고 싶어하는 믿을 수 밖에 없는  이별의 순간. 
세상 모든 아픔을 위로해줄 수 있는 건  
믿음 밖에 없단 생각을 했다.

언젠가 '맹목'을 가진 '믿음'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한적이 있었다. 
평생 경계하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대신으로 전국 글짓기 대회에 날 데려가고,
외할아버지네 초등학교에서 손녀손자 다섯을 데리고 몇날 며칠을 돌봤던 할머니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작아져서 흐느끼고 있었는데,
인간이 주어진 모든 불행 앞에서 승리자일 수 없다면
차라리 맹목이나 맹신 같은 마취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치열하게

카테고리 없음 2014. 1. 21. 11:34
새해목표는 열심히 시전중이다.
오래간만에 치열하게 살고 있다.
사유할 시간을 줄이고 일정으로 꽉꽉 채워넣고 있음.

아침 기상은 여섯시에서 여섯시 삼십분
대충씻고 식사마치고 일곱시 반 출발
어학원으로 가서 한시간 수업듣고 학원 랩실에서 간단하게 복습마치면 아홉시 반
버스 타고 방송국 오면 열시
열시부터 일곱시까지는 돈버는 시간.
일곱시에 퇴근해서 향하는 곳은 대체로 동네 헬스장
헬스장에서 두어시간 보내고 나면 열시 열한시 
열한시에 집에 오면 동생방 PC를 빌어가며 한시간가량 학원 예습을 시전 중이다.

이 덕분에 주말엔 무슨일이 있어도 놀아야 하는데
한달에 한번 정도 대형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봉사활동을 가주고 있고
기타 술약속이 연말연초에 있어서 주말일정도 빠듯한 편이다.
이 와중에 덕질이 밀려 있다.
셜록에 뽐뿌가 확 왔는데 바빠서 못하고 있다. 내일부터 마감주 돌입이야 흑흑...
쉬게 되면 정도전을 몰아서 보고싶고, 밀린 미드 몇시즌도 대기 중이다... ㅠ ㅠ


회화학원은 11월달부터 시작했으니까
이 생활을 시작한지는 세달이 다돼간다. 
통이 생각하는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이라도 시작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게 이렇게 됐다.

요즘 무리한 일정은 10년전 11년전 대학교 2학년 3학년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데...  
기억나는 걸로는 개강하자마자 동아리 공연 그다음 중간고사 그다음 학술제 그 다음 학생회 선거 그리고 종강으로 쳐달렸던 때였다. 나는 물론 방학때도 학교에 늘 등교하는 애였지만 당시 나는 월화수목금토일 모두 학교를 등교했던걸로 기억.
아침 8시까지 학교가서 학생회 선거 준비하고 중간 중간 선본방에서 일하고 저녁 여섯시부터 아홉시까지는 과 학술제 준비, 그 다음에 다시 선본방에서 회의 회의 회의에 연속이었는데... 그래도 7학기 조기졸업에 장학금까지 달성해서 만족스런 학기였다.

인생에 여백은 필요하다지만, 
이왕 한번뿐인 삶, 빽빽하고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하길 빈다.
 

짤은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언니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영애.... 언니.... ㅠㅠㅠㅠ 

 




소원 추가

카테고리 없음 2014. 1. 13. 13:05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고 불러야할 노래가 하나 있듯,
우주를 유영하게 되면 불러야 될 노래가 하나 생겼다. 

연료도 충분하고,
기계도 무사하고 
지구로 귀환 성공률이 99% 된다 하더라도, 

광활하고 아득한 공간 속 점보다 작고 희미한 스스로를 체험하고,
우주의 경이로움과 대비되는 존재의 무상함
멀리 떨어져 있을 수록 선명하게 느껴지는 사랑하고 익숙한 것들의 간절함을 
온몸으로 되새기며 불러보겠어.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KaOC9danxNo

Here am I floating
round my tin can
Far above the Mo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나이를 먹을 수록 감지할 수 있는 맛의 범위는 줄어든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수백개의 미각의 차이를 경험하고 맛을 깨닫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지할 수 있는 맛의 수가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언젠가 나는 공감을 다양한 맛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 미각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인지할 수 있는 감정의 개수는 확장되는 것 같다. 
시야가 트이고, 사고가 확장되며, 이해의 범위가 넓어질 수록
타자를 통해 다양한 맛과 다채로운 색의 감정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살아가는 날이 많아 질수록 그 범위가 커져서 최근에 소소한 영화의 한장면까지 그렇다. 
이해 할 수 없었던 영화의 한 장면이 내 삶의 한 부분과 겹쳐지는 순간.
있는 듯 없는 듯 무의미했던 장면은  
떠올릴 때마다 콧끝을 따겁게 찌르는, 눈물을 시큰하게 뽑아내는
명장면으로 재탄생한다. 

얼마 전  <러브레터>의 한 대사가 그랬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건 
거무죽죽한 딱지처럼 떼어내고 나면 속시원할,
너덜거리는 궁상이고 청승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순간 그 장면이 새롭게 보여졌다.  
잘지내냐는 안부의 인사는
이미 저세상사람이 됐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건네는 인사다.
알고는 있지만 차마 놓아줄 수는 없는 보내고 싶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
바꿀 수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걸쭉하고 질긴 마음들이 세상 천지엔 얼마나 많은가.   
그걸 '미련'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마음만큼은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계획한 대로 흘르는 것이 아니니까. 

요즘, 간간히 버스타고 집에 가다가
오겡끼데스까의 의미를 혼자 곱씹어 봤다. 
자꾸 울컥하고 눈물이 나서 훌쩍이기도 해봤다.  
맵고 쓰린 통각에 가까운 맛이나는 '그 감정'에서는 꽤나 깊은 감칠 맛이 새어나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또 몇 장면을 새롭게 이해하고 
공감을 통해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될까?

서른 셋에 펼쳐질 날들을 기다리고, 축복한다. 


새해계획

카테고리 없음 2014. 1. 1. 12:21
새해결심이랄 건 없지만,
올해는 동네파 신년회를 안하는 관계로 이곳에 적기로 한다.

1. 혼자서 잘사는 법 터득하기
올해 가장 큰 목표는 혼자서 사는 법 잘 터득하기다.
지금껏 나름 혼자서 잘 살아왔으니 새해 목표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부제를 달자면, 친구들 없이 사는 법 터득하기 정도 되겠다. 
연말 즈음 여러명이 청혼을 비스무레 한 걸 받아오고 있다.
나이 들어감에 부쩍 긴장하고 초조해 보이는 친구들도 보인다. 
반면에 나는  '에효, 그 복잡하고 어려운걸 어떻게 해.' 라고 생각이 굳어졌다.

얼마전엔 혼자서 술마실 바(bar)도 하나 찾아냈고, 레스토랑까지 혼자 가봤다.  
이제 혼자 고깃집에가서 당당히 2인분! 하고 외칠 줄만 알면 될 것 같다.


2.  영어 공부 열심히. 유급은 두번만 하자. 
벌써부터 유급을 생각하는게 웃기긴 하지만 
개근은 했을지언정 실력은 최하위라는게 드러나는 관계로....
여튼 출석 열심히 하고 예습복습 하고 시키는 선까지는 성실하게 임하기로 했다.
한문장이라도 좋으니까 영어 문장을 만들어 보는 연습을 해도 좋을 것 같고.
두세문장으로 된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여튼 새 여행지도 결정하긴 해야겠다.  

3. 유기견 센터 봉사활동 열심히, 우리동생 활동 열심히. 
통이의 빈자리는 아직 채워지지 못했다. 
행여 내가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게 되더라도 채우긴 어려울 것 같다.
대신 통이에게 마저 주지 못한 사랑을 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야겠다. 
 
일단은 이 세가지가 새해 계획이다.
Just three are my new year's resolutions.


삼땡

카테고리 없음 2014. 1. 1. 10:17

좀 더 무모해지고 과감하고 맹렬해지기로 한다.
이럴 수 있는 날들이 많지 않다.


잘지내니?

소소한 수다 2013. 12. 17. 14:09


누난 잘지내.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심심한 건 아닌지
같이 놀 친구는 사겼는지.
엄마랑 아빠 누나들이랑 형아 생각은 안나는지.

묻고 싶은게 참 많아.

공감의 부재

소소한 수다 2013. 12. 10. 11:49
방송국 엘리베이터에서 틀어주는 뉴스를 보는데 장성택 실각관련 소식이 흘러 나온다.
반혁명 종파주의가 이유라는데 내가 알고 있는 '혁명'이란 단어랑 너무 다른 의미라, 픽하고 웃음이 새나왔다.     

신문에는 '자유민주주의 부정 엄두도 못내게 해달라'라고 대통령이 한 말이 표제로 쓰여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의랑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그 모순에 너털 웃다 말고, 이런거에 분개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구나 왠지 외로워졌다. 

아는 것과 실재하는 것의 괴리가 크다. 그래서 나는 자꾸 견디기 힘들다.  
내가 알고 있던 지극히 당연한 권리, 
내가 알고 있던 가진자의 의무,
내가 알고 있던 신의 얼굴...  
하루를 살다보면 하나를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엊그제는 하룻밤 새 사천명이 해고당했다. 
그리고 어제는 천육백여명이 더 해고당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억울함에 동조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정치인의 탈세와 비리로 가득했던 2013년
프랑스 고딩들이 풀었던 바칼로레아 시험문제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나를 향해 던졌을 질문인데, 
이제는 가만히 있는, 공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미워서
이 세상을 팍팍하고 건조하게 만들어가는
그들을 향해 던져보고 싶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통이가 죽고 난 지 오늘로 꼭 한달이 되었다.

동물병원으로부터 통이의 사망 소식을 전해진 건 
영화 <그래비티>를 조조로 보고 나온 후였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만 하는 당위'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난 직후에
내가 맞닥드리게 된 이 상황은 너무 야속했다.
클리셰라면 너무도 지독하게 뻔한 클리셰같은 상황에 약이 오르고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두고 떠나가버렸다는 것을
지난 한달간 되새기며
나는 단 하나만이라도 찾아내고자 자꾸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통이가 내게 두고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대답 대신 기억나는 것은
통이를 사랑하면서 내게 찾아왔던 기적같이 놀라운 변화였다.
 
통이를 사랑하면서 비로소 나는
폐지 줍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숨차하는 늙은 치와와가,
추운 겨울밤을 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부리로 쪼아대는 비둘기 한마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은 내가 통이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사랑받아야 할 존재로 가득했고,
나는 마치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 그들의 존재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대로 나는
통이가 내게 두고 간 것이 무엇인지 영영 찾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도
태어나 딱 한 번 살다 죽는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만남과 작별을 경험하고
탄생과 소멸을 지켜보면서 사랑스런 존재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사랑할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 보석같이 빛나는 순간을 간직하는 것.

그 깨달음이 
작고 귀여웠던 모습으로 처음 내게 왔던 우리 통이가
언제나 내가 위로를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줬던 우리 통이가
내게 두고간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망실문

20세기 소녀 2013. 11. 19. 14:23
반려견 화장터는 급조한 펜션같이 생겼었다.  
어색한 가구배치, 과한 실내장식, 요즘 유행하는 페인트 색깔이
개소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임을 알려줬다.
 
이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또치야 얼른나와'
'몽아 너없음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그래' 같은 악다구니가 새어 나왔다. 
그 마음이 어떤지, 어떨지 너무 잘알아서 중간 중간 입술을 꼭 깨물고 울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심장이 꽉하고 죄는 느낌이 들 땐 주먹을 꼭 쥐고 꾹꾹 누르고 또 눌렀다.  

통이가 들어갈 수 있는 관은 아직 준비중이라 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가방에 담겨 있는 통이의 앞발을 꺼내서 꼭 잡고 있었는데, 
생각이 하나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수백번 수천번 손손 하고 말 해도, 아무리 울며 불며 떼를 써도  
이제 통이는 두 번 다시 내게 앞발을 내줄 수 없다.

통이의 발은 너무 차갑고 둔탁했고, 
싸구려 인조모피로 한번 감은 플라스틱 마냥 딱딱했는데,
그 감촉이 너무 낯설어 서럽고 한스러웠다. 

온기가 다시 돌아오진 않을까 
통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는데 좀 처럼 덥혀지지 않았다. 
언제나 따뜻했던 통이의 체온이 아득히 멀어짐을 느끼며,
문득 심노숭이 썼던 망실문의 한구절이 떠올렸다.


유세차 임자 5월 27일 망실 유인 완산 이씨가 집에서 죽으니
나는 그 목소리와 얼굴이 점점 멀어짐을 슬퍼한다.


퉁퉁부은 눈을 간신히 떠서 화장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통이가 내게 주었던 모든 것과의 이별을 인지하고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일년 반.
봄 한 번 겨울 한 번 여름 두 번 가을 두 번.
통이는 까탈스러운 강아지였다.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겁쟁이였고
죽기 한달 전쯤에야 비로소 나와 눈을 마주쳐주기 시작했다.  
조금만 혼내도 이빨을 드러내며 예민한 강아지였지만  
그래도 온 힘을 다해서 깨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리와 이리와 라는 말은 듣지 않았지만
내킬땐 언제나 무릎에 걸터앉아 내가 쓰다듬는 걸 기다리곤 했다. 
  
우리집에 온 순간부터 통이에겐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밀린자욱이 한줄 있었는데,
결국 올 여름에는 그 주변부로 털이 빠져나갔다.
몇몇 사람들에게 보기 흉하단 소리를 듣긴 했지만 
사실 그런건 통이를 사랑하는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 통이는 생김새와 상관없이 너무나 사랑스런 '우리 개'였으니까.
오히려 잃어버려도 금방 찾을 수 있는 표식이라고 말하곤 했다.

온기가 떠나가버린 통이의 손을 매만지며
나는 만남과 이별의 '거리감'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언가와의 만남이 '공간의 접점'이라면 이별이란 '거리의 멀어짐'이다.   
통이는 이미 나를 스쳐지나갔고, 통이를 사랑했던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을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그 시간들과 나는 점점 더 멀어지겠지.

시간을 보낸다는 건 수없이 많은 작별의 연장선이고, 
삶을 산다는 것은 과거의 나를 두고 떠나가는 길이다.      
  

강화도 반려동물 화장터에서 돌아오는 길은 몹시 추웠다.
20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3분 차이로 놓쳐서 멍하니 정류장에 서 있어야 했다.
나는 통이가 담긴 유골항아리를 끌어 안고 있었는데 
그림자는 마치 나 혼자만 오롯이 서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문득 세상 어떤 것으로도 이 외로움이 해결되진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낯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는 길잃은 어린애 처럼 정신없이 울었다.

<망실문>

유세차 임자 5월 27일 망실 유인 완산 이씨가 집에서 죽으니
나는 그 목소리와 얼굴이 점점 멀어짐을 슬퍼한다.
이제 꿈에서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니
애통한 마음에 한을 새기고 뱃속에 아픔을 담아두노라.
그대 죽음이 진실로 슬플진대
살아 있은들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오.
멀고 아득한 시간 속에 한바탕 꿈이로다.

그대 먼저 먼 곳을 구경하오.


오래간만에 심슨타일을 했다.
심슨타일을 할 때면 항상 90년대 초중반 가요를 틀어놓고
중간중간 따라 부르면서 타일을 부수는게 버릇이라면 버릇이다.

엊그제 레파토리는 신해철과 NEXT였는데,
우연히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듣기 시작했다.

노래를 흥얼대며 따라부르는데 그 가사에 깜짝 놀랐다.  


세상이 변해갈 때 같이 닮아 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오래간만에 이 노래를 찾아들었다.
잊고 있었던 가사 내용 때문인지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쿵 하고 가슴을 때리는 충격이 생겼다. ...
그리고 요 며칠 스스로 물어보고 있다.

질문은 언제나 귀찮고 피로함을 만들어 낸다.   
그에 반해 믿음은 너무나 안락한 도피처다.
맹신이 주는 편안함에 이끌려 맹목으로 치닫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
얄팍함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견고하기 위해선 맹신 안에 숨어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물을 줄 알아야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80년대말 90년대 유행했던 코러스와 하일라이트로 구성된 노래들 처럼
오글거릴 수 있겠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재미 없고, 촌스럽고 진부하더라도
묻는 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뭐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질문은 지워지지 않는 법이니까...














원상복구 되지 못했고, 원상복귀 하지 못했다. 

괜찮다.  
산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고 되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니까


핸드폰 속 통이 사진을 꺼내 보다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 까만 털이 수북하게 나기 시작한 통이의 모습이 너무 그리워서 
지구로부터 일광년 떨어진 별에가고 싶단 생각을.

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은 시미즈 레이코의 단편집 중 가장 유명한 만화 '잭과 엘레나' 시리즈 에서 차용한 아이디어다. 

엘레나는 2백년 전에 죽어버린 주인(텐류)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자살(?)을 일삼는 비행로봇(?)이다. 그걸 지켜보던 잭은 엘레나를 위해 지구로부터 정확히 2백 광년 떨어진 떨어진 천문대로 여행을 떠난다. 수백광년 떨어진 그 행성에는 '지금'에서야 수백년 전 지구에서 쏘아진 빛이 도착할 시간이니가. 투시능력을 가지고 있는 엘레나는 망원경 속 지구에서  살아 있는 텐류의 습을 바라본다. 

사실 바보 같은 짓이고 무의미한 행동이다.  바라보는 것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곱씹을 수록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만 깨달을 뿐이니까.

예전처럼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음이 마모되거나 닳아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울면 울 수록 눈물의 방류점은 높아져서 그정도 높이에는 흔들려 넘치지 않는 것일 뿐.
닿을 수 없는 마음만이 계속 초라하고 허공에 빙빙 돌고 잇는 것 같고.

어떠한 시점으로 점점 멀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과거로부터 멀어지는 것일까
무수히 많은 과거들이 나만을 내버려두고 떠나가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생각들을 해보면서

알지 못하는 개념과 인지하고 있는 상념 속에서 쓸쓸한 마음만은 자꾸 한가득이라...
그래서 나는 소용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엘레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마음을 공감이란 이름으로 내내 곱씹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코왈스키!
그곳에서 등에 털이없는 회색 개를 만나게 되면
외출용 어깨끈은 큰누나가 잘 가지고 있다고 전해줘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언제든지 함께 산책 갈 수 있도록 누나가 꼭 꼭 간직하고 있을거라 전해줘요.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도 전해줘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으면 통이가 혼자 누워있던 철장안이 떠오른다.
혹시나 정신을 차리고 날 찾지 않았을까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체념하진 않았을까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몸서리치게 아픈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

'만일'은 상처를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무기다. 
만일 내가 통이가 수술한지 네시간이 지났는데도 깨지 않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라면 
만일 내가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만일 수술보다 행동교정부터 시켰더라면  
만일 내가 그날 통이에게 물리지 않았더라면
만일 그날이 일요일에 아니어서 응급실이 아닌 동네병원만 다녀왔더라면

만일이라는 선택지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너무 많다. 
통이가 지금도 내 곁에 있을 가능성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나는 그 방법을 선택했는지 스스로 묻고 물으며 자책을 거듭한다.   

 
아침 눈을 뜨면 이제 더 이상 옥상문을 열어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달걀 노른자 한알을 들고 가도 반겨줄 상대는 없다. 
지체없이 현관문을 문을 나서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한시간씩 산책 시켜야 수고로움도,
퇴근 후에 이삼십분씩 인사해야 할 의무도 없다.
이제 더는 산책때 쓰려고 비닐봉지를 모으지 않아도 된다. 
물어뜯기 좋은 자잘한 종이들도 그냥 폐휴지에 모아둘 수 있다.

근데 참 이상하지?
이런 거 진짜 하나도 좋지 않다.  


아직도 날씨가 추워지면 통이 걱정부터 앞선다.
아무리 싫어도 새벽엔 옥탑방 안에 넣어둬야 했으니까.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통이가 생각난다. 
오늘 저녁엔 산책을 가지 못할테니까.  
언제까지 이런 기분으로 살게 될까,
내년 무더운 여름날. 나는 통이를 기억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통이와의 시간은 
수정도 새로고침도 불가능한 마침표가 찍혀져 버린 과거란걸 체득한 채 살아가겠지만
일단 지금은 그게 싫다.  
그렇게 되고 싶지가 않다.


왼쪽 어깨를 두번 툭툭 치면
앞다리를 얹고 자연스레 내게 안겨오던 애정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었을 수많은 '만일' 때문에
지독한 자책은 스스로를 발라먹는 상처뿐인 걸 알면서도 자꾸 멈출수가 없다. 









통이에게

카테고리 없음 2013. 10. 24. 22:29

통아!
우리 통이는 누나랑 산책을 제일 많이 다녔잖아.
한살 하고 육개월 더 된 통이의 인생에서 누나랑 산책한 시간이 참 많잖아.
연희동 골목골목 연대산 구석구석 누나랑 같이 안가본 곳이 없잖아.
그런데 누나는 우리 통이랑 마지막 산책 가는 곳이 그렇게 멀고 먼 화장터 일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우리 통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차도 한 번 못타봤는데 처음 탄 차에 박스에 쌓여 트렁크에 실려가는 거여서 누난 그게 너무 속상하고 그래서 앞에 앉아 엉엉 큰소리로 울고 그랬어.

우리 통이는 힘도 세고 너무 튼실해서 항상 사람 손가락보다 더 굵은 줄을 잡고 다녀야 했잖아. 그래서 산책할 때마다 통이 목줄을 잡고 있으면 꼭 통이랑 손을 잡고 걷는 느낌이었어. 연대산길 인적드문 동네 주택가 통이랑 손을 꼭 붙들고 있으니까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개들은 사람보다 시력이 나쁘다던데... 누나랑 같이 옥상에 있으면서 오리온자리 북두칠성 봤던거 기억나? 요새 내내 하늘이 맑아서 누나 눈에는 너무 잘보였었는데 통이 눈엔 잘 보였는지 모르겠다. 누나는 통이 덕분에 우리집 옥상에서 본 밤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운 지 알게 됐는데... 그리고 그렇게 밤하늘이 예뻤던건 우리 통이가 옆에 있기 때문이었는데.. 
누나는 아마도 이제 옥상에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

통아!
누난 아이템 안잡힐 때도 꼭 통이한테 털어놨잖아.
구성이 안풀릴 때도 시시콜콜 일렀었잖아.
하고 싶은일, 이뤄졌음 하는 바람, 속상하고 화나는 일, 짜증났던 거 모두모두 통이한테만 말해왔잖아. 근데 이제 이런 거 누구한테 말하라고 누날 두고 가.

너무 간단한 수술이라 정말 생각치 못했는데 미안해.
앞으로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통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내린 결정인데
그게 통이를 아프고 겁먹게 했을 까봐 너무 미안해.
어제밤 내내 차가운 철장 안에서 내내 무서운 꿈만 꾼건 아닌지 너무 걱정돼.
누나랑 형아가 통이를 버리고 간게 아니라 건강하게 다시 데리러 가려고 했던거였는데
통이가 오해하고 슬퍼했을까봐 그게 너무 마음아파.

과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금의 나를 내버려 두고 가버린다고 하잖아.
있잖아 통아, 누나가 가장 슬픈건 우리 통이랑 함께 했던 시간이 '지나가 버린 옛날'이 돼버렸다는 거야.
그 시간이 너무 너무 짧았는데 일년하고 몇개월 밖에 안됐는데
진짜 아무런 예고 하나 없이 누나를 두고 가버려서 지금도 믿기질 않아.
통이가 미운게 아니라 이 말도 안되는 '갑작스러움'이 너무너무 야속해.
도대체 뭘 어떡해야 좋을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막막해.

통이랑 산책한 동네 길이 너무 많아서,
통이 너랑 했던 얘기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앞으로 통이랑 같이 하고 싶은 일들도 너무 많이 있었어서
누난 대체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통아!
통이는 옥상에서 누나보고 안아달라고 해서 바깥에 내려다 보고 그랬잖아.
지금 통이가 있는 곳은 4층 옥상보단 시야가 탁 트인 넓은 운동장이었음 좋겠어.
심심할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누날 기다리고 있었음 좋겠어.
다시 만나면 누나가 통이 아프게 했으니까,
삐진채로 누나 손 깨물어도 혼내지 않을게.

통아!
그리고 누난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만 알아줬음 좋겠어.
세상에는 너무너무 예쁜 개들, 멋있고 늠름한 개들, 착하고 순한 개들이 많지만

누나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개는
전 우주를 통틀어 누나에게 가장 소중한 개는
예민하고 까칠하고 고집쟁이인 우리 통이 너야.
너 하나 뿐이야.
진짜야.

-큰누나가



90년대에는 90년대의 스무살, 서른살 밖에 꿈꾸지 못한다.
십대 때 내가 만난 스무살 서른살은 
미래에 대한 고민 따위, 불안 따위 전혀 내비치지 않는 '어른'이었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어도 여전히 삶은 힘들고 때때로 벅차다.
자잘한 고민에 마음이 부서지고 
눈 앞에 놓인 문제가 버겁고 숨이 막힌다.  
그때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른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되고 싶은 것은 
그냥 스무살 서른살이 아니라  
열살 열한 살 때 내가 꿈꿨던 스무살, 서른살이다.

좀 더 단단해 지도록. 부딪혀 깨어져도 아파하지 않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