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이 사랑스런 생명체가 온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사랑하는 우리 통이에 대해 글을 쓴다면 백페이지도 쓰고 포스팅도 이억만개 정도 할 수 있다만, 이 모든 것이 늦은 이유는 단 하나!
포스팅할 시간 있으면 옥상에서 통이랑 노는게 더 좋았던 탓이겠지. 

여튼 이 사랑스런 생명체는 성장에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결과... 
 


회사에 있는 나를,
친구랑 있는 나를
언제나 집으로 소환하던 순도 100%의 싸랑스러움을 조금씩 벗어던지게 되었는데...
어느날 동생이 말했다.

"언니 나 우리 통이가 창피해서 차마 사진을 보여줄수가 없어."
"왜?"
"너무 못생겨서...."
"아니 어디가?!?! 우리 통이가 어디가!?!?!? 어디가 못생겨?!?!?!?"



동생은 자신 핸드폰에 찍힌 통이 사진을 한장 넘겨주었다. 

그 후로부터, 누가 개사진 좀 보여달라고 하면 
나는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 마는 것이다.

저희는 학대 안해요.
밥을 굶긴적 없어요.
때리지도 않아요.





빼어나오는 사랑스러움 
이 모습의 3개월 후...












.......................!!

 








다시 한번 종합

우리는 말못하는 강아지를 학대하지 않습니다.
때리지 않고요.
물론 밥을 굶긴 적도 없습니다.








여튼 신통은 산책길마다 다량의 니코틴을 섭취하며
(비행청소년임. 산책 1회시 약 한 번정도 담배꽁초 섭취. 입에서 빼려면 이미 꿀떡 삼켜버린 후.....)
오늘도 엄마가 일궈놓은 대야 위 파밭을 밀림마냥 헤치며
옥상에서 쑥쑥..;;; (요즘 앞발차기를 하면 내 가슴팍까지...;;;) 잘자라고 있는 중.



신통 사랑해♥
오늘도 고백했다 히히.





일일일. 하면서 보내느라 몇마디 적을 짬을 못냈다. 
이번에 마감한 건 자료 찾을게 많은 아이템이라 애 먹었고
그 와중에 알바까지 하느라 이리저리 휘둘리며 중심 못잡고 있었다.

며칠전 지하철을 탔는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노숙인 아저씨 한분이 누워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아무도 그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풍경에 마음이 싸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걸까
같이 살아야하는게 맞는데 뭐 그렇게 두려울까, 
그 풍경을 곱씹으며 그 자리에 앉아서 왔다. 

좀 짬이 나서 이거저거 뉴스를 검색하는데 동네가 또 잔뜩 바뀐다.
홍익문고가 없어지고, 아트레온이 CGV가 되고, 민들레 영토가 없어진다.
10년뒤 내가 누구인지를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것들이 자꾸 없는 것 같아서
맘이 좋지 않다.
증명해줄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참 쓸쓸한 세상이다.  서울은.

대선으로 사람들이 어수선하다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세 명중 누구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노숙자도 사람이고,
아파트에서 자기 자녀들과 뛰어내린 베트남 이주 여성도 사람이고,
전기가 끊겨 촛불에 의지한 할머니와 손자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11월 일기

카테고리 없음 2012. 11. 17. 14:40
'아니'란 답을 듣고 싶은데,
묻지는 못한다.
다른 답을 들을 용기는 없어서.

첫사랑

20세기 소녀 2012. 10. 20. 22:15

첫사랑은 열네살에 시작됐고, 열아홉살에 끝났다

상대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같이 뛰어놀던 교회 오빠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나 중학교 1학년 되는 봄에 (갑자기 180이 넘는 키를 가지고) 나타나는 바람에
단박에 세상 모든 가요를 '내 노래'로 만들어준 장본인이었다.

매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때 할머니집에서 한두달 가량 머무르며 교회에 나타나는 키크고 잘생기고 돈많은집 아들. 그야말로 전형적인 '교회오빠'여서 뭔가 오그라 들지만..;;;

사실 나같이 금방 식는 애가 그렇게 한 감정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따져보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감정의 도취'였단 결론에 이른다. 
한두달을 제외한 일년의 나머지 시기는 상상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시절 나에겐 상상할 대상이 있고 가슴 떨려할 상대가 있다는 게 중요했다. 
도대체 나머지 시간 뭘하고 지내는지 알 수 없으니 실망시킬 일도 없고 (생각해 보니 완전 연예인일세..;;;) 주어진 팩트가 적으니 왜곡과 상상은 넘쳐만 갔다. 


그 오빠가 할머니 집에 있는 한달 두달의 시간이 나에겐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럴싸한 만화나 드라마에선 운명적인 사랑(?)은 항상 '우연'을 동반했는데,
고때는 그런 이야기를 오롯이 믿어 의심치 않을 때라
나 역시 우연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어떡해서든 마주치고 싶어서 그 집근처를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덕분에 꽤 자주 마주치고 수다도 떨고 그 수다를 또 그걸 까먹을새라 일기장 가득하 적어두고..;;;)
정말 웃겼던건 당시 나는 교회에서의 만남은 그 가치를 쳐주지 않았다는 거다. 기도하다 눈이 마주치고 입모양으로 대화를 주고 받아도, 교회 식당에서 아무리 장난을 쳐도, 그건 운명적이지 않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나는 봄만 되면 연희동을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어떡해서든 인연이라는 증표를 잡고 싶어서. 믿고 싶어서.
그렇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으니까.

무수히 동네를 돌았고 골목을 돌때마다 가슴 떨려했고 그러다 아주 가끔 마주치기면 새파랗게 질려 그 오빠가 치는 장난에 떽떽 거리기만 했다.


그런걸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담이 높고 꽃피는 정원이 딸린 조용한 집들의 골목들이 언젠간 공간이 될거라고 꿈꾸고, 그곳에서 추억을 만들고 연애도 하고 그 공간의 기억이 내것이 될거라 기도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공간에 내 상상을 그려넣길 주저 하지 않던,


오늘 오빠를 만났다.
서른 한살 서른 두살이 돼서 만난 오빠는 여전히 한재석을 닮고 정우성을 닮아 잘생겼고
한참을 올려다 봐야하는 188의 큰 키 
쾌활하고 씩씩한 목소리
이제는 외국인이 부르는 듯한 억양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먼저 악수를 청하고 예전 내 모습을 기억해줬다.
그건 단 하나의 떨림도 없는 무미건조한 순간이지만 

그 옛날
주지 못할 일기를 쓰고, 
물리적으로 절대 결코 나타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년 중 10개월에서 11개월을 '혹시나?'에 물음표를 찍으며 가슴 졸이며
사랑을 했든, 감정에 취해있든
단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돌고 돌았던 동네 골목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
내 망막을 스치던 풍경.

순수하게 한 사람을 기억하고 갈망하던 시간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생에 단 한번, '첫'이란 단어를 쓸 수 있기에 절대적인 순간이있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사실을 이해시키느라
오늘 내내 애를 먹고 있다.





전복을 꿈꾼다

20세기 소녀 2012. 10. 14. 15:45




나는 전복을 꿈꾼다. 
현실에서 힘들다면 상상이라도 좋다.
이야기와 노래, 영화, 드라마, 소설 어떤 장르도 가리지 않겠다.  
 
힘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좋다.
몸통이 잘린 채 꽃병에 꽂혀 시들다 버려지는 게 아니라 
온몸을 뒤흔드는 비바람에 맞서서 
마지막의 마지막 까지 홀로 서는게 삶이고 인생이라고 외칠 때는 전율이 인다. 

나는 나약하기 짝이 없지만
어딘가에는 그런 삶이 사는 이가 있음을 상기하는 순간이 달콤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하는 세상은
폭력이 극도로 절제 된 세상이지만
가끔 현실에 비분강개 분기탱천해 참을 수가 없을 때는
머리가 터지도록 상상을 한다.
마르고 닳도록 꿈을 꾼다.

말단 종업원 비정규직이 사장을 자르고
방한칸 없이 떠는 사람들이 취미로 땅을 사모으는 이를 한겨울 거리로 몰아내며
열부가 되기 위해 죽은 부인을 따라 남자들이 은장도로 자신의 심장을 억지로 찌르고
불가촉천민이 흰피부의 브라만을 부리는 이야기를  
권력의 바퀴 아래서 개죽음 당한 영혼들이 밤이면 다시 나타나 매일밤 처절한 복수를 안겨주는 이야기를

혐오하고 핍박하는 이들이 그 '대상'이 되어 보기를 
그 몸서리 치는 고통이 자신의 것이 되기를 

천계를 뒤집어 엎은 아수라 마냥, 
모든 파괴와 일체의 혼돈 전복이 반복되는 세상을 상상하며 오늘의 울분을 푼다.

'너는 남자를 이겨먹으려고 해서 틀렸어'

이딴 소리를 나랑 동갑내기 남자애 입에서 듣는 날이면
나는 위와 아래가 좌와 우가 바뀐 세상을 꿈꾸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나도 알아 안다고!
엉망이고 부족한거
어디 내놓기 부끄럽게 엉망으로 방송됐다는 걸
어쩌면 그 부족함은 노력으로 채워질게 아니라는 걸
그래도 잘하고 싶은 걸 어떡해
'언젠가'에 기대고 싶은걸 어떡하냐고

따지고 보면

소소한 수다 2012. 9. 26. 13:26

그리 바쁜 것도 아닌데,
정신없이 지나치고 있다.
기록이 힘이라면서 기록하지도 못하고 말야.

만두가 구해준다는 아이폰키보드가 생기면 열심히 기록해야지 
마감 끝나면 블로그 써야지
이 드라마만 다 보면 글 써야지
어째야지 저째야지 핑계만 대고... 

10년가까이 모아온 윙크와 이슈를 기부하려고 하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다.
그 시절 내 생애 최고의 보물들이었는데, 
그 보물을 값싼 폐품 취급하는 도서관과 통화할때마다 힘이 쭈욱 빠진다. 
'그런 취급할바엔 내가 싸짊어지고 살겠음'
이런 생각도 들고...


태국사진을 이제야 뽑았다.
맘에 드는것도 있고, 좀 더 생각하고 정리했어야 했는데 아쉬움도 있고.

미안해서 시작한(?) 다이어트는 무리 없이 진행중이다.
한달하고 8일만에 무려 지방만 7kg감량 거기다 근육은 1kg 늘었으니
일단은 이번달은 대성공.
지난주말엔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를 보고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제부터 돌규가 참가하고 재민이가 참가하면서 인원이 늘었다.
정코치는 나의 놀라운 발전에 나보다 더 기분좋아했다.
(나는 아이템 고민으로 그 기쁜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했음)

그나저나 오늘 나 술 안마실 수 있나?


나는 감사한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공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이다. 
남성에 비해 '공감'이라는 정서가 짙다는 점,
그로 인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각양각색 음식의 향연처럼
다양한 감정은 다양한 향기와 다양한 맛을 가졌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것들을 경험하고 사유하고 내것으로 소화한다는 것은 멋진일이다.
그래서 나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여성으로 한국사회에서 태어난 것'은 다른 문제다.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참 많은 것들과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
좀 더 화합하고 융화되길 바라지만
타협이 아닌 자아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싸울일 투성이다



나는 내가
조금더 잔잔하길 기원한다.

오늘
쇼에서 혹사 당하는 돌고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나도 알아 안다고. 근데 돌고래쇼가 보고 싶으니까 보는거야'
라는 대답을 친구에게 들었을 때

수족관 물고기들이 겪고 있는 갑갑함에 대해 호소하는데 
보란듯이 아쿠아리움의 거대함이나 수천수백종의 물고기들의 화려함을 
검색하는 친구 앞에서 

화가 어찌나 폴폴 솟아나오던지. 

더 이상 말해봤자 싸움이 될 뿐이라 입을 꾹 다물었지만
분노하고 노여워서 그 친구들을 힘껏 미워했다. 
그리고 '홀로' 느끼는 감정에 대해 몹시 외로워했다.

그저 내 주위 눈에 밟히는 것에 노여워하는 건 
50원짜리 비계덩어리 설렁탕에 분노하는 것만큼 유치하지만  
너무 거대한 것에 노여워하는 일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니까
그저 쉽게 나는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향해 화를 쏟아붓는게 아닐까? 

미워할 것이 너무나 많다.
책망하면 닿을 거리에 있는 가까이 있는 것과 싸우기란 참 쉽다. 
그러면서 나는 저보다는 나은거라 자위하는 거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 보름달을 보면서
분기탱천해 일어날 용기가 없다면
조금 더 잔잔해지길
잔잔하고 잔잔해져서 치졸하게 주변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거대한 것들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만들어지길 기도했다.  





오늘 우리동네 '언덕 위 하얀집'을 부수는 걸 눈 앞에서 보고
참담함에 일기를 쓴다.

'언덕 위 하얀집'이 정신병원을 말하는건  
골동품이 문화재로 바뀔만큼 오랜 시간된 유머인데, 
우리동네엔 아주 예전부터 이름그대로 '언덕 위의 하얀집'이 있었다 

곽지균 감독의 영화 <겨울나그네>에도 나왔던 집이고,
그 앞을 지나면 (그 근처 집들이 다 허우대 멀쩡하고 담높고 평수 좋은 집들이다만)
프로방스 식 아담한 집모양이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설레게했다. 

빨강머리 앤의 감수성에 반해 있던 꼬꼬마 시절
그 집에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해서 무얼하며, 
오죽하면 그 집에 살고 있는 먼훗날 연애의 대상을 상상해 본적도 있었지.
(모두 상상력이 뇌를 뚫고 하늘까지 뻗쳐가는 사춘기 시절의 일이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까페 이름으로 바뀌었을 때 
개인 소유가 아닌, '투자'와 '이윤'의 공간으로 변질된 그곳에 대한 배신감은 얼마나 컸던가. 

그래도
까페의 모습으로라도, 계속 있어주길 바랬는데... 
 
언젠가 살고 싶던 집들이
언젠가 살고 싶던 삶들이 
꿈꾸던 것들이 자꾸만 실현 불가능함을 눈으로 목격하며 
나이를 먹는 것이 존재가 닳아 없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아득히 슬픈 일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하루하루 닳아져 없어져 간다.
'존재'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태국 꼬따오에서의 12일은 내 기준에서는 여행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그럴까 생각해 보니, 낯선 장소에서 '낯섬'에 익숙해질 시간이 없어서 인듯.
12일 내내 내 옆에는 동행인 친구가,
숙소에는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들이 한가득이었으니까.

여백이 없는 왁자지껄한 시간도 좋았지만
비좁음으로 인해 서울에서 느끼던 갑갑함을 여전히 달고 살았다.

어제 연대를 걸은건, 정코치의 당부도 있었지만
그냥 오래간만에 밤하늘을 보면서 혼자 있고 싶단 생각이었다.
(통이랑 산책 나가면 통이한테 신경쓰느라 뭔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한두방울 내리던 비가 굵어지고 잦아졌고,
나는 가방 속 우의를 꺼내서 입고 계속 트랙을 돌았다.
비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운동장의 사람들은 체에 걸러지듯 빠져나가
결국엔 운동장에 나 혼자 있게 됐다.

그리고 마침 <백야>가 흘러나왔는데,
얼마만의 느낌인가?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나'와 데이트하는 시간

남미 띠띠까까 태양의 섬 꼭대기에서,
비오는 깔라빠떼 평원에서 혼자 트렁크를 질질 끌며
느꼈던 진공의 느낌

온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 '나'를 지켜보는 시간.

그 짧은 한시간이 너무나 풍요로워서 정신이 흠뻑 살찌고 자란 느낌이었다.

비가오는 밤이면 꼭 혼자서 우의를 입고 길을 나서야겠다.



방치

소소한 수다 2012. 8. 9. 10:54

블로그를 이렇게 오래도록 방치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한달이 다돼간다 ;ㅁ;

태국 일기도 밀렸고,
그 사이 집에는 새식구가 생겼고,
다크나이트가 개봉해서 톰하디를 새롭게 영접했으며,
츄이가 미국으로 떠났고,
정코치님 아래서 빡시게 운동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가운데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계절이 지나고 있다. 

뭐 조만간 정리할 짬이 생기겠지 



도니랑 길이가 부른 노래 만들고 싶다
탕수육 팔보채 맛있다 맛있다!

태국 여행이 식도락 여행은 아니었으나
카메라에 담긴 장면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맛있다 맛있다 태국음식 맛있다
똠양꿍 맛있다 팟타이 맛있다 커리종류 다맛있다 외국음식 맛있다!  





저가항공을 타면서 기내식의 맛과 품질을 논할만큼 철면피는 아닙니다...
하지만 삼각김밥 하나가 더 나았으리란 생각은 지울수가 없다.




첫날 카오산로드에서 아무곳이나 들어가 시킨 아침식사.
맑은 닭국물에 밥이 말아져서 나왔음.
무난했다고 평가. 





암파와 수상시장에서 맛본, 커다란 새우의 강렬한 맛...
흑흑 두접시 모자람! 세접시 먹을걸 네 접시 먹을걸..!! 흑흑


 함께 주문한 오징어 구이.


행복을 더해준 코코넛 아이스크림

 


 

 

망고스틴과의 첫만남. 반갑다 사랑흔돠~!!



암파와 수상시장을 다녀왔다가 배나 채울겸 들어가서 주문한 똠얌꿍.
이때부터 나는 팍취와 꽤나 궁합이 잘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음. 





짜두짝 시장에서 만난 태국 음식들
대체로 나와 아주 잘맞았음 파하하.



 

태국이 무더운건 한잔의 수박쉐의크 맛을 돋구기 위함이라 철저하게 믿습니다!



태사랑 지도에 나온 소이삼쎈 거리의 팟타이집.
현지인이 친절하게 정말 유명한 집이라고 꿍을 시키라고 권유해줬는데
그 권유가 정답이었음...
태국에서 먹어본 팟타이중엔 단연 최고였다. ;ㅁ;




 

------------------- 절취선 (여기서부터는 꼬따오) ----------------------------------


상호명을 못물었으나, 해저무는 꼬따오 바다가 보이는 놀라운 뷰의 케밥집
고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천국같은 곳이었다.
120밧정도의 저렴한 가격이었음.





태사랑에 추천해준 꼬따오 맛집 팔랑고
매핫 선착장 주변에만 있는줄 알았더니 싸이리에 체인점을 냈다.
엉엉... 쓰리치즈 피자 먹고 천국가겠습니다. 아아~!!





꼬따오 팔랑고(매핫선착장쪽 아님, 싸이리 해변) 옆집 멕시코 음식점 엘그랑코
퀘싸디아와 화이타가 일품! 




 

바다와 도수높은 맥주 그리고 신명나는 기억





아시아리조트 옆 태국음식점 틱(tik)에서 먹어본 얇은면 팟타이








그날저녁 택시타고 들어간 툭툭에서 맛본 태국음식의 향연...
대체 이 포스팅에 맛있다를 몇번째 쓰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다 맛있었음 다 맛있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tik에서 발견한 새로운 메뉴
돼지고기를 얇게 튀겨서 소스에 뿌린 덮밥.
저 큼직큼직하게 썰린 채소보이시나요? 흑흑 





청량한 꼬따오를 들이마시는 느낌으로 뉴헤븐에서.. ㅎㅎ

 

전망좋은 뉴헤븐에서의 저녁식사

혁진이가 10년전에 여길 와봤다고 해서 김기절... ㅋㅋ



 



오전 다이빙 마치고 간단하게 때울겸
바다소리 옆집의 빵집 '글라스'에서 먹은 치즈맛이 살아 있는 샌드위치!
 (참고로 이 빵집은 새벽 6시 30분 오픈 오후 2시에 닫아요... 빨리 사먹는 사람이 임자임..) 

 




꼬따오 맛집의 시작은 케밥집이었으므로 마지막 저녁은 밥집에서 립뜯으며
비오는 풍경과도 마주하고

 








배타기 직전 엘그랑꼬에서 화이타로 마무리...




-------------------------다시 절취선 여기서부턴 방콕 ------------------------------



씨암 파라곤에서 시은이가 쏜 MK 수끼...






동제에게 얻어먹은 컵케이크

 

 

 

 

 

 태국에서의 마지막...

200밧짜리 햄버거를 먹으며 공항에서 분노한 상태..
되도록이면 출국쪽으로 들어와서 면세점 버거킹을 이용하길 당부함. 
8000원돈 하는데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맛없을 수 없다고 일행 셋다 판단했음... ㅠㅠ



어떤 물고기 종은 스탈린 시대 러시아 혹은 나치시대 독일에서 태어났다.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다!
너와 나 우리는 개별적 존재가 아닌 '하나의 부분'이다!
전체의 일부가 될 때만이 비로소 태어난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한 끝없는 도열. 


물속의 노래는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7시간 8시간짜리 완창을 이뤄야하는 판소리가 있는가 하면,
가볍고 구성진 경기민요가 있다.
피아노 한대에 첼로 한대로 가볍게 이루어진 소품곡도 있었고,
수십마리가 한 바위에 모여들어 화음을 나누고 소프라노 엘토 테너 베이스의 목소리를 내는 중창곡도 있고, 수십수백의 작은 물고기들 사이로 솔로가 도드러지는 오케스트라도 있었고.

첫 펀다이빙에서 떨어진 지점에는 거대한 물고기의 벽이 있었다. 
사방을 끝없이 둘러싸던 물고기의 벽.
하나가 모두 같이, 모두가 하나 같이. 
종의 생존과 영광을 위한 끝없는 행진 
부속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생.
그 생이 끝날지라도 자신의 종은 영원하리라는 믿음.

공기가 수면으로 떠오르는 거친 숨소리마저
군화발의 마찰음으로 들릴만큼 
거대한 물고기의 행렬에 도취된 순간이었다. 





방콕의 더위를 맛보았다.
강력추천을 받다 못해 '반드시' 먹어보고 '꼭 먹어보고' '하루에 한번'은 먹어야한다는
한잔의 수박쉐이크를 마시기 위해 나는 그렇게 무더운 방콕의 더위를 맛보았나보다.
흑흑 너무 더워. 더워도 너무 더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타이나라>에 가서 암파와 수상시장을 예약했다.
한국인 직원분이 무척 친절하셨고, 이 더위속에서 동부터미널까지 가기는 무리라라고 판단 내린 결정이기에 큰 후회는 없었다.  

기차시장, 암파와 수상시장 반딧불 투어에 다녀왔다. 
기차시장에서는 기차가 그렇게 정면으로 지나는 줄 모르고 사진찍겠다고 몸 내밀었다가 태국 할머니의 크나큰 호통을 들었고, 걱정해서 혼내주시는 건데 죄송한 마음에 계속 사죄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나의 너스레에 넘어갔는지 나중에는 웃으면서 인사도 해줬다.
암파와 수상시장에서는 그토록 바래마지 않던 새우를 먹었고, 그리고 망고스틴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이곳 새우는 어찌나 크고 아름다운지... 파하하. 이곳에서 거의 꿍(새우)귀신으로 활동하게 될 것 같다. 

한국인이라면 아마도 '더러운 물'이라고 판단하는 물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삶이 낮거나 비천하다는게 아니라, 그 삶에 적합한 생활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그 삶을 망가트린 것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했다. 이곳에 와서까지도 자본과 제국 끝없는 열강의 침탈 이런걸 떠올리고 싶은건 아니었는데...
게다가 따지고 보면 이곳에서 관광하며 돈을 써대고 관광객에게 의존하는 생의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나역시 또 하나의 제국침탈자인가..?

아! 서른이 넘어서는 단정적으로 말하는 이 습관을 고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시각도 필요하겠지 근데 그 다른 시각을 제공해줄 꺼리가 내겐 아직 보이지 않는다. 막 앨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 이따위거 읽고 김문수처럼 활동할 순 없잖아? 

 


할말이 있다

소소한 수다 2012. 6. 28. 02:09

말많고 말잘하기로는 조선 최고라던 허균이
역적참수 당하기 전에 외친 외마디 비명이 이거라던데... 

"할 말이 있다!"

나 역시 할말이 있었다.
아니 아직도 할 말이 있다.
나름 열심히 진행하고 있었는데, 윗선에서 막혀버려서 말할 수 없게 돼버렸다.
노골적인 의도를 지우란다. 
빙빙 돌려 말해도 충분하다고 주문했다.

가장 무서운 건 그 순간 자위 하는 내 자신이었다.
나는 말하려고 했잖아, 근데 위에서 허락을 안해준거잖아.
가져다 붙이면 핑계 아닌게 없었고,
알량한 양심은 위로하기 참 쉬웠다.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도 뒤집어질 그 안일함이, 그 얄팍한 위로에 안도하는 너무 창피했다.  

조연출은 작가님 이번 말고 다음에, 다음에 좀 나아지면 그 아이템을 해요 라고 위로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해야할 말이다. 
그때는 너무 늦다.
강태공 부인이 쏟아버린 한바가지의 물과 다를바 없다.
그때는 오히려 알고 있었음에도 '제때 말하지 못했음'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할 시기다. 
입을 다무는 것도 죄다.
그 죄값에 벌써부터 마음이 찝찝하다.

이제 다섯편.
기술적으로도 전혀 늘지 않는 내 자신도 부끄럽지만, 
묵직하지 못하고 팔랑거리는 내 자신이 더 부끄럽다.
땅이 있으면 파고들어가고 싶은 심정.





유난함을 지양하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서른 하나를 축하한다

너는 적극적이어서 사랑스럽고
너의 노력은 분명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올한해 조금더 납득할만한 결과를 만들자. 
삶이 좀 더 신나고 좀 더 살찔 수 있도록...

오늘은무제

소소한 수다 2012. 6. 22. 14:04

그래,
살아 남은 자들은 진정 (비위가) 강한거라고 치자.
어제부터 나는 뭐가 더 나은 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바르게 사는 기준을 모르겠다.
미적미적 유도리있는 척 피해가며 그래도 일단은 살아남아서 끈질기게 싸울것인가
화끈하게 한판 부딪혀서 산산히 부서질 것인가

마음이 갑갑하다. 죄짓는 기분이다.

뭐가 더 맞는거다 꽝꽝! 도장좀 찍어줬으면 좋겠다. 



만족스러운 나날이다.
아직 프로그램은 만족스러운적 없지만... ㅋㅋ
몰염치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민폐지만 매번 '다음엔 더 노력할게요' 란 말로 넘어가고 있다.
철면피 두꺼운 낯짝이 삶을 이어가는 수단이고 방법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만드는 순간은 기쁨이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행운이지.  
언젠가는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거야, 저런 구성을 하게 되겠지.
꿈꾸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크게 부족한것 없지만
빈자리를 더 채워야겠다는 초조함이 더해지고,
뒤쳐질것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나는 바보.
거기다 아직 해본적 없는 것에 대해 미리 후회하는 나는 멍청이.

조금더 가진걸로 기쁨과 호사를 누려도 될 시간이니까.
캄다운 캄다운~

조금더 기뻐하기로 했다.


달팽이가 되고 싶다
먹을것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날씨가 마음에 안들면 집안에 콕 처박혀 잠들고,
취침중에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이게(?)
심장박동수도 줄이고 산소흡입량도 50분의1로 줄여서
돈이고 이윤이고 나발이고 하나도 필요없는 달팽이가!

요번 세기 한반도 땅에서 인간의 사는건 영 아니다 싶으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쿨쿨 몇십년 몇백년 자고 나와서
다음 바깥세상은 어떤가 살펴보고 선택하는
달팽이가 되고 싶다

너무나 느린 이동속도가
실은 생존수단인 달팽이로 살고싶다.

슬프다

소소한 수다 2012. 6. 4. 23:38

작별이 많다.
만남과 동시에 애정을 느끼기란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야 힘든 법이고
대부분 애정을 쏟은 곳에는 소소한 사건들이 자잘한 시간들이 배여 있기 마련이다.

만나분식이 문을 닫았다고, 스테레오가 사라져 버렸다고, 좋아하던 축구선수가 은퇴했다고 
지나버린 시간들이 뿅 하고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지나버린 나'와 헤어지는 순간들은 언제는 눈물이 핑하고 돌만큼 슬프다.




여전히 사근사근하지 못하다. 
어린시절 성까지 붙여 이름부른다고 삐친 친구도 있었다. 또래집단이 형성될 나이엔 화장실도 같이가고, 매점도 같이가고 그게 친한친구 사이의 의무사항 같은거였는데, 그걸 안해주는 편이었다. 그냥 가고 싶을 때 혼자가고, 매점은 귀찮아서 거의 안가고..ㅋㅋ
지금도 여러방면에 관해선 '혼자'하는 것이 편하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잘알기도 하고,

여자애들이 잘하는 손잡고 걷기 팔짱끼기 이런것도 잘 안하고 다녔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인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 갈길 가는데 다른 사람 템포 맞출 여유까지 없었다는게 사실. 
며칠전 아는 언니랑 근처를 걷는데 언니가 팔짱을 꼈다. 진짜 흠칫 놀랐고, 스스로 팔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난감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한참 길을 가는데 어렵더라. 사람이 사람에게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말로. 

아주 가끔 친구들의 손을 잡고 싶을 때가 있다. 손끝이 주는 예민한 감각으로 다른 사람을 느껴보고 싶을 때도 있고, 허전함과 서늘함에 온기가 그리울 때도 있다. 근데 막상 용기가 나질 않는다. 

오래 묵은 사이일 수록, '내 이상의 것'을 시도하기 어렵다. 관계의 범위가 이미 결정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의 손을, 내 주변 사람들의 손을 잡는 법을 배우고 싶다.
같이 걷고 맞춰주는 법을 배우고 싶다. 






  


며칠전 마지막 남은 쿠바산 럼을 땄고, 그 자리에서 비웠다.
비우면서 베인떼 아뇨스를 듣고 싶었는데,
맥모니터 큰걸로 야자수를 띄워놓고 마셨으니가 그걸로 됐다. 

최근들어 만나서 무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비웠다. 
다들 도수가 너무 높다면서 천천히 마시길래
난 열심히 마셨다. 히히 

'좋아하는 사람들' 목록은 차마 밝히기 부끄럽네.
대부분은 치를 떨만한 인간관계인데
난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좋은걸.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의심할거야
친구 하나 없냐고.. 
제가요, 애인은 없지만 친구는 많거든요~ 정말인걸요.
다만 술을 즐기는 친구가 드물뿐...;;

여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할 인간관계, 마이너스성 관계를 나는 무척 좋아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게 플러스가 되네
두 배로 플러스인 셈이다 
신난다.

술도 맛있고, 재미도 있었음.
나는 그날 또 너무 웃어서 목이 쉬었고
그날 들었던 농담만 떠올리면 자꾸 히죽히죽 웃게됨.





6월 예정

카테고리 없음 2012. 5. 22. 12:16

어제 태국을 가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남해 가기로 한 일정이 갑자기 내 휴가 한복판에 떡 하니 자리하면서 남의 얘기가 돼버렸다....(아흐흑흑흑 방송작가가 일자리 정해진 상태에서 3주 휴가 나는거 쉽지 않은 일인데 왜 이러나요...) 덕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캡 우울함. 그래서 다음으로 마음 먹은게 템플스테이인데, 절을 고르는데 큰 고민이 따르네.

찾아가기 쉬운 곳은 찾아가본 적 있는 낙산사요,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은 해인사고

부석사나 내소사도 좀 땡긴다.

나같이 싫증 잘내는 인간에겐 좀 볼거리 많은 곳이 필요할거 같은데 말이지.

여튼 누가 나에게 절바지 좀 선물해줬으면 좋겠다. 
빌려줘도 무지 고맙다.
남에게 선물 받는거나 욕심내는 미천한 중생이 매일매일 108배 하고 고기 끊고 맑은 공기 마시고 착한 인간 돼서 하산해야지. 

  

 




본래 프로그램 들어갈 땐 조급증이 도져서,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해주는 멜랑콜리아 일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친구랑 연락하고, 약속 잡고... 근데 정작 그날 (둘다) 낮잠자다가 볼 기회를 놓쳤네. 결국 금요일 상상마당에서 멜랑콜리아를 보았다.

<어둠속의 댄서>를 보고 난 뒤에 한 결심이라면 나 이 인간 영화는 두번 다시 안보겠다.
이런 폭력을 돈주고 경험하지 않으리는 결심 정도?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세월이 결심을 무색하게 만드는 걸 반복경험 하고 말았지. 딱 두편 봤으니까 왈가왈부 하긴 그렇지만 <어둠속의 댄서>보다는 훨씬 덜 폭력적이었고 덜 힘들었어. 

영화 내내 바그너가 끝없이 흘러 나왔는데, 안그래도 감독이 나치발언 했던게 이 영화 상영 앞두고 아니었나? 
거기 덧붙여 그들(히틀러 일당들)의 죽음은 바그너 적이리라 라고 말했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도 생각나고. 근데 정작 히틀러는 졸렬하게 죽었잖아?

여튼 내내 외로운 영화였다. 보는 내내 손이 너무 시려워서 자꾸 손을 주물러야 했다. 우박 내리는 장면에서는 정말 외로워서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고, 
세상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눈물이고 슬픔이고 외로움이라지만, 사람들이 우글대는 시내 한 켠 좁은 골목길 허름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맞이하는 종말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장면은 대게 지구 종말을 다룬 블록버스터에서 1초의 여유도 주지 않은 채 풍경처럼 지나가니까-

지금 만약 종말을 맞이한다면 내 인생은 31년간의 상영시간이 존재하는데, 블록버스터 급에선 1초도 채 보지 않으려 하겠지. 나는 요즘들어 유달리 그런 영화들을 즐겨보지만, 뭐 1초도 안다뤄 준다해도 좋다. 

블록버스터급에 1초도 출연 못하는 인생이지만
소소하고 단란하길, 무료하지만 분에 넘치는 행운도 떨어질 나락도 존재하지 않길,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오래도록 계속되길 기원한다.







폭탄 발언이라, 박만두가 한동안 날 기피할지 모르겠다.
근데 '만두'랑 사귀고 싶은게 아니라, '만두 같은 남자'랑 연애하고 싶은거잖아?
만두 의향은 됐고! 이 생각이 당분간 바뀔거 같진 않다.  
연애하고 싶다.
근데 이왕이면 만두 같은 남자랑 연애하고 싶다.

그 생각이 든건 엊그제였다. 하하에서 중국식 닭요리에 맥주 한잔 하고 꾸러기 놀이터에 앉아 있는데, 역시나 봄날의 정취는 놀이터. 그것도 아파트같은데 말고 한적한 양옥집 사이의 놀이터다 싶었다. 한참을 수다 떨었면서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이만큼의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는게 아니고 가능성이 아예 없어 보엿음 -_- 

우린 서로 많이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또 비슷한 것도 많다. 그게 오래 만난 강점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것'에 대해 욕한다는 공통점이 있네. 

'그거 너무 이상해. 그거 너무 비상식적이야. 그게 말이 돼? 기본과 근본따위 망각한 정신나간 세상 따우... 미쳤어 미쳤어.' 미처 깨닫지 못해도 '너 그거 알아? 그런 일이 있대' 라고 말하면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라고 응수 하며 미친세상을 향해 협욕(?)하고 말야. 

생각하다 보니 조급한 내 성질머리 울컥하는 성격 양해 구하면서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 없고 집도 가까워. 옆집옆집 뒷집뒷집살어. 안봐도 훤히 아는 집안사 말 안해도 돼, 그래서 새벽 늦게까지 서로 방에서 놀아도 돼. 날씨 좋은날 한적한 동네 산책 나가도 돼. 신촌 홍대 안나가고 맨날 동네서 데이트 해도 돼.
게다가 최고 장점은 '야 우리동네 짱좋아'란 말을 마음껏 지껄여도 '잘난척'이 안된다는 장점이...

만남에서 서로를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기쁨이라면 기쁨이지만 때론 얼마나 지리하고 제자리 걸음 반복이야? 23년을 꼬박 알고 지냈고, 그래도 수다 떨때면 '나는 이런데 말야'라고 새로 꺼낼거 투성인데?

오랜친구, 동네파가 최고야!
결국 결론은  동네 사는 남자랑 연애하고 싶다<-가 되버렸음.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연애가 뭔소용이람, 깨지면 친구조차 되기 힘든 거슬....


 


오빠의 의미

20세기 소녀 2012. 5. 14. 10:37

저 멀리, 나와 인연이 닿지도 않은 한 사람을 응원하고 좋아하는 과정이
과연 무엇을 남기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응원에 대한 보답, 기쁨 그 이상의 것을 배웠다.

십년 전, 장국영을 닮아서 막연히 좋아하기 시작한 오빠는 어느덧 마흔을 먹었고
내가 좋아하고 응원한 기간 단 한번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이 마흔 먹은 오빠의 은퇴 경기 마지막 골은 반짝반짝 빛났고,
역시나 오빠답게 주워먹기였고(푸하하)
그래서 나는 오빠를 보면서 내 삶을 더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마워요!

삶이 지치고 힘들 때 꼭 오빠를 떠올리겠음!!! +_+







달이 크다.
너 지구한테 들이대니...? 라고 생각될 정도로 달이 크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큰 달을 봤던게 작년 이맘때 였다. 그땐 (나름) 큰 꿈을 안고 매일매일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다. 소원에 순위도 매겼었는데 큰거 하나 해줬다. 어쩌다 1년을 돌고 보니 그 소원의 자리에가 있네. 고마워요! 달님. 

하지만 나란 사람 욕심이 끝 없는 사람... 하나 해치웠더니 다음 소원이 올라왔다. 올해는 작년 두번째 소원을 열심히 빌어봐야겠다. 이런 사람이라 미안해요.달님! 참 힘드시겠어요. 60억 인구중에 열에 하나는 칭얼대고 있을것 같은데, 그럼 6억. 한명당 소원 한개도 아닐거 아냐 한명이 두세개 비는 경우도 있으니 어림잡아 10억건... 돈받고 해결해주시면 때돈버시겠다~ 하지만 달님이 이뤄주는 소원은 공짜니까, 사사건건 참견하고 소원 이뤄주시려면 통이 좀 크셔야겠음. 

여튼 달님이 지구한테 들이댈때! 달님이 그나마 좀 가까이 있을때 말해야 할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잘 안들릴거 같아. 그래서 나는 운동장을 돌때마다 중얼중얼~  

고거요 고거, 내가 작년에 빌었던거~ 고거에서 두번째거


선배들 구성안 뽑아서 꼼꼼히 살피고 있다. 영상 보고, 대조와 대구와 대비는 어떻게 이뤘는지 본다 어떤 일화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지 10자 20자 한마다 두마디의 말로 어떤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이제 세편 째, 사실 좀 조급하기도 하다. 어느날 쭈구리가 돼서 이불 둘둘 말고 침대에 '나못해!'하고 드러누울지 몰라. 어느날 공부하는 원고 위에 연필로 적었다. '설마.. 이랬는데도 안늘겠냐?' 

그래 내가 그렇게 바보냐? 븅딱이냐? 아닐거야... 아니겠지.. 

이것역시 스리슬쩍 끼워서 달님에게 날릴 소원에 첨부!



 




살짝 계기가 있어서 트위터를 정리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분류관리가 필요한것 같아서 계정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
지금 쓰고 있는건 아예 삭제를 해버릴까 새로 만들까 고민중에 있는데 여튼!
내 손발... 아이고 내 손발... 흑흑 제 손가락발가락 못보셨어요? 오동통하니 생긴 아이인데... 귀여운척 하는 '오그리 토그리'이런 단어 안쓰려고 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질 못하겠네.

멘션을 하나씩 지워가는 중에 거의 400일 전의 멘션까지 등장했다. 푸하하. 어느새 남미 여행 전으로 시점이 바뀌었음.
왜이렇게 오타는 많은거야. 오타 없는 멘션을 못찾겠다
뻘설은 왜 그렇게 많이 날린거야. 허구언날 내 감정기복이나 중계하고
왜그렇게 감정 기복은 심했던거야. 이래서 '싸지른다'는 격한 표현이 걸맞는 매체인가...?

나는 참 점잖치 못하고 줏대도 없으며 나대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부끄럽다.
그게 만나서 직접 보면 무마가 되기도 할텐데, (활달한 성격이란 장점으로? 푸하하.)
텍스트 상에선 절대 그렇지 못한다는걸 아니까...
며칠 내내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가끔씩 허공을 향해 하이킥도 해주면서 열심히 삭제 버튼을 누르고 있는 중.



늦은 밤마다..는 아니고, 이틀걸러 한 두번씩 좀 피하고 싶은 전화가 온다.
ㅠㅠ 애초에 처음부터 전화를 받아주지 말아야하는데 잘못 받았다가... 그 다음날부터 문자오고 그러는데 너무 무섭다.
그 뒤로 전화를 안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밤이 되면 전화가 울린다...;;;
밤에 혼자 일하다가 전화만 울리면 심장이 막 덜컹덜컹 거리고 우울해져서, 그냥 일하던거 때려치고 이불 둘둘 말고 자버리고 싶다. ㅠㅠ 내 정보 그렇게 많이 알려주는게 아니었는데... 그냥 스팸처리 해버리라는데 그런데 지은 죄가 남아 있으니가 무턱대고 스팸처리 하기는 좀 껄끄럽고 불들어오는 전화기를 보고 막 무섭고 떨려서 덜덜 피하는 중. 흑흑

그저 내가 죄인이다. 죄인이지




이번 아이템은 진짜 진짜 잘해야하는데 잘해야만 하는 역사적 사명이 있는데,
안다. 나는 내 한계점을 아는데 그 한계점을 어떻게 긍정하는지를(극복까지는 아니고) 모르겠다. 응원이나 위로가 아닌 보다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분명 내가 잘하는 장르가 있을텐데, 그걸 빨리 찾고 싶다. 
안치환 꽃상여를 미친듯이 반복재생하고 있다.

그나저나, 다들 무도 안보고 싶나요?







눈물의 방류점이 낮아졌다.
걸핏하면 터져나온다. 나는 우는것도 곱게 울질 못해서 눈가를 막 부비니까 다음날  눈이 퉁퉁 붓고, 세상의 절반밖에 못보고. 일상생활의 지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이 해산했다.
선거 당일날 투표 결과 보는데 펑펑 눈물이났다. 울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우는 바람에 놀랐다. 절반정도는 예상한 결과였잖아..? 근데 그날 심정은 막 우리 당이 뭐 어때서? 왜때려요? 왜때려? 우리당이 그렇게 별로에요? 기독당 한나라당 이딴 당이랑 왜 동급 취급해요? 왜그렇게 몰라줘요??!?!! 라며 울부짖는 두더지잡이의 두더지 심정? 누군가의 멱살을 부여잡고 엉엉 울고 싶은 심정? 암튼 브로콜리너마저 의 노래가 BGM으로 눈물 방류점을 한껏 낮추긴 했지. 아직도 때때로 섭섭하다.  그냥 친구들을 만난다고 치유되지 않는다.
동류만이 위로할 수 있는 아픔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당사람들을 만나고서 치유받고자 하는가...;;;

선거 다음날 퉁퉁 부은 눈을 했지만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회사에 출근하고 점심 먹고 일하고 저녁먹고 다시 들어와 소소하게 수다 떠는데, DM이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 노회찬...의원... 비록 내가 어제 당선축하드린다고 기쁘다고 DM(쪽지)를 날리긴 했으나, 반응이 올 줄을 몰랐다. 이건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대답. 
'감사합니다 항상 낮은 자세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어쩌면 소박하고, 투박하고 보잘 것 없지만,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하는 대답이었다. 진보정당 가입 10년. 이젠 지칠때도 됐고 포기할 때도 됐다. 하지만 내가 아직 어떤 가치를 선택해서 지향하고, 거기에 나의 애정과 관심을 쏟고, 돈을 들이고 안타까워하는 모든 노력의 보상이었다. 그게 어젯밤(선거날)의 설움과 어찌나 잘 맞아 떨어지던지.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네. 수다떨다 말고 갑자기 핸드폰 들여보더니 훌쩍 훌쩍 우는 나 때문에 에이디가 적잖이 당황했을거야 아마,

시기가 시기인지라 막내에게 부탁해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을 빌려오라고 했다. 기억이 맞다면 대학 3학년 때 읽었을거야. 서른하나에 다시 만나는 브레히트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나는 남들보다 강해서 살아 남는 것이 아니다. 세상엔 분노하고 부끄러울 일들 천지인데, 부끄러움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서, 치욕과 수치에도 견뎌내는 강도가 높아서 살아가는 거지. 그냥 잘 견디는 거다. 잘견디게 진화하고 있는거다.

"그래 그저 계획이나 세워라!
그저 큰 빛이나 되거라!
그리고 뒤이어 두번째 계획을 또 세워라!
그것은 둘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인간이 악독해도 모자라기 마련.
          그래도 인간의 고매한 노력은
          한가지 장점이다."
-인간 노력의 불충족에 관한 노래  



나를 울린 쟌철수와 짜장면
아직도 최고의 로맨틱코메디 드라마를 꼽자면 나는 <환상의 커플>을... 
오랜만에 환커가 땡기길래 저녁 무렵 한편을 틀었다. 본래는 3-4편만 보고 잘 생각이는데 10편을 내리보고 새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네.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어쩜 이렇게 '변화의 과정'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소개할 수 있는건지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한 계단도 훅하고 올라가는 법 없이 차근차근 14편까지 내리 성장하는 주인공들이라니. 이 드라마를 볼때마다 언제나 울어온 지점은 나상실이 장철수네 따뜻한 사진들을 삭제할 때. 쓰리석이랑 헤어질 때, 버스정류장서 둘이 헤어질때 였는데, 아 놔.. 짜장면 보고 울컥하는 장철수를 보고 나도 울컥해서 내내터진 울음을 드라마 끝나도록 이어갔다. 좋은 드라마고 훌륭한 구성이다. 등장하는 모든 장치들이 하나도 빠트릴 수 없이 사랑스런 메타포였다. 짜장면, 전기장판, 조카들, 개(꽃순이)...
너무 줄창 보면 질리니까 꼭꼭 숨겨뒀다고 몇년후에 다시 한번 만나야겠다. 그때 다시 만나, 쟌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