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덕통은 호빗3를 5회 관람하는거였는데 올해 중간덕통은 매드맥스 되시겠다. 이게 이전까지의 덕통이랑은 좀 다르다. 워낙 완결성이 있고 끼어들 틈이 없다보니까 그냥 보는것만으로 입을 헤- 벌리고 넋놓고 감상하기를 3회. 메박2D, 코엑스 M2관 아트모스 3D, 여의도 CGV에서 4D. 한결같이 일관적인 취향으로 치열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디자인과 설정. 그리고 온몸을 내던지는 퓨리오사 언니 복수극에 심장이 안뛰면 사람이 아님. ㅠㅠ ㅠㅠ

 

-톰하디에게 빠진지는 만5년이 다 돼가고,  이번 덕통은 조지밀러 할아버지한테 치인거 같은데, 해피피트2를 집에서 보다가 개기절. 이번주 토요일에 상영회도 열 예정이다. 탭댄스 추는 펭귄을 데리고 이 아저씨가 뭘연출했는지 보시라. 다리짧은 펭귄들이 존나 쩌는 롹스피륏을 보여준다고.

 

-지난주 방송원고 터느라 왕겜을 2주치 정도 밀려 있다. 왕겜 관련해서는 하고 위키랑 각종스포를 다 읽었더니 현재는 거의 드라마로 각종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다. 이 와중에 나의 각별한 애정은 오직 아리아에게 쏟아져 있다. 부디 아리아가 다시 니메리아와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데, 앞으로 다이어울프 출연은 거의 없는듯 크흑. ㅠ ㅠ


-방송이 끝나고 오랜만에 툰크에 들려서 토리야마 아키라의 단편집을 몇권 샀다. 닥터슬럼프로 시작된 이 아저씨, 지금 나이는 예순이 넘은걸로 알고 있는데. 여튼 한결같은 개그센스, 한결같이 간결하고 깔끔한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있다. 드래곤볼이 이만큼 떴는데 이 아저씨 여전하구만 하는 가슴 뭉클한 뭔가가 있다고. 여튼 다시금 내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본다. 큰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과시할 수 있는 부유함이나, 매체에 등장하는 아름다움 이런걸 바라는 게 아니다. 오래 된 소원 하나. 그저 아오 재밌어. 아오 신나! 라고 외치며 내 모든걸 쏟을 수 있는 그런 일을 딱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런건 누구나 바라는건 아니니까, 그만큼 희소하지 않아서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부질없이 바래본다. ㅎㅎ


 


 

2015년 첫번째 100일 결심은 뱃살로부터 나왔다.

아무리 봐도 허리라고 할 부분이 없는 내 몸매 때문인데

지금 당장 지방흡입이나 식스팩 수술같은걸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진짜 미친척하고 딱 백일만 허리옆구리 운동을 해보자 라고 결심했다.

 

그 결과

내가 차마 비포 에프터 사진을 찍지 안아서 그렇지 생기긴 생겼다.

똥배는 그대로지만 허리에 들어간 선이 확실히 생기긴 한 것.

이게 앞으로 튀어나온 상당부위가 있어서, 만족스럽진 않지만 이전 나의 몸매를 아는 내 입장에선 얼마나 괄목할만한 성장인지. 허리 선이 있던적이 없던 나로선 놀라운 일보진전이다.

백일 중에 한 90일 정도는 채운거 같다. 뭐 흔히들 하는 말이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정도 되겠는데 여튼 만족은 스럽다. 3년전 다이어트 이후로 다른 부분은 다 다시 살이 찌고 있는데, 그래도 배에 큰 1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아무래도 이 운동을 계속한 덕분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ㅍㅎㅎ

 

어제는 4월 말일자로 끝난 100일 달력을 떼고  

2015년 여름 새롭게 시도할 '인생 두번째 다이어트 일정표'를 방에 붙였다.

중간 두번에 방송 마감이 있으므로 말이 100일 달력이지,

130여일이 필요할 걸로 예상된다.

여튼 작년 재작년에 산 여름옷이 맞는게 없으므로 더 이상 미룰수가 없게 됐다.

 

크로스핏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비싼 돈내고 운동하면 운동을 빼먹진 않을것 같고, 겁나 힘든 운동을 하다보면 운동한게 아까워서 이것저것 많이 사먹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마음먹었다. 얇아지고 싶기 보다는 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늘리고 싶다. 헬스 한창 다니고 단백질 많이 먹었을 때 몸 곳곳에 달라 붙어 있던 단단한 근육들 되찾고 싶다. 진짜고.

 

아무래도 이 결심을 끝내고 나면 그 다음은 영어공부가 될 것 같다.

몰타는 빨리 가고 싶은데 영어 실력도 안되는 상태에서 가고 싶지는 않고 ㅠ

이런 저런 고민이 든다. 아.. 근데 이 프로그램 하는 한 영어 학원 다니는거 쉽지 않을거 같아.. 크흑

 

어제 이대 디저트집에 가서 론니플래닛을 읽는데

마일드윈터, 드라이섬머, 다이버스헤븐, 프렌들리트레벨러플레이스래 ㅠㅠㅠㅠㅠㅠㅠㅠ 도미토리 알아보니까 10유로... 헐... 진심으로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서 토 오는 줄 알았음 ㅠㅜㅜㅜㅜㅜㅜ 어학연수는 주로 이탈리아 애들 스페인애들 남프랑스 애들이 와서 그렇게 깨발랄하고 참견이 많을 수가 없다고... 왕좌의게임 촬영지도 가보고, 해지는 석양에 와인마시면서 '발라보굴리스'도 중얼대고 싶다고. 아 지금 가고 싶어. 당장 가고 싶어. 내가 갈때까지 다들 거기 멈춰 있으라고 '얼음' 외치고 싶어. 막 내가 갔을 때 거기서 놀고 있는 애들 다 사라져버렸을까봐 벌써부터 조마조마함 크흑 아흙

 

-토요일엔 그간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던 인간관계 몇개를 깨끗하게 청산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비워야 채워진다.

새 술로. ㅋㅋ

새 술을 기대해 봐야겠다. 이번엔 좀 찐했으면 좋겠다.

 


장래희망

카테고리 없음 2015. 4. 28. 10:21

0. 노처녀

 사람들이 비혼을 못알아 들으니 알아 듣기 쉽게 노처녀 라고 적어놨는데, 친구들은 이미 이룬거 아니냐고 태클 시전 중. 꿈을 이룬 삶은 아름답기 마련이지.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갈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정신력+육체적 능력이 중요하단 생각 중. 내 나이가 암만 스물이면 뭐하나 자금 쪼달려서 여행 한번 못가고 취직 생각에 불안초조 스트레스 받으면 그게 젊음이겠냐고. 그런면에서 현재 나는 정녕 아름답다. 암. 그렇고 말고.

 

1. 야생늑대 대장이랑 친구먹기.

정유정 28을 읽고 난 다음부터 정신은 늑대와 흡사한 커다란 개(늑대)를 키우고 싶단 생각에 취해 있는데 이것저것 덕질한 결과 개는 늑대와 유전적으로 거의 일치한다고.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기만하면 공동체 내에 일원으로 생각해서 크게 해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내 주제에 성년이 된 야생늑대를 만날일은 없을것 같고, 늑대인데 인간과 교류하면서 자라는 늑대를 만나는 편이 용이하단 결론을 내렸다. 인스타에서 이것저거서 팔로해보니까 캐나다에 늑대 농장 비슷한 곳이 있던데 언젠가 가보고 싶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튼 그래서 요즘 제 1목록이다. 야생늑대 대장과 친구먹기.

 

2. 우주장

부디 우주여행을 할 기회가 있다면,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 같은 우주가 아닌 스타트랙같은 우주를 내게 내려주옵소서. 목성을 향해 갈 떄 절망이 아닌 짜릿함과 흥분 기대가 함께 하게 하소서. 여튼 살아서 우주로 나가볼 수 없다면, 죽어서 영혼이라도 느껴보고 싶다. 오감은 이미 저세상으로 넘어갔을 지라도. 화성과 금성의 봄을 보고 싶다규. 장미성운 말머리 성운 이런것도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싶어.

 

3. 캐나다 로키 산맥 여행

가야할 여행지 한군데 추가. 어제 브로크백 마운틴을 다시 봤기 떄문이긴 한데, 이를 위해선 캠핑장에서 몇박며칠을 보내도 끄떡없을 체력과 자동차 운전이 능숙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20150416

20세기 소녀 2015. 4. 16. 10:52

 

삼일 지나 소식을 들었다.

하필 이처럼 많은 죽음에 대해 묵념해야하는 날...

 

 

잘가세요. 영감님.

 

당신과 함께한 2011년 남미 여행은 정말이지 잊지 못할 추억이었어요.

60일 혼자 하는 여행 중, 저는 당신의 두꺼운 책 세 권을 세 번이나 정독했죠.

 

남미 땅 가는 곳마다 당신의 격앙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덕분에 나는 흥분하고 분노하고 울컥 하고 눈물을 훔칠 때도 있었어요. 아메리카 대륙에 새겨진 이제는 화석같이 남은 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그때마다 당신의 걸진 당신의 해석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짜릿했는지 보이는 것 이상의 순간들을 체험했는지 몰라요.

 

 

내 방 한켠에 <불의 기억>이 꽂혀 있는 한, 당신을 보낸 것이 아니라고 믿어요.

작가는 자신의 글이 읽히는 한' 작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숨을 내뱉고 살아 숨쉬는 존재니까요.

 

당신의 새로운 여정에 축복을!
우리는 곧, 또 만나기로 해요.

 

Senor. Eduardo Hughes Galeano! 
Hasta luego! Mucha Suerte, su nuevo trayecto!

 

 


Fly Me To The Moon

 

한국에서는 에반게리온 인기 이후 흔하디 흔한 노래가 돼버린 덕인지

평소 이 노래를 주의를 기울여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여튼 내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여튼 내가 기억하는

Fly Me To The Moon의 평범한 버젼은

아래의 링크된 소녀스러운 여자보컬이 나오는 에반게리온 엔딩 테마 느낌이다.

 

 

 

 

 

 

 

 

 

사실, 이 노래 가사가 갑작스럽게 다가온 계기는

<지식채널E> 편에서 손에 꼽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편에 나오는

화성 탐사 로봇 스피릿과 오튜니티 이야기였는데 말이다.

 

 

이 편을 보고 난 다음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저 별들 사이를 여행하게 해 줘요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목성과 화성의 봄을 내게 보여줘요"

 

라는 가사가 노래하는 꿈에 대한 열망이 가슴아프면서도 어찌나 생생하던지. 

여튼 그 뒤부터 이 노래는 우주를 꿈꾸는 SF용 노래였다. 나에겐 말이지.

 

 

 

지난주 토요일 여동생 결혼식에서 동생 친구가 축가를 불렀다.

반주 편곡한 풍이 줄리런던과 아주 흡사해서 이 버젼을 찾아 올린다.

 

 

동생의 사랑의 결실을 축복해주고 싶은 마음과

친구의 근사한 노래가 어울어져서 울컥하고 눈물이 났는데,

그떄 이 노래의 가사가 다시 한번 생생하게 들렸다.

In other words, hold my hand
다시 말하자면, 내 손을 잡아주세요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다시 말하자면, 내게 키스해 주세요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다시 말하자면, 언제나 진실해줘요
In other words, I love you
다시 말하자면, 그대를 사랑해요

 

아.. 바보같이 이 노래는 사랑 노래구나.

단 하나에 대한 사랑을 여러버전으로 (다시 말하자면 in other wirds)

사랑을 속삭이고 맹세하는 노래라는 걸 왜 깨닫지 못하고 살았지?

 

 

지난 일주일 내내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여튼 이 노래의 기원이 궁금해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다가, 다시금 울컥하고 마음을 울린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닐 암스트롱 영결식장에서 울려퍼진 노래도 이노래였단 말이지.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UITwhy5-Vas

 

 

생이 끝나가는 순간,

달로 간 첫번째 지구인이 회귀하고 싶은 장소는 어디였을까

생의 마지막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어디에 있었을까

 

'달로 떠난 사나이'로 그를 기억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달로 놓아 보내주는 것일까?

 

Fly me to the moon
나를 달로 보내 줘요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저 별들 사이를 여행하게 해 줘요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목성과 화성의 봄을 내게 보여줘요

 

뭐 이런저런 생각이 뒤엉키면서

단 하나에 대한 무한한 경애로 압축되는 삶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그리고 닮아보고 싶단 생각을 해봤다.

 

 

Fly me to the moon
나를 달로 보내 줘요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저 별들 사이를 여행하게 해 줘요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목성과 화성의 봄을 내게 보여줘요
In other words, hold my hand
다시 말하자면, 내 손을 잡아주세요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다시 말하자면, 내게 키스해 주세요
Feel my heart with song
내 마음을 노래로 채워 줘요
And let me sing forever more
영원히 노래할 수 있게 해 줘요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내가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찬미하는 건 그대 뿐이에요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다시 말하자면, 언제나 진실해줘요
In other words, I love you
다시 말하자면, 그대를 사랑해요

 

 

 


 

고향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만두 주기자랑 마포숯불갈비에 다녀왔다.

1년에 최소 다섯번. 고등학교 때부터 서른네살까지 꾸준히 다녔던 고깃집.

30년 가까이 연남동 기사식당 골목을 지키고 있던 마포숯불갈비는 어제로 문을 닫았다.

 

 

"사람이 변하면 버텨낼 재간이 없어.

동네 사람들이 바뀌었으니, 건물이고 골목이고 버틸 수가 없는거지.

다 사람 따라 변하는거지"

 

이 동네서 사십년 가까이 살았다는 아주머니가 해준 말이다.  

 

 

나같은 겁장이는 돌아갈 곳이 없을까봐 늘 두렵고 초조한데,

서울은 너무나 쉽게 예전의 자신을 버리고, 새 모습으로 갈아입는다.  

사람들은 과거의 흔적을 아쉬움 없이  지워버린 채, 늘상 새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매정하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연남동 기사식당 마포숯불갈비.

밑반찬 하나하나가 맛있고, 세지 않은 간에 냉면에 싸먹으면 세상 어느 음식도 부럽지 않던 우리 동네 최고의 갈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언제나 '즐거워 행복해'라는 풍요로움으로 기억나던 갈비.

   

이제 두번 다시 '마포 숯불 갈비를 먹을 수 없다.

하루 더해지는 서울살이. 오늘도 나는 고향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이금댕과 마지막 수영을 하고, 다쿠앙에 모였다.

 

동네파는 제각기 다양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금댕이 가진 탁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때밀기다. 마지막을 예감하면서 수영장 샤워실에서 금댕이는 나와 주기자의 등을 밀어줬다. 주기자는 자신이 망원시장에서 구입한 때밀이 타월 덕분에 잘밀리는 거라고 했지만, 우리는 아닌걸 안다. 이십여년간 수영장에서, 찜질방에서, 각종 온천에서 이금댕은 어떤 때밀이 타월로도 놀라운 능력을 펼쳐냈다.

 

이제 이금댕은 남편이랑 수영을 다녀야 한다. 수영장 사워실엔 남편과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떄문에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다. 나는 마지막이란 생각에 이금댕의 등을 꼼꼼히 밀어줬다.

 

 

 

금댕이는 이번주 토요일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신혼집은 부천인데, 연남동이 아닌 다른 곳에 사는 금댕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주기자가 어제밤 금댕이랑 헤어지고 단체 창에 글을 띄웠는데, 만취했던 나는 아침에야 확인했다. 덕분에 출근길부터 눈물이 왈칵 났다.

 

이금댕과 헤어지던 길이 고3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나와서 헤어지던 길이랑 너무 똑같아서 서글퍼졌단다. 마냥 계속될것만 같았던 그 길에도 '마지막'이 있다는 걸 깨달아서 속상했다고 한다.

 

'이금댕 시집가서 잘살아. 행복하게.
당연하다고 느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매우 큰 행복이었어'

 

나도, 나도. 나도 그렇다.
당연하다고 느낀 동네파와 함께한 일상의 모든 것들이
나에겐 너무 큰 행복이었다.

 

봄과 가을마다 계속됐던 소풍, 엠티,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함께했던 마니또 커플놀이, 매년 빠지지 않고 챙겼던 동네파 10명의 생일파티.... 그리고 수영장을 함께가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

 

정말 셀수조차 없다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근 이십년. 함께했던 수많은 기억들을 곱씹으며

나는 내 친구의 어느 지인이 했다던 말을 떠올려봤다.

 

 

동네파는 나의 단단한 방패였다.
'나를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견고한 성벽이었다.

 

세상 이곳저곳에서 생채기 나고 상처받고 돌아와도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옆엔 동네파가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의심 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내 모든걸 알아주는 가족인 동네파가 해주는 말이었기에.

 

나는 동네파가 있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온전할 수 있었다.

 

 

이 무수한 것들이 지금 당장 '마지막'을 선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다쿠앙에 앉아,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깔깔대는 내 친구들을 바라보며
이 고마웠던 방패들이 어느 순간, 나를 두고 말 없이 떠나가겠구나. 란 생각을 해봤다.

 

우리의 이름은 동네파인데, 동네를 떠나는 친구들이 생겼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이 생겼다.
동네파보다 더 가까운 '남편'이란 '베프'가 생기고
우리와 함께 놀기보다는 엄마라는 사명에 충실해야할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그건 저항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내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서럽지만 엉엉 울면서 붙잡고 매달리는 대신,
'고마웠다'란 인사로 보내주기로 했다.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20년간 신나게 놀았으니,
이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서로의 방패이자, 성벽일 것이며,
잠시 서로의 삶을 열심히 살다가
은퇴무렵 다시 모여서 함께 신나게 놀 것이기 때문이다.

 

 

 

동네파, 고마워. 나를 지켜줘서.
너희들이 있어서 나는 언제나 나로서 살아갈 수 있었어.

 

 

 

 

 


격조했다

카테고리 없음 2015. 2. 23. 16:20

의도했던 바는 아닌데... 여튼 블로그에 글 남기는 게 격조할 수 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방송 날짜가 지지난주 토요일이었고, 그 뒤로 일주일 쉬는 동안엔 좀처럼 인터넷을 하지 않으니까. 일기를 남길 수 없었다. 여튼 바빴다. 바쁘게 일하고 난 뒤에는 바쁘게 놀았다. 그리고 바쁘게 쉬었다. 그리고 씩씩하게 새로운 관계 모색에 힘쓰기도 했다.

 

 

+

여튼 이번 방송은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원고 직전 50여 시간동안은 고작 2시간 30분 잔게 전부였다. 그 이전에도 새벽에 들어와서 오전에 기상하고 다시 새벽에 들어오기를 반복했으니까 노동량과 품위 대비 어마어마한 열정을 쓴 셈. 결과는 만족스럽진 않지만, 내가 쏟은 노력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다.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꼭 했어야만 했던 프로그램이고 대의나 방향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었고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었고 같이 일하는 스텝들의 노고와 한계까지 쏟아낸 나의 열정이 뒤엉키고 버무려져서 여튼 이런게 방송하는 맛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같이 일했던 피디와 내 자잘한 일들을 가장 많이 도와준 막내작가에겐 작은 선물을 건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을 한권씩 선물했는데, 이런 마무리 역시 개인적으론 마음에 든다. 수탈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땅을 취재했으니까.

여튼 스스로 머리라도 쓰다듬고 싶다. 고생했다. 수고했어. 그리고 잘했다. 라고.

 

 

++

새로운 인간관계는 계속 탐색중이고 모색중이다. 아 여기다 글남기는 건 좀 그렇고, 새로운 블로그라도 하나파야하나. 이 기억들을 기록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ㅍㅎㅎ. 내가 정녕 원하는 것과 하기 싫은 것을 명료하게 바라보고 그에 합당하는 대상을 만날 수 있으니 꽤나 만족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모자라다. 오죽하면 츄이에게 "해는 저물고 나의 갈길은 멀다"라는 메세지를 보낼 정도다. 33년간 부족했던, 결핍됐던 부분들이 마모되고 아무는 걸 느낀다. 완전할 순 없겠지만 온전할 수 있게 노력하며 살고 싶다.

 

 

+++

빡세와 홍구 차를 타고 인천까지 가서 무려 사주를 봤는데...;;; 엉망진창 엉터리인 사람에게 5만원을 날리는 바람에 분기탱천했다. 한마디로 사주를 못보는 사람이 왜 돈을 받고 사주를 보는 가에 대한 분개...;;;라면 분개일까. 내 상황이랑 하나도 맞지 않고, 듣기 싫은 말도 마구 던지는 바람에 아주 불쾌했다. 여튼 그래서 다시 사주를 보고 싶다.란 결론에 다달았다. 하도 그지같은 이야기를 두서 없이 많이 당해서 불쾌하다. 이 불안 역시 다른 사주(응?)로 빨리 치유하고 싶다. ㅍㅎㅎ

 

 

++++

이번주에는 금댕이가 결혼한다. 동네파야 언제나 함께하겠지만, 영원을 맹세하며 뛰놀던 우리들이 예전만큼 자주 모이긴 쉽지 않겠구나 체념하고 있다. 쾌활하고 낙천적인 금댕이.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함께 해준 금댕이. 금댕이가 결혼해서 슬픈 것이 아니라, 그 소중한 시간들을 두고 멀어져 가는 것이 슬픈거다. 우리동네가 아닌 곳에 신혼집을 차리고 다른 동네를 '우리동네'라고 부르겠지. 우리들보다 조금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이 생길테니 예전만큼 함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아마도.

 

 

 

+++++

또다른 사랑하는 친구가 아프다.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내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기도해줘. 라고. 본인이 아니고서야, 감히 할 수 없는 말이지만 나는 그 친구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 친구가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그래서 해선 안될 말일지 모르지만 메세지를 보냈다.

삶은 그토록 치열하고 엉망진창이 된 채로 싸우더라도 지켜볼 가치가 있는 거라고.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그 친구를 너무나 아끼기 떄문에 부디 내 곁에 오래 있어달라고, 날 위해 싸워달라고 말했다. 친구가 다시 예전처럼 기운 차렸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싸움이 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회복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나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내 친구를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그 옛날 내가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싸이월드 제목에 자기가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 적어 놓는 거였다. 꼭 나의 전부가 내 '일'인것 같은 느낌을 주니까.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내가 프로그램이 '내 전부'가 되는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나름 노력하고 있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우울하다. 내 존재확인이 어려워진 셈이니까. 출장간 피디랑 새벽 한시 두시 아침 여덟시 아홉시 통화를 마다 않으며 국회의사당 의원실을 하루 두번세번 들락날락 하면서 하고 있는데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일거라고 생각했던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이렇게 우울함이 극에 달한다. 꼭 해야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럴수도 없고.

 

페이스북은 푸념용으로 블로그는 기록용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푸념차 올려본다. 더 우울할 때 찾아보고 위안을 얻거나, 기쁠때 열어보고 안도하기 위해 올려본다.  

 

 

 


근황

카테고리 없음 2015. 1. 16. 12:52

기록으로 남겨두는.

 

해볼만한, 그리고 해야만 하는 아이템을 진행하고 있다. 일을 해야할 이유가 생기는 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받는 돈은 턱없이 적은데 자꾸 열심히 파게 되잖아... ㅠ ㅠ 뒤져볼 문서가 너무 많아서 (동영상 없는 서류만으로 20기가가 넘다니...;;;) 평일엔 무조건 야근을 하고 밤 10시 11시 사이에 버스를 탄다. 버스에 타서는 학원서 나눠준 연습용 문장을 중얼중얼 대고 있다. Do they가 입에 붙지 않고, Does she와 Did she가 섞여서 입에서 튀어나온다.

 

곧장 집으로 안가고 되도록이면 헬스장에 들린다. 10분 허리 옆구리 운동만 하고 돌아오더라도 들린다. 반드시. 난방비 아끼는 우리 집에서 샤워를 하는건 너무 춥고 고된 일이다. 머리를 기르면서 머리카락 말리는 일이 이렇게 고되고 괴로운 일임을 매일 자각한다. 커트로 다시 잘라버릴까 생각도 드는데, 커트에서 머리카락이 묶이는 그 시간까지 감내했던 인고의 기억을 떠올리면 두번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 망설이게 된다. 여튼 긴머리 사람이 머리카락을 제대로 말리려면 드라이기로 20분 이상 꼬박 매달려야 가능하다는  깨달았다.

 

푸념조에 글을 쓰긴 하지만, 좋은 사람과 배워가며 일하는 기쁨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남기는 글이다. 같이 일하는 피디님은 정말 좋은 분이다. 자잘한거 한두개 던져오면 바깥을 돌고 와서 열배의 건들을 물어오고 있다. 덕분에 파야할 범위도 늘어나고 공부할 것도 차곡차곡 쌓여가지만 일단 일이 재밌다는 기쁨에 도취돼 있다. 며칠전에는 밤 아홉시에 뜬금포로 섭외가 해결되는 바람에 인터뷰이가 술마시고 있는 자리에 출동해야하는 날도 있었다. 그자리 잘못갔다가 다구리 당할뻔(?) 했지만, 피디님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ㅍㅎㅎ. 되돌아오는 택시안에서 이 얼마나 흥미 진진한 경험인가 곱씹어 보고 피식댔다.

 

생활 리듬이 깨져서 돌아오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밤 열시 열한시 퇴근이 잦아지고 짧게라도 헬스장을 가든 집에가서 씻고 잠을 자든 밤 열두시 이전에 침대에 눕는게 힘들어졌다.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늦어졌는데 이젠 아침에 눈뜨면 아홉시. ㅠㅠ 이게 3주 이상 계속되다 보니까 고칠수 없는 습관이 돼버렸다. 시간표가 이렇다 보니까 삼육학원을 다시 다닐 엄두가 안나고 토요일에 나갈 수 있는 영어 수업을 끊었는데, 뭐 일단 다닌다는데 의의를 두겠다. 하반기부터는 다시 좀 정신차리고 영어 공부해야지.

 

일월 초에 놀러나갔다가, 의도치 않게 인연이 트이는 경험을 했다.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 형성을 해보고 있는데 이 점에 있어선 정말 미숙해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실 내 감정이 무언지도 알기 어렵다. 놓치고 싶지는 않은데. 사실 미쳐보는데 자신이 없기도 하다. 이게 용기인지, 객기인지 구분이 안간다. 가끔씩 내가 뭐하는거지 현타가 올 때도 있고, 그래도 막상 만나면 막 간지러운 느낌도 나고. 정리해보자면 미칠만큼 용기가 나지 않는 상태인거 같다. 그래서 자꾸 망설이게 되는거겠지. 시간의 한계가 정해져 있어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단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여튼 이것도 곧 결정을 해야겠다.  

 

서른네살 1월, 즐겁게 일하고 있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도 생겼다. 그리고 좀 더 '찐한' 12월을 기다리고 있다.

신난다.

 


 

아침에 회사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때마다 떠올린다.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마시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게

어언 며칠째인가?

 

'좋아하는' 이라는 형용사는 만나면 만날수록 행복의 가치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해지는 것 같다.

 

 


치부

카테고리 없음 2015. 1. 11. 13:07

 

온전한 인간이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 자신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 편이니까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왠만한 용기를 갖고도 힘들고 아픈 일이다.

결심을 갖고 드러내는 것도 힘든데 은연중에 내보이게 되면 더 쓰리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괜히 친구들에게 객기 어린 고집을 부리기도 했는데,

(몽니 부리는 내 모습에 나 자신조차 놀랄 정도였다.)

여튼 그러다 말고 술김에 내 아픈 상처까지 들춰내고 말았다.

지금도 그 말들을 떠올리면 울컥 울컥 한다.

이게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범위의 친구들이어서, 더 했던 것도 같기도 하고,

내 상처를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은 내 상처를 이해 못한 것 같아서 수치스럽다.

 

여튼 온전해 지고 싶다.

눌려 있던 것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오는 건 사양한다.

 


근황

소소한 수다 2014. 12. 31. 10:50

19일 원고를 털고 총 9일을 쉬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술마시고 호빗보고 술마시고 미생보고 술마시고 호빗 재관람하고 술마시고... 를 반복한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엊그제 월요일부터 재출근이었는데 새 아이템은 공부할 내용이 제법된다.

덕분에 지금까지 줄창 야근을 하고 있네.

어제는 그 야근 도중에 27기들을 만나서 다쿠앙에서 술을 마셨다. 좋은 애들이다. 심성이 바르고 착한 애들. 그리고 익숙하기까지 하니까 더할나위 없이 편하고 소중한 애들. 예전엔 매주 일요일마다 언제나 함께였는데, 한 두명 씩 떠나가는 자리가 보여서 서글퍼지기도 하고, 함께였던 그때가 어느덧 13년 14년 아주 예전 일이라 쓸쓸해지기도 했다. 

 

소모임 비슷한 것을 해보고 있는데 금새 흥미가 식어버렸다. 적응이 어려운 점도 있고, 내년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할텐데 실패지점이 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 전인권밴드 콘서트에 간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 같은 외침을 들리면 뭔가 번쩍하고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감정이란 건 스스로 판단 불가능할 때가 있고, 겹겹이 옷을 입고 나타날 때도 있으니까. 
이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 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미련'같은 찌꺼기를 남기기 보다는 명확하게 인지하고 행동하는 편이 훨씬 이롭다.고 
생각했고, 대게 나는 생각하면 행동하는 편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운 셈.
이번에도 하길 잘했다.


20세기 소녀 2014. 10. 31. 14:08

누군가 덥썩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곤 같이 추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출 줄 모른다고 말했지만, 이미 시작돼 있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꼬았다 풀었다가를 몇번 반복하면서
밀짚페도라를 쓴 190은 족히 될만해 보이는 꺽다리 친구는
자신을 독일에서 온 요한이라고 소개했다. 

나같은 몸치가 과감하게 그 친구의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건
건너 섬에는 번개가 치고 있고, 바람이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행으로 같이간 동생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누나, 한국에는 이런거 없어요."

그래, 그말이 맞다.
번개가 치는 바닷가에서 춤 출 수 있는 밤 따위 한국엔 없다.

춤을 추는 사이사이,
찰방찰방 때로는 발밑에서 때로는 무릎까지 파도가 부딪히고 채였다.  
번쩍 번쩍 클럽의 미러볼 대신, 건너편 섬에 번개가 내리쳤다.

요한은 엄청 능숙한 리더였는데,
10분 넘도록 넘어질듯 넘어지지 않으면서 춤을 출 수 있었고
스텝은 꼬이는 듯 하면서 단 한번도 꼬이질 않았다.

예거빔의 기력이 다했을 때 결국 나는 바다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것조차 너무나 유쾌해서 우린 한참 배를 잡고 웃었다.

어제 주기자가 스윙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나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쿠바에 간다면
울띠마, 노체, 베사메가 주는 안타까움을
짧은 스페인어로 더듬거리기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 같다. 

간신히 몇걸음 떼는 것이 아니라,
십분, 이십분, 한 시간...
 춤이 길면 길수록, 나는 그 밤을 오래도록 찬양할 수 있겠지.

삶은 짧고, 순간순간이 귀하다.


어른의 노래

20세기 소녀 2014. 10. 28. 11:07
나에겐 언제나 어른의 노래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노래들. 

가사는 과잉이라고 할만큼 호기로움에 가득차 있었고,
세상엔 인정해주지 않는 가치라 할지라도
하나를 향한 열정이 충분이 값어치 있음을 말하곤 했다.
아직 네가 이루지 못한 젊음이란 이런 것이고,
네가 어른이 되면 이런 세상을 만날 거란 걸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스무살이 됐지만 그의 노래에 등장하는 어른은 되지 못했다.
토익점수와 스펙 같은 단어가 등장할 때 '학번'을 부여받은 세대였으니까.
존재에 대한 탐구나, 낭만, 열정 같은 단어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들으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어. 언젠가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거야.
언젠가 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거야. 

안녕히 가세요.
당신이 노래를 불러줬을 때
나는 그런 젊음을 꿈꿨고, 그것이 실재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실재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땡볕 아래 건포도처럼
그것은 말라 비틀어지는가?

아니면 오래된 상처처럼
곪아터지는가?

썩은 고기처럼 악취를 풍기는가?

아니면 시럽을 끼얹은 사탕처럼
딱딱하고도 달콤한가?

어쩌면 그건 단지 무거운 짐짝처럼
축 늘어져 버릴까?

아니면 그건 폭발해버릴까?

-랭스턴 휴즈(1902~1967)



탈당했다.



건너편 섬에서는 번개가 내려치고,
발아래로는 파다고 밀려들어왔다.
머리 위로는 펼쳐진 키큰 야자수와 밤하늘.

인당 원버켓을 한 뒤,
바다로 뛰어들어 인생에 다신 없을 춤을 추는 우리를 향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hUanYZvES3I


왼손을 뻗어 팔을 든다. BCD의 공기를 빼기 시작한다. 코로 숨 쉬는 것을 멈추고 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고 뱉어 본다. 수경 밑에서, 수경으로, 수경 위로 천천히 수면이 올라간다. 경계가 아득해지고 깊숙이 잠기기 시작하면,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사는 곳은 '푸른색의 가시광선을 뱉어내는 물'로 70%가 이루어진 행성이다. 

짧고 간략한 기도를 올린다. 
용왕님, 오늘 문을 열어주셔서 제게 바다세상을 허락해주세요. 

두번째간 춤폰 바다는 수채화 색이 아니라 파스텔 톤 바다였다. 보이는 세상 전체가 투명하지 않은 파란색이라 더욱 현실 같지 않고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 위로 노란 물고기 떼가 헤엄치고 발 아래는 투명한 은빛물고기들이 날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그것을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것일까. 나는 40분간 눈 뜨고 꿈을 꾸고 있었는데 말이다.

마지막 펀 다이빙을 하러 간 날, 나는 옆으로 헤엄치는 법과 산호와 바위 사이로 조금더 바짝 붙어서 유영하는 법을 배웠다. 평소보다 길었던 다이빙 말미에 잊을 수 없는 장관을 만났다. 드넓고 평평하게 펼쳐진 산호의 숲을 너머엔 탁하고 트인 공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를 검은 물고기 떼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언젠가 들은 적 있는 이야기였다. 집채만한 까마귀 떼가 깊은 침엽수 숲을 가로지르며 하늘을 검게 뒤덮는 이야기. 나는 왜 그것이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바로 지금 내 앞에 산호의 숲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검정 물고기 떼와 마주하고 있는데...  

흩뿌려진듯한 도열과 나열이 적절하게 섞인 세상. 개인과 군집, 복사해 붙인 듯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같지는 않은 패턴의 반복. 셀수 없이 많은 집단과 개체를 만나면서 이 세상이 흠 하나 잡을 것 없는 황홀경이란 경험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방향은 무엇일까? 개인의 질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집단과 집단이 만나는 공간. 아주 아득한 세월을 거쳐 종(種)을 보존하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최선의 선택이 각기 다른 향연과 춤으로 휘몰아쳐 완성한 시간.

개체의 살고자하는 노력이, 각기 다른 집단 간의 남고자하는 투쟁이. 어울어지고 제멋대로 굴러가다 보면 이런 아름다움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진화이고, 진보일까. 그리고 이것이 내가 사는 인간 세상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들을 해보면서 감탄 외에는 할 수 없는 그림 속에 머물렀다.  

(2014. 10. 9-12.)


 




서울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다 성조가 섞인 한국말을 쓰는 재중동포를 만나기 쉬운 것 처럼, 태국 관광지 곳곳에는 타나카를 바른 버마 사람들이 있었다. 화장품도 아니고, 진흙도 아닌 뺨 가득 바른 분(粉)이, 이곳 태국의 전통이 아니라 한참 떨어진 버마의 전통인 걸 알았을때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들을 이 먼 곳까지 와서 노동을 시작한 이유에는 태국 꼬따오란 섬을 찾아, 돈을 쓰겠다고 마음 먹은 내가 있을테니까.

2년 전, 처음 방문한 꼬따오의 풍경은 10년 전 이 섬에 왔던 친구의 말과는 많이 달랐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사람들의 발. 10년 전 이 섬에는 신을 신는 현지인들이 별로 없다고 했다. 맨발로 다녀도 충분한 부드러운 흙길과 모래길이 섬이 가진 길의 전부였으니까. 언제부터 맨발로 걸어도 충분했던 이 섬에 아스팔트 도로가 깔렸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사람들은 아스팔트 길을 위한 신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을까.
 
가만히 있어도 손등까지 땀띠가 나는 이 여름나라 사람들이 불쇼를 시작하고 현지인들이 외국인을 위한 뜨거운 불 옆에서 밥을 짓고 요리를 하는 섬. 이미 수십년째 관광으로 먹고사는 이 나라에서 제국주의 자본 세계화 개발이런걸 떠올리려는 건 아니었고.
자본의 한 끝에서 돈을 쓰겠다며 온 주제에 느껴선 안되는 알량한 죄책감일진 모르겠지만, 
몇몇 광경들을 볼 때, 마냥 외면하고 있기란 쉽진 않았다. 

이번 여행 즐거운 순간은 참 많이 있었지만, 웃을 수 없는 순간도 많았다.
다이빙하러 들어가는 순간 내 핀을 잡아주는 소년이 우리나라 나이로 열넷 열다섯살인 걸 알게 됐을 때, 공기통을 잡아주는 아저씨의 뺨에 발려져 있는 분이 사실은 태국과 한참 떨어진 땅 버마의 전통이라는 걸 알고 났을 때, 가슴 한편을 저릿하게 하는 양심의 가책이 동반됐다. 
매일같이 내 숙소로 타올을 가져다 주고 침대를 정리해주는 소녀에게 고맙단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선 '커쿤카'대신 '쩨주띤바레'란 인사를 건네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딱봐도 중학생 정도의 나이. 앳된 얼굴을 가진 소녀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종종 통화하는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가족이 아닐까 생각이들었다. 그게 가슴 아파서 매일 같이 침대 위에 30밧을 놓고 나왔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그게 잘한 일인진 모르겠다. 안데스 산맥 인디오들의 아이들은 북미와 유럽관광객에게 팔찌 하나를 1달러에 팔기 위해 학교에 나갈 기회를 빼앗기고 있었으니까. 

누군가의 치열한 삶을 함부로 동정해서는 안된다. 자칫 누군가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만심이거나 우월감일 수 있으니까. 가슴아파하는 그 행위만으로 속죄 하거나 회개했다고 착각에 빠지기 쉬우니까.
그런 얄팍한 감성에 빠질 시간에, 더 건설적인 뭔가를 만들자고, 근본적인 체계를 완성하고 보호망 같은걸 갖추자고. 뭐 예전엔 호기로운 결심을 세우곤 했던 적이 있었다.근데 그게 될까? 요즘 나는 한껏 회의적인 생각에만 빠져 있어서 말이다. 

더 발전하고 더 나아갈 것을 말하는 세상의 외침은 달콤하다. 마약같은 환각을 내 손안의 현실로 만들어줄 것 같다. 자본주의 세상 아래서 이역만리 타향까지 와 노동하고 돈을 벌고 살아가고자 하는 이 치열함이 모두의 안녕과 전체의 행복을 향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 사실일까. 
실은 나는 그 질문엔 언제나 부정적인 답만 말해왔던 터라, '그럴거야'라고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롬푸라야 버스 기다리면서 / 람부뜨리 거리 오직 버티기 위해서 시킨 요리

꼬따오 도착 <바다소리들> 일도쌤네 집에서 진수성찬




야간다이빙 직전 기름칠좀 하겠다고 들어간 꼬따오 선착장 근저 버거집.


아침 다이빙 나가기 전 한끼를 해결을 위해 도전한 30밧짜리 아침식사


코티지에서 마신 셰이크



삼겹살 화로집 쏨땀... 그리고 나는 땀띠를 얻었다...


드림바에서 처음 마셔본 시밀런 오프


다시 아침으로 30밧짜리 든든한 단백질+탄수화물 보충


용건이랑 내가 쏜 일식당, 우리가 한번 먹어봤습니다~


역시나 내가 사랑하는 커티지 케밥


꼬따오에서 보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셈하고 우울해져서 팔랑고에서 야무지게 피자한판을 해치웠다.


용건이가 꼬따오 나가기 전에 먹어보라고 추천한 꾸스꾸스샐러드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왜 이 음식이 존재한다는 걸 서른 세살이 돼서 알게 된거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일주일가까이 카페인 섭취가 부족하고 디저트가 궁금해서 도전 그리고 성공.  


모히또를 마시면 3년전 그 밤이 생각나서... 어후 파도소리도 똑같고 다 똑같은데 여기엔 말레꼰 방파제가 없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현구랑 방콕 넘어와서 한 닭다리... 고기는 먹어도 땀띠가 심해서 알콜을 섭취할 수 없었다.


노점에서 먹어본 똠얌꿍. 종업원이 팍취를 뺐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주길래 나는 팍취를 조항한다고 울부짖어서 첨가해줬다. 새우 수염이 어찌나 강렬하신지 수염 먹다가 턱에 구멍날뻔함. ㅎㅎ 


내가 카오산에서 술마시고 신나게 놀것도 아니고 저녁 비행기로 떠나는 날 남는건 노점의 먹거리 밖에 없단 생각으로 쉴새 없이 먹어봤다.


2년간 꿈꿔왔던 팟타이 집에 월요일에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상실감에 주저 앉을 수 없어서 보이는 현지인들 밥집 아무데나 들어가서
과감하게 반찬을 5개나 올려 먹었다.


작렬하는 두시 태양을 피해 잠시 카페인 섭취


이날 코코넛으로 범벅된 하루였다. 코코넛아이스크림


코코넛 오일로 맛사지 받은 다음에 먹은 코코넛 과자 +차


이 국수를 먹고 난 뒤 현구에게 카톡으로 화를 냈습니다.
왜 이 맛집을 이제야 알려줬냐고...
세끼를 다 이 국수로 먹을 수 있을것 같은데 ;ㅁ;


방콕에서의 마지막은 코코넛 쉐이크. 또만나요 먹거리들~


그런거

카테고리 없음 2014. 9. 16. 11:07
왜 그런거 있잖아.
내 또래 남자애들이 종종 말하는거.
자기 다시 태어나면 상콤하고 귀엽고 애교많은 여자로 태어나서
박지성 같은 남편에 집안 좋은데 시집가서 
십자수 꽃꽃이 배우며 애들 키우며 맘 편히 살겠다는 다짐같은 거.
나도 그런거 하나 있는데 말이지.

자정 무렵 짙은 안개 칠흙같은 어둠을 헤치고 나타나서
머리에는 명품 페도라를 삐딱하게  
턱선은 두꺼운 구레나루로 뒤덮고
겉옷은 종아리를 덮을 정도의 긴 롱코트
왼손에는 금장 된 회중시계
오른 손에는 엄지 손가락보다 더 두꺼운 시가를 들고
담배 연기 자욱한 바BAR 안으로 들어서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미녀 언니들한테 윙크 날리다가 
세월에 마모돼 가래 끓는 거친 목소리로
'소녀는 살고 나는 죽는다' 정도의 대사 날리면서
통크게 황금벨 울리는 거.
그런거. 



뒷담화

카테고리 없음 2014. 9. 11. 16:58

어제는 대체휴일이었는데, 나는 당연히 출근을 했다. (덕분에 연휴첫출근병 따위를 겪진 않았다.) 여튼 일하는 도중, 총 다섯팀에게 놀자는 연락이 왔다. 앞에 네건은 여차저차해서 거절했는데 퇴근해볼까 하던 차에 받은 연락은 거절 할 수 없었다. 내가 고쳐야 하는 버릇 중에 하나가 약한 소리 앓는 소리 하는 사람에게 관대하다는 거다. 생각해 보니 이제 쟤를 그만 만나야지 마음 먹었던 친구 중 하나 였는데 말이지. 그걸 고새 까먹곤 앓는 소리하고 우울한 목소리 내길래 그래 니가 그렇게 힘들면 만나주마 하고 만났다. 뭐 만나고 난 뒤의 사유의 과정은 언제나 똑같았다. 내가 왜 이런걸 듣고 있지? 대체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몇번이고 반추하면서? 차마 동조할 수 없는 말들 이 나열되는데 그냥 앉아 있었다. 반박하면 문제가 아주 꼬이고 기가 빨리며 말다툼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에 그냥 두주먹 꾹 쥐고 참았다. 아... 뭐 옛날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친구였기 때문에 여성을 나이로 품평하는 거나 물건처럼 표현하는 것까진 참을만 했는데 세월호 유족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따박 따박 그애가 저지르는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폄하는 오류 같은걸 지적할 순 있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런다고 바뀌지 않으니까. 그 와중에도 뭔가 지금 얘기 처한 아슬아슬한 벼랑 끝 상황이 얘를 이 정도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쓰럽기도 하고. 오랜만에 찾아와서 얘기 나에게 원하는 건 대단한게 아니라 넌 잘될거야 하는 위로 같은거란게 너무 빤히 보여서 짠하기도 하고. 여튼 대화내용은 어느면에선 굉장했다. 내 또래의 남자애들이 이런 표현까지 쓰는구나를 알 수 있어서 놀라웠다. 뭐 이 나라 이 사회 이 구질구질한 세상. 기대한 건 아니지만 상상 이상이란건 확실한거라고 믿겠다.
그 와중에 나는 아닐거라는 엉뚱한 꿈을 꾸는 사람인거고.



아침 단상

카테고리 없음 2014. 8. 22. 10:02

올 겨울 취소된 일정을 떠올리니 더욱 여행이 떠나고 싶었다. 텀블러를 들여다 보다가 지구상 곳곳의 동물들의 모습을 담은 페이지를 찾았다. 선명한 붉은 빛을 가진 아프리카 도마뱀, 흰사막 여우, 친구와 재회한 코끼리, 안기 낀 숲을 달리는 영양...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 저마다의 삶을 사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 확인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삶을 확인한다. 생명의 실체를 짐작해 본다.
그리고 내 삶과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이 세상 많은 생명의 것들을 강탈하고 앗아간 결과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아침 핸드폰을 들여다 봤다. 자식이 맞이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목숨을 건 아버지의 사진을 접한다. 그 사진을 접하고도 분노와 공감 모든 감정을 꾹 눌러 담은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내 삶을 돌아본다. 이 외면이 삶의 방법인가, 삶을 살아갈 유일한 방법인가. 그럼 이 방법은 이 사회만의 방법일까, 다른 출구는 없는 것일까. 잡생각이 썰물처럼 몰려든다. 

사는데 도움되지 않는 생각들이다. 세상은 내 한몸의 안위를 내 육신의 평안을 통장의 잔고를 염려해야할 때라고 말한다. 주변을 둘러봤다. 여의도 거대한 빌딩 숲 답답한 하늘 아래선 모두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은 나에겐 뜯어고치고 새로 지을 힘이 없다는 걸 안다. 없다면 세상을 탓하고 한탄할 힘까지 없으면 좋으련만 입은 살아서 나불나불 대길 좋아한다. 이렇게 쓸모 없으니 사실, 주둥이라고 불리는게 맞을지 모르겠다.   

이런 부조리를 목격하면서도 외면하는게 '사는 법'인가 싶다. 지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내가 사는 이 세상과 차이가 있긴 한 걸까. 고통의 존재와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눈감고 애써 외면하는 나 역시 이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부분이자 부품일 뿐이겠지.
오늘은 마음이 너무 우울해서 이런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커트 보네거트의 한마디로 냉소하고 싶다.
'그렇게 가는거지'



*보다 청춘 덕분에 주변에서 페루 어땠어 어땠어 묻는 경우가 많다.
흐릿해진 탓에, 사진을 다시 찾아보다가
아 이랬었지. 이런 말을 나눴지, 그걸 먹고 그 풍경을 보고
그 안에 있었지. 되새기고 있다.

 



*브스를 떠나며 나는 쓰네
잘있거라, 뚫는재미 맛집아
골라먹는 재미가 솔쏠하던 식당밥아
구성이 훌륭하던 다이어트 도시락아, 잘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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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끼 매번 반복하는 일상이라고 해서
미각이 주는 기억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비록 나는 이곳에서 육킬로가 쪄서나갈지언정
즐거운 기억이었다.
쪘을지언정 없애고 싶지는 않은...



세어보니 얼추 십년만이다. 금요일엔 대학 학생회관 동기들을 만났다. 자대 사대 소프트웨어대... 같은 전공 하나 없었지만 1학년 봄 총학선거때 만나서 대학시절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하고 가장 많은 일들을 해온 애들이었다. 그 얼굴들을 다시만나니까, '아, 이제야'란 탄식이 나왔다. 숨이 트이듯 참아왔던 밭은 숨 같은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을 할 사람들과 마주했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과정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지 말자고, 그러지 말자고 자기 부정같은 것 하지 말자고 수백번을 되뇌여도 실은 아픈건 아픈거다. 스물 하나 스물 둘에 꾸던 꿈들은 결국 미완으로 남았고, 끝내 현실이 되지 못할 것을 예감하면서, 때때로 나는 그것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견디기 힘든 것 투성이인 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고, 용납할 수 없는 허물 투성이인 나 자신의 일부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비슷한 꿈을 꾸면서 같은 것을 말하던 그들을 만나서 말을 하고 싶었다. 

구운 새우는 맛이 있었는데 소주가 무척 썼다. 해물라면을 시키면서 나는 2002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할 때 이야기를 꺼냈다. 마땅히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친구들이어서 말했다. 그때의 꿈을, 그때 그렸던 5년 후 10년 후를 이야기 했다. 

이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다.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걸론 부족했다.
내게 필요한 건 나도 아프다고 나도 아파하고 있다고 말해줄 사람이었다. 들이킨 술잔의 숫자는 자꾸 늘어갔고 밤은 깊어지고 드문드문 비가 내렸다. 다같이 10년 전 꾸던 꿈을 조금씩 더듬어갔다. 화석처럼 남아 먼지를 거둬내지 않고서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희미한 흔적들... 그 흔적이 스무살 한 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반짝반짝 빛을 내는 보석같은 존재였는지... 그 존재를 알아줄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는 수다는 계속됐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한 부분을, 날것처럼 내보이는 내 상처를, 그 선명한 통각을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과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것이 없었다. 이만한 위안이 또 있을까. 아마도 위로 받을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토록 이 친구들이 보고싶었나 보다. 


지난 토요일엔 없는 짬을 내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보고 왔다.
음악이나 영화 이야기 앞에 '좋은'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일이다. 그 '주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일면에 와닿느냐가 '좋음'과 '나쁨'을 하겠지.

영화를 보는 도중, 박제 된 개가 나왔고 뜬금없이 통이의 마지막이 기억났다. 그 둔탁함이 주는 뻣뻣함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님'의 증거였으니까. 통이가 남긴 상처는 깊었고, 나는 지금도 때때로 아파한다. 다시 상기된 통증에 나는 한동안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는 와중에 화면 속 마담 프로스트의 짤막한 메모가 나왔다.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아래 가라앉게 해."

한줄로 압축되는 결론. 
그 위로가 너무나 따뜻해서, 설사 그 '위로'대로 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그렇게 살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해봤다. 

1년 6개월. 나는 통이를 너무나 사랑했다. 웃을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아프로 힘들고 괴로울 때 함께 하며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잃어버린 아픔에 저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기억들을 떠올렸다. 왜 잊고 있었을까? 왠지 그 한마디가 이젠 그만 아파해도 된다는 명령 같아서. 왠지 모르게 안심이 돼서, 너무 고마워서,결국 나는 극장에서 얼굴을 감싸쥐고 엉엉 울어버렸다. 







뾰족한 아픔들이 돋아나네. 뾰족한 아픔들이 자라나네.
그대여 더 늦기 전에 그대여 더 늦기 전에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실은, '과정'이 옳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