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건 '시야'였다. 
그림이 좋았다. 
꼬마 때는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조금 지나서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더 좋아졌다. 
이야기가 덧대여지면 
더 많은 것이 보였고 자잘한 하나에도 공감을 넘어서 동감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만화를 좋아했었다. 

엄마가 보낸 5학년때까지 억지로 보낸 피아노 학원에선 늘 턱을 괴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6학년에 올라가서야 보내준 미술학원에선 늘 즐거웠다.
(보는 재미가 하나 없는 아그리빠 뎃생을 시작하기 전까지) 

지금도 나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현재는 글을 쓰는 것이 업이지만
따지고 보면 보이는 영상에 음성을 덧입히는 일을 하는 중이다. 

방송을 매번 느끼는 건 '화려하게 금칠을 한 내래이션'한마디 보다는 
'순간을 사로잡는 한 장면'의 강력함이다.
(방송은 시각이 80%이상을 차지하는 특수분야니까.) 
영상을 넘어서는 내래이션이란 대게 거짓말에 가까운 법이다.

친구 이쥐가 추천해서 댄싱9을 보기 시작했다.  
류진욱, 남진현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누구라 고를 수 없이 레드전체의 빠순이가 돼버렸다.


댄싱나인 첫생방을 보던 날. 
왠지 AC밀란을 응원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챔프에 연재되던 슬램덩크 산왕전을 가슴졸이며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재밌다면 재밌다는 얘긴인데 보는 내내 맘이 좋지 못했다. 

그저 보고 감탄하기에도 부족한데, 대체 왜 스포츠와 같은 경쟁을 집어 넣을까
왜 춤추기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군대처럼 소속을 집어 넣고 연대책임을 물을까 
소통을 위한 몸짓에 성적처럼 숫자로 결과를 논하는 것은 말이 되는 일일까,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은 끝이 없지만,
뭐 따지고보면 그게 현재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방증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배길 수 세상에 살고 있단 소리겠지.

여튼!
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가 무대를 보는 순간마다 가슴이 뛰었던 이유는
'보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순간'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이다.

춤을 보면서 감탄할만한 '진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육체의 움직임, 몸의 언어.
과장도 왜곡도 덜어냄도 더해짐도 존재할 수 없는 진실한 '팩트'를 만나는 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 팩트감상을 방해하던 발카메라... ㅠㅠ 흑흑...)


다양하고 자잘한 팩트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결론을 향해 맹렬히 달려갈 때 
구성은 빛을 발한다.
개개인의 캐릭터를 부각하고, 그가 살아온 인생을 보여줬을 때
그 사람의 움직임은 더욱 많은 것을 말한다. 
단순한 이해를 넘어선 공감.
그것이야 말로 예술이 수많은 장르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댄싱9은 보이는 시각과 설명을 잘 융합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눈에 띄는 무용수들이 모인 레드윙즈가 좋았고,
캐릭터 부각이 늦었던 블루아이도 알면 알수록 다들 착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라
18명 모두를 응원할 수 있었다.
(솔직하자면 블루에서 몇몇은 다른 애들을 넣었어야 한단 생각이 드는 애들이 있긴 했다ㅜ)

여튼 나는 레드팀의 광빠..;;;가 되어,
댄싱9에 빠진 이후로 여섯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다.

레드 중에 누가 가장 좋으냐고 물으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너무 좋아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댄서'로서 MVP를 주고 싶은 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하휘동을 꼽겠다.  

35살. 
그는 아직도 춤을 춘다.

춤을 추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자아를 실현해왔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왔고, 마침내 증명해냈다. 
 
결론과 과정이 딱 들어맞는 완결된 '구성'.
이토록 완벽한 구성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참 부족한 구성작가로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늙다리 골잡이가 되어서도 은퇴 경기까지지 골을 넣는
필리포 인자기를 응원한 과정이 언제나 내내 간절했던 것처럼
아흔셋의 나이까지 쓴 글대로 살아왔던 에릭 홉스봄을 알아가는 순간이
감동을 넘어선 그 이상이었던 것 처럼

댄싱9에서 '춤을 추는 35세 비보이의 삶'의 단면을 지켜본 지난 두달은
유려하게 구성된 짜릿한 다큐멘터리의 명료한 결말 하나를 본 것같은 시간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야기다.  


+덧) 그나저나 오늘 하휘동 ㅠㅠb
필리포 인자기 이후로 빠순질을 해도 평생 부끄럽지 않을 이름 하나 추가다.
오늘 MVP가 된 하휘동을 헹가래 쳤을 때의 감동은
2006년 아주리가 월드컵 우승하고 칸나바로가 컵 들어올렸을 때만큼이나 짜릿한 순간이었쟈나.... ㅠ ㅠ




통이통이

20세기 소녀 2013. 9. 26. 16:19


며칠전
여동생이 통이 산책시키는 길
여동생으로부터 10미터 뒤정도에 막내동생이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사이 한 행인이 
'뭐 저렇게 생긴 개가 있어'라고 뒷말을 하는 바람에 
막내동생에게 굴욕과 수치심을 선물해준 준 통이... 




이딴 3000원짜리 다이소제 싸구려공이 선물이라고 가져온거냐며  
지켜보는 눈 앞에서 5분만에 갈기갈기 찢어버린 통이 




 
그럼 7000원짜리 탱탱볼은 어떻냐며 건넸더니
소가죽 농구공 아니면 취급하지 않겠다고
받은지 5초만에 '뻥!'소리와 
미키마우스의 웃는얼굴을 갈기갈기 터뜨려버린 통이.





요즘 매사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다며
우울함을 해소중인 통이






누나가 옥상에 앉아서 책좀 읽겠다는데
기어이 누나 자리를 빼앗아 위협하는 통이





그래도 너무너무너무너무 사랑하는 통이. 
전우주를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우리 개.


'인생 두번째 자격증'으로 운전면허를 따보겠다고 틈틈히 시간을 쓰고 있다. 
1차 시험에서는 한개 틀리고 2차시험은 백점. 
아직까진 준수한 성적인데 도로연수는 솔직히 좀 무섭다. 아니, 많이 무섭다.
 
여튼 며칠전 페이스 북에 도로주행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적으려는데,
이상하게 전송버튼 누르는 걸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남들 다 보는 공간인데, 무섭다고 써도 되는 걸까?
내가 이런 일에 겁내는 사람이라는걸 보여도 되는 걸까? 
그런 검열을 나열하고 있다가 그런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무섭다는 감정표현을 하지 못하게 됐을까?
왜 무언가가 두려우면 안된다는 금기를 가지게 됐을까?
이런 모습을 왜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남들 눈에 '겁쟁이'로 보이는 게 '겁'나는 이상한 상황을 두고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런 성격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리는 없고
분명 어떤 경험이 나의 자아와 만나 반응하고 결합된 결과일텐데...

어느새 나에게 장착된 강박에 대해서 생각중이다.
왜 자꾸 씩씩하려고 할까?
왜 모두가 망설일 땐 혼자 총대를 지려고 할까?
왜 지나치게 맡은 역할에 부담을 가지고 있을까? .
분명 그런 강박들이 시작된 시점이 있을텐데 말이다. 

이를테면 현재 추측 되는 강박장착의 순간은 이거다.

칠남매의 장남의 딸, 삼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나는
열한명이 한달에 두어번 주말이 되면 친가쪽 아이들
열한명이 2층집을 뛰어다니는 가정에서 자랐고
작은엄마들과 사촌동생들과 한집에서 생활한 시간도 몇년된다. 

추측컨대, 어쩜 그 시간
'그래 니가 듬직하구나, 동생들 돌보는 니가 참 착하구나' 하는 칭찬에 길들여졌는지 모른다. 밑으로 동생을 주렁주렁 단 맏이가 친척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몇안되는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그게 좋든 나쁘든.  

앞으로 삼사십년은 더 살 인생인데 스스로의 연원을 잘 파악했다
버릴 버릇은 버리고 치유할 수 있는 것들은 치유하고
연마할 수 있는 것들은 잘 갈고 닦아야 겠다.

'겁 내는 모습을 겁'내는 습관은 고치긴 해야겠다. 
쓸데 없는 만용으로 넘어갈 수도 있으니...



약 2년 가까이 두장을 넘기지 않는 원고만 쓰다가
20여페이지 넘게 빡빡한 구성안을 쓰려니 역시 어색하다.
예전엔 쳐내고 쳐내는 게 일이었는데, 이번엔 채우는게 일이다.

그래도 방송일이란게 구성을 한다는게 늘 비슷하기 마련이다.
칸이 촘촘하게 선 쟁가를 쌓는 것과 비슷하다.
아랫돌을 잘 깔아야 높게 쌓을 수 있고,
의표를 날카롭게 찌를 수 있을 정도로 길고 뾰족한 날을 세울 수 있는 것 처럼...
짜임에 대해, 던져야할 화두와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끝없이 나열된 팩트(사실) 중에서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어디에 어떻게 놓아 사용을 극대화 할 것인가 
예전 프로그램이 몇개 되지 않는 커다란 블럭으로 완성시키는 일이라면
이번엔 자잘한 블럭으로 끝없이 상공을 향해 쌓아나가야 한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같은 애에게 참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이젠 무엇을 말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지 고민할 때다. 

 


날씨가 다시 좋아져서
어제밤에는 통이랑 산책을 다녀온 뒤 멍청하게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통이가 더울까봐 여름 내내 쳐놓았던 가림막도 걷어냈고,
여름내 아빠의 간식거리가됐던 오이덩쿨도 쳐낸 옥상하늘이 어찌나 '탁'하고 틔였던지...

옆에서 물병을 잡겠다고 파닥파닥 점핑하는 통이와
아무리 뻗어도 도달할 수 없는 밤하늘의 풍경은
<라이프 오브 파이>를 떠올리게 했는데...;;;
(생선잡는 리짜드 빠커같이 너무 열심히 뛰어다니는 바람에...)

그 풍경이 너무 좋아서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행복을 결정 짓는 건 소유 보다는 경험이라고 하던데,
경험이 곧 소유 아닐까?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고 
영영 잃어버리지 않을 아주 흡족한 소유물

오늘 밤도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어린왕자> 속 나오는 여우의 뒷모습 같이
길이들어 세상에서 하나 뿐인 통이의 뒷모습과 함께.



1. 마지막 나날
노는 동안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을 읽었다.
<어제의 세계>보다 더 와닿는 구절이 많아서, 공감가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서
따로 좀 길게 말해보고 싶다.


2. 새연애 시작
9월이 되기 전에 새연애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선포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다. 
희망을 말한대로  빡센 프로그램이고, 내 시간과 노력을 쏟아도 그만큼의 보람이 보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프로그램(인듯) 하다. 아직까진 마음에 든다.


3. 근 반년간 진행해왔던 <프랑스 혁명사>스터디가 끝났다.
프랑스혁명사 한권을 훑어보고 에릭 홉스봄의 책 세권중에 해당부분만 간단하게 읽어보느 스터디였는데 스터디를 하고나서도 헛갈리는 이 기분은(??)
에릭 홉스봄이 얼마나 글을 잘쓰는가에 대한 감탄과 감탄이 반복됐던 스터디였던 것 같다.
자본의 시대는 번역 좀 신경써주지.... 도통 문맥을 표현하기 어려운게 꽤 됐다.


4. 자격증
운전면허를 노는 사이에 재빨리 따려고 했는데 빈둥대다 보니 한참 뒤로 밀렸다.
필기는 너무 열심히 공부했나봐...;;;  한개 틀렸다 -_-
시험 두개가 남았는데 박치에 몸치인 내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해당하는 강습시간을 다 채울 수 있을까? 
9월말쯤엔 자격증소지자(?)가 되었음 좋겠네.

그들 덕분에

20세기 소녀 2013. 8. 24. 21:13

어제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여의도에 다녀왔다.
국민은행 건너편을 걸어가는데
문득 클리셰라고 하면 클리셰고
진부하다면 진부하다고 할 지독히도 판에 박힌 어떤 모습이 떠올랐다. 

반팔티셔츠 반바지 스포츠 샌달에 대게는 안경을 끼고 까맣게 그을린 피부
팔에는 집회 유인물을 잔뜩끼고 짐은 이동에 방해되지 않는 작은 검정스포츠백
외모는 초라할 지언정 언제나 생글생글 활기찬 표정으로 다니며  
학교와 학교를 연결해주고 집회를 소통시키는 역할의 여대생
(때로는 여대생 처럼 보이는...)

새내기 시절에는 까마득한 학번의 선배의 얼굴이고
조금 지나서는 동기의 모습이며
때로는 안쓰럽고 짠한 후배의 얼굴이 되기도 했던 모습. 

사람의 인생이 아주 작은 만남으로 인해
부딪히고 반응하며 변화하는 과정이라면

까맣게 그을린 피부의 그네들은
나의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사소했나?
아니면 너무나 커다래서 지금도 반응을 거듭하고 있을까?

그들 덕분에 나는
정부를 믿지 못하고
세상 모든 가난과 질병은 인간 사회탓이라 합리화 하며 
가진자의 것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닌가 늘 의심하고
느리게 걸음하는 질서에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이 안달복달 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제상 속에 작은 부품이 아닌가 의심하고 
이것이 맞는 일인지 언제나 반추하고 되짚어 보며
늘 죄스럽고 조금 덜 죄스럽기 위해 노력하는게 아닐까?

그들로 인한 변화가 언제까지고 계속 되길 바란다.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지만, 
<바보 과대표> 그 노골적이고 그래서 촌스럽지만 그럼에도 솔직한 낡은 시집이
 내 책장 바로 맨 앞에 꽂혀 있는 동안엔...




 


작가로서 방송 일을 한다는 것은 연애와 상당 부분 흡사한게 아닐까. 
뭐 일단 일반회사의 정규직 자리가 아니니,
결혼처럼 정년퇴임까지 함께하겠다는 맹세 따위는 없는 거고...;;;
언젠가 끝날 것은 예감하지만 
여튼, 이 순간, 이곳에서, 뜨겁게 사랑하겠다는 약속 정도가 있는 작업.  

그래도 그 기억 때문에, 프로그램을 놓고 나면
언제나 아쉽고 안타깝고 후회하는 ‘실연’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6개월이면 프로그램 할만큼 해봤다며 이동하는 이 직종 사람들과 달리 7년차란 말이 무색할 만큼 몇 프로그램 경험하지 못했다. 엉덩이가 무거웠고, 변화나 이동이란 말을 재밌어하기 보다는 피곤해 했었고...
여튼 그 중 두번은 내가 대쉬해서(?) 경험한 연애라 할 수 있고 자랑이었다.

요즘은 나의 마지막 연애(?)를 떠올리는 중인데.
반성과 후회지점이 많다.
그래도! 지금 이별하는 것이 절묘한 타이밍이었고,
먼 훗날 다시 잘될(?) 가능성을 남겨두는 일이었다는 걸 잘 확신한다.

여튼 지금은 
다음엔 누구랑 연애하지? 물색중인 타임이다. 

부디 좋은 프로그램, 멋진 프로그램 만나서
나의 수고와 노력과 시간을 바쳐도 아쉬움 없을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길

 


통이통이

소소한 수다 2013. 7. 25. 19:28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5월 21일 적군이 파리에 침입했으며 최후의 1주일간 파리의 근로자들은
삶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죽음에도 강인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중략)
코뮌파들이 전투 중에 얼마나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투가 끝난 후에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430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고, 그 중에 만 명정도가 판결을 받았으며
그 중 약 절반은 뉴칼레도니아로 유형을 당했고 나머지는 투옥되었다.
'젊잖은 어르신네'에 의한 복수였다.

그 후로 파리의 노동자들과 젊잖은 어르신네 사이에는 피의 강물이 흐르게 되었다

-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342p




여기서 나는 야만이라는 말에 대해 변명하고 싶은게 있다.
혼돈스런 개벽과 같은 혁명기에 누더기를 걸치고
성난 소리로 외치고
사납게 날뒤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곡괭이를 둘러메고
허둥지둥 낡은 빠리로 몰려와 민중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머리칼이 곤두선 그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가?

압제가 끝나기를
폭정이 끝나기를
군주의 살생권이 없어지기를
남자에게는 일을
아이들에게는 교육을
여자에게는 사회의 온정을
만인에게 빵을 자유를 평등을 연대를 사상을 세계의 낙원화를
진보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과연 야만인들이엇다.
그러나 문명의 야만인들이었다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송면 역, 동서문화사 1146p



단 한명을 위한 광적인 향연같은 루이 14세의 영광이나
전설로 남겨지고 영웅으로 포장된 나폴레옹의 전투와는 달리

패키지 여행에서 이런걸 만나기란 불가능한 장면이란걸 안다.
그래도 하루 반나절 저 두 구절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다음번에 또다시 빠리로 갈 수 있다면
100여년의 시간동안
 죽이고 또 죽여도 자꾸만 나타나던 공화주의자들의 흔적을 찾으러
 긴 시간 머물러 보고 싶다.


수다

카테고리 없음 2013. 6. 20. 12:12
1.
어제 모님께서 레미제라블 뮤지컬을 보여주셨다.
모님께서도 각오하라고 해서 각오는 했지만... 아 정말 ㅋㅋㅋㅋㅋ 웃으면 안되는데 무슨 번역이... 나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 자막같아.
죄다 명사로 끝나고 동사를 사용할 줄 모르는데;;; 이보세요 우리나라말은 동사가 마지막에 오거든요? 경감 자베르는 멋부릴때 책제목으로나 쓰는고고 자베르 경감이라고 불러야죠! 라고 빨간펜 표시해주고 싶었음. 
어차피 레미제라블 레파토리는 죄외우고 있는 거 차라리 노래 가사라도 들리지 않으면 나 혼자 의역해서 들을텐데 ;ㅁ; 가사가 계속해서 들리니까 더 별로야 흑흑. 
거기다  내가 심각한 막귀인데...;;; 오케스트라가 신경질(?)적으로 들렸다면 이것은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덧붙이는 나의 레미제라블 결론 : 나의 앙졸라는 그렇지 않아! -그렇다. 오빠는 그렇지 않다...;;;




2.
내가 이렇게 덕질에 빠진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 집착하는(?)장르가 많다
여가시간은 한정돼 있고 그 여가시간 쪼개서 운동도 해야하고 통이랑도 놀아야하고 넘 바쁘다 바빠.
며칠전에는 톨킨 전기를 읽어야할지 닥터후를 마저 봐야할지 레미제라블 25주년을 한번 더 돌려볼지 스타트렉 비긴즈를 볼 지 정하질 못해서 20분간 멍하니 있기 까지 했다. 게다가 빠진 장르마다 역사와 덕질의 깊이가 깊어요. 무슨 헤어나올수없는 바다야 바다 ;ㅁ; 덕질을 하면서 오자서의 말을 곱씹게 될줄을 몰랐지 흑흑 해는저물고 나의 갈길은 멀다!
(주발이가 일러주길 스타트렉TOS를 하루에 한편씩 보면 2년 반이 걸린다고...;;; 꺼걸껄껄껄)

네! 그리고 저는 올해 안에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사게 될 것 같네요~
레미제라블 25주년(별칭 뮤지컬 앙졸라)을 돌려보고 소장하고 싶다면 아마도 홈시어터도 곁들이겠쬬? ;ㅁ;




3. 2013년도 반년이 저물어 가는데 소소하게 목표했던걸 잘해나간것 같다.
동물의료생협 활동도 나름 성실하게(내기준에서) 해왔던거 같고, 운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여전히 미진하지만 하고 싶은 아이템도 진행할 수 있었고) 돈은 목표한만큼 번것도 같고, 올해 목표 중에 하나가 이것저것 배워보는 거기도 했다. 이를테면 패러글라이딩이라던지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한단계 더 높인다던지...
여튼 그 목표의 하나로 과감하게 동네 수영장 오빠들과 서핑을 배우러 갔으나 하루종일 노력했음에도 결국 혼자서 일어나지 못했다. 괜찮다.
내 목표는 시도였지 결과가 아니었잖아? 




4. 대학교 4학년 때 배낭여행을 갔다.
뒤돌아 서서 로마 뜨레비 분수에 동전을 한 번 던져서 골인하면 사랑을 하고, 두번 던지면 다시 로마에 돌아온다고 했다. 어린날에는 사랑은 조금만 노력하면 참 쉬운거라고 생각했다. 사랑보다는 다시 돌아올 로마가 탐이나 두번 생각도 안하고 동전을 두번 던졌다.

며칠 후 엄마 환갑 기념으로 유럽 여행 패키지를 간다. 일정에 로마도 껴 있다.
그 동전을 던질 때 결코 '이런식'으로 다시 로마를 보고 싶었던건 아니었던것 같은데 음






5. 이번 여행의 목표는 단 하나 인데,
르부르 5층에 있는 들라크루아 회화 중에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나 실컷 보다 왔으면 좋겠다. 다른 건 바랄게 없다. 


 


친구 만두는 김조광수 감독의 결혼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가장 행복해야할 날이 투쟁처럼 비장해서,
그게 너무 마음 아팠다고 한다.

누구나 누려야 할 것인데, 
고되게 싸워야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싸움을 놓아서는 안된다. 
포기해서도 안된다.

세상사 허무한 것 투성이라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아무리 무수한 뒷걸음들이 있다 하더라도, 거대한 한 발짝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요즘엔 그런 싸움이 필요한 때를, 그런 싸움이 필요한 곳을 떠올려본다.  
물러서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필요한 때다.  


시민들이여, 우리의 19세기는 위대하지만, 20세기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낡은 역사를 닮은 것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정복, 침략, 찬탈, 국가들 간의 무력 대결, 어느 왕의 혼인으로 인한 문명의 중단 사태, 세습적 폭정의 탄생, 국제적 협잡에 의한 민족들의 분열, 왕조의 붕괴에 뒤따르는 나라의 분할, 무한의 다리 위에서 마주친 어둠의 두 숫염소처럼 정면으로 부딪치는 두 종교의 싸움질 등,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따위 것들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기아, 착취, 절망에서 비롯된 매춘, 실업으로 인한 극빈 상태, 처형대, 검, 전투, 사건들의 숲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약탈 행위 등을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사건은 없을 거야.' 모두들 행복해질 것입니다. 지구가 자기의 법칙을 따르듯, 인류 또한 자기들의 법을 충실히 이행할 것입니다. ...'

<펭귄클래식 '레 미제라블' 5권 43p.>


아침을 먹을 때마다
식탁에 마주 앉은 엄마에게 시시콜콜 세상 욕을 하는 건 하루 일과가 돼버렸다.
 
며칠전 엄마가 넌지시 말했다.

"그런데 *희야, 니가 꿈꾸는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아."

그 말은 사랑하는 엄마말이었고,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무척 세게 다가왔다. 
 
내가 그 말을 작년에 들었더라면, 큰 상처였을지 모를 정도로...

내가 꿈꾸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레미제라블 앙졸라의 외침이 현재에도 불가능했던 것처럼
200년 뒤에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래도
이상은 언제나 큰 간극 속에 빚어지고, 
그래서 더 빛나고 더 탐나며 걸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안다. 
 
다행히 이제 나는 더 이상 내 꿈을 '내가 살고 싶은 세상'에 걸지 않는다.  
내 꿈은 그 세상을 향해 가는 '길'에 있다. 

'무엇이' 아닌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새긴다.
그 덕에 삶이 조금이나마 충만해졌다. 

뒷걸음치는 듯 해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덕분에 공허하다고 헛헛하다고 투정부리는 일도 줄었다.  

이상 같은 구호는, 생각이 되고, 생각은 혁명을 만들고 혁명이 세상을 바꾸리라.   
선지자의 예언은 과하지만, 반드시 실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앙졸라 2013년에도 네가 말하는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 대신, 
'앙졸라, 2013년에도 네가 말하는 세상을 향한 걸음은 계속되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홍학의 땅

카테고리 없음 2013. 5. 16. 10:56




 


발효시킨지 1,2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 포도주.
퍽퍽하고 기름기 없는 건조한 빵.
너무 짠 감자스프로 대충 배를 채우고
먹을 물을 아껴서 양치를 해야 했다. 

해가 질 무렵 나는 숙소를 나와 무작정 걸어보고 싶었는데,
바람이 너무 거칠어서 몇걸음 걷고 숨을 몰아쉬고
또 몇걸음 걷기를 계속 반복해야했다.

입을 다물면 이빨사이로 모래가 씹히고
눈을 떠서 풍경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던 시간.

간신히 도착한 곳엔 친구 마사가 먼저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광경에
그저 작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아 이곳은 수천 수만년간 이어져 온
홍학의 강, 홍학의 산, 홍학의 땅 이구나.

그리고 나는 기도를 시작했는데,

백년 남짓 고작 살 뿐이고, 딱 한 번뿐인 내 삶에서,
이런 풍경을 경험하는 기회가 앞으로도 좀 더 주어지길.
'아주 오래된' 이 풍경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길...

그런 기도를 올렸던 것 같다.
 



내가 느끼는 '나'는 나의 생각과 고민을 모두 포함한 나 이지만,
남이 볼 때의 '나'는 눈에 비치는 모습만이 전부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나,
불의에 맞서고 싶어 하는 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
도 나의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슬프게도 생각은 아무런 힘이 없다.

남이 볼 때 그것은 '내'가 아니다.
생각은 표출 전에는, 행동 전에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한 번 한 선택은 돌이키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행동이 사람을 규정짓는다.

되담을 수 없는 이상
내가 한 일을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 싶을테고,
언젠간 스스로 반복한 변명이 내 생각의 일부가 되고,
언젠가 '내가 느끼는 나'까지 집어삼킬지 모를 일이다.

이런저런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존버거의 구절을 되새긴다.
지금의 내가 앞으로의 내가 될 수 있도록...

부자들을 위해
너절한 글을 쓰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Pokarekare ana Nga wai o Rotoura
로토루아의 호수엔 폭풍이 불고 있지만
Whiti atu koe hine marino ana e
그대가 걸어가면 그 바다는 잔잔해질 거예요

E hine e Hoki maira
그대여 내게로 다시 돌아 오세요
Kamkte ahau I te aroha e
너무나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요

Tuhituhi taku rita Tuku atu taku ringi
그대에게 편질 써서 반지와 함께 보냈어요
Kia kiti to iwi Raru raru ana e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말이에요

E hine e
그대여 내게로 다시 돌아 오세요

Hoki mairaKamate ahau I te aroha e
너무나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요


뉴질랜드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영상 1분 10초에 갑자기 한명이 선창으로 연가를 부르기 시작하고,
(연가는 거의 뉴질랜드에서는 국가 수준의 노래라고)
곧이어 모두 떼창을 시작한다.

가사를 되씹을수록 자꾸 눈물이 앞서서..

강제할 수 있는 없는 것을 강제해온 '폭력'을 떠올린다.
그로 인해 헤어져야'만' 했던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이별들, 연인들, 찢겨진 마음들이
자꾸 자꾸만 생각나서...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가 이렇게 같고, 애틋하고, 한결 같은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한다는 당위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권위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잡다한 말들은 제끼고고, 

그저 사랑해도 인정받을수 없었던 이들이
'헤어져야만 했던 이여, 돌아오세요 우리 마음껏 사랑해요'라는 노래로 자꾸만 들려서  

사무실에서 눈물이 펑펑나는 걸 숨기느라 애를 먹고 있다



생각만 하는 내가 비겁하고 초라해 보여서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만이 주어진 전부가 아니다
오늘의 나를 가지고 내일을 살 사람이니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무수한 생각들이 언젠가 무언가를 만들리라
단 하나의 생각이 이상을 만들고, 이상이 언젠가 혁명을 만든다는 
안네 브런의 'One' 노래 가사를 믿기로 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하기로 했다


먼지가 바위를 만들고
공포가 분노를 만들고
심장박동이 시가 되어

이상은 혁명이 되리라

이상이 혁명을 부르리라
이상이 혁명이 되리라

어디선가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
아주 작은 하나로부터

모든 것엔 시초가 있는 법
태초에 하나가 있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단 하나가





호빗을 보고 도끼 썩는 줄 모르고 약간 미쳐 있는 상태다.  
문밖을 나서면 세상이 있고, 다시 돌아왔을 땐 나만의 이야기가 가질 수 있다는
간달프의 제안은 요즘 같은 세상 지금같은 일상에 얼마나 매력적인지...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
주문 같은 그 단어가 너무 욕심나고 탐이 났다. 
그러다 어제 프랑스 혁명사 스터디를 하다 말고
 
소소하게 대학시절에 대해서 떠들어 댈 일이 있었다.

집회 나갔던 일,
경찰서에서 보냈던 하룻밤,
농활에서 펼쳐졌던 풍경,
학생회 선거의 소소한 일들...
선배를 만나고 후배를 만들고 친구를 사귀고 어찌보면 별것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기억들. 그런 이야기들을 갖게 되는 건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저 조금 게으르게 보내고 텅 빈채 흘려보내는 시간 대신 
마음 가는대로 정이 가는대로 선택한 내 덕분이었다.    

요즘 부쩍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저 멀리 다른 대륙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들어도 좋고,
지금 있는 이곳에서 친근한 사람들과 소소하지만 특별하게 포장해 꾸미고도 싶다.






그분의 아빠를..

 



벨기에 시프도그 그루넌달
이라는 긴 이름과 영어 이름을 가지고 계셨어..;;;;

뭐 이름과 상관없이 널 사랑하지만...,

통아! 이제 어디가서 니 출처(?)를 모른단 소리는 하지 않을게! ㅎㅎ



그런데 너.. 가족을 보호하는 개라더라.
양도 치고 사냥도 하고 똑똑도 하다는데...;;;
으음...;;;


우연히 라 마르세예즈 가사를 보다가 기억에 깊이 남아서.

*어린이들의 합창
Nous entrerons dans la carriere Quand nos aines n'y seront plus
어른들이 죽고 나면 우리가 뒤를 이으리
Nous y trouverons leur poussiere
거기서 우리는 그들의 진토가 된 시신을 보게 되리
Et la trace de leurs vertus
그들의 용기의 흔적을
Bien moins jaloux de leur survivre
그들보다 오래 살기 보다는
Que de partager leur cercueil,
그들과 함께 묻히기를 바라며
Nous aurons le sublime orgueil
우리는 장엄한 긍지를 가지리
De les venger ou de les suivre!
그들의 복수를 해내거나 혹은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거나!

Aux armes, citoyens...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고무적인 노래가사다.
앞길 창창한 열살 열한살 가브로쉬 같은 꼬마 아이들이 부른다는 점에 더욱.

가사를 읽는데 막 전율이 일어서 감격하고 감탄하다 또다시 맥없이 식어버렸다.
나는 차마 이 노래를 부를 수 없을만큼 날마다 타협하는 삶을 살고 있고, 감동은 해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생활이 전부다. 이 노래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가사가 나의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고무적인 한구절의 노래도, 가슴을 울리는 한마디의 표현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도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런 힘이 없다. 생각은 아무런 힘이 없다. 실천 없는 말도 덧없다. 그저 머릿속을 스치는 상상일 뿐.

그래도 이런것들이 아주 깊은 곳에 내재 되어 있다가 행동으로 발현되는 날이 오진 않을까?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나를 만드는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날까지,
아직은 잠들지 마. 용기야.



지금 살던 동네에 이사 온 건 여섯 살 때 일이다.
예전 우리집도 그랬고 그땐 동네엔 2층짜리 양옥집에 2층 끝엔 베란다가 달리고 정원이 딸린 집들 천지였다. 그 중 유달리 높다란 담을 커다란 주차장을 자랑하는 집도 있었다.
 

5월이 되면 동네 곳곳에 커다란 안내문이 붙었다.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어린이들은 5월 5일 9시까지 쌀집 앞으로 오세요."
 
아침 9시까지 가면 정말 온 동네 수백 명의 꼬마애들이 줄을 서서 '송회장네' 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을 받아서 돌아가고 그랬다. 누런 봉투 안에는 대단한 것이 들어있진 않았지만, 사또밥 한 봉지 연필 한 다스 노트세트 같은 정성스런 선물이 들어 있었다. 욕심쟁이 우리 할머니는 우리 삼남매가 받아온 것도 모자라 하나 더 덤으로 받아왔고...

봄이면 하얀 목련이 만개하고, 좀 지나면 라일락 향이 진동을 하던 커다란 2층집.
어린시절 <빅토리 비키>같은 만화책에 심취해 있던 나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내가 그 집에서 사는 상상을 해보고, 혹은 그 집이 친척집이여서 찾아가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었는데...

중학교 땐 그 집 손자가 동생의 동창이 됐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그 집 손자가 동네 아는 동생이 되었다. 한 동네 살다 보니 만나고 마주치며 커다랗고 대단해 보이던 집도 시시콜콜 사람 집이었고, 더 이상 신비로울 것도 없고, 환상적인 포장 따위 벗겨진 집이 되었지만
 

오늘 동네 그 집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거창하지만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현재의 나를 결정 만든 것이 '과거'와 '기억'이라면
매번 '기억'이 지워지는 순간을 체험하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언젠가는 나 역시 부질없이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미리 체험하는 일이니까.

사방 천지 새로 것들 사이에서 애써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서 덧없고 쓸쓸하고...

아주 작은 기억조차 허락해주지 않는 매정한 서울 대신 오래도록 변치 않는 느리고 다정한 고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소용 없는 생각을 해본다. 
 


 



천 개의 생각보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정말 '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자본이나 경제적 능력 소유한 물건을 가지고
(나 포함) 누군가를 재단하지 않으려고 바지런히 노력하는데
매번 쉽지가 않다. 

며칠전 정말 마음에 드는 백팩을 발견했는데
내가 사고 싶어 했던 책상보다도 비쌌다.  
그 가방이 막 명품이고 누구나 보고선 아 그건 그정도 나가는거지 라고 추측할만한 메이커면  하늘을찌르는 가격에 수긍이라도 하겠는데, 잔스포츠 뺵팩 주제에 단지 가죽이 붙어 있단 이유로 그 가격이 쓰여 있어서 너무 슬펐음.

부유함이 뭔지 안다고 할 처지도 아니지만,
부모님 덕에 감히 가난이란걸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감사한 인생이다. 
그래도 이런 소소한 욕심엔 상처가 난다.

5천만 모두가 내고 있다는 의료보험료가 한달 벌이에 비하면 숨막히도록 비싸게 느껴지는 것. 명품도 아닌 평이한 메이커의 백팩 하나를 사지 못해 스스로를 자조하고 마는 것.  그런게 아니란걸 알면서 내 인생 전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

이런 소소한 사연 하나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경제적 위치를 생각해 보고,
평생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없는 내 직업군을 떠올려 보고,
앞으로에 대한 미래에 어두운 색을 덧칠하는
자신을 돌아보면

아! 슬프다.
정말 슬프다.

남자를 사귀렴
이런 충고를 들었는데, 그 순간 친구와 그 친구가 반추하고 있는 이 사회에
너무 모멸감이 들어서 화를 낼뻔 했다. ㅜㅜ

내 물건인데 내가 벌어서 내가 사고 싶다고
내 인생인데 내가 살아보고 싶다고.
이토록 단순한 생각이 틀린건 아닐텐데
내 생각이 틀렸거나 세상이 틀렸거나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레미제라블에 푹 빠져서
누가 뭐래도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을 성경처럼 믿으며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파이이야기를 읽고 맹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는 말씀

적절한,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적당한 자리를 잘 선점한 것 같다. 

노트를 사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여전히 서른 둘의 날들이 기대된다.  
축복하고 축하한다. 

 

올연말과 연초 나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총 세번 보고,
10주년 뮤지컬 콘서트를 한번 25주년 뮤지컬 콘서트를 세번봤다.
그리고 얼마전 완역본을 통째로 읽었다.

'힐링'이라는 단어만큼 듣기 싫은 단어가 없다.
'치유'라니, '대답'이 아닌 '변명'이 치졸하고 비겁하게 느껴졌다.
내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닌 단단한 기둥이고 줄기다.

언제나 스스로가 불안했다.
십대에 내가 가지고 있던 모습이 이십대에는 사라졌 버렸고,
이십대 초반의 믿음은 소소한 농담거리로 사용됐다.

서른.
나는 변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변하지 않을까?
마흔이 되어 '지금의 나'를 틀렸었다고 고개 젓지 않을까? 


다꺼져버린 재처럼 하얗게 세어버린 국민의회 의원에게서,  
인생의 모든 것, 마지막 책 한권을 팔아치운 채 바리케이트에 깃대를 꽂았던 노인에게서
베드로처럼 거꾸로 매달려 혁명의 '반석'이 된 앙졸라에게서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자꾸 물었다.


멈추지 않는다
더뎌도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고 만다고,
언젠가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때로는 변명하고 탈출구를 열어두면서도
실은 나는, '그 말'을 너무나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그렇게 말해줄 누군가를 기다렸다.

찰나의 순간이 쌓여 거대한 줄기를 이루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어지는 궤적 속에서
포말처럼 바스라져 더뎌질 순 있겠지만,
분명 나아간다.  

다섯권의 책, 문장마다 똑똑히 새겨진 '대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행복하겠다.

20세기 소녀 2012. 12. 23. 19:45

꼭 십년전이다.

대학교 2학년 총학생회 선거날이었다. 
출마한 후보는 우리측 하나였다.
투표율만 넘기면 이기는 선거였는데, 50프로가 안됐다. 
우리 학교에는 전년도 학생회가 아닌 '대의원회'라는 조직이 선거를 관리했는데,  
학교측 입장을 아주 잘 대변해주면서 학생측 입장은 씹기로 유명한, 어용선거관리위원회였다.
그리고 그 조직은 운동권 학생회가 나선 선거에는 
연장선거 따위는 허락해주지 않는 게 전통이고 관례였다.  

마감시간이 다가올 즈음 나는 분해서 울고 있었다.
앞장서서 등록금투쟁해주겠다는데도 니들 대신해서 싸워주겠다는데 왜 이런 홀대를 받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답답했다. 미웠다. 분통하고 원통하고 통탄하고 무언갈 불사지를 수 있다면 지르고 싶을만큼 분기탱천하고 서러운 상태였는데 말이지...

눈물콧물 짜면서 선배언니한테 막 말했다. 그야말로 막말을 했다.

"언니, 쟤들은 당해봐야돼요. 등록금 삼백만원 사백만원 올라봐서 정신차려야돼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복수하고 싶어요,"

울음이 숨죽을 즈음, 언니가 넌지시 대답해줬는데 말이지.

"그런다고 행복해질까? 
등록금 삼백 사백만원인 학교를 다니는 우리는 진짜 행복할까?"

며칠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울분에 찬 친구는 울며불며 재래시장 이용하지 말라고 합정역에 대형마트 서는거 데모도 가지 말라고 그네들이 ㅂㄱㅎ 를 찍었다며 울분에 차 말했다.
나도 울고 싶은 마당에 친구 위로까지 해줘야하는 겹으로 서러운 상황이었는데,

문득 스물한살 그 선거가 기억났다. 



변질되지 않겠다.
빛 바래지 않겠다.
나는 몹시 성질이 급하지만 기다리겠다.
기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에릭 홉스봄을 떠올린다.
열여섯에 마르크스를 만나서 아흔다섯까지 꿈꾸길 포기 하지 않았던 인생을.

행복하겠다.
다음 선거 때는 조금 더 행복하고,
그 다음에 한걸음 더 행복하고, 
더더더 행복해서 
충만한 행복을 쟁취하겠다.  


나는 나의 저주(?) 덕에 지금 나는 등록금 오백육백 시대에서 살고 있고,
그리고 조금도, 조금도 행복하지 않다.




춤을추며절망이랑싸울거야
우리들은얼어붙지않을거야

사랑하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1212

소소한 수다 2012. 12. 12. 12:57
바쁘지만 잘해낼거임!







지난 아이템을 진행하는 내내 떠오르는 잔상은 단 하나였다.
배낭 여행중이던 스물네살.
르브르에서 한발자국을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은 채 한시간을 내리 그 자리에 서있게 만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유명해서, 그래서 흔하고, 그래서 평범하지만, 
직접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정말 아무것도 모를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앞으로 돌격하는 여신이 아니다.  
행진의 밑바닥에 이미 바스라져 죽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주검이 되어서도 온전치 못하고
옷가지가 발가벗겨진 내버려진 처참함.
그럼에도-.
동료의 죽음 앞에서 너무나 초연하게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전진만 계속하는 사람들. 
혁명 앞에서 삶은 아무것도 아니고, 생은 언제든 내던져 버릴 수 있는 값싼 장식이었다.

혁명은 냉혹하고 비정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달콤하고,  
단 한번이라도 억압 된적 있는 자라면 누구도 뿌리칠 수 없을만큼 강렬한 유혹.
기쁨, 열정, 분노, 슬픔. 
벅찬 환희를 위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냉혹한 대가가 가슴 아파서
숨을 쉬기 어렵고 눈물이 막 나려는 걸 애써 참아야 했다. 
  

 



아흔다섯살까지 살았던 역사가는
열여섯살 소년시절의 물음을 평생 안고 살았다고 한다.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


그 시절에 만났고, 평생을 사랑하며 몰두했던 그 남자,
마르크스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무뚝뚝하고 건방진 영국계 유태인 소년이 열여섯살부터 아흔다섯살까지 살았던 삶.

구두공이 수선하던 신발 개수를 세며,
직공들의 연장가격을 계산하면서 그가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세상을 바꾼 것은 구두공이다.
세상을 바꾼 것은 광부다.
세상을 바꾼 것은 주부다.
세상을 바꾼 것은 흔해빠진 사람들이다..

평생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흔해빠진 평범한 사람들'에게 남겼던 마지막 말도 기억한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포기해선 안된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너무나 쉽게 바스라지고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지만
답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외침.
그날의 '환희'와 '희열'의 잔상들이 자꾸 떠돌아서 마음잡기가 어렵다. 


12월이다.



저 바리케이트 너머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저 멀리 북소리가 들리는가?
내일이면 그들이 새 미래를 가져올 것이다

언젠간!!

카테고리 없음 2012. 12. 4. 13:09


총기있는 앞발
섬세한 발가락
두툼한 가죽

너에게서 신이 선물한 재능을 엿보았다!












고갱님 경추뼈가 너무 눌려있네요 요즘 야근이 많으시다 했더니만,
요게 눌리면 요추에도 영향가는거 아시죠~


언젠간 안마견으로 키우고 말테야~ 신통!!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