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마흔한살로 살았던 한해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보려고 한다 

 

1월은

엄마네 이사가 있었다 엄마 부엌에 장을 사드리고 조립까지 가서 지켜보고 이사를 도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네. 엄마 물건 더 버리고 싶었는데 다 못버린 것이 천추의 한... 일은 TBS 일을 근근히 하면서 작년부터 진행했던 KBS 다큐 두편을 틈틈이 손보고 있었다 

 

2월엔

문화재청에 냈던 기획안을 어떡해서든 웹툰 플랫폼과 연계하고 싶어서 아등바등 댔던 기억이 난다. 꼬꼬무식 대본화를 해야 설득이 잘될까, 특정 영상을 만들어야 설득이 될까 고민이 많았다. 따박따박 돈 나오는 일을 하면서, 다음 도약을 준비하는 터라 불안했지만 행복했던 기간이었다. 

 

 

3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기술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기술하지 않으련다. 요 달은 KBS 다큐 취재가 잘 안됐던 후폭풍이 몰아닥쳤을 때였군. 다큐팀 팀원들이 줄줄이 코로나 사라지면서(?) 마무리 작업이 더욱 어려웠다. 코로나 유행은 TBS 생방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는데, 출연자들이 펑크가 유달리 많았던 때였다. 그래도 말쯤에 문화재청에서 내 기획안에 협찬 의지가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줘서 힘이 났던 달.  

 

4월엔

집 앞에 벚꽃이 흩날리는데 다큐 원고 쓰느라고 벚꽃구경을 제대로 못했던 아쉬움이 있네. 그래도 원고 쓰다말고 한시간 짬내서 동네 벚꽃길을 걸었고, 다큐 원고 털고 난 다음엔 친구랑 안산 소풍도 했다. 문화재청 협찬을 어느 방송사와 협업시킬지 가지고 미팅이 계속 되면서 폭풍 일정이 몰아쳤다. 예산안 내기 하루 앞두고 모 방송사를 소개 받아서 문화재청 협찬까지 확정을 세이프! 당당하게 홈으로 들어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5월은

시국이 하수상할 때였다. 지방선거가 있었고 레귤러로 잘 들어가던 TBS 프로그램에 실질적인 위협이 불어닥칠 때였다. J방송국에서 빨리 넘어오라고 하기에 넘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이달의 하이라이트는 급 생겨버린 산신이(자동차)! 아빠가 거의 모든 돈을 낸 채로 공동명의에 올라 있던 남동생이 차를 가지고 독립해나갔는데, 장모님이 쓰던 차를 주시는 바람에 나에게 그 차를 주겠다고 약속. 결국 나는 10년된 장롱면허 탈출을 도모해야 했다. 지방선거 기간에 미친 듯이 도로연수를 해냈고(총 30시간 허리 부서지는 줄..;;;) 각종 서류를 모아 내 명의의 차를 갖게 되었다 

 

6월 방송국을 옮겼다. 운전을 시작했다.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 많았었다. 의욕 충만할 때라 상당히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냈다. 

 

7월 기획한 프로그램을 계속 다듬고 1회 원고를 얼추 완성했다. 그래도 기획 첫단계부터 꿈꿨던 부분을 섭외해냈고! (엠씨 섭외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꿈꿨던 기획이 조금씩 틀이 보이는 것 같아서 나름 재밌었던 달이다

 

8월 이 달 초에 눈에 이상이 (하나 더)있다는 걸 발견했다. 눈 질병은 쉽사리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몹시 우울했다. 안구 관리를 어떡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은 달이었다. 잠시나마 친구랑 오크밸리로 여름 휴가를 떠나기도 했었다. 기획하면서 가졌던 꿈과 현실의 괴리가 보이는 거 같아서 초조했던 달이기도 하다. 

 

9월 추석과 네 번의 녹화가 있던 달이라 꽤 바쁘게 보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때가 첫단추를 낄 때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로 꼭 해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크다. (그래!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 이후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날만큼. 이걸 생각하면 밤에 눈을 감을 수 없을만큼.. 크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시도 해보았고, 부딪혔고, 결국은 물러서야 했다. 그럼에도 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다. 거기에 의의가 있었다 믿는다

 

10월 본격 편집 기간이었다. 내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슬슬 고민이 되던 시기다. 약간은 무기력증이 도졌었는데, 비행기표를 지르는 바람에 무기력한 나날에 그나마 불쏘시개가 되었던 듯하다.  

 

11월. 믿고 싶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보았다. 하지만 내 잘못이다. 그 모든 것이 나의 탓, 정확하게는 나의 선택 탓이로다. 이 시기 나는 우울함에 잠 설치는 날도 많았는데. 이 와중에 재개발 이슈가 동네에 터지면서 또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동네에 뜻이 비슷한 교류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겨서 기뻤다. +좋아하는 출연자들과 모임을 한 번 가졌는데, 너무 좋아+사모하는 출연자님이 술을 사주셨다. 하... 이 일로 나는 그야말로 성덕 대열에 합류... 죽을 때까지 이 날 모임을 기억할 것이다. 

 

12월. 인생 버킷리스트 몇 칸을 채웠던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오로라를 호수 건너편 초원에 누워 수시간 바라봤고, 밤하늘을 노래하는 개들과 거대한 달을 향해 얼어붙은 숲을 달렸고, 전 지구를 누비는 고래들의 여정의 일부가 되어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북유럽 몇 도시 빈티지 샵에서 북유럽 커피컵과 그릇들을 사재기 했던 것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지. 

한국에 돌아오니 태어날때부터 나를 무척 사랑해주던 작은 아버지가 위독하단 소식이 들렸다. 삼촌과 작별 했고, 코로나로 보지 못했던 친인척들을 오래간만에 한자리에서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자그마하던 나를 만나기만 하면 몇 번씩 웃게 만들어주던 삼촌을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주어졌던 기쁨은 언젠가는 내 손 밖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그런 슬픔을 마음 한 켠에 안고 가던 도중, 넷플릭스 <피노키오>를 봤다.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리고 막주부터 바로 새직장에 출근 시작. 새로운 일을 시작하더라도 내년 한해에 절대 놓쳐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려고 한다. 

 

많은 일을 해보았다. 망설이지 않고 해보았기 때문에 나의 마흔 한 살 로 남길 수 있는 경험이었다. 올해의 부족한 점들 올해의 아쉬웠던 점들은 잘 보듬고 다듬어서 마흔 둘의 나로 데리고 가야겠다. 

 

안녕 마흔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