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에 먼저 글을 쓰고 촬구를 쓸까? 촬구를 먼저 쓰고 블로그에 글을 쓸까? 오늘도 어려운 과제. ㅋㅋㅋ #
  • 내일 국회도서관 또 가아돼… '소릉추복론'에 관한 학술지를 대체 왜! 촬구도 다 써가는대 왜! 이제서야 발견한 것인가… #
  • 마음을 굳혔다. 이번 월드컵, 우리나라고 (인자기가 빠진) 아주리고 나발이고 그냥 북한팀을 가장 응원하기로(이러면국가보안법위반인가염?ㅎㅎㅎ) #
  • 자꾸 강릉여행 무산될거 같은 불안한 조짐이 보인다. #
  • 강릉여행출발 방송시작하고서울밖을나선게손에꼽는데고속버스탔다는거자체가넘좋음ㅜ(me2sms) #
  • 제목없음(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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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사막 속 우물

20세기 소녀 2010. 6. 17. 15:37


사실 난 이번 월드컵 우리나라를 응원할 생각이 그리 없다.
'대~한민국!'이라니!
신명나서 어깨를 들썩이는 것도 한 두 해지,
8년째 같은 리듬 타기 진부하다. 질리고 지겹다.
그래, 맞다! 나는 원래 변덕이 심하다.

내가 이렇게 나라에 대해 시큰둥해 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대체 나라가 나에게 해준게 뭐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몇개 없는거 같다는 결론과,
짝사랑도 한두 해다. 외사랑으로 끝날 사랑은 안하는게 낫겠다.라는 판단.
여튼 우리 나라,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이 한 몫한다.
국가최고 지도자랍시고 TV나온 사람에 대한 살의도 큰부분 차지한다.
(그 사람이랑 같은 국적인게 부끄러워 참나 살 수 없다! 미치고 돌아가시겠다;;;)

나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흡사 '아이 때문에, 마지못해, 함께사는 권태기 부부'같은 모습이다.
별 수 없어 산다. 별일이 안생겨서 산다;;;;


지난주말, 재촬영과 재편집. 24시간만의 퇴근을 경험하는 와중에 그래도 간신히 짬을내 그리스전 축구 시청만큼은 허락됐다. 아빠도 나가셨겠다, 엄마가 애들 불러도 된다고 했겠다, 기회를 틈타 우리집으로 동네파를 불렀다.

동네파는 알러뷰 티셔츠를 맞춰입고 왔다.
피자를 두판 사왔다. 무한도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먹어치웠다.
싸구려 피자라 양이 적어 그렇다며. 다같이 변명을 했다.
손가락 빨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김마망이 40분 걸려 치킨을 배달했다.



닭관절을 씹으며 내가 말했다.
"난 요즘 우리나라 별로야. 권태기랄까? 국적을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어. "

콜라를 들이키며 만두가 말했다.
"그래도 연희동은 좋아."

그래. 만두의 말이 맞다.  
이딴 나라, 지긋지긋한 땅 구석, '국개'라 불려도 싼 사람들.
진절머리나는 틈바구니가 뭐가 좋다고,
모든걸 훌훌 털어버리고  이곳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동네에 있었다.

우리동네. 우리집, 우리 식구, 동네파, 친구들, 연희교회, 연세대, 사러가 근처, 꾸러기 놀이터.... 일억만금을 준다해도, 바꾸진 않을테다. 일억만금 값나가는 보물이 바로, 내가 사는 이 나라에 있었다. (아무도 일억만금 주고 사진 않을테지만 ㅎㅎㅎ)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을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야."
어린왕자가 말했었나, 여우가 말했었나? 정확한 출처는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나는 사막같은 세상 속,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우물' 하나를 숨겨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욕할 것 투성이인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누구나 각자의 마음 속 우물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백명의 마음속에는 백 개의 우물이. 천 명의 마음속엔 천 개의 우물이.

그래서 저 멀리 떨어져서 보면 모래투성이 사막일지라도,
 정녕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른다.  

어떤 의미에선 내가 사는 이 못난 나라도 진정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생각해봤다. 
'대한민국~'까지야 못외치겠지만,
그래도 조금, 응원할 마음이 생긴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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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권태기 부부사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만취한 '민국이'와 '나'.

  • 어제새벽6시출근24시간만의퇴근이다 ㅜㅜ(me2sms) #
  • 무려 하루 두번 출근; 회사 내 자리에 망부석으로 남겠군 #
  • 동대문에서버스잘못탄덕에 지금월계삼거리성북역을지나는중ㅜㅜ 대체여긴어디?(me2sms) #
  • 261번버스바꿔타고오는데갑지기쏟아진소나기로다들우산이없다오늘내우산은한겨레21‥(me2sms) #
  • 동대문서버스탄지두시간‥ 을지로2가군요 잊지못할하루예요 회사에일이없어서다행(me2sms) #
  • 드디어 여의도‥ 강건너국회가보이네요ㅜㅜ(me2sms) #
  • 아악 국회로안가고여의도를돌고있다 이젠좀내리고싶다ㅜㅜ(me2sms) #
  • 회사도착. 노트북으로 미투하니 감개가 무량의 눈물이~ㅠㅠㅠ 오늘 나의 어이없는 뻘짓엔 웃음이 ㅎㅎㅎ #

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뎡이 웨딩 촬영에 입을 티셔츠를 인쇄하러 동대문에 갔었다.
티셔츠 인쇄해줄 아저씨와 다섯번의 전화통화 끝에 무사히(간신히)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사무실로 출근하기 위해 검색으로 찾아 놓은 261번을 버스를 탔다. 
내 손에는 얼음통에 넣어온 곰다방 더치커피가 있었으며 이번주 한겨레21과 시사인이 들려 있었다. 네이버 추정 58분의 소요시간도 두렵지 않았다.

한참 가고 있는데 하늘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소낙비가 아무리 세차다 해도 국회의사당 부터 뛰면 되겠지 싶어서 시크하게 무시했다.
지금돌이켜보면, 버스 안내 방송에서 '외대'를 외쳤을 때 좀 이상하다 여겼었어야 했다.  

한참 가고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언가 어색함을 느꼈다. 월계동;;; 여긴 어딘가요? 성북역은 또 뭔가요? 한예종 앞은 왜 지나치나요? 광운대는 갑자기 왜 나오나요? 버스 탄지 약 오십분 만에 나는 버스 노선을 확인하기 위해 엉덩이를 똈다. 노선을 확인하자 마자 내리는 벨을 눌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굵은 빗방울이 새까만 콘크리트 바닥을 후려치는 화요일 오전.
낯선 동네에서 우산도 없이 261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버스지만 이번엔 반대 방향이었다.
일상탈출! 비오는 풍경. 익숙한 듯 새로운 낯선 동네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버스에 다시 타고 비내리는 풍경을 한참을 봤다.
광운대도 지나고 한예종도 지나고, 좀 지나면 외대가 나오겠구나. 학교가 많은 동네구나 싶었다. 우리 동네 같겠다. 이 동네에도 이 동네를 '고향'이라고 생각하면서, 골목골목마다 마주치면 인사를 나눌 친구들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2차선 도로는 무척이나 좁았고 낮은 건물 아파트 상가들의 소소함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 이 동네를 즐길줄 아는 사람이 이 동네에 살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갑작스런 비 때문인지 버스에 타는 사람들의 손엔 우산이 없었다.
젖은 옷의 물기를 털어내기에 바빴다. 그들이 털어내는 물줄기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혼자 앉아 에어콘 바람을 쌀쌀하게 느끼지 않을 만큼, 버스는 딱 그만큼 한산했다.

외대가 나왔다.
이 동네에서 추억이라곤 곰언니와 파전에 동동주를 먹었던 기억밖에 없다.
갑자기 곰언니 생각이 나면서 울컥해졌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창밖에는 추적 추적 비가 오고 있었고, 난 완전 쌩뚱맞은 낯선 동네에 있었으며, 버스 맨 앞자리 울어도 아무도 모를 위치였고, 반이상 마신 곰다방 커피 덕에 내 감성은 충분히 말랑말랑해졌으며, 내 엠피쓰리에서는 옛 회상과 감상을 리플레이시켜줄 음악이 줄창 흘러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이다.

도망쳐 나온 사람은 변명할 거리밖에 못찾는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부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떠오린 장면은 대학교 3학년 끝무렵. 과학생회장으로 온 몸과 마음이 너덜거릴 때였다.
그 당시 나를 위한 변명을 시작하자면
내가 속한 단대 학생회 사람들과의 싸움이 지긋지긋했고, 사람 자체에 대한 믿음을 잃을 때였다. 성공이라기 보단 실패가 주는 열패감이 머리 끝까지 차 있었고, 이제 더 이상 나서고 싶지 않았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건데? 왜 내가 해야하는건데?
부총 후보 나가라고 설득하던 선배 언니들 전화 피하던 시절이었고 강의 끝나면 사람들 눈에 띌까 도망치기 바쁠때였다.

학교를 정리하고 사라진 곰언니가 나를 만나러 온건 그 때였다. 꼭 1년만이었다.
언니는 나에게 그 어떤 말도 묻지 않았다.

'앙증, 많이 힘들구나.'

차라리 왜 그렇게 비겁하게 숨기만 하냐고 추궁했다면,
그따위로 도망다니는 후배 나는 둔적 없다고 매몰차게 말했더라면,
너밖에 나갈 사람 없으니까 니가 나가야한다고 강요했다면.

아마도 나는 선거를 나가지 않았겠지.

그냥 그 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1년간 입었던 상처를 고름 터뜨리듯, 엉엉 우는 내 곁에
말 없이 있어준 언니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그 고마운 기억이 쓸데 없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아마도 '이상한데서 잘운다'의 운세를 타고 난건 서눈물이 아니라 바로 '나'인듯.

다시 원점 동대문에 도착했을 땐 하늘이 말끔하게 개어 있었다.
버스 바깥 곳곳 처치곤란인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문득 어제 섭맨의 명대사 '여자들은 다 똑같애'를 노래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들었다.
문자를 넣었다.좋단다. 가사는 나보고 쓰란다.
어제밤 고작 맥주 한캔을 마시면서 땀을 뻘뻘 흘린 이유가 오늘에 있었구나.

코러스 가사만 쓰겠다고 했다.
나는 '남자들이 더 똑같애'라는 가사로 후렴구로 넣고 싶다.

여자들은 다 똑같아. 남자들의 능력만 보잖아.
남자들은 더 똑같아. 여자들의 외모만 보잖아.

제법 그럴싸한 노래를 만들 수 있을것 같았다. 어제 밤 놀이터, 둘다 루저인 채로 맥주 캔이나 따고 있는 우리들 옆에는 고양이 두마리가 눈이 맞고 있었다. 고양이마저 짝이 있는데 내 짝은 없는 더러운 세상.

하지만 나도 섭이도 실패자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삶들이 모여 있을 뿐.

을지로를 지날 때는 엉덩이가 아팠다. 길도 막혔다. 감상으로 풍경을 즐기기엔 이미 두시간 가까운 시간을 버스에 앉아 있었다. 오늘 사무실에 나가서 할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녕 (말이 좋아)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주는 장점은 이것 하나구나 생각했다.

261번 버스는 여의도 마저도 빙빙 돌아서 나를 국회에 내려주었다.
이번 글을 수미상관으로 끝내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뎡이와 세준이의 웨딩 촬영용 티셔츠가 잘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ㅎㅎㅎ






좋아하는 일을 해서, 정녕 행복하다는 말을.

얼핏 참 쉽지만 진정 어려운 그 말을. 나도 가슴 깊숙히 진심으로 외쳐보고프다. 어른이 되는 일은 꿈꾸던 모든 것을 자꾸 깎아 내리는 일 같아서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가?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가 눈물 콕 찍어낼만큼 이렇게 서럽고 슬픈게.


2008년 10월의 일기였다.

나는 오늘 이 일기를 다시 꺼내 본다.
원고를 쓰는 걸로 만나게 된 두번째 프로그램.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이 프로그램은 그토록 꿈꾸는 프로그램과 상당 부분 닮았다.
많이  배우고, 좀 더 자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오늘 내민 첫번째 구성안은 예상보단 덜 혼났고,
두번째는 이렇게 하니까 훨씬 낫다는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한가?
그렇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나면 너무 오만한 대답일지도 모르겠지만.

즐겁고 재밌다.


꿈마저.

소소한 수다 2010. 6. 7. 21:50

나는 꿈마저 다큐로 꾸나보다.

친구 중에 자신의 꿈을 맛깔나게, 블로그에 정리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따라하려는 건 아니지만, 나도 어제 내가 꾼 꿈에 대해서 좀 논하고 싶다.

오늘 심야근무가 예상되길래 어제는 일찍 잠에 들었다. 0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본다면, 나의 하루는 언제나 똑같다. 만화책으로 점철되는 약간의 여가와 새벽 2시경 이루어지는 잠. 어제는 무려 밤 10시에 침대에 누웠다.  특별히 할일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이 되어버린, '내일'이 바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잠은 오늘 아침 8시까지 이어졌다.

꿈은 세 편이었다.



첫번째 꿈.
이제 한달 된 우리 자료조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억이 맞다면 굉장히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목소리로. '선배님 저 내일부터 안나가요. 참 프리뷰 테잎이 *개 남았어요.' 라고 말했던거 같다. 그래 떠나는 너에게 무슨 근거로 프리뷰를 마저 하라고 하겠냐.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나는 내일 있을 빡빡한 일정을 짜보며 괴로워했던 것 같다.

다행이다. 막내는 오늘 무사히 출근했다. 그누구의 출근보다 그녀의 출근이 궁금했던 오늘이었다. 프리뷰도 다 마쳐주었다. 그 덕에 나는 편구를 무사히  써냈다. 이 꿈의 근거는 요즘들어 유달리 어두워 보이는 우리 막내의 표정 덕분이라 하겠다.



두번째 꿈.
정확히 11년 전이었다. 나는 무려 교복을 입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3반이 우리반이었다. 11년만에, 우리반은 뒤집혀 있었다.
 전학생 하나가 왔다. 그녀는 자기네는 남녀 합반인데 짝궁을 했다고 했다. 누군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우리도 남녀 섞어 짝을 하고 싶다고 외쳤다. 요청은 요구가 되어 거세어졌다.
영진은 남녀 짝을 시켜준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아이들이 자신의 짝을 찾기 시작한 건.  2학년 때 내 번호는 40번이었으니까 나도 남자 짝을 찾고 있었다. 남자 10번은 누구였니? 나는 출석부에서 이름을 뒤졌다. 하지만 이름을 찾지 못했다. 궁금해서 이 애 저애 묻고 다녔다. "니가 10번이니?" "아니면, 누가 10번이니?"
서*혜는 좌절하고 있었다.  꿈 속에 그녀는 유*과 짝궁이었다. 누군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섭의 짝궁이었다. 11년 후에도 그녀들은 그들의 짝인 운명이었나보다.  
아무래도 내가 이 꿈을 꾸게 된 건, 금요일날 정*은과 곰다방에서 기나긴 데이트를 했기 때문인것 같다. 우리가 한반이었던 건 참 다행이었다. 나는 선거 후유증을 열변으로 뭉쳤고, 단단하게 뭉친 감정을 밖으로 마구 끄집어 냈다. 그녀가 동의해줘서, 그런 그녀를 알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집을 뒤져보면 2학년 3반 명렬표가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꿈에서 찾지 못한 남자 10번을 찾겠다. 나의 짝궁을 찾는다 해도 이젠 더이상 짝궁이 되지 못하겠지만, 누가 될지 (기대는 커녕) 너무나 두렵다;;; ㅋㅋㅋㅋ



세번째 꿈
학생회관 사범대실에 앉아 있었다. 대학시절 학생회관 왠만한 방은 다 내방드나들듯이 드나들었다. 4층 동아리방은 말할 것 없이 사대 자대 문만 열만 친구들 얼굴이, 인사하는 후배들의 목소리가, 고개를 숙여야할 선배들의 모습이 있었다. 우리는 시크하기로 정평난 짝수 학번 선배들을 닮고 싶었다. 하지만 시끄럽게로 유명한 홀수학번을 닮아가고 있었다. 선거 끝무렵이었다. 오늘 저녁 메뉴가 뭔지, 정체 불명의 요리는 이제 그만 먹고 싶다고 선본짱을 닥달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시절이었다. 나는 내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뚫리는 것 하나 없이 갑갑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미워할 것이 너무 많았고, 바꿔야할 것 투성이었다. 때론 미워할 대상에 내가 포함돼 있기도 했었다. 나 자신이 부조리한데 누가 누굴 욕해. 비겁한 내가 싫었고 그런데도 겁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이 뭐 그리 좋다고 뭐 그리 그립다고 이런 꿈을 꾸고 있나.

이 꿈의 근거는 절친노트 서울예전 재방송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가 학생회관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동창회를 해보고 싶다. 그자리 그대로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말을하고 그때를 기억하고 싶다. 다시 한번 재연되는 그 상황 속에서 그때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는지 다시 되새겨 보고 싶다.



나는 꿈마저 이렇다.
창의성 씽크빅 한번 휘갈기지 못하고 있는 팩트 그대로, 있을 법한 일들이나 이미 있었던 일들을 재연(?)하질 않나, 사실에 근거해서 사실에 근거한 꿈만 꾼다.
꿈속에서 만이라도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르고 창공을 휘저으며 스펙터클한 어드벤쳐의 세계로 날아보고 싶다.

꿈의 구성마저 너무나 평이하다. 재미 없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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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 기사를 읽고 마음이 참 아프다.
나는 불교는 잘 모르지만,
뜻한 바를 위해 내 모든 걸 내던지는 건 참으로 힘든 결단이라는 건 잘 알겠다.
4대강으로 삶을 빼앗기는 수 많은 생(生)을 보면서
그것을 남이 아닌 자신의 일처럼 여기셨구나 추측해본다.

문득,
친구가 건네준 도마서의 구절이 떠오른다.
이 구절을 읽고 무릎을 쳤다.
도마서가 왜 신약성경에 들어갈 수 없었는지, 다시 한번 느낀다.
예수의 이 말은 파격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세기를 뛰어넘는,
그것도 2000년을 뛰어 넘는 빨간책이었다. 혁명서였다.

"그대가 둘을 하나로 만들 때,
그대가 안이 밖과 같고 밖이 안과 같으며 위가 아래와 같게 만들때,
그대가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똑같게 만들때....
그때 그대는 신의 궁전에 들 것이다."


예수는 너와 내가 같아지고, 여자와 남자가 같아지고, 위와 아래가 없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언젠가 교회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건넨 말이다.
"예수님이 이명박을 사랑하실거 같아? 연금혜택을 빼앗겨서 연탄을 때지 못한 채 촛불을 켜서 몸을 녹이다 돌아가시게 될 할머니를 사랑하실거 같아?"

친구가 말했다.
"예수님은 둘다 사랑하셔."

친구의 말이 맞다. 예수는 우리 모두를 사랑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또 하나있다.
예수는 이명박의 죄는 사랑하지 않는다.

이명박은 단 한 번도 그 할머니와 자신을 동일시 한 적이 없다.
아니, 동일시 한다 해도 동일시한 생각을 행동한 적 없다.
궁핍함을 게으름의 부산물이라 말한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들은 위로 올라와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위와 아래의 구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그것은 너와 나를 구분짓는 경계다.

내가 아는 예수는 이토록 내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십자기에서 소신공양을 하였는데,
요즘 세상이, 한국교회가 말하는 예수는 내가 아는 예수와 참 다른 것 같다.  

왜 이렇게 다를까, 무엇이 이렇게 다를까.

내가 아는 예수가 잘못된 예수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진보의 씨앗

소소한 수다 2010. 5. 29. 23:27

어제 진보신당 선거대책위원장의 단체 문자가 왔는데,
버스 타고 오다가 울컥했다.

"진보 정치의 소중한 씨앗만은 반드시 지켜내도록 하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왜 이렇게 절절하면서 슬프던지.
2002년에 민노당 가입했다. 올해 초 진보신당으로 옮겼고 지금까지 8년이 지났다.
매번 선거 때마다 한다고 했는데, 주변사람들에게 투표도 시키고 기를 쓴다고 썼ek.

친구들이 부정적인 나의 시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일 같이 입에 달고 살았다. 나라를 욕하고, 기성세대를 욕하고, 계층을 욕해왔다. 모르고 있으면 이게 문제인지도 영영 모르기 때문이다.
 
여튼 그러기를 8년. 하지만 내가 속한 당은 아직도 '씨앗'이다. 나는 아직도 소수고, 아직도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외롭고 가끔은 쓸쓸하다.
 
2002년 민노당 가입 당시만 해도 '소수정당'임은 알고 있었다. 곧 뿌리내리고 꽃피울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지금 그 믿음이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젠 좀 보고 싶다.

내가 더 나이 먹기 전에, 내가 더 늙기 전에. 이 열정이 사라지기 전에. 살아온 젊은 날을 부정당하기 전에. 우리 정당에서 나온 후보가 기호 1번이 되고 여기저기 현수막 걸려 있는 모습을. 기업에서 돈받지 않고 스폰 없는 제대로 된 정치인들이 나오는 그 사회를. 좀 보고 싶은거다.

언젠가 내가 가진 믿음이 낡디 낡디 낡아서
인간은 조금 더 평등해야한다고 다양할 수 밖에 없다고 조금 더 자유로울 수 밖에 없다고  
인간의 존엄성이 누려야할 권리는 아직 멀었다고 외치는
그리하여 나를 향해 '보수'라며 '세상과 타협했다고' 손가락질 할 새로운 세대를
기다린다. 제발 죽기 전에 좀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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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

소소한 수다 2010. 5. 26. 17:31

얼마전 친구에게 실망을 했다. 나와 다른점이 있었다. 남들이 보면 그건 큰차이는 아니었다. 아주 미묘한, 차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분명 큰 차이였다.  

무심코 지나친 그 한마디가 자꾸 와닿는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내 오늘까지 곱씹는다. 씹고 또 씹고, 곱씹고, 질겅이고 풍선껌 마냥 풍선을 불어본다. 왜 그런 차이점이 있을까를 고민한다. 고민의 답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니까.  

별것 아니라고 간단히 넘어가면 별 것 아닌이야기였다. 날 향한 얘기도 아니었을 뿐더러, 인신성 발언도 아니었고.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미묘한 차이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그토록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애를 믿었다.
친구지만 존경했다. 좋아할 점이 무척 많은 애였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그애가, 아니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건 나에게 큰 만족이었다.

그 차이가 너무나 안타까웠고, 차이는 넘지 못할 벽으로 느꼈다. 그래서 슬펐다.  

'정해진 미래란 없다.'
스물 아홉 먹은 나는 아직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이 생각을 그만두는 순간, 스스로를 늙었다 여길 것이다.








'생각하는데 실천하지 않는 건 분명 비겁한 일이다.'
그건 '절망'이다. 모든 사람이 알게 되도 부조리한 이 세상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의 이 말들을, 나의 이 생각을 부끄러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물 아홉.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존경할 지점이 많은 친구였는데, 어제 그 한마디가 그 무수한 존경의 지점들을 몽땅 지워버렸다. 슬픈일이다. 나는 겁이 났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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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독 만화가 나의 이백마디 보다 훨씬 더 나은것 같아 첨부해서 올린다.
나에게도 이렇게 곱고 부드럽게 선거를 권할줄 아는 기술이 있었음 좋겠다.

열센치.

소소한 수다 2010. 5. 25. 10:31


회사에서 밤을 샜다.
여튼 덕분에 몽롱한 상태인데,
이대로 오늘 나머지 일과를 집에서 보낼수만 있다면 나는 만족하겠다.

10cm의 앨범을 주문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씨디가 도착하기 전 회사 동료에게서 음원파일을 선물받았다.
난 게으른 인간이니까, 씨디를 내방 크로슬리가 아닌 노트북으로 듣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리핑의 수고를 덜었다.


10cm의 씨디를 지르게 된건 정말 말그대로 '지름'이었는데,
단 한 문구의 카피가 결국 지갑을 (아니, 은행공인인증서가 들어있는 USB를 내 노트북 포트에 꽂게) 열게 만들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커피와 담배를 모를 순 없다

아~ 이 문구!
요,요,요,요 요 문구!! 이게 빵터지면서도, 왜 이렇게 왈칵 치솟는게 있는거임?
그렇다 가난하다고 해서 커피를 모를 수는, 담배를 모를 수는 없는 법!
(나는 나도 모르게 담배를 술이나 고기로 지워서 읽고...)

여튼, 가사가 좋다.
본질적인 감정은 공감하지 못한다고 쳐도 적어도 가사 뒷배경만큼은 공감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번지는 이야기 하며 주변 묘사하며  90년대 틱한 가사가 마구 쏟아진다.
가사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되지는 못하는데, 적어도 나 십대때 꿈꿨던 '20대의 내 모습'과는 닮아 있으니까. 일말의 동질감을 느끼는거겠지.

개인적으로 이런류의 노래를 불러줄 사람은 내 주위에는 섭맨 밖에 없는거 같고,
나는 섭맨이 노래를 부른다면 이런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
너무 빠르지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고.
욕심내지 않고 대신 바랄 수는 있는 노래.
여튼 인간 보편적인 정서를 말해줄 수 있는 노래다.
'인간의 욕심'에 보편적인 정서가 아니라.
섭맨은 나랑 동갑이니까 나랑 같은 걸 보며 자랐고, 동네도 얼추 같으니까 같은 곳에 머물렀겠으니 분명 교집합이 있겠지.  음미하고 감상할 수 있다는게 많다는 건 참 기쁜일이다.

여튼 오늘의 결론은
잠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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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퀼트(편집구성안) 중. 이 조각을 가져다 붙이면 이 천이 모자라고 저 조각을 가져다 붙이면 또 이쪽이 모자라네~ #
  • <검정치마>강아지를 듣고 있다. 블로그에도 적었지만,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 내년에는 '시간이 스물아홉에서 정지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말테니까. #
  • 이번주 주말에 결혼식이 네개나 있다. 나는 이번주 원고주다. 그럼에도 가능한 스케쥴일수도 있다. '재촬영' 또는 '재시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
  • 수지언니결혼식 모르고 한시간일찍와있음 우째이런일이 ㅣ시출근해야하는데 흑흑 사진만찍고사라져야겠음 ㅡㅜ(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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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엔 두멍의 수지언니가있었습니다 그냥 수지언니와 신부화장한수지언니‥ㅋㅋ(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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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뒷걸음질 결혼식
회사 갈때도 일어나지 않는 시각 오전 8시에 기상해서 110번 타고 한시간 20분을 달렸다.
정류장에서 내려서 교우회관까지 걷느라 기절 대기절. 왤케 멀어? 왤케 멀어?
가까스로 식장 도착. 신부대기실에 있는 뒷걸음질을 보고 기절했다.

난생처음이었다.
뒷걸음질에게 "야 너 이쁘다"라고 말한 건.

진짜 오래간만에 경진이 얼굴도 보고, 보라언니 열매언니 병주오빠 등등 반가운 얼굴들이 가득이었다. 결국 결혼식은 끝까지 보지 못했지만
축하하고 축하하는 이 마음이랑 잘살라고 앞으로 내내 기도한다는 말은 전해주고 싶었다.
"입장하는데 뒷걸음질 너 1학년때 과대했던거랑 2학년때 우리 친해졌던거 3학년 때 답사장으로 개고생하던 그시절이 소소하게 기억나는 바람에 울컥한거 있지?
선물, 받고 싶은거 빨리 말해~ 시간이 지나면 말하기 더 어려운 법이라고. ㅋㅋㅋ"


*그리고 나는 사무실에 잠시 들렸다가;;;;; 다시 또 다른 결혼식장으로

*오군네 둘째 누나 결혼식
141번을 타고 역삼 청운교회까지 친히 왕림했다.
오군네 누나 결혼식이었는데, 신랑 미남이야! 신부 미녀야! +_+
예배 시작 전 주보에서 봤는데 신랑, 즉 오군의 매형의 아버지 성함이 피자회사 이름이었다.
문병기 왈, 이 사람이 그사람이래!
예전 내 친구 금댕이가 대학 다닐때 파일 가방 대신 그 피자집 메뉴판을 들고 강의실에간 대사건이 있었는데 말이다. 내 친구 금댕이를 대신해 오군의 매형, 그 아버님께 사과의 말씀전합니다. 

*택시타고 서울 구경
앞으로 상당기간 고수입이 예상되는 문*기가 자꾸 택시타자고 우기는 바람에 (지방살다 왔더니 적응이 안된단다) '니들이 내면' 이란 조건을 달았다.
황우성 내려다주고 (중앙대) 택시비의 거의 대부분을 낸 문*기 데려다 주고 (목동)
그리고 집으로 왔다.
고대찍고, 여의도, 강남찍고, 중앙대, 목동, 다시 신촌까지 그야말로 서울 대유람;;;
집에 도착한 것은 4시 30분. 그때부터 나는 원고의 패닉속으로;;;;;


*스쟈 언니 결혼식
새벽까지 원고 쓰고 아침에 일어난 것이 10시. 12시 결혼식이니 11시 30분에는 도착해야 스자언니랑 사진정도는 찍을 수 있을것 같았다. 회사 출근해야하는게 1시니까 완벽해. 결혼식은 보고 가겠구만 생각했었다. 국회도서관 지나치고 의원동산으로 향하는데
뭔가 황량해;;; 이상해;;; 허전해;; 아무도 없어;;;;

결혼식은 1시였다.
결국 나는 빈숲에서 쓸쓸히 한시간을 보내다가 스쟈언니와 사진을 박은 뒤 쓸쓸히 사무실로 돌아서고야 말았다는 이야기를 추가한다.


*강선배님 결혼식
사무실 돌아와서 수정된 부분 타임체크 다시하고 원고 좀 더 손본 다음, 내가 향한 곳은 목동 웨딩의 전당. 결혼식 전 이번 편 담당 피디님과 새 아이템에 대한 간단한 정리를 마치고 결혼식에 참여했다.

아! 씨엔블루가 축가했다. 잘생겼는데 너무 다 비슷하게 생겼다. 아이돌은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경우의 수가 중요하다. 선택의 다양성도 존중되어야하는 법이지.



*종로 연등축제
커피나 한잔 할까 하고 이금댕에게 문자 보냈더니 동네파 중 몇몇은 오늘 종로 연등 축제 구경간댄다. 나 안그래도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고쳐야할 원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로로 향했다.
다섯자리를 맡아두고 당당하게 앉아 있는데 여기저기서 백번 물어본다.
"거기 자리 있는거에요?"
"네 화장실 갔어요. 금방 올건데..."
가지도 않은 화장실을 갔다며 조마조마 동네파를 기다렸다.
예전부터 나는 맡아두고 기다리는 담당이었다. 대학때도 도서관 대여섯자리는 언제나 나의 책과 노트로 뒤덥혀 있었더랬지.

드디어 행렬이 시작됐는데...
아! 나 이거 직접 보고 싶었어. 너무 설레. 게다가 좋아하는 놈들이랑 있으니까 더 신나. 완전 목청껏 소리 높여 외치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큰 덕분에 불교적 지식이 없다는게 만천하에 공개 됐다. 
"그니까 흰코끼리는 석가모니의 전생 아니냐고? 저 무섭게 생긴게 사천왕이냐고. 동방장군지국천은 옛날 클램프 만화 성전에 나왔던거 아니냐고. 거기선 쭉쭉 빵빵초 미녀였다고."
주기자가 쪽팔리다고 입좀 다물라고했다.
이 와중에 이금댕은 불자들이 행진하며 외치는 "성불하세요~"라는 말을 "함사세요~"로 들었다는 후문이.( 이건 2010년 슈동 크리스마스 때 퀴즈 문제가 되겠다. ㅋㅋ)

세시간 남짓 연등 행렬을 봤는데. 역시 종교는 퍼포먼스구나. 없는 불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어디선가 보고 계시는 부처님. 나라가 이모양 이꼬라지입니다. 백성들이 진흙탕에 엉겨살고 있어요. 자기 조금 더 잘사는 것에 혈안이 돼, 살아 있는 많은 것들을 살생합니다. 다들 눈이어두워 '나'밖에 보지 못합니다. 이런 진흙탕을 정화시킬 연꽃같은 무언가가 나타날까요? 제 짧은 소견으론 '아마 안될거야'인데 말이죠."  
빌고 싶은 것이 참 많았고, 등의 행렬이 정말 끝이 없어서. 연등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내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을것 같았다.

종로를 지나 광화문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치킨 맥주 어떠냐고 꼬셨지만 나는 원고를 다시한번 수정봐야했고, 출연자와 통화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거침없었던 5월의 주말 일정은 이것으로~~~






아 나 정말 이번 주말 서울 곳곳 안찍어 본데가 없는거 같다.  


이화백이 그린 김마망

E.J-색감이 뛰어나고 봄에 맞는 느낌,인물의 성격을 알수있는 메세지 전달로 인해 차별성이 있는 작품,하지만 모델이 예쁘게 표현되지 않아 아쉬움.
J.H-인물과의 유사성은 동떨어지나 이러한 약점을 대담한 색채로 극복한 점이 우수,독창성이 돋보임.
J.A-칼라의 대담함, 마치 예전의 베네통 st가 연상됨.
S.H-인물을 한마디로 잘 표현 압춤함. 얼굴화장 뜬거 같음..
S.Y-전혀 닮은거 모르겠음
총점-28점




주화백이 그린 이금댕

J.A-눈,심하다. 금환이 눈나름 크다!
J.H-성의는 없는데도 이규만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한데 있어 작가의 표현력이 느껴짐.
K.H-참여한 성의에 2점 준다.
E.J-너무했다..
총점-16점
S.H-과도한 표현이 부담됨.성의 없음 귀찮음이 느껴짐(규만이 코어딨니?)





김화백이 그린 쩡뿌까


K.H-그림에 독이 있다. 쩡아를 싫어하는게 분명하다.
J.A-상처가득.
S.H-그리기 싫으면 그리지 마라.(표현력은 남다름은 인정하겠음)
S.Y-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시오.
J.H-수십년간 동고동락한 친구에게 상처를 줄정도의 대담한 작품이나 불쾌감을 자아내는 표현력은 돋보임.

총점-20점




신화백이 그린 주기자
J.A-초췌함이 잘 살아있다.
K.H-주기자의 두더미,홀쭉 들어간 볼살이 제대로 표현.
S.Y-그냥 사람같음.
E.J-표현력이 뛰어나나 남자느낌이 남.
J.H-초췌함을 잘 표현하고 인물과 유사하며,계절감을 인물에 맞게 투영하여 칙칙하게 잘표현한 감각있는 화가임.
총점-42점





쩡뿌까가 그린 로리
S.Y-창조성이 부족하지만 아이라인같은 디테일이 좋음.
K.H-버니답지 않은 은은한 눈빛이 인상적임.
E.J-인물보단 디테일,나머지에 신경쓴게 아쉬움.
S.H-세심한 스카프 표현 굿! 하지만 너무 우수에 찬 눈빛이 느끼함ㅋㅋ
J.H-모델이 특히 만족도가 높다는점에서 굿! 디테일이 살아있고 색채활용이 두드러짐.
총점-35점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참 쉬운 애였다.
잘웃고, 잘울고, 잘 감동받고, 잘변했다.
나 같은 애가 누군가를 (짝)사랑하기란 참 쉬운 일이었다.
안습인건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그 시절, 나는 계산을 했던건지도 모른다.
나의 외모는 내세울 것이 전혀 없었으며, 그렇다고 미친듯이 사람을 잡아끄는 재주나 매력이 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단독으로, 원톱으로 사랑받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나의 선택은 '눈에 띄기'였다.
목소리는 원래 컸고, 오지랖도 원래 넓었다.
그 덕분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속한 학교와 학원 교회에서 나는 온갖 수다에 중심에 있을 수 있었다. 덕분에 누구와도 말을 섞어도 이상할 것 없는 담대한 역할이 나의 역할이었다.  
따져보면, 애초에 내가 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부터 몇 없었다.

때때로 내가 행했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 푼수떼기 같은 수다들. 소란스런 사건사고들.
하지만 그 덕분에 짝사랑했던 그가 박장대소를 하며,
'귀엽다'랄지 (하지만 나는 그시절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 귀엽다라는 것은 우습다의 또다른 표현일 뿐인 것을;;;)
놀리듯 나에게 다가와 '우리 결혼할까?'라고 말해주면
그건 나에게 큰 기쁨이었다.

첫째가 아니어도 좋았다.
감히 욕심내지 못할 주연을 꿈꾸며, 닭이 텨오른 지붕을 바라보는 꼴은 추하다 생각했다.
그보다는 분수에 맞는 조연역에 충실한 것이 덜 추해 보였다. 
그렇다. 밑밑한 주연만 노리다간 결국 이 평생이 다 가버릴것만 같았다.
빛나는 감초역이라도 꿰차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예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몇년전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열연한 조연 역할 덕분에 그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빈말일지는 모르지만 가끔 생각났고, 보고 싶었단 이야기도 덧붙였다.

어쩌겠는가?
그 사람 기억속에 남으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내 방법이 틀렸다고?
내 입장이 한번 되어보라고 말해보겠다.
분명, 몇 번이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 방법 외에는 없다 할 것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올 한해는 어떤 경계란 생각이 든다.
이 선을 넘게 되면 할 수 없는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중이다.
동네파와 함께한 스물아홉이 가기 전 일도 그 일환의 하나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노래'다.




스물 아홉 첫번째 노래 - 서른 즈음에
나 스무살때 학교 동아리 가장 나이가 지긋한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가 생일맞이 한 날 불러준 노래가 바로 '서른즈음'이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그때'다. 밤을 새워 술마시고 동터오던 산너머를 보던 탈방. 그때 나는 무얼보고 무얼 깨닫고 무얼 결심했었나.
스물 아홉에 부를 첫번째 노래로 나는 단연 이 노래를 꼽는다. 그러면서도 아마도 이 노래는 서른 두살까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즈음'의 범주를 어디다 두는지가 중요하겠다.



스물 아홉 두번째 노래 - 우리스무살때
이 노래는 정말 올해가 아니면 부를 수 없는 노래다. 아니, 엄연히 따지자면 이 노래를 스물 아홉에 부른다는 것 자체가 억지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해의 마지막날 이 노래를 부르겠다.

언젠가 비오던 날 이 거리는 술잔에 흔들렸고,
떠나는 그대는 바람이었어라 바람이었어라.
나는 보았네 그대 두눈에 가득 고인 눈물.
할말도 못한 채 돌아서야 했던 바보 같던 시절.

사랑하나 못하면서 사랑을 앓던 시절
손뼉을 치면 닿을것 같은 스무살 시절의 추억

먼 훗날 그대 이름조차도 잊혀 질디라도
어딘가 남아 있을 듯한 그때 우리 모습들.

대학 졸업식 때 이 노래를 속으로 불렀다.
나에겐 바람이라고 부를 '그대'도 없었으며, 할말도 하지 못한채 돌아서던.. 추억 역시 없었다;;; 하지만 '손뼉을 치면 닿을것 같던 추억'은 너무나 많아서. 그 시절 추억은 정말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만큼 선명하게 남아서 나는 이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십대를 어떻게 추억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스무살 때에 포함되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 (비록 스물 아홉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올 한해, 어딘가 남아  있을 듯한 '그때의 모습'을 잔뜩 만들고 싶다.  





스물아홉 세번째 노래 -나이 서른에 우린

1절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우리들의 노래와 우리들의 숨결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저 거친 들녁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에 우린  기억할 수 있을까
2절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이름으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꿈꾸게 될까  아주 작은 울타리에 갇히진 않을까
우리들의 만남과 우리들의 약속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를 나이 서른에 우린  들을 수 있을까

아무리 따져봐도 '서른'을 그려보고 꿈꿔볼 수 있는 나이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서른이 지나면 단지 '서른에 뭘했었나'를 추억할 수 있을 뿐.

몇번 언급한적이 있었지만, 나는 민중가요패와 함께 쓰는 동아리방을 쓰는 동아리에 몸담고 있었다. 이 노래 역시 옆동아리 놈들이 줄을 선채로 박자에 맞춰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농활가서도, 선본방에서도 정말 줄기차게 불렀더랬다. 그때 꿈꾸던 '서른'을 생각해 보고, 그때 그리던 '나의 서른'을 떠올려 보고, 얼만치 변했나를 계산 하다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감정도 많아진다.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라는 가사를 오래간만에 들으니까
아! 정녕 주책맞게 코끝이 시큰해지는 게 울컥 울컥 치민다.





스물 아홉 네번째 노래 - 검정치마 <강아지>

'시간이 스물아홉에서 정지할꺼야'라고 친구들이 그랬어.
오 나도 알고 있지만 내가 열아홉살때도 나는 스무살이 되고 싶지 않았어.

검정치마 강아지.
이 노래는 내가 찍힌 다큐 <개청춘>의 엔딩곡이다.
서른이 되면 '시간이 스물아홉에서 정지할꺼야'라고 말할 순 없을테니까.
('결코 스물 아홉에서 정지하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장면과 직면한 순간일테니)
이 노래를 올해 불러야할 목록에 넣었다.

이십대에 잘한 일 중에 하나로 꼽는 걸로 <개청춘>을 출연을 꼽겠다.
영화의 대의를 떠나서,
적어도 이십대 중후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추억할 수 있고,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동네파의 모습도 곳곳에 찍혔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반이다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 언젠가
"82년 개띠들" 넷이 모여서 검정치마 강아지노래를 부를수 있는 그날이 오길.





  • 아이돌로 섬기고 있는 모 피디님의 6년전 프로그램을 봤다. 나 울었다. 모 피디님의 평생 팬할테야. 평생 따라다닐테야. ㅠㅠ(KFC여영원하라) #
  • 재시사를 앞두고. 더 떨리는군. #
  • 몇시간 못자고 일어나서 숨 한 번 제대로 쉴 여유 없이 원고 써댈 내일을 생각하니. 단박에 우울해졌다. #
  • 에이디들의 일용할 양식 '공화춘'뺏어 먹고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 ㅋㅋㅋ 아 이제 원고 검토만 하면 끝난다~ #
  • 상암공원 은지가싸온유부초밥 김밥 내가싸온 과일먹고드러누움이제독서타임(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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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소원의 집합

20세기 소녀 2010. 5. 6. 14:21


20대 여자들이 자주가는 다음카페가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세 곳이다. 나는 그 중 두군데에 가입돼 있다. 카페가 처음 생긴 목적성을 가지고 가입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자주 드나든다.인터넷에서 찾는 즐거움의 90퍼센트 이상을 그곳에서 찾고 있다. 마치 루라도 열어보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듯 드나든다. 주로 두 군데를 자주 다니고 있는데, 그 중 한 카페 메인에는 소원을 비는 란이 있다.

며칠 전 아이템을 하도 안풀리길래 아이템 풀리라고 소원을 적었었다. 대략 5분쯤 지났었을까? 우연히 다시 메인페이지에 들어갔는데 놀라고 말았다. 그 짧은 시간 많고 많은 소원들이 달려서 내 글은 밀려버린 것이다.

이 카페에 드나든지 어언 1년이 다 돼가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이토록 많은 소원이 적히고 있었다는걸 모르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새 글이 달리고 있는데, 대체 왜 그걸 몰랐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도, 그 소원은 모두 똑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드래그해서 복사한 다음 가져다 붙이기 한 것 처럼 말이다.

돈 많이 벌고, 살빠지고, 로또 당첨되고, 예뻐지고, 시험 잘치고 (관)심남이 나에게 연락하고, 성공. 미모. 돈. 사랑.
지금 세대가 욕심내는 것들은 참 단순했다. 몇가지 주머니로 분류하면 싹쓸이 돼서 그 안에 쏙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몰랐었나보다. 거기서 거기인 소원들. 그 외의 것들이 적힌적이 없었으니, 새로울 것이 없었지. 


내가 빌었던 소원이 유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디테일(?)이 살아있긴 해도 나의 소원 역시 '성공'이라는 욕망의 범주 안에 들어가니까. 그냥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걸 '소원'하며 사는 사람이 될지 말이다.

대량 생산 된 엇비슷하게 생긴 '대중'의 하나 일 수 밖에 없는 세대라 할지라도 특별한 것을 바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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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나의 소원을 설명하는 그림.
나의 작은 소원중 하나는 집에서 개를 키우는 거다. 이름은 정해놓은지 오래다. "신김치"



동전 두개

소소한 수다 2010. 5. 2. 16:48


어제 다모토리에서는 <015B>의 <텅빈거리에서>가 흘러 나왔다.
동네파 아이들과 떠들고 있는데 정말 기절할만한 가사가 나왔다.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손에 외로운 "동전 두개"

그 가사에 망치를 한대 얻어 맞은 듯했다.
그래, 그 시절에는 공중전화 통화료가 2000원 200원도 아닌
(십원짜리) 동전 두개였었다.
지금은 문자 한건 가격이나 되던가;;;
수다스러운 멀티 메일은 20원으론 택도 없을지도 모른다.

주기자가 캐 폭소할만한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해줬는데,
그 시절 공중전화 박스에 20원이 남아 있으면 아빠 가게에 전화 걸어서
"된장 찌개 하나 배달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전화 끊어버리곤 했단다.

공중전화 옆에 붙어 있는 곳곳에 하숙집에 전화해서
"방 있나요?"
라고 묻고 끊은 적도 많았단다.

자신은 완벽한 장난전화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그런 꼬꼬마 목소리(이자, 자신의 딸 목소리;;;를) 알아보지 못할 어른(부모)가 있을턱이;;;
그야말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왜냐면 나역시 동네 공중전화마다 붙어 있는 하숙집 전화번호를 보며
'장난전화나 한번  해볼까?' 하는 큰 유혹을 받았었으니까.

결국 텅빈거리를 노래한 윤종신이 야윈 두손으로 20원을 쥔 채 
'자니...?'라는 전화를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인생의 비극이란
82년 혹은 83년에 설계된 우리들이,
80년대와 90년도에 제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시대의 생각과 습성을 장착한 채 21세기를 살아가야 한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비극"이다. 




  • 홍대에 있는 커피 볶는 곰다방을 우리 동네로 옮겨오고 싶다. 정말 마음에 드는데,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 ;ㅁ; #
  • 어제 선거운동사무실에서 빡세의 요청으로 포토샵 작업 수행중이었는데, 빡세가 민중가요 틀었다. 말그대로 진짜 선거운동사무실 분위기 나더라. 나 아직도 '처음처럼' 율동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학때 동기들놈들 선배들 후배들 모두모두 보고 싶다. #
  • 친구가 말했다 사지마비싸잖아 내가말했다 야!내가명품빽을사!?화장품을사?성형을해!고작이것도못질러!응?? 그래서샀습니다 완죤이뻐요(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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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현 작가님 멋있습니다! 감동했어요. “동성애자는 어느 집에서나 나올 수 있는 아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난 그들이 바람직하다고도, 이상하다고도 그리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현상을 그리고 있다.” #
  • 내부시사 앞두고 이렇게 떨리기는 처음. 아니다, 떨린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구나. 이렇게 두렵기는 처음. ㅜㅜ #

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요즘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덕분에 생각치 못했던 생각,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느끼고 산다.

금요일에는 금댕이랑 '커피 볶는 곰다방'을 갔다.
곰다방이 주는 허름함과 낡음. 츄리닝 입고 와서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아무 거리낌 없을 것 같은 '부담없음'에 정말 반하고 또 반했다.
왜 이제사 이런 곳을 알게 된 것일까?
사장님 왈, 설날에도 열고 추석에도 연단다.
명절때는 책 두권 쥐고  이리로 대피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테레오가 없어진 상실감을 80%정도 채워준 듯 했다.
(우리집에서 자전거타고 15분. 그것도 사람 많은 홍대를 달려야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며칠 전에는 쩡아네 출판사 사장님과 밥을 먹었다.
좋은 분이란 생각이 들어서 참 다행이었고.
여러 방면으로 알고 계신게 많은 분이라 큰 자극도 됐다.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한 지점'이 가지는 긍정적인 의미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어제는 진보신당 선거 위원장님과 식사를 했다.
잡채덮밥에 고기를 빼고 주문을 하셨다. 채식을 하신다고 한다.
'동물권'을 생각해서, 시작하게 된건 2년 전부터.
이유는 간단했지만, 이만큼 명료하고 명쾌하게 떨어질 순 없다.
모든 사욕을 잘라낸다 하더라도 '고기' 하나의 이유 만으로 비구니가 절대 되지 못할것 같은 나에겐 더욱 그랬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요즘 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려고 발버둥쳤었다.
대게는 실패했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겹치는 교집합이 너무 작아 실망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나보다.
좀 더 다른 곳에서 새로 찾아보는 모험이 필요했다.
여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머리속에 집어 넣고 있다.
직장동료들과 친구들. 회사와 동네.
빤하고 빤한 반복되는 일상. 이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덧대고 있다.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기대된다.

파랑새는 살던 집에 숨어 있기도 했지만 그 얘긴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얘기고.
내 파랑새는 어쩌면 저 먼 나라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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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기준 검사 위키피디아에 올라감. 아 놔 기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그대로 '사전'에 남겠네염 #
  • 이제 좀 나가라! 촬구 쓰고 싶어 죽을 지경이긴 또 처음! ㅠㅠ 아흙! 지긋지긋해. #
  • [지금 내주머니속엔?] 조용하고 티 안나는 퇴근을 생각한다면 전 가끔 가방을 들고다니지 않는답니다. 주머니엔 버스카드,MP3,이어폰,핸드폰 네개면 출근퇴근문제없어요 이 릴을 bunny에게 넘깁니다 #
  • 알라딘 중고장터에서 지른 책이 있는데, 일주일째 배달이 안되고 있다. 오늘 한양문고 가는 김에 취소하고 그냥 새로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제부터 알라딘서버작업중;;; 책 사야돼 말아야돼? 이를 우째 ;ㅁ;(알라딘) #
  • 2주연속 주말 내내 출근하면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고 있음;; #
  • 왜 슬픈예감은 틀린적이없나 ㅡ낭만적인이유로슬퍼해보고싶다(me2sms) #

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그제, 어제, 오늘.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좋다'는 노래를 듣고 있다.
노래가 염려하는 것은 단 하나다.
'너와 나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만날 수 없는 것'.
'너를 보기 위해선 밤거리를 한참 헤메야 한다는 것.'


그냥 이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마음'이 참 값지단 생각을 해봤다.

 
니가 다른 사람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뺏고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놔주지 않을테다.
요즘 참 흔한, '소유를 향한 욕망'을 '여지 없이, 여과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가사들을 떠올려봤다. 그것이 솔직한 것일까? 그렇다면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마음일까? 부족함이 포함된 다소 모자란 마음일까.

요즘 노래들은
강을 무너뜨리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쓸어서라도
돈을 버는 '내'가 되고 조금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상관 없다고 말하는, 지금 이 사회와 참 많이 닿아있다. 그래서 닮아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게 참 불편하다. 


새끼손가락 걸고 영원을 맹세하고
백발이 되어서 너를 잊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들은 어디로 가버렸나?
이젠 '멸종'된 것 처럼 느껴지는 많은 것들이 살아 있는 세상에서 살았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너'보다 어느새 '너를 사랑하고 있는 내'가 중요한 세상이구나.

그래서 나는 자꾸 90년대 만화책을 사모으고 80년대 가요를 찾아 듣게 되나보다.

금요일 밤이다.
다모토리 가서 노래 부르고 싶다.



조하문-같은 하늘 아래




오늘 까지 아이템이 불투명한 상태라
또 다시 조급한 마음이 밀려온다.

4월달부터는 정신 차리고 살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런 이유로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라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외쳤었군.
여튼 분명한 것이 있다면, 나는 2010년 마음 먹은대로 살고있지 못하다는 것. 하나다.

나는 팔자에 불'火'자가 많기 때문인지 나의 자잘한 조급증을 못견딜 때가 많다.
나쁜 생각에 나쁜 생각을 거듭하면서 내 인생을 극한으로 몰고갔다가
조금 더 나아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쾌감을 자주 즐긴다.
건강에 좋지 못한 습관이란 생각은 한다.

남이 조금만 조급해 해도 힘들어 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얼마나 조급해 하고 있는가?

여튼, 나는 목요일부터 야근에 새벽출근을 밥먹듯 하고
주말 내내 출근 혹은 취재를 하면서 그 와중에 원고를 썼다.  
한가지 분명한게 더 있다면, 쉴 때가 됐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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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기침에 콧물에 열펄펄나고 몸살까지 났는데 목소리가 너무 쌩썡하다. 감기여도 티가 안나! 슬프다. #
  • 병원에 갔더니 기관지가 약하다고 한다. 천식환자들이 쓸법한 공기주입마스크를 사란다. 이로써 병약미소녀의 꿈을 이룬것인가? ㅋㅋㅋㅋㅋ #
  • 어제밤 여의도4년차면서 처음걸었다 밤벚꽃길(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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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기가 안낫는것 같다. 몽롱하다 졸립기 그지 없다. 나 프로그램도 뒤집히고 아이템도 없는 절체절명의상황인데 ;ㅁ; #
  • 원고쓰고 아이템찾는 와중에 간신히참가한 결혼식 잘살아라성진아(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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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감기에 걸렸다.
몸살 한번 안걸리고 초중고대딩 시절을 보냈는데
재작년 11월을 고비로 1년에 한번씩 골골대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씩씩한 내 목소리인데,
아파도 아픈게 티가 안나.
몸살나서 죽겠는데 그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목이 쉴만큼 쉬고 기침이 너무 심해서 병원가겠다고 조퇴한다고 했는데
내  앞에 바로 조퇴 허락 맞은 우리반 꾀병여왕의 리얼한 연기 덕에
나는 하나도 아파보이지 않았다. 양호실에서 약 몇알 얻어 먹고 보충수업 띵기는걸로 끝내야 했다. 이렇게 써 놓으니 아파보이지 않아서 당했던 수많은 일들이 생각난다. 아! 억울해.

여튼 화요일에는 조퇴를 했다.
정말 회사 길건너에 있는 병원 갈 엄두가 안나더라.
인어공주 다리 달고 첫걸음 딛는것 마냥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씬 거리더니
허리 다리 무릎 어깨 팔목 심지어 이빨까지 아파왔다.
그냥 회사 앞에서 택시 잡아 타고 집으로 갔다.
잠을 자겠다고 누웠는데 너무 아파서 잠이 안오더라.
30분마다 자다 깨다의 연속이었다.

나 아프다고 회사 조퇴했다고 하니까
친구 김마망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럼 나 홍대에 있으니까 카페로 와"

나 아파서 골골대고 밤에 핸드폰 문자 확인하는데
주기자의 문자가 와있었다.
"우리 피자헛 런치 언제 먹어?"

이 인간들아 나 아프다규!!

여튼 내 주변 철 없는 친구들의 문자에 한참을 처 웃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면,
나 어제 어지럼증을 두어번 느꼈다.
집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휘청하더니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 기분.
그니까 나는 컴퓨터가 되어본적이 없지만, 컴퓨터 재부팅 할 때 컴퓨터는 이런 기분이 들까? 싶었다.

여튼 나이 먹으니까 특이한걸 다 경험해 본다. 병원갔더니 기관지가 약하다면서 호흡기를 사라고 하지 않나? 어지럼증이라는 기이한 경험도 해보고.
나 소싯적에 넘치는 정력과 기발산으로 인하여 우리과 애들한테
정력이 좋지 않단 음식만 권유 받던 여자였는데 말이다.

결국 모든게 변하긴 변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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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에 페인터를 깔았다.
새창을 열어서 예전사이즈의 종이를 만들었다.

DPI는 300, 사이즈는 가로 1000 세로 800.
흰 종이를 열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정작, 그릴 그림이 없다.
그리고 싶은 그림이 더 이상 없어져 버렸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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