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앙증'에 해당되는 글 763건

  1. 2009.11.11 빼빼로 데이를 추억하며
  2. 2009.11.11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1월 10일
  3. 2009.11.10 형님(들) 미남이십니다! 2
  4. 2009.11.07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1월 7일
  5. 2009.11.06 지금, 내가 여기 있어서 참 다행이다 외
  6. 2009.11.06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1월 5일
  7. 2009.11.05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1월 5일
  8. 2009.11.04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1월 3일
  9. 2009.11.03 푼돈모아 푼돈
  10. 2009.11.02 하고 싶은 말
  11. 2009.11.02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1월 1일 2
  12. 2009.11.01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1월 1일
  13. 2009.10.30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9일
  14. 2009.10.29 10월 하순의 일기 2
  15. 2009.10.29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8일
  16. 2009.10.27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6일
  17. 2009.10.24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3일
  18. 2009.10.23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2일
  19. 2009.10.22 2009년 10월 21일 밤 스케치
  20. 2009.10.21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0일
  21. 2009.10.19 친구들이 변해간다 2
  22. 2009.10.17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17일
  23. 2009.10.16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15일
  24. 2009.10.15 주발이는마침내꿈을이뤘다 외
  25. 2009.10.15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14일
  26. 2009.10.14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13일
  27. 2009.10.13 여명808 그 커다란 사랑의 증거♥
  28. 2009.10.13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12일
  29. 2009.10.11 앙증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11일
  30. 2009.10.09 곰 언니에게


올해 빼빼로 데이도 어김없이 남들이 받은 빼빼로를 질겅이는 것이 전부였다.
낭만을 기대할 나이는 지났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무 것 없이  보내고 싶단 말은 아니고.
종잡을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휩싸인 채로 나는 오늘도!
옆팀 막내작가에게 온 빼빼로, 우리팀 에이디가 받아온 생초코렛을 주워 먹었다.  


빼빼로 데이가 전국적으로 홍보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즈음. 올해로부터 근 10년. 아몬드 빼빼로 통빼빼로 나오기 전의 일이다. 우리 학교에서 별나지 않은 애를 찾는 일이 더 힘들다지만, 말 수 없음으로 유명한 남자애가 있었다. 말이 적던, 벙어리던 상관하지 않았던 나의 오지랖은 그때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특별한 친분은 없었던 그애. 근데 그날 정말 뜬금없이 그 애가 나에게 빼빼로를 던져줬다.

"너 먹어."

'평소 천성이 밝고 남을 의심할줄 모르던' 나는 여꼴통들과 신나라 하면서 '진짜 주는거야? 나 먹어도 되는거지? 무르기 없는거지' 터진 입이라고 주절대면서 그 빼빼로를 까먹었고, 그 일은 곧 잊혀졌다. 당시 빼빼로 가격 500원. 특별한 날이라곤 하나, 같은 반 애들 사이에서 빼빼로 한통에 별 의미를 다는게 더 이상한 시절이었다.

일주일 중 6일이야 학교에서 마주치는 게 다반사였고 기억할 이유도 없다. 내가 그 애를 아직도 생각하는 건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기 떄문이다. 한달에 3만원, 저렴하기 그지 없는 모 단과학원 같은 교실 안에서. 왕따처럼 각자 다녔던 우리 둘은 그 뒤로 저녁밥(=떡볶기)를 함께 먹으며 학원을 다녔다. 주로 내가 주절대고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사이였지만, 나는 눈치 깔 수 있었다.
그 빼빼로는 원래 임자가 있었음을.

십년 전 그 빼빼로.
아마도 그애가 마음에 둔 그애에게 주려고 준비했다가
꼭꼭 손에 쥐고 또 쥐고 있다가 너무 떨린 나머지
그냥 눈에 띄던 '시끄러운 나' 에게 던져준 것이리라.
그걸 좋다고 까먹던 나와 여꼴통들은;;; 정말이지...


여튼 이런 날이 되면 그애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두 눈을 감은 채 사과하고 싶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고백하자면,
네 순정을 짓밟아 놓아서 미안타. 성*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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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황태경오빠와 강신우 오빠에 관해 말을 하려면 2박3일 72시간을 말한대도 모자란다. 근데 미투나 티스토리에 올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오로지 '따악~ 하나'다. 바빠서… ㅠㅠ 좋아해요 황태경! 사랑해요 강신우! ㅋㅋ(me2tv 미남이시네요, 에이엔젤까면사살!) [ 2009-11-10 13:14:49 ]
  • 윤호오빠의 선물인증 내방제일잘보이는 책꽂이에 올려놨어요 볼때마다 어찌나어여쁘고 유리구슬이반짝이는쥐 진촤짱임 오빠에게 다시 한번감사의인사를 전함돠(me2mms me2photo) [ 2009-11-10 13:21:37 ]

    me2photo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1월 1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안하던 짓을 하고 있다.
살아 생전 스물여덟 먹도록 단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내가.... 내가.... 이 내가... OTL;;;



1. 난생처음 두명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슴돠.
나는 언제나 편이 명확한 아이입니다. 내편 니편 편가름이 확실해야 세상살기가 한결 수월해지는 법이죠. 그래야 기뻐하고 슬퍼하고 좋아서 방방뛰고 열폭하고 골라내 쓸 감정도 명확해지고요. 그런데... 그랬던 내가... 그랬던 이 내가!!!
그런 내가 두명의 남자주인공을 (모두) 사랑하다니....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땐 단숨에! 청소기에 빨아들어갈 듯 강렬하게! 뚫어뻥으로 막힌 이물질 빨리 듯! 신우오빠(그러나 89라고 한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에게 사랑을 느꼈습니다!

브라이언과 샤이니 한 멤버(이름 못 외움;;;)를 섞어 놓은 듯한 얼굴. 그 얼굴은 분명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얼굴이 분명했거든요. 그래서 예감할 수 있었지요. 난 이 애 편이겠구나. 게다가 내 기대 못지 않게 달달했던 신우 오빠의 매너~
(아놔 나 이런거 너무 좋아합니다. 진정 눈물이 솟구치도록 너무 사랑합니다. 느끼 빵터지게 대놓고 잘해주면서 가끔은 농도를 조절해서 알듯 모를듯 무거운 짐 들어주고 얘기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저 사실 이런거 어릴 때는 간지러워서 못봤거든뇨. 근데 이제 늙어서 유분이 다 빠졌나봐요. 이런 기름칠이 너무 좋아요. 그 유분이 뻑뻑하고 녹슨 뼈마디 다 녹이나봐요. 좋아서 보다 말고 온몸을 비비꽈요. 갖가지 요가 자세 다 텨나와요.)
나 이대로 신우오빠의 노예가 되나 싶었는데....

그.러.나.
제가 정녕 황태경씨의 매력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걸까요?
아아아아아! 정말, 이 나이 먹어서, 정말 스물 여덟 먹어서 근석이 빠순이 해도 되는건가요? 그래도 될까요? 나 근석이는 허세 빼면 아무것도 없다면서 매일 비웃었는데...
황태경 오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녕 오빠의 본 모습을 몰랐습니다. 그 큰 키와 비율. 오빠 보고 인면어라고 불렀던 그 시절. 그 모든 과거를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정녕 용서를 구합니다. 흐극흐극흐극흐극흐극흐극흐극흐극흐극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황태경씨, (정녕 제가) 사랑해도 될까요?

혹시나 몰래카메라가 아닐까봐 조용하고 나직하게 이경규씨를 부르짖던 우리 오빠. 카리스마 덜해질까봐 잘때도 얼굴에 아이라인 그리고 자는 우리오빠. 이십대 훨씬 넘겼지만, 삼단계 꼬꼬마 사과머리 하던 우리 오빠. 얼굴이 인면어면 어떠리, 코수술이 실패했으면 어떠리. 루머퍼트리지 마세요! 우리 오빠 자연산이거등뇨? 그리고 그딴 사진 다 합성이거등뇨?
구준표 못지 않은 고집불통에 통통 튕기는 감칠맛, 좋아하는데 그걸 모르는 어줍지 않은 자존심까지. 정말 가슴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두명과 동시에 사랑에 빠진 지금.
행복과 기대 설레임으로 수요일 목요일을 기다리고 있슴돠~





2. 난생 처음 곰플레이어로 캡쳐를 떴슴돠.
말 그대로임돠.
태경오빠 사진은 이리저리 다니는데, 솔직히 말할께요. 태경오빠를 저장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태경오빠의 맛은 비율에 있거든뇨. 세로가 더 긴 잡지가 아니고서야, 16대9 화면에선 잘 안살죠. 그래서 결론은 신우오빠를 캡쳐 했습니다. 일편단심 올곧은 옥상귀신 얼굴이 제 취향임돠. 그리고 인터넷엔 사진이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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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트북 배경화면에 '여자' 사진이 등장했슴돠.
제가 솔직하게 말해보겠습니다. 노트북을 산것이 꼭 2년 11개월 전의 일이지요. 그 뒤로 무수히 많은 남성들이 제 노트북 바탕화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에드워드 펄롱의 눈물 사진이 가장 긴 기간(징크스로 인한 피치못할) 차지했던 것을 시작으로, 칸나바로 웃는 얼굴, 인자기 뒷모습까지. 무수히 많은 남정네들이 여길 오고갔슴돠. 그 긴시간, 배경화면에 염색체 여성이 등장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돠. 심지어 내 얼굴도 깔아보적 없다구요! 그러던 내가 드디어 배경화면에 '녀성'을 깔았습니다.
미남이로 최근 수고해주시고 있는 제엠마~
삼각관계, 사각관계, 오각관계까지;;; 캔디캔디부터 질색팔색했던 (남주가 꼬이는) 여주인공. 그러나 그녀의 아방한 백치미만큼은 귀여워서 죽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깔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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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마 상콤하구나 흑흑흑흑.




미남이시네요가 있어서 살맛나는 요즘입니다.
오빠! 형님!은 정녕 미남이십니다!!!!


  • 빡세와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함께했다. 끝난 뒤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지경이다. 용산도, 이주 노동자들도, 매향리도. 너무나 대입할 것이 많은 우리 사회는 대체 뭘까? 모든걸 둘째치고 흉물스럽고 괴물스러운 그들의 인권에 대해 과연 나는 말할 자신이 있나?(me2movie 디스트릭트 9) [ 2009-11-07 04:00:17 ]
    디스트릭트 9
    디스트릭트 9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1월 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어제는 선배 언니의 결혼식이었다. 탈 선배라서 더러더러 학생회관 사람들 얼굴은 보겠다 싶었다. 근데 거기서 사학과 03 후배를 만날줄은 꿈에도 몰랐다. (임마, 그러고 보니까 오티날 날짜 못맞춰서 나타난 너를 받은건 나였돠?? 근데 대체 왜 우리 옆동아리로 들어갔니?ㅋㅋ) 여튼 그 후배가 아직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 자체도 무시무시했는데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나 더 전했다.
 얼마 전까지 학교내에서 사학과 '01'을 볼 수 있었다고. 이제 몇개월 후면 '10'학번이 나타날텐데, 대체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여튼 '01'이 있었다고. 그것도 군미필자인 여자가! 하나도 아닌! '몇 명' 있었다고 말이다.

졸업 후 내가 잘했다고 생각한 일 중 하나는 잉여인간으로 산다 하더라도, 학교를 박차고 나온 거였다. 이리저리 비벼보면 조교라던지 다양한 길이야 생길 수 있었겠지만, 백수로 살 지언정 정녕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저축 한 푼 없이 살았던 2년이었지만 세상으로 나왔고 여기저기 구르며 배운 것이 다 허튼 것만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나 자신의 한계를 체념했고. 그 덕에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었다. 고민하고 부딪히고 찌질해지고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이자리의 소중함을 잘 안다.

만일 내가 지금까지 학교라는 굴레에 매여 있었다면, 얼마나 소심하고 자랐을 것인가. 만나던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이미 떠난 사람들의 뒷자리를 보며, 이러쿵 저러쿵 말이나 전하고. 그네들이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살아갈 동안, 같은 자리만 맴돌았을 수년. 그렇게 버려버렸을 내 인생을 상상해 보면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결국 학교란 자리에 평생 남을 수는 없는 일이고, 이 나이 먹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곳에 적응한다 쳐보자.
아악! 생각만해도 군대 재입대 같이 힘겹게 느껴진다.
게다가 근 십 년 가까이,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십수년 머무르면서 퇴적된 불평 불만은 얼마나 단단해져 나를 억눌렀을까. 숨이 막힌다. 지금 내가 참 다행이다.
 
다시 한 번 내가 있는 이 자리에 감사함을 느낀다. 2년 백수시절마자 고맙고 소중하다. 굴레를 끊을 수 있었던 내 용기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대단하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입장에서 말이다)



* 선배 언니의 결혼식에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참 많이 보였다. 이런 자리 아니면 이 그리운 얼굴들 다시 모이기란 참 힘들겠다 싶었다. 인사대 단대 회장보다 잘생겨서, 단지 그 하나만으로도 정말 나의 자랑이었던 01 회장오빠부터, 03년 내가 그렇게 속썩였던 정*언니는 길자님 꼭 닮은 아들을 데리고 왔다. *은 언니는 다음달에 시집가고, 내가 행복을 그토록 빌었던 컬쳐는 오늘 다시 카메라를 잡았고, 사범대 부짱님, 옆동아리 오빠, 학생회관 방송실 사람들. 다시 만나다 보니 이 자리, 드문드문 사라진 얼굴도 기억났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 했다. 그 얼굴들 앞에다 대고 깔깔대다 보니 오래간만에 가슴이 설렌다. 다들 그 시절을 다들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왜 안된다고만 생각했었을까. 그 어린날 내 단순했던 판단은 아직도 가슴 아프다. 평생 남겠다 싶었다. 지*언니가, 자꾸만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런말을 들으면 난 아직도 울고만 싶다. 난 너무 죄인이라 차마 미안하다고도 말을 못한다. 아직도.



*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유행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시절, 귓가를 울리는 멜로디는 항상 같은 방 동아리 청맥의 공연곡이었다. 덕분에 80년대 학번 90년대 초반학번이 알만한 민중가요가 그 시절 내 유행가였다. 노래란, 기억이란,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추억이기에. 돌아오는 노래 옛 노래들이 떠올랐다. 옆동아리 오빠가 부르던 직녀에게. 얼굴찌푸리지 말아요. 그날이 오면. 나는 낭만 넘치는 센치한 여자기에. 그렇게 모두들 앞에서 깔깔거리고 나댔으면서도 뒤돌자 마자, '힘들고 버겁던 그 때'가 '그럼에도 다 함께 있었던 그시절'이 그리워 훌쩍훌쩍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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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로 줄리아 하트 1집을 구입했다. 2집보다 덜 다듬어지고 덜 세련됐는데, 그게 또 맛이다. 리핑해서 회사에서도 줄창들어아 쥐(me2music 1집 (가벼운 숨결) [재발매]) [ 2009-11-05 12:57:52 ]
    1집 (가벼운 숨결) [재발매]
    1집 (가벼운 숨결) [재발매]
  • 선배 언니 결혼식이 있어서 4년전 맞췄던 정장마이를 꺼내 입었다. 어깨 터진다. 터져! 태평양 같이 드넓은 내 어깨. 깎을 수만 있다면 깎아내고프다 ㅠㅠ 정장을 안입어도 되는 방송작가는 나의 천직임이 분명하다.(이런옷을어떻게1년365일입고사나열) [ 2009-11-05 14:03:05 ]
  • 장동건 고소영 결혼설이 터졌는데 박정희 일본에 충성 맹세 한 혈서 발견을 묻으려고 하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네요. 네티즌들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어요!! ㅋㅋ(장동건고소영결혼설) [ 2009-11-05 16:21:25 ]
  • 오늘 박정희가 왈본놈들에게 일본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내용의 혈서 썼다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자료가 공개됐어요. “일본인으로서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이라고. 그리고 같은 날 고소영-장동건 열애기사 터졌죠. <스포츠 조선>이나 <동아일보닷컴> 구린내가 납니다~(박정희혈서묻으려고동건오빠연애사실을알아야하는건가아이고아이고) [ 2009-11-05 17:09:54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1월 5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점심시간을 기해 사무실 근처에 신혼집이 있는 친구네서 밥을 얻어 먹고 왔다. 밥도 맛있었고 2시간을 터질듯 채운 수다가 더 즐거웠고. 또 한번 가야쥐 [ 2009-11-04 16:30:55 ]
  • 홍대의밤은뷸타고‥ㅋㅋ 빡세 찬식오빠랑 서로의 인생에대해푸념하는 한과 얼이 섞인술자리 찬석오빠가양주쏨ㅋㅋ(me2mms me2photo) [ 2009-11-05 00:02:40 ]

    me2photo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1월 4일에서 2009년 11월 5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촬구 써야하는데 쓰기 싫다. 엉엉 하루만이라도 나에게 금쪽같은 휴식을!!! [ 2009-11-03 13:54:04 ]
  • 역시 내가 바라는 남자 목소리의 로망은 전인권. 들국화 1,2집을 듣고 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1960년 겨울> 오늘 눈 올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이불 덮고 군고구마 까먹으면서 노닥노닥 놀고 싶다. 손톱에 노란 귤물이 들어도 좋겠지.(이런식의로망을나열하면슬픔이더해지기만할뿐.) [ 2009-11-03 14:28:32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1월 3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푼돈모아 푼돈이라고 하지만, 나의 지난달 저축액은  빵원.
추석도 있었고, 탐나는도다 DVD도 질렀고, 나이키 올백 포스, 후드티 서너벌. 책이랑 CD도 사고(김수영 전집이 타격이 컸지. 그냥 헌책으로 살껄ㅠ). 고따위로 돈을 뿌리고 다닌 자의 말로가 이렇다. 월급이 근 40만원이나 올랐는데 저축을 한푼도 못하다니;;;;

어릴적부터 근검절약(?)을 몸으로 가르쳐줬던 우리집 가풍을 생각한다면.
(그 옛날부터 의욕넘치고 정력넘치던 딸에게 엄마가 하던 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엄마, 나 걸스카우트 하고 싶어"
"그거 돈드니?"
"엄마 학교에 리코더부 생긴데 해외도 나간대. 나 리코더부 하고 싶어"
"그거 돈드니?"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화르르 타오르던 의욕을 몇번 꺾이고 나면 온몸에 각인된다.
아! 우리집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구나. 아껴쓰고 아껴야하는구나.
그런데 때려치고 싶다고 하는 피아노 학원과 눈높이 수학은 왜 시키는 걸까, 하고 말이다.)


덕분에 근검절약은 몸에 배었고, 돈을 못(안)벌고 있다는 강박은 나 백수시절 내내 따라붙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잉여의 삶을 놓친 내가 미쳤더 미쳤어. 제대로 미쳤었다.

지금 벌때 저축해놔야 내년 몽골이던 유럽을 다시가던 시간을 낼 수 있을것 같다. 소니 디카도 6년째 사용중. 살땐 몰랐는데 액정 왜이렇게 작니. 코딱지도 개미코딱지만하다. 가벼운 기종의 DSLR 카메라도 많이 나왔던데, 내년까지 잘 기다렸다 초 가벼운걸로 하나 장만할꺼다.
이번달 목표 저축액은 80. 지난달을 어떡해서든 만회하려고 안간힘쓰는 중.
그러기 위해선 (반칙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달 핸드폰 요금이 빠져나가기 전에 통장에서 돈을 다 찾아버리는 편법도 감행할 예정이다.
한번 만나서 들이 부으면 7만원 8만원 우습게 깨지는 술자리도 되도록 자제할 예정. 그런데 내 사랑 오양의 결혼과 선배 언니 결혼식까지 있어서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여튼 지금으로선 올 겨울 살 물건을 최소화 할 예정인데, 다음달 월급 들어오면 뭘 살지를 벌써 정해버렸다. orz;;;
무난한 색으로 청바지 하나, 사파리 잠퍼 하나, 사무실에서 두르고 있을 양모조끼 하나.
(아놔 이 세개가 돈 십만원으로 해결될리 없자나...)

올 겨울 나의 쇼핑은 이것으로 끝이다. 끝 끝 끝! 디엔드!!!
푼돈 모아 잘 아꼈다가 푼돈이 안되는 해외 나가서 부유하게 살고프다.
푼돈 모아서 푼돈이지만, 환율 낮은데 가서 태산처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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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면 날 두고 몽골로 떠나는 빡세여 반성하라!!
십리도 못가서 발병날듯!!
거기 겨울에 영하 40도라규~!!!!

하고 싶은 말

소소한 수다 2009. 11. 2. 20:21

이것 저것 쓰고 싶은 말이 많아서 창을 열었는데,
막상 무얼 써야할지 모르겠다.

11월이고, 겨울이구나.
꼭 그런건 아닌데 차가운 느낌을 가진 것들은 언제나 '새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남의 손을 타지 않은 '새것'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고.

여튼 새 공기를 들이마시며 시작하는 날.
하루를 사는 것은 오늘 만큼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하루가 덧대여져 매일 새로워지는 것이길.  




  • 아 원고 털고 더빙 끝내고 유쾌하게 <차우>를 봤는데 너무 웃기다 웃겨 죽었다. 내친 김에 '신정원'감독 검색을 해봤는데 리치 노래 사랑해 이말밖에 뮤직비디오 감독이라고 한다. 찾아봤는데 물먹다 뿜었다. 평생 이 감독의 포로로 살것 같은 이 기분!!(me2movie 차우, 신정원감독) [ 2009-11-01 22:43:13 ]
    차우
    차우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1월 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엊그제는 4시간 어제는 1시간 반을 잤다 분명 나는 '내 일'을 분명 좋아하는데, 이렇게 고난과 역경이 시동생마냥 부록으로 딸려온다면, 이 결혼(?)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아니면 그것까지 사랑하는 법을 깨우치고 싶다.(온인류를사랑한대도'시'자들어가는사람을사랑하기란쉽지않은일) [ 2009-10-31 15:51:15 ]
  • 주기자 bunny 미투에 대해서 너무 겁먹지 말라규~! 여차하면 닫는수도 있으니까ㄲㄲㄲ (물론 나도 박재범 사건 이후로 불평불만을 토하는데 두려움을 느끼곤해) [ 2009-10-31 15:53:55 ]
  • '일'을 내 전부로 삼을 생각은 전혀 없다. 백수가 돼도 나는 변함 없을 것임을 알기에. 고작해야 자아실현의 얼마를 차지할 뿐인 걸. '일'이 전부가 된 사람들을 만나면 안쓰럽다. 우리 프로 출연자들에게 공부가 전부가 아닌것처럼 일은 결코 네 전부가 아니라고 전하고프다(이래놓고나는아직까지일하나염?) [ 2009-10-31 23:09:13 ]
  • [아? 이런릴레이 글] 저에게 야근이란 <밥, 삶, 숨, 빛 같네염. 당분간 인생에서 빠지지 않을듯.> bunny에게 '로리'란? 에게 저축이란? 주기자에게 운동이란? 째임스에게 장동건이란? 엽기민원에게 술이란?(원고안쓰고릴레이참여~) [ 2009-11-01 00:34:30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31일에서 2009년 11월 1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난리도 아닌데, 누가 장동건 몰래 혼인신고하면 장동건 부인으로 유효한 세상이 된거냐구 묻네요. 이거 기뻐해야할까염?(가진자들의대한민국따위ㅠㅠ) [ 2009-10-29 16:42:58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29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줄리아 하트의 노래를 미친듯이 찾아서 듣고 있다. 작년 9월에 미쳐있었던건 <브로콜리 너마저>, 작년 12월에 빠져 있었던건 <20세기 소년>이었지. 줄리아하트 2집은 이미 품절이다. 친구가 리핑받아줬는데, 노래 전체가 너무 다 좋다. 친구 쩡에게 팔 생각 없냐고 물어봐야겠다. 설마 나는 그녀의 친구인데, 웃돈을 더 얹어 받지 않겠지 ㅋㅋㅋ

*어제 저녁 6시 30분부터 10시 45분까지 4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다. 애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회사 야근에 진저리가 쳐져서, 회사에 가방을 놓고 컴퓨터 켜 놓은채 도망 나왔다. 고딩때 가방 버리고 보충 띵기던 임*선 백*아 이런 애들이 떠올랐다.
연희동 <망향>가서 비빔칼국수에 만두 먹고 오래간만에 <노란손수건>도 찾았다. 멤버는 주기자, 버니, 그리고 뒤늦게 참여한 김도도. 여성이 하루에 사용해야하는 단어는 2만5천개라고 누가 말했던가? 역시 사람이라면 4시간쯤 수다도 떨어주고 연예계 뒷다마 좀 거론 해줘야 사는 듯 하고, 고조 숨통이 트이는 듯 하더라. 오늘 또다시 2만5천개를 사용하려면 누구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걸까?
아마 난 손가락이 불나게 네이트 창에 단어를 나열하고 있을꺼야;;;;

*어제 엎드려서 오정희 소설 <유년의 뜰>을 읽고 있고 있으려니, 문득 예전 가리봉동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한국나이) 6살 겨울에 연희동으로 이사 왔으니 태어나서부터 고작 5년하고 6개월 정도 그 동네에서 살았다. 어리고 짧았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대한 기억이 너무도 선명해서, 내가 그 추억을 곱씹을 때면 엄마 아빠 할머니 모두 깜(짝) 놀(라곤) 했다.
어제 다시금 떠올린 장면은 아빠를 마중갔던 엄마와 우리 삼남매의 모습. 골목길 뒷켠 무수히 그리고 줄줄이 이어져 있던 공터. 공터를 지나고 나면 멀리엔 지하철(전철이었던가;;;)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빠는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마치곤 지하철에서부터 그 공터를 향해 걸어왔었지. 구불구불 보도블록이 튀어나온 길에서 유모차에 타고 있던 우리 막내, 그리고 유모차를 타겠다고 징징대던 영진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빨간볼에 못생겼던 나. 그리고 아직 30대 후반이던 파마머리의 젊은 엄마. 그런 단편적인 기억을 어떻게 포장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대게의 사람들은 그런 기억들을 행복으로 포장한다. 뭐 지금도 나도 그때를 떠올리면 뭔가 따뜻한 그리운 감정들이 솟구치는데, 먼 훗날은 얼마나 더 그립게 될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십대 때 우리집에는 참 많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지나고 나면 수미상관. '그 옛날'과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 '지금'을 떠올린다면 똑같은 안정과 평안이 반복되고 있기에, 나는 이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나름 행복했었다고. 아마도 우리 집은 언제까지나 아늑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남을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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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이런 아늑함을 말하는 건 아니고;;;;

  • 인터넷 까페에 올라온 인생곡선을 해봤는데 대박이 나왔다 그냥 점일지라도, 마냥 신난다(21살부터내팔자피는데왜내인생은이모냥인가요?) [ 2009-10-28 11:38:47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28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몸이 안좋다. 병원다녀왔다. 무리하지 말랜다. 근데 내 밥벌이는 '무리'하지 않으면 그만둬야하는 직업. 아픈거 이리저리 티내고 싶은데 또 그러질 못해서 서럽다 흑흑 [ 2009-10-26 11:28:35 ]
  • 오래간만에 일지매 OST 를 꺼내서 듣는다. 작년 역사팀 '허균'편 자료 조사할 때 찾아 들었던 음악이다 허균은 참 재밌는 인물이었다 가지고 있는 모순마저 매력적이었지 오래간만에 허균 평전을 다시 꺼내보고싶다.(me2book 허균평전) [ 2009-10-26 14:27:14 ]
    허균평전
    허균평전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26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손톱에 노란물이 들기 시작했다. 귤이 나오다니, 겨울이구나~ [ 2009-10-23 14:02:29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23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밀란이 이겼다. 알싸 댓글 보고 있는데 웃겨서 죽을 지경… 카카가 산시로에서 골넣고 세레모니 하겠다는 댓글에선 모니터를 부여잡고 뿜을뻔… 안감독이 죄다 데려가면서 걱정도 많았는데 이래저래 굴러가긴 하는구나.(하지만구단주는탄핵해다오, AC미남) [ 2009-10-22 14:44:22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22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집에가는 길, 만두를 전화로 붙잡았다.
살을 빼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간간히 운동중이었지만, 어젠 정말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해야할 말이 무척 많았지만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껄끄럽게 토해내지 못하고 한번에 다 쏟아낼 것 같았다. 한꺼번에 쏟으면 식도가 타버릴지 몰라, 주의요망이다.

나는 할말이 참 많았고.
그 할말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나름 살만한 인생이구나 싶어졌다.
유전자조작 옥수수로 만든 치즈볼을 끊기란 헤로인 중독자가 마약 끊기보다 더 어려운 듯.
결국 두바구니 내가 다 먹어 치웠다. 한잔 더 마시고 싶지만 내일을 위해서 참기로 했다.

연남동 이안을 지나, 둘러 둘러 집으로 오는 길.
럭비티 한벌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어느새 목도리를 둘러야하는 계절이 왔음을 실감했다.
작년 잃어버린 목도리는 대학교 4학년 과동기들과 스터디 하던 도중 샀던 목도리. 추억이 있다면 꽤 담겨 있던 물건인데. 몇번을 잃어버려도 내 손에 다시 들어오길래,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을거라 방심했었다.
올해 다시 목도리를 사겠지만 5년간 두르고 다닌 그 목도리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

대신할 것들로 채워지면 나중에 너무 서글퍼 질지 모른다.
세상모든 것들을 '처음'과 '새것'으로 다 안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소중했던 것들이 나중에도 소중한 것들로 내 주변에 남아있길.

스물여덟, 조금씩 편해지고 익숙한 만큼 변하지 않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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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에서 몸을 움추리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수업시간 줄곳 딴짓으로 가득 채우던 중딩 고딩 때 생각난다 ㅋㅋ [ 2009-10-20 12:20:16 ]
  • 김수영 전집 (수필)을 읽고 있다 아.. 50년전 살던 이 아저씨 너무 좋아. 화낼줄 알고 분노할줄 알고 열폭할 줄 알아서 그게 너무 좋아.(me2book 김수영 전집) [ 2009-10-20 12:21:57 ]
    김수영 전집
    김수영 전집
  • 생각할 것 많은 날에는 항상 이 노래를 꺼내 듣는다. 그 누가 뭐래도, 그 무엇이라도. '나 자신'만큼은 내 마음속의 보석이 되길.(다테다카코,보석,아무도모른다ost) [ 2009-10-20 12:41:54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2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며칠전 근 일년 가까이 얼굴 못보는 친구놈에게 전화 왔다.
그네들 얼굴 못본건 번번한 약속 시간 변경과 급한 사건사고가 주 원인이었다.

"씅, 우리 오늘 볼꺼야 시간 돼?"

당시 나는, '그간 있었던 야근'으로 피폐해 있었고, '앞으로도 예상되는 야근'으로 인해 한껏 까칠해진 상태였다.

"안돼 바빠."

언제나 같은 말, 음절 어절 하나 안 다르게 네 글자를 입에 올려서 미안하지만, 내팔자가 이렇다.

"야 보*이 시집가, 그리고 나도 시집가."
 
니네.... 니네 이렇게 한큐에 둘이 가버릴래?? ㅠㅠ


스물 여덟부터 노산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남자 손도 못잡아 본 나는 성령으로 잉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바로 노산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한놈 두놈 떠날 때가 됐다는 것도 알고 있긴 했는데 이렇게 또 한큐에 두명이 가버린다고 하니까 허전하고 씁쓸하다~ 결혼한다고 못보는 것도 아니고, 결혼 안한 상황에서도 못보는긴 마찬가지니까. 별 외로울 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허전함을 감출수가 없는걸.

아마도 변할테니까.
특히나 이 사회에선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바뀌길 요구하니까 많아지니까. 내가 그네들에게 차지하는 우선순위는 저 멀리 밀려날게 뻔해지니까. 뭐 여튼 그래서 섭섭하다.
결혼과 동시에 지워질 멍에들을 생각한다면 아직도 나는 결혼을 하고 싶진 않지만,
여튼 내 친구들만큼은 한껏 행복했으면 좋겠다. 결혼하길 정녕 잘했다고 생각할만큼 예쁘게 살았으면 좋겠다.


여튼, 곧 만나 우리♥
맛있는 것도 얻어 먹고, 나 월급 오른 한턱도 쏘고
그날 너희들의 행복을 마음껏 빌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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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껏 들뜸, 한껏 가라앉음. 커피를 마시면 늘 이렇다.(작은카페인에도과하게반응하는내몸이여~) [ 2009-10-17 02:10:55 ]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1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한겨레21 편집장은 글을 너무 잘쓴다. 김대중대통령 관련글을 보고도 울었었는데, 아 정말 존 바에즈의 노래와 우리나라 노동현실에 처한 아주머니들의 삶을 연결짓다니. 아침부터 울컥치밀어 올라 지하철까지 훌쩍거렸다.(한겨레21)2009-10-15 10:15:11
  • “형광등 불빛은 너무나 하얗게 저 혼자 빛나고 오늘도 우리는 오늘만큼 낡아버렸구나” 이 한구절을 보고 바로 구입했다. 어제 읽다 말았는데 집에 빨리 가고 싶을 지경(me2book 외등)2009-10-15 15:27:08
    외등
    외등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15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주발이는 마침내 꿈을 이뤘다!
아침에 주발이네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주발이가 그립다. 문자를 보냈더니 이른 시간(그래봤자 10시를 넘긴시각이지만)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목소리 듣고 깔깔댔다. 
주발이가 자취를 시작하고 독립하면서부터 얼굴보기가 꽤 어렵다. 졸업작품을 완성했다고 하던데 그게 기억나더라

 ' 나. 니가 그 옛날 말하던 꿈 아직 기억해. 나 이러고 싶다고 스무살 때 철업이 주절거렸지. '대학을 10년 다니고 싶다. 4년은 너무 짧다!라고 했었잖니?'

진정 네가 꿈을 이루는구나. 01학번의 2010년의 졸업이라. 드림스 컴 트루! 무심결 내뱉은 꿈을 주발이가 정녕 이뤄내다니 너무 신기하고 내가 더 설렌다. 스무살은 학창시절로 가득차도 모자란 시기인걸 잘 안다. 인생의 황금기와 열정 가득하던 시기를 학교란 공간에서 꽉 채워 보낸 주발이니가 너무나 부럽다. 배도 아프다. 아이고 데이고 아이고 데이고 ㅠ_ㅠ



* 연대운동장을 돌 때마다 곱씹고 또 곱씹는다.
연대 운동장을 돌 때마다 시간이 남아돌아 곱씹어볼 추억이 참 많다.
10년 된 기억 15년 된 기억. 단물이 빠질법도 한데, 아직도 참 달다. 씹어도 씹어도 계속 나온다. 아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인물은 아니기에, 내가 꺼내 씹는 그들이 나를 얼만큼 기억할지 모르겠다. 내가 무수히 떠올리는 얼굴들. 내 인생에 있어서 제법 중요한 등장인물들. 그들에게 나는 과연 주요인물이 될 수 있을까?
 대다수는 만나는 횟수와 자주 보는 빈도에 따라 비중있게 다뤄지겠지만, 적은 횟수로 긴 여운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단 몇 번의 순간. 몇개의 기억만으로도 무수히 추억하고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아주 가끔은 그애들에게도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래줬으면 싶네.
 


* 강박 오빠의 결정과 그에 따른 불안감의 증가
최근 강박오빠가 화끈하게 지른 결정 때문에 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있다. 언젠가 스물여덟의 나를 돌아 봤을 때 그때의 노력이 모두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고 생각하게 되면 어쩌지? 내가 바라보고 달리는 것들이 모두 헛되고 헛되다.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되면 어쩌지?
먼훗날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인해 지금을 참는다고 해서 지금의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도 행복하지 못한데 먼 훗날 행복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불행은 뭘로 보상받아야할까?

알쏭달쏭.
오늘은 또 이 문제를 가지고 머리 싸매며 운동장을 돌고 있을 것 같다.



* 스물 여덟 가을
몇년이 지난 다음. 2009년 스물 여덟의 가을은 어떻게 기억될까 생각해 봤다.
몇년 후의 주절거림을 벌써부터 말할 건 없지만, 여튼 내게 2009년 가을은 '포기와 체념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던 계절.' 로 기억할 것 같다. 원하고 바라고 자꾸 욕심내며 자라나는 마음. 그걸 매번 잘라내는 과정은 매번 얼마나 쓰고 아팠던지.(눈물 ㅠ찍!) 그리고 그 과정을, 그 기록을 일기장에 블로그에 친구들에게 말하면서 쉬지않고 드러냈다. (나 힘들어, 나 쉬고 싶어, 나 피곤해 불평불만이 전부였을지라도 말이지.)

누구든, 언제나 변해가는 과정 중에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변했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적도 있고 한방향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기도 한다. 뭐, 다들 그럴테지. 그래서 묻고 싶은 건 단 하나.
'지금, 나는 대체 어디쯤 있니?'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지워질 수도 있을텐데 굳이 기억하고 싶은 일들이 더러더러 있어서 꽤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게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니까. 주로 일이 힘들다 불평 불만이 단골 메뉴이자 거의 대부분이지만. 그러면서 몇 년 후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볼까도 고민하고 남들은 대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고민하고. 난 뭐가 될까 생각하고. 뭐 여튼 그렇게 스물 여덞 가을도 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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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모티콘에 슬픈 이모티콘을 추가해야겠다. 나의 슬픔을 표현해줄 감정이 없구만.2009-10-14 17:38:27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14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친구가 선덕여왕가 같은 시간대에 붙은 신동엽이 불쌍하단다. 이 여자야 니 친구는 선덕여왕 강심장이랑 붙은 방송이라규!! ㅋㅋ(애국가시청률이라도나와봤음)2009-10-13 10:33:28
  • 이 기사 왤케 웃긴가염 푸하하하. 진짜 가지가지 하네.(밑에첨부된사진이더웃김)2009-10-13 10:37:38
  • 너무 이뻐서 사고 싶은데, 이번달 월급을 생각하며 참기로 했다 아흙2009-10-13 14:30:32
  • 과음을 했지만 언제나 깔끔한 뒷마무리를 한다고 자부했던 나에게 엄마가 한번만 더 술마시고 화장실 지저분하게 만들면 쫓아낸다는 소리를 했다. 난 세상에서 출가가 제일 무서움 ㅠㅅㅠ(88만원세대에게대체독립이란어따쓰는단어인가염?)2009-10-13 16:43:18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13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여명 808이라는 신비의 명약이 있다.
나 대학 다닐 때 우리 동아리 탈 선배가 사줘서 알게 된 신비의 약의 가격은 5000원. 당시 소주 2병 가격. 용돈이 뻔한 그 시절 선배가 후배에게 사주는 여명 808은 사랑과 애정의 증거이며 신뢰의 산물이었다.
가격은 셌지만 정말 효과만큼은 특별했는데, 깨질것 같은 두통이 비 구름 걷히듯 맑아지는 그 순간. 온몸에 느껴지는 한줄기 희열이란. 1000원 더 비싼게 이유가 있고 까닭이 있는거다.

나 이 명약은 대학 다닐 때 딱 세번 마셨다.
동아리에서 두 번, 과학생회장 마지막 행사였던 과학술제 뒷풀이 자리에서 전대 과장 언니에게 한 번. 한번은 마시고 바로 토했는데, 우리 선배는 내 등짝을 찰쌀 찰싹 때리면서 그 비싼걸 '왜 토해? 왜 먹고 왜 토해!' 안타까워했고, 난 선배에게 맞으면서도 너무 좋아 실실대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그건 손가락 하나 꼭꼭 집어서 기억해 낼 만큼 소중한 기억이다.

오늘 아침 여명808 캔을 따면서 내 돈 내고 사먹는데 왜그리 서글프던지.
아빠 술드셨니라고 참견하는 동네 가게 아저씨에게 제꺼에요. 라고 말하면서 그 순간 왜 그리 작아지고 쓸쓸하던지. 혼자 사는건 역시 생각해 봐야겠다. 숙취가 찾아오는 날 내 다리로 기어나가 여명을 사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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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취재 노트를 다시 꺼낼일이 있어서 들여다 보고 있는데, 아 창피해….2009-10-12 16:33:39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12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 허진호가 더이상 사랑의 본질에 관해선 할 이야기가 없는가 싶습니다. 하지만 정우성이 나오는걸요 캬오~ >ㅇ< b 여튼 전 빵꾸난 자전거를 수리해야겠다 싶어졌어요~(me2movie 호우시절)2009-10-10 11:04:50
    호우시절
    호우시절
  • 지금의 노력이 훗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 해도 '지금'으로서의 의미가 존재하는 걸까?(me2movie 하늘과 땅 사이)2009-10-11 00:44:11
    하늘과 땅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10월 10일에서 2009년 10월 11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곰 언니에게

20세기 소녀 2009. 10. 9. 17:33

언니, 저 어제 우연히 서랍을 뒤질일이 있었어요.
근데 우연히 딱 하나 고른 일기장이 그 겨울 일기장이지 뭐예요.

페이지 넘겨보는데 정말 3분의 1은 죄다 언니 이야기.
그 겨울 저의 최대 인생 화두는, 역시 언니와의 이별이었나봐요.
가을에는 언니가 사범대 애들한테 잘해줘서 질투난다, 동아리 동기가 언니한테 이쁨 받는다. 언니 있는거 알면서 일부러 인사 안했다 시시콜콜 툴툴대며 가을을 나더니, 결국 겨울엔 반성이 한가득이더라고요. 이럴줄 알았으면 언니 말 잘들을걸 속썩이지 말 걸 간부수련회 따라가서 사진도 많이 찍을걸. 이런저런 후회와 푸념이 가득한 일기였어요.

난 언니랑 헤어지는 마지막 데이트(데이트가 명칭이었는지, 스타와의 만남이 명칭이었는지 이젠 기억이 잘 안나네요)날을 기점으로 그 이박삼일 전부터 울어제낀 정말 별난, 이상한 후배였으니까. 그렇게 언니를 좋아하고 따랐으면서 좋아한다 내색 한번 제대로 안하고 관심 끌려고 인사 마저 안하는,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도 아니고 참 유치하죠? 근데 그게 바로 '저' 니까 별수 없죠 뭐.

언니, 전 작년겨울에서 올해 넘어가는 그 겨울이 신경숙 <외딴방>을 읽었거든요.
나 말이죠, 진짜 읽는 내내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라요.
그 두꺼운 한권 다 읽는데 정말 그렇게, 간절히 언니가 보고 싶을 수가 없었어요.  
내게 글재주가 있다면, 그 시절 곰언니게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나를 얼마나 변화하게 만들어준 사람인지, 내게 제일 처음으로 손꼽히는 인생 영웅은 왜 언니 하나 뿐인지, 구구절절 말할 수 있을텐데 말이에요. 에필로그는 '그리고, 그럼에도, 결국 변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못된 후배인 나'로 씁쓸하게 완성해야 하지만 말이죠.

일기장엔 왜 이렇게 사람들과 다 헤어지며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새벽에 쓴게 분명한) 주사 비슷한 일기도 있었는데, 내가 이런 소리까지 했었나 하면서 소리내서 웃었어요. 푸하하 거리면서. 지금보다 5년이나 어렸으면서 이런 소리를 하다니. 아.. 쓰면서도 창피해요.


전 아직도 언니가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길 뜻한바대로 용기 있게 살아가길 기도해요.
정말 많이 챙피하고, 다시 언니 앞에 서지 못할 만큼 이기적인 후배지만
행여 다시 볼 수 있는 날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기 위해서.
그래도 조금씩이지만 열심히 살아요.
곰언니는 '언제까지라도' 결과가 아닌 과정의 나를 사랑해주고 인정해 줄 선배임을 아니까요.


마지막 덮기 전 마지막으로 읽은 페이지에 나랑 동기인 수진이가 해준말을 적어 놨더라고요.
아 놔.. 너무 뻔해. 눈에 선한거 있죠. 나 이거 쓰면서도 미친여자처럼 펑펑 울면서 일기 썼을껄요.

"야 그래도 곰언니 가기전에 나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우리 승* 잘부탁해' 였어"

그리고 진짜 웃긴게, 고작 그 한줄 다시 읽고 말예요....
그 한마디가 너무 좋고 다시 봐도 너무 좋아서.
'흐윽' 외마디 터뜨리며 왈칵 눈물을 쏟을 만큼.

전 아직도 언니가 너무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