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주가 오늘 둘째를 낳았다 앞으로 나는 선주의 딸 생일을 잊지 않을거고 선주도 내 생일을 잊지 않겠지 아가! 태어나길 참 잘했다 나는 니네 엄마 중학교 3년 짝궁이야 이모라고 부르지 말고 언니라고 불러주겠니? 선주 수고 많았삼2009-06-27 19:17:01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2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2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2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23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22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토요일에는 마포촛불연대에서 하는 주점이 있었다.
사람들과 같이 간곳에서 대학 동기를 만났다.
너무 너무 반가웠는데 애가 한참 취했는지 뽀뽀하려고 하길래
그대로 도망쳐 나왔다.
도망가는 걸음 뻔장인데 직무유기죄로 탄핵할꺼란 볼멘소리가 튀어나온다.
어떻게 맡게 된 뻔장인데, 탄핵은 안 되는데;;;
2MB도 버티는데 내가 왜 못버틸것 같냐며, 잘있으라 손 흔들고 나왔다.
그냥 이런데서 동기 애들을 만나면 마냥 반갑고 그러면서 서글프기도 하고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너무 많은 감정들이 밀려와서 버겁다.
내가 내색은 안해서 그렇지 내 대학 4년 너희가 전부였다고
때때로 과학생회 일로 도망가서 그렇지
진짜로 너희가 전부였다고,
내가 진정 젊게 청춘 같이 살았던 때는 학생회관에서 보냈던 3년이라고
그걸 말해주고 싶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1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15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마더 나이트> 커트 보네거트 2009 06 10 - 2009 06 11 새벽
억울하다 못해 비뚤어졌다
분노를 삭일 길이 없어서 어떡할까 벌떡 일어 섰는데,
친구 일기에서 본 '1년 6개월 뒤면 서른'이란 글자가 너무 아른거려서 주저 앉았다
삭이면서 주저 앉은 것도 아니고,
화낼거 다 화내고 욕할거 다 욕하면서 추잡하게 주저 앉았다.
만두는 브로콜리 너마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그래 나도 한때는 그런 가사를 쓰고 싶다 생각했었다.
그런 자잘한 소망은 다 분쇄기로 갈아버린채
최근의 이 비참함을 토로해 가사를 써주겠다고 말했더니 승락해준다. (역시 넌 내 21년 친구!)
분통쳐서 타자를 두들기니 민중가요 파업가에 등장할 법한 과격무도한 가사가 써진다.
그래도 불러주겠니? 원한다면 다듬어서 보여주겠어.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1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6월 3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최근 어쩔 수 없이 '내세'에 관한 생각을 하게된다
하나의 삶에 관한 이분법적인 구분, 벌과 상.
사람은 누구나 악한 존재이고 나 아닌 타인을 갉아 먹고 존재하지만
분명 그 안에서도 구분되는 선과 악이 있을거라 믿는다.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래본다.
없으면 어떡하나, 심판의 순간이 있어 이 땅에 모든 원통함이 풀어져야하는데
그냥 아무것도 아닌 먼지로 끝이 나면 어쩌나 불안하다.
신이라는 존재에 기대어 벌과 상을 기대할 수 밖에 없음이
다음생을 바래고 기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얼마나 무능하고 원통한 일인지 너무 잘안다.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인간이라 가슴 아프다.
하나. 그리운 동네파.
테잎이 들어오는 지난주 월요일부터 야근이었다 지지난주 토요일 서눈물 주기자의 공동 생파가 마지막이었고 그 다음날 쩡아랑 대한문 다녀온 게 정말 '최후의 최후' 였다 동네파 얼굴 보게 된 거 말이다
원래 어제 원고 넘기고 늦은 밤일지라도 달려서 1분 거리 산다는 장점으로 만두랑 심야데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더빙실 출석이 필수적인 상황이라 그것도 틀리게 됐다.
동네파...의 얼굴이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다.
니들... 어떻게 생겨먹었더라?
아! 이렇게 생겼었지;;;;;
둘. 나는 원고를 넘겼다
난생 처음 써보는 (역사추적 때 VCR 10분 써보긴 했지만 방송에 나가는 건 아니었으므로) 원고를 썼다. 금요일 저녁부터 바깥 공기와 차단된 내방에서 음침하게 한글창 열고 자판만 두들겨 댔다. 금요일 밤에는 3시간 반을 잤고 토요일에는 미쳤다고 8시간을 잤다. 그 모든 것이 끝난 건 일요일 저녁 9시였지 아마. 나에게는 Y염색체가 없었기에 다행히 수염은 나지 않았다.
다만 블랙헤드가 눈에 띄게 더 짙어졌을 뿐.
셋. 사생활을 부탁해
사무실에 세 줄로 책상이 배열되어 있는데 두 줄은 마주보고 있고 나머지 한 줄이 벽에 붙어 있다. 그리고 그 벽자리가 나다. 내 뒤로는 모두가 지나다니는 통행길, 마주보고 있는 두줄에서는 내가 지금 뭘 하는지 시시각각 다 보인다. 정중앙에 앉아 있는 대표님 자리에서는 (벌써 앉아보고 시야를 다 확인해 봤지)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다. 눈동자만 굴려도 내 노트북 모니터가 다보인다.
‘어머 XX는 싸이월드를 하고 있구나, 오늘 XX는 신발을 쇼핑하네, XX는 해외축구에 참 관심이 많은가 봐~’
길고긴 무료한 시간. 내가 취재해야할 친구들은 밤 11시 12시에 끝난다. 사무실에 나가 내가 딱히 하는 일이라곤 오늘밤 통화해야할 예비출연자(?)들과 통화 약속 잡는 일. (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옆팀 동료가 뚫어져라 눈동자를 굴리며 내 글을 읽는 게 포착. 뻘 글인거 아는데 짜증이 확 치밀어서 나도 모르게 면박줬다.) 그 공허하고 멍청하게 보낼 수 밖에 없는 시간 딴 짓 하는 게 뭐가 나빠?
근데 나도 사람인지라 지레 찔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넷. 잘가요! 주장님
구분이 우스운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대학생이 된 건 21세기의 시작인 그 해였다. 스무살이 된 것도 그해였지. 10대와 20대의 경계가 명확한 태생이기 때문에 ‘20’으로 시작되는 년도라면 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벌써 내 나이는 28...) 인자기를 알게 된 건 2002년이었고, 주장님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지. 2002년 아주리의 주장은 말디니였고, 곧 국대 주장 은퇴를 하긴 했지만 AC 미남팀의 주장이었고, 지금까지 주장이어서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줄 몰랐다.
그냥 다들 그대로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줄 알았다. 아니,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대단하게 좋아한 건 아니지만 뭔가 공허하고 슬프다. 벽이 뻥 뚫린 이 기분. 이러다 칸나바로 은퇴할 때는 정말 곡을 하며 울지도 몰라.
(이렇게 써놓은걸 보니 뭔가 모호한데, 내가 진정 사랑하는 건 야비함과 비열함, 겉치례에 능숙한 그 와중에서도 새침함이 돋보이는 갖춘 ‘필리포 인자기’임을 밝힌다.)
여튼,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라져주었으면 좋겠다. 내 주변에서 내가 애정을 쏟은 모든 것들이.
나는 이제 '변화' 라는게 조금씩 두렵고 떨리는 나이니까.
잘가요 주장님! 주장님이 있어줘서 참 즐겁고 행복했어요!
우린 또 어디서 주장님만한 미남주장을 구할 수있을까요 ;ㅁ;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5월 3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5월 29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5월 28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5월 1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5월 14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5월 1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앙증님의 2009년 5월 9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참을성은 나름대로 있다고 하는데, 끈기는 없다. 그건 확실한 사실하다. 그리고 그게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해본적 한 번 없다. 빈틈 이란 건 그만큼의 여유와 유연성을 가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래 출근할 걸 예상못한건 아니지만, 예상 외로 아이템 펑크까지 덧대여서 출근하면 그때만큼 어둡고 비참한 날이 없다. 2년 5개월. 지겨워 지긋지긋해 진저리 나
아이템 그만 찾고 싶어, 허허실실 대면서 취재 그만하고 싶어. 손가락 모터 달고 프리뷰질도 그만하고 싶어!
쉬웠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진짜 토하도록 숨막힌다. 길고 길었다. 끝은 보이는데, 딱 여기서 그만 멈추고 싶다. 보이긴 하는데 나는 여기까진 거 같다. 이 버거운 상황에서 두어걸음 더 걷느니, 그냥 모든걸 다 없던걸로 돌리고 싶다.
무언갈 새로 시작할 용기는 없지만, 그냥 그러고 싶다. 내 마음이 너무 팍팍하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상황보다 더 나쁘다.
위대한 것의 가장 큰 적은 좋은 것 이라고 책도 나왔는데, 울면서 따지고 싶다. 그게 뭐가 나빠? 좋은 게 좋은 거지, 좋은 것. 이만큼 오기도 얼마나 힘들고 버거웠는지 알기나 아냐고 물어보고 싶다.
질풍노도 호르몬이 날뛰는 광폭한 시기를 보내는 사춘기 소녀마냥 악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