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앙증'에 해당되는 글 763건

  1. 2011.06.08 톰 하디 2
  2. 2011.06.07 어릴적
  3. 2011.06.04 탈울
  4. 2011.06.02 사랑한다. 4
  5. 2011.05.26 우리의 불행은 누구의 탓일까
  6. 2011.05.16 질서가 갉아먹는 생활습관
  7. 2011.05.10 슈퍼동네파 배 제 1회 "나는 가술까?"
  8. 2011.05.10 여행을 마치며
  9. 2011.04.13 S에게
  10. 2011.03.31 만두에게
  11. 2011.03.26 나는콜롬비아땅을사랑해 - 3월 26일(콜롬비아 소금성당 관광열차) 2
  12. 2011.03.19 인생의 오아시스-3월19일
  13. 2011.03.07 하늘과맞닿은곳에서경험하는 지옥 - 3월7일(코파카바나 태양의섬) 2
  14. 2011.03.03 소원을 현실로 이루어주는 사막-3월3일
  15. 2011.03.01 우유니 사막에서 첫밤 - 3월1일
  16. 2011.03.01 우리투어 만만세! - 3월 1일 우유니투어 첫번째날
  17. 2011.02.28 현지인의 동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2월 28일 아따까마 간헐천 투어
  18. 2011.02.27 피는못속여-2월 27일(산뻬드로아따까마)
  19. 2011.02.25 위인과 나의 공통점을 찾아서 - 2월 25일(발빠라이소)
  20. 2011.02.23 결국은 유로피안 - 2월 23일 (오소르노역)
  21. 2011.02.22 바릴로체에서 산띠아고로 - 2월22일
  22. 2011.02.20 내가 쓸 수 있는 평생의 휴가 - 2월 20일 (바릴로체)
  23. 2011.02.19 바릴로체에서 경험하는 잊지못할 추억 - 2월19일 두번째 일기 (바릴로체) 2
  24. 2011.02.19 한밤중에 외치는 땡고베르구엔싸(부끄럽습니다!) - 2월19일 (엘찰뗀-바릴로체이동)
  25. 2011.02.18 악몽의 바릴로체행 버스 - 2월 18일(엘찰뗀-바릴로체이동)
  26. 2011.02.17 남반구에서들통나는빠슨스런 나의 과거 - 2월 17일(엘찰뗀 산행)
  27. 2011.02.16 여.기.가.바.로.지.상.낙.원. - 2월 16일 (토레스델파이네 일일투어) 2
  28. 2011.02.15 Hasta ultima gota(마지막한방울까지!) - 2월 15일(모레노빙하투어)
  29. 2011.02.14 몇번의 난관 끝에 얻어진 환상의 파티 - 2월 14일(깔라파떼 둘째날)
  30. 2011.02.13 불행의 여신이 슬슬 미소짓는 2월 13일 (부에노스아이레스-깔라파떼 이동)


그러니까 작년부터 모셨던 오빠들에 대한 순서를 더듬어보면

대길오빠-루퍼트 에버릿- 콜린퍼쓰-톰하디

의 순으로 귀결된다. (아아 나는 참 영혼이 값싼 여자...)
성격이 나쁜건지, 남들 다 좋아서 찬양해 마지 않는 남자만큼은 좋아하지 않는 것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 <사랑을 그대품안에> 차인표부터였던가? 아니다, <마지막 승부>의 장동건 부터였을지도;;;;)
덕분에 세상 모든 여성이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콜린퍼스를 향한 내 마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사랑이 아닐꺼야 아니고 말고! 부정에 부정을 거듭한 결과 결국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다. ㅋㅋ  그러다가 콜린퍼스 나온 오만과 편견을 보고 홀딱 깨긴했지만.... (대체 헬렌 필딩은 마크 다아시의 어디가 좋았던걸까;;;)

여튼 그러다가 (7월에 개봉했다던) 인셉션을 올 1월에 한국영상자료원 가서 보고
톰하디에게 빠졌다. 
(중간에 남미 여행갔다온 후로 쿠바 영웅 까밀로 시엔푸에고스에게 빠질뻔 했는데;;; 스페인어 자료 밖에 없어서 결국 포기 ㅠㅠ)
톰하디 같은 스타일에 남자 배우를 좋아한건 처음인데, 나이를 먹으니까 브루스 윌리스의 매력도 알거 같고, 휴잭맨에게 가슴도 뛰어보고. 취향은... 네, 변합니다 변합디다!. 
 


인셉션 보고나서 바로
능글능글 잘생긴 빨간양말에 금시계찬 한국형조폭스타일 저 아저씨 누군가요?
그날부터 당장 검색 시작.
그러다가 중간에 두달 남미로 여행다녀오는 바람에 오빠의 일거수 일투족 검색을 못했고요.
널널하게 노는 기간. 네이버 창에다가 '톰하디'로 검색하는건 하루 중 빠질 수 없는 일과가 돼버렸다. 인셉션 이전에 제대로 출연한 영화는.. 일단 우리나라에 개봉된게 거의 없는 실정. 단역을 많이 했어서 '출연'이 아니라 '출현'이라고 말해야 어울릴 프로그램도 꽤 있고. 

여튼 이번 사랑은 진득하게 오래가는거 같은데 (푸하하)

이 지경의 톰하디에게까지 사랑을 느끼는거 보면, 이번 사랑은 진실된 사랑인가봐;;;
(사진은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에서 브론슨 역할 중인 톰하디.)  

덕분에 자막 없는 <버진퀸>과 팔자에 없는 <올리버트위스트>까지 BBC드라마란 드라마는 죄다 들춰보고 있는 실정.
어릴적부터 비뚤어진 성격 덕에 나는 승자의 승리보다는 패자의 탄식에 공감하는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언제나 주인공보단 주인공 라이벌만 좋아하고 애정을 쏟아왔고, 그러다 보니 당근 엘리자베스보다는 메리스튜어트!의 편이었고.
그러니 당연히 엘리자베스의 사랑 따우 흥! 더들리 경이 진심이었겠어? 권력 따라서 빨간머리 주근깨 소꿉친구 여왕됐으니까 권력도 얻을 겸 빌붙어서 여왕 좋아하는 척이라도 했겠지 뭐. 이래왔는데....
톰하디가 더들리 연기하니까 순식간에 둘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안타깝고 숭고한 사랑으로 바뀌어버리네...;;;; 좋아하는 남자 따라 180 휙휙 바뀌는 세상에 대한 기준점. 네네 반성하겠습니다.


 
사랑의 은혜는 참으로 크고 놀라워서
나는 이런 90년대 아이돌삘 사진까지 찍은 오빠까지 사랑할 쑤 있게 됐쒀!



여튼 톰하디가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 중에 평범한 사람으로 나오는 역할은 손에 꼽는데.... 오죽하면 <락큰롤라>에서 제라드 버틀러에게 자기 성소수자였다고 커밍아웃하는 꽃미남 밥으로 나오는게 그나마 평범한 인간축에 속할 정도.
역할마다 눈빛이며 표정이 쫙쫙 바뀌는데, 필모를 훑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1세기 셜록(베네딕트)랑 같이 출연한 드라마 스튜어트의 생애. 근위축증 앓는 노숙자로 나왔는데 근위축증 연기를 너무 잘한 덕에 톰하디의 대사는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근데 참 귀엽고 마음 착하고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과정이 너무 잘 그려져서 (비록 쓰레기통 옆에 주저 앉아 있던) 톰하디지만, 나... 톰하디 진심으로 주워오고 싶었쒀.... 마지막 베네딕트 운전 씬엔 눈물이 펑펑 오지게 흐릅디다. 




<THE TAKE>였나 개쓰레기 나쁜놈으로 나왔을 때 인듯.(톰하디 이미지는 구글에서 죄다 주워와서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다 ㅠㅠ) 스튜어트 할 땐 분명 순박하게 어리버리한 노숙자였는데 언제 이렇게 엘리트(?)돋는 쓰레기 눈빛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여튼 이 사진 보면 오빠가 미남은 맞는듯.


여튼 그래서 요즘 내가 제일 기다리고 있는건....
다크나이트 라이즈 개봉일!

1년 넘게 남았는데 어찌 기다릴지 모르겠다 ㅠㅠ
안그래도 크리스챤 베일을 싫어하고 배트맨을 증오하는(부자 싫어요 부자 나빠효!) 나인데
오빠가 배트맨의 허리를 분질러줄지도 모른다니....
폭력은 싫으면서도 배트맨이 당하는 꼴은 좀 보고 싶고요. 그리고 가장 보고 싶은건 20Kg 넘게 늘렸다는 오빠의 등짝.
핸드폰 배경화면 노트북 배경화면으로 돌아가면서 쏠쏠히 쓰고 있다.



결론 : 우리 오빠 잘생겼는데 다크나이트 2에서 얼굴 가리지 말아주세요! ㅜㅅㅜ
의문 : 이 사랑이 내년까지 갈까? 아니, 9월에 개봉하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까지 갈까? 자고로 나의 사랑은 다섯달을 넘긴 적이 없거늘....


동생이 갤럭시2를 샀다.
덕분에 스캔 필요 없이 어릴적 흑역사의 사진을 마구 찍어
제목을 붙인 다음
나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내고 있다.

현대 문명이란게 이런거구나.
새삼 느낀다.


제목 : 밀지마 이 여자야!


저 좁은 구멍으로 다리 두짝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제목 :  오늘 주인공은 난데 왜 언니가 볼터치함?

유심히 볼 사항: 손톱이 하얗게 질리도록 옴팡지게 흰떡을 쥐고 있는 집요함.





제목 : 두번다시 오지 않을 신앙증 리즈시절

역시 미모의 차이는 머리숱의 차이인가;;;





제목 : 아빠 우리도 자식이랍니다.
부제 : 버려진 딸년임에도 지나치게 쾌활한 언니의 발걸음


이 사진은 1989년 연세대로 추정. 어딘지 딱 보여서 더욱 신기했음. 새삼 이 동네에 오래살긴 했다.



대학 동아리 모임에 다녀왔다. 
만일 누군가 내게 대학생활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내 동아리 이름 두글자만 말해도 족할만큼, 내 대학생활은 동아리와 동아리가 넓혀준 인간관계로 점철됐다. 

학생운동이 떠나간자리, 대체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 속 이제막 침투하기 시작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대중문화. 그 시절 대학의 학부란 절대 절대 뭉칠 수 없는 모래알 같은 점조직이었고, 학부친구들만 봐도 다들 정붙일 곳을 찾지 못해 학교와 집을 오가는 놈들이 수두룩.

그 시절 학생운동이란게 어찌보면 한참 촌스럽고 오래된 조직인데, 나는 그게 구식인줄 모르고 참 열심히 살고, 즐기고, 그러다 또 어느날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울기도 많이 울고 웃기도 많이 웃고. 술도 참 많이 먹고, 먹고 또 먹고 또먹고 먹고 그러다 토하고... 푸하하.

비록 대학교 3학년 말에는 선거떨어진 트라우마에 더이상 못하겠다 자신없다 도망도 갔지만, 새내기부터 2학년 3학년. 3년 동안 누릴 수 있는만큼 '대학'이란 공간 자체를 한아름 누렸던 것 같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고, 바꿀수 없고, 내 학번대에 그런 생소한 조직을 한 경험한 것이 지금으로선 너무나 감사하다. 

여튼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동아리는 재작년에 문을 닫았고 어제는 그 이름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모여 웃음밖에 안나는 옛 기억들을 추억하며 히히덕댔다. 

나는 우리동아리가 생각보다 오래갔고, 그게 참 용하고 장하다고 생각한다.
나만해도 한번 동아리 나가겠다고 난리를 쳤었고, 그 벌로 선배 돼서는 나간다는 후배들 붙잡고 또 붙잡고. (사람을 잡는 일은 언제나 참 고되고 괴롭고 외로운 일이다.) 그런걸 생각한다면 좁고 좁은 취업관문을 앞두고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사회에서 내가 속한 동아리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다. 나 졸업 하고나면 바로 문닫을 줄 알았는데, 제법 기특하다. 용해 용해.

근데 동기놈은 또 그게 아니었나보다.
왜 없어졌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내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나까지 짠해지고 슬퍼지고 그랬다. 


많은 일이 있었던 4년이었다.
과답사, 동아리 공연, 중간고사, 학술제, 학생회선거, 기말고사, 농활, 전수. 그리고 틈틈이 껴 있는 데모까지. 1년이 정신 없이 바쁘고, 그래서 텅 비어 있는게 아닐까 내내 고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가득차서 넘쳤던 시절이었다.

우리과 강의실이랑 과자료실이 있던 인사대를 지나고 예쁜이 나무를 거쳐 올라가면 그야말로 내집같던 학생회관. 1층 문구점서점을 지나 2층엔 총학실 3층엔 자대실 사대실 동아리연합회실 학보사 계단을 또 오르면 내 식구 같던 땅방 맥방. 그리고 우리 탈방.
탈방서 밤새 술을 마시고 있노라면 깜빡깜빡 꺼지는 북악터널 불빛 너머로 아침동이 터오던 북악산.

떨어져 있을 땐 그렇게 아득할 수 없었는데 
같이 있다보니 손뻗으면 잡히는 가까운 시절이다.

돌아갈 수 없다는 희소성으로 더욱 값어치 있게 빛난다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 어제 다시금 꺼내놓고 주르륵 훑어보니 이렇게 자랑스러운게 내가 스무살을 헛산건 아닌것 같아 참 다행이었다.





사랑한다.

20세기 소녀 2011. 6. 2. 00:09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나 자신은 모든걸 다 알고 있단 장점이 있어서 합리화에 참 간편하지만,
그 합리화를 뛰어넘는 부조리와 모순 역시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불편하다.   
변명하고 핑계를 대기는 참 쉽지만, 
꼭 그만큼의 또 다른 악취가 나는 부패지점을 알고 있기도 하다. 

여튼 그래서 나는 수년간 나 자신을 사랑하기 힘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대체 누가 날 사랑해주나?
그래서 억지로 노력도 해봤다. 근데 안됐다. 
사랑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니까.

나 자신을 미워하고 무시하고 괄시하기를 수년.
마음이 많이 병들었다.
세상천지 사랑해주는 사람 없는데, 어떻게 굳건하게 살 수 있겠는가. 
이리저리 흔들리다 병얻고 곪을대로 곪아서 시들어 가고 그랬다. 
 
이래서 사람이 자신감이 없으면 종교라도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장점이라면 역시 세상에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적어도 하나는 존재한다는 거???!?!

오래간만에 형편없는 일을 지질렀다.
누군가에겐 손가락질 받을 일인지도 모른다. 
과한 열정은 촌스러움으로 치부되는 곳이니까.
언젠가 오늘을 기억하며 그 촌스럽고 철없음에 얼굴을 붉힐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오늘따라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수고했다. 사랑한다.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이돌 팬들이 외친다는 구호 따라. 오늘 나를 듬뿍 사랑해보련다. 

신. * .희! 신.*.희! 사.랑.해.요. 신.*.희
신.* .희! 신.*.희! 고.마.워.요. 신.*.희
신.* .희! 신.*.희! 영.원.해.요. 신.*.희




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났다.
어릴적에는 마냥 행복할 걸로만 상상했던 순간도 '현실'이란 썰에 대입해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안다. 그 괴리를 참을 수 없을 땐, '부조리'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다시 명명한다. 

전셋집을 구했다고, 전세 대란이 왜 문제인지 이제야 알겠다는 친구는 나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벽에 한가득 곰팡이가 핀 집을 봤단다. 돈을 맞추려니까 어쩔 수 없이 계약하겠다고 했는데 5분후 다른 곳에서 전화가 왔다며 2000을 올려달라고 했단다.
1년 2년을 꼬박 모아야할 돈이 몇 분새로 마구 올라가는걸 볼 때 스스로 무력함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서러웠다고 한다.  

문득 친구가 물었다. 
자기가 뭐 그리 잘못했냐고.

좋은 부모님 만난 덕분에 등록금대출받은 것도 없었다.
마이너스 없는 출발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래도 멀쩡한 직장을 잡아서 나름 아껴쓰고 나름 저축하고 나름 재테크도 신경썼단다. 
이십년 가까운 기억속엔 열심히 공부했나 열심히 일했거나. 두 가지가 전부였다. 
해외여행을 질펀하게 다닌것도 명품빽을 들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근데 돌아온 결과가 '고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초라한 것이어서 억울하다고 했다. 
자기가 무얼 잘못했느냐고 물었다. 

문득 조세희 씨가 철거촌 세입자 가정의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그집 가장과 나누었다는 대화가 떠올랐다.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하셨습니까?"
"열심히 일했어."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은 없으십니까?"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까?"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친구에게 대답을 해줄 순 없었다.
나 역시 우리들의 불행은 누구의 탓인지 묻고 싶어졌다.




집에서는 쉰다. 는 규칙은 쓸데 없이 왜 만들었을까?
하루종일 쉬고 또 쉬는 백수가 됐지만, 여전히 집에서는 쉬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결국 2주 가까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력서를 싸매고 없는 돈에 동네 커피숍까지 기어나왔다. 

반지하 커피숍에는 창문너머로 화분이랑 파란 하늘이 보인다. 흡족하네.

가망성 없는 일에 시간을 쏟고 있다. 비웃음만 사며 실패할 확률이 95%가 넘는다. 성공한다 해도 별반 뽐낼것도 없는 자랑담일 뿐이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이유는 내가 사는 인생이니까. 할 수 있을 땐 해보는 게 언제나 덜 후회됐기 때문에-.

한글파일을 열고 고작 두줄 채워넣고 딴짓을 20분 30분. 


지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엔 술을 좀 마셨다. 라틴아메리카 소모임에 가면 맨날 흥분을 하는 것 같다. 고작 두달 있었을 뿐인데 할말이 무지하게 많은거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신나고. 빠블리또 선생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오랜만에 소주 각2병을 했다. 살사빠에서 몽롱하게 춤춘것도 살짝 기억나고 취한 덕분에 살사바가 무지 이쁘게 기억남았던 것도 생각나고. 거기서 잠들었다가 집에가겠다는 일념하로 텨나온것도 떠오르고. 근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생각난건 내가 인터넷 여기저기에 술취해서 남긴 뻘소리들 뿐이다;;; 나도 모르게 '헉!'하고 눈이 떠지더라. 서둘러 트윗을 보고 여기저기 지울 수있는 흑역사는 좀 지워버리고....
 
여튼 그저 술은 마시면 주책, 남는건 흑역사 뿐인것 같다.






슈퍼 동네파 5월 체육대회 공지사항입니다.
우천이 거의 100% 확실히 되는 이 상황에서 슈퍼동네파는 동네파 체육대회 대신에

'나는가술까?' 라는 야심찬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점심을 해결하고 이른 오후에 만나, 노래방에서 대접전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다음에 등장하는 곡을 무작위로 뽑아서 부르게 되니 노래를 준비해오세요. 또한 노래 도중 서로의 노래에 대한 날카롭고 예리한 심사평을 적어야 하므로, 각자 펜은 꼭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무작위로 선출된 노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노래가 나와도 그날 불러야하므로, 되도록 모든 곡을 두루두루 섭렵해 오시길 바랍니다. 특히 팝송의 경우는 영어 가사를 놓치지 않도록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제시카 - goodbye
퍼프 대디 - I will be missing you
휘트니 휴스턴- I will always love you
마이클 잭슨 - 빌리진
정엽 - nothing better
임재범 - 고해
이소라 - 바람이분다
이소라 - 제발
김범수 - 약속
박정연 - 꿈에
김건모 - 첫인상
빅마마 - 꽃피는봄이오면
승리 - 스트롱베이비
김경호 -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서문탁 - 사슬
박완규 - 천년의 사랑
이승철 - 마지막 콘서트
이은미 - 애인있어요
She is gone
조관우 - 늪
조관우 - 꽃밭에서

 그리고 나는가수다 행사 이후에는 벼룩시장이 있을 예정입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사용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쓸모 없어졌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겐 유용할 것 같은 물건을 세개씩 들고 오세요!!!!

 정확한 시간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동네파 멤버들이 서로를 향해 퍼부은 객관을 가장한 독설과 냉소가 낭자한 노래평..


윤댕이 고해 99점
-각목같음
-음정이 무척 불안하고 쇼맨쉽이 한참 멀었음
-로리가 들이댄 카메라를 너무나 의식함
-너무 심심함
-노력을 요함. 정직하게 부르려고 하니 재미 없음
-무대장악력이 부족하나, 가사전달력이 훌륭함
-사랑노래를 군인처럼 무뚝뚝하게 감정처리함
-얼굴이 보기 흉함 땀을 뻘뻘 흘림
-Feeling이 전혀 없음.
-노래가 너무 길게 느껴짐. 한시간짜리 노래 같음
-무대에서 짝다리. NO NO! 시건방짐

 윤댕이 Nothing better 98점

-연습안했다면서 딱걸림. 2박3일 한듯
-사랑노래를 듣는데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음
-아무도 안듣고 있음
-곡의 포인트 '나띵베러'를 살리지 않았음
-전혀 감미롭지 않음. 나띵베러 너무 숨었음
-노래하는데 무대 공포증 있음
-노래 감정이 소주 각 1병임.

 

로리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95점

-가발이라 헤드뱅잉을 못함
-뛰어난 쇼맨쉽이 돋보임
-여자 김경호임
-혼자 자아도취되어 가사를 놓침
-안그런줄 알았겠지만, 음정이 불안함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지만 한참 미흡
-쇼맨쉽만 끝내줌
-주먹질은 흡사 데모대의 기개를 닮았음
-음정이 불안정하고 틀렸음 '그녈 곁에 둔 단 한사람' 부분.
-악씀

 

 로리 늪 98점

-간주점프를 했음에도 내래이션을 잘함
-정형돈의 늪 연상시키는 창법
-신남!!
-5점 포기하고 음정조절하는게 나을듯 그래도 잘함
-무대매너는 우리중 최고
-그 손짓은 돈 달라는 거니?
-산만하게 움직임
-고음처리도 좋음 하지만 주먹질은 바뀌지 않음
-'우~~'는 아주 적절함
-점점 동화됨 아주 잘하고 있음
-마치 본인의 사연같이 구구절절

 

 주기자  제발 96점
- 제발 쫌!
-샵과 플렛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대담한 창법
-음정 박자가 잘 맞지 않고 후렴구에서 애절함
-노래 실력이 많이 늘었음
-역시나 불안한 음정이지만 감정표현은 괜찮은 것 같기도
-동요 느낌이 물씬남
-자신감 넘침 이유는 모르겠음 그저 안쓰러움
-음이탈이 심해져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게 무척 어설픔
-팔자다리로 서 있는 뒷모습이 추함
-노래의 의도 정체를 알 수 없음

 
주기자 Always love you 88점
-저질영어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음
-찬스 써라 제발
-부르기 싫으면 부르지 마라
-껐으면 좋겠음
-누구를 그렇게 계속 사랑한다는거니?
-끝까지 들어야 되나?
-내가 아는 노래랑 같은 노래인지 모르겠음.
-간주가 제일 들어줄만함
-관객을 지루하게 함
-얼굴도 구리지만 노래실력은 더더욱 말도 못함 농락당한 기분임.


 

 쩡뿌까 바람이 분다 95점

-목이 꽤 잠겨 있음. 초코파이 탓 같음. 그만 먹길...
-맨발이 거슬림
-연습했니 안했니?
-노래 이해력이 부족함
-표정도 거슬림 포즈 거슬림
-고래고래 소리지른다고 잘부르는 건 아님
-머리숱이 많고 머리가 김
-아무데나 내지름
-감정 없이 부르는 노래로 와닿지 않고 머리가 너무 길어 갑갑함
-못들어주겠음 그만! STOP!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비웃음

 

 

쩡뿌까 첫인상 95점

-지른다고 다 되는게 아님
-긴머리긴치마는 자기가 입고 옴. 긴머리라니까 너같냐?
-후렴에서 음 낮춰 부름
-소리지른다고 점수가 잘나오는건 아님. 노래는 FEEL~
-듣는 사람을 배려해줬으면 좋겠음. 음도 올렸다 낮췄다.
-맘대로 함. 옥타부를 마구 뛰어넘는 과감성! 그러나 듣는 우리에겐 고문!

 

 

 

 이금댕  사슬 97점

-박자 놓침. 구부정한 자세 몹시 불편해 보임
-머리를 너무 좌우로 흔듬
-니 노래라는 감옥에 갖혀~~~
-아는 노래를 부르는듯 하나 귀에 전혀 안들어옴
-음을 니 맘대로 편곡함
-깔끔하게 부르는 듯. ->뻥!
-생각보다 자세가 역동적이지 않아 실망함
-폐와 위 및 각종 위장이 토하는 듯
-몹시 숨차함

 

 

이금댕  I will be missing you 94점
-노래 가사는 부르라고 있는 것. 댄스로 무마하려는 노력이 가상하나 우스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랩 왜 안함? 이거 랩송임. 퍼프 대디 랩퍼임!
-가사가 다 틀렸음 후렴만 부름
-가수로 성공은 힘들어 보임

 

 

앙증  스트롱베이비 (98-10)점

-음정 박자 가사 맞지 않음
-연습했다며?!?!?!?!?!!??!
-댄스곡인데 댄스가 없음 연습이 부족함
-노래가 많이 어렵구나
-저질 영어 발음. 거슬림
-이건 아닌거 같음
-저질노래 승리뺨침
-크랙을 구렉이라고 했음
-영어 가사 다 틀림
-댄스가 부적절함 맨날 똑같음 지겹다
-빌리진 뽑았을 때 하는게 나았을듯

 

 

앙증 She is gone 81점

-가사 읽기 급급해 보임
-고음이 올라가니 자신감이 붙으셨군요
-4단 고음. 아이유 이기겠음
-가창력 폭발! 끝까지 지치지 않는지 지켜보겠음
-락이 너의 장르인 듯 최고임
-가사 읽기에 급급하며 손이 떨림 술먹고 온게 분명함
-가사를 보면서 혼자 흥분 무지 좋아함
-마무리가 미흡했음
-끝까지 무대에 충실했으면 더욱 좋았을 듯


 

 김도도  천년의 사랑 96점

-음정박자 봐줄 수 있는데도 한계가 있음
-목소리 떤다고 다 잘부르는게 아님
-그래도 나보단 나은듯
-노래가 힘에 부치는게 보여서 안타까움
-한 옥타브 낮춰서 부름
-귀여운척 하나 하나도 안귀여움
-춤 구림 주선영보다 구림
-동감
-뮤직비디오 나온 여자가 신라시댄데 마스카라에 볼터치까지 하고 나와서 화남
-고음은 청중을 힘들게 했음 아주 힘듬 

 

 

김도도 약속 93점

-앞부분 실종
-너무 못불러서 같이 부르게 됨
-같이 불러 줌. 노래를 모르는 것 같음
-좋은 노래를....... 일부러 그러는거니?
-울면서 부름. 뻣뻣함
-가사만 또박또박
-노래하면서 웃지 않았으면 좋겠네
-주선영과 쌍벽임 음치임
-주선영과 김은지를 능가하는 놀라운 노래실력
-청중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능력을 가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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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내년에 다시 만나요!

 

 

 

 










여행을 끝낸지는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까지 둥둥 떠다니는 마음을 잡을 순 없었다.
아니, 마음이야 언제나 의지의 문제니까, 그 마음을 붙잡고 싶지 않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심정이 어땠냐면,
벤쿠버발 한국행 에어 캐나다를 타는 순간. 나는 12시 마지막 종소리를 들으며 재투성이 아가씨로 변해버린 신데렐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나는 특별할 것 하나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마법이 풀려버린 그 기분이 너무나 싫어서- 끔찍해서 나름의 치유책을 낸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포털 사이트를 열고선 되도록 기사제목을 읽지 않았다.
TV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집으로 배달온 시사주간지는 봉투도 찢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었다.

사실 그게 아닌건 잘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진짜 그럼에도, 내 심정은 그랬다.
이곳에 적응을 마치는 순간, 정말 나의 소중했던 여행이 끝이구나.
마법같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고 언제나 새롭고 신나고 기운나던 시간들과 안녕 안녕.

비워둔 기간을 채운다고 해서, 이곳에 다시 적응한다고 해서,
서른살 방학. 내가 가졌던 그 꿈같은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도 아닌데,
그냥 계속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차고 또 들어찼다. 

여튼 그래도 돌아왔다!
욕심내서 적응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천천히!
서른을 시작하는 첫머리. 한국에서 여백으로 비워뒀던 그 자리의 안락함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다.  

서른살. 지금은 재투성이 아가씨일지라도, 다시금 무도회장을 꿈꿔보겠다.



S에게

20세기 소녀 2011. 4. 13. 09:47


S!
쿠바 여행 초반, 내가 쿠바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너는 모를꺼야.
돈을 달라는 거지들, 20CUC에 몸파는 아가씨들. 
단순히 빵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

그 실망이 극에 달했을 때, 독일인 친구가 '이곳 쿠바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어.
나는 주저없이 '북경 가본적 있니? 중국과 다를바 하나 없어.'라고 대답했지.

아바나에서 뜨리니다드를 넘어가는 버스 안.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OST를 듣고 있었어.
그리고 자본화 되어가는 쿠바에 대한 쓰디쓴 감상을 곱씹고 있었지. 

그때 마침 흘러 나온 노래가 Veinte años . 
그런데 노래가 말해주고 있더라고.
20년전 사랑은 더 이상 기억해선 안된다고, 그 사랑은 과거를 의미할 뿐이라고.  
불현듯 그 생각이 드는거야.
이곳에서 혁명이 있은지 50년도 더 지났단 생각이. 
그리고 이곳도 이제는 다른 사랑(?)을 시작할 때란 생각이 들었어.

그 버스에서 많은 생각을 했어.
쿠바는 결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의 정답이 될 수 없겠지.

-그럼에도.
페루 띠띠까까호수 해발 4000m 살면서 평생 양말 한번 제대로 챙겨신지 못하는 아이들이
기억나. 1솔짜리 팔찌를 팔기 위해 관광객 틈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지.
그런 아이들이 최소한 성년이 될때까지는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노동으로부터 보호 받고,
리마 플로렌스 부자거리. 보그를 읽고 BMW를 몰고다니는 아가씨들과 평생 양말 한켤레 사신지 못하는 않은 인디오들이 동등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최소한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구현하는데서
쿠바는 조금 더 아름답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니가 나에게 '쿠바'는 아메리카 다른 나라들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가봐야
무언가 느낄 수 있다고 말해준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봤지.

고마워. 네 충고가 없었더라면, 어쩔뻔 했니?
여튼 나는 서른다섯 전에 다시 한번 쿠바를 밟기로 결심했어.

부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쿠바가 지금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길!
거리 골목골목 만났던 빛나던 이들이 지금보다 평화롭고 행복하길!  


-장*다보다 못한 년으로부터

 

 







Veinte Anos
Qué te importa que te ame, si tú no me quieres ya? 
El amor que ya ha pasado no se debe recordar Fui la ilusión de tu vida un día lejano ya, Hoy represento
al pasado, no me puedo conformar.
Hoy represento al pasado, no me puedo conformar.
Si las cosas que uno quiere se pudieran alcanzar, tú me quisieras lo mismo que veinte años atrás.
Con que tristeza miramos un amor que se nos va
Es un pedazo del alma que se arranca sin piedad.
Es un pedazo del alma que se arranca sin piedad.
Si las cosas que uno quiere se pudieran alcanzar, tú me quisieras lo mismo que veinte años atrás.
Con que tristeza miramos un amor que se nos va
Es un pedazo del alma que se arranca sin piedad.
Es un pedazo del alma que se arranca sin piedad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예전에 사랑했었다는게 무슨 상관인가요
이미 지나간 사랑은 기억해선 안되겠지요
먼 옛날 나는 당신 인생의 꿈이었는데 지금은 과거를 의미할 뿐이고
나는 그때와 같아서는 안되겠지요
누구라도 원하는 일들을 이룰 수 있다면 당신은 이십년전과 똑같이 나를 사랑하겠지만
사라져가는 사랑을 슬프게 바라봅니다
처참하게 부서져버린 영혼의 한 조각처럼


 


만두에게

20세기 소녀 2011. 3. 31. 10:00

제대로 된 편지지 하나 없으면서 네게 편지가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구나. 일기장 맨 마지막에 적었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된 봉투에 넣어줄께. 편지를 부치는 방법도 있지만, 핑계를 대자면, 쿠바 아바나에서 한국까지는 우편으로 한달이 넘게 걸린다고 해. 분실사고도 빈번하고 말야. 그리고! 그 전에 내가 도착할꺼야. 파하하.  

네가. 지금. 이곳. 쿠바 아바나에 있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눈에 너무 선해서.
일기도 못쓸만큼 '나'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이곳에서도 자꾸만 네가 생각난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아바나에는 작은 광장들이 많이 있어. 커다란 하나보다는 서로 다른 다양함을 추구하지. (듣기엔 베를린도 그렇다고 하는데 사회주의의 산물인듯) "비에하 플라자" 우리 말로 하면 오래된 광장. 이곳에는 유럽 애들이 줄을 서서 커피를 사가는 예쁜 커피숍이 하나 있지. 아침 8시 반부터 줄을 서서 아침 9시 10시면 다 팔리고 없는 경우도 있고, 그 전날 미리 예약을 해 가는 관광객도 많고.
여튼 쿠바 아바나에서 가장 자본주의(맛있다고 질 좋다는 뜻) 냄새가 물씬 나는 커피숍에서 나는 방금 커피 꼰 럼(럼들어간 커피)를 마시며 기분이 좋아서는 어쩔줄 모르겠다. 이렇게 유쾌하고 행복한데, 꼭 그만큼 혼자 있다는 게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구나.

요즘 들어 알콜에 눈 뜬 너와 이 술들어간 커피를 함께 했다면 얼마나 신났겠니. 비에하 광장에서 노닥거리는 꼬마들 사이에 '아하하하' 큰소리로 웃어대는 어글리 꼬레아나스 가 될 수 있었는데 말야.

헤밍웨이가 '내 인생의 모히또'라고 외쳤던 잡화점에서 모히또를 마시고, 250원 하는 길거리 피자를 먹으면서 배를 두들기고, 소복한 하얀 눈을 연상시키는 다이끼리를 마시고,
내가 연애를 안해서 그러는 걸까? 좋은 곳에 있고 좋은 걸 만날 때마다 대게는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아니면 어쩜 아바나 시내에는 젊고 활기찬 청년들이 가득해서 한국 남자들 생각은 안나는지도 모르지.

땀띠가 나고, 하루면 티셔츠와 반바지가 소금기로 가득 쩔어버리는 이곳이지만.
말레꼰 방파제에서 바다로 점핑하는 남자애들을 바라보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하게 트인다.

길을 가면 삐끼들 투성이. 듣자하니 몸을 파는 아가씨들도 있다고 하고. 구걸하는 거지들도 참 많아.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모습을 조금 기대하고 온 여행이었지만, 조금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길 바랬는데 그런건 만나기 어려운 듯. 공룡을 보고 싶었는데, 사라져버린 공룡의 화석만 만난 기분이야. 그런데도 이상하지? 이곳이 전혀 실망스럽지 않으니 말야.
화석을 죽어버린 돌덩이로만 볼 것인지, 그 화석을 더듬어 그 옛날 존재했던 거대한 공룡을 상상할 것인지는 내게 남겨진 몫이겠지.

그래도 이들의 노래와 춤사위에는 그날의 격정적인 승리가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태어나면서 부터 룸바를 추고, 싸움을 하면서도 룸바를 추었다는 쿠바인들은 춤의 이유는 잃어버렸을지 몰라도 이렇게 춤을 추고 있잖니.
날씨가 무더워지는구나. 슬슬 내셔널 갤러리로 이동해야겠다.





쿠바 아바나에서 넷째날.
화석을 더듬고 있는 너의 친구 앙증으로 부터.


남미로 떠나기 전 친구 하나가 미치도록 날 부러워했다. 

"리얼이니 앙증? 너 정녕 버스가 고장나면 화를 내는게 아니라
버스에서 내려서 음악을 틀고 다 같이 춤춘다는 그 남미 땅에 가는게 사실이니?"

그 한마디가 나를 얼마나 큰 기대에 부풀게 했나?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버스가가  고장난 적은 없었다. 3시간 늦은 버스에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춤을 췄다.
기차에서...;;;;
그것도 생판 처음 보는 콜롬비아 아저씨들과.

보고타에서 조금 떨어진 소금성당까지 가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미리 챙겨온 여행정보에 따르면 주말에는 관광객을 위한 소금성당행 기차가 준비돼 있다고 했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들과 함께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소금성당행 기차를 예매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토록 흥미 진진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곤... 난 정말 몰랐었네~. 

9시 정각에 출발한 기차는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느렸나면, 기차가 놓인 철도 옆으로 달리고 있는 자동차 중에서 우리가 탄 기차를 앞지르지 못하는 차종은 없었다. 심지어 2륜차 마저 (자전거 포함) 우리를 죄다 앞지를 정도였다.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기차 같은 칸 저쪽 편 아저씨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들은 출발과 동시에 술병을 따고 있었다.... 왁자지껄하면서도 얼큰한 분위기. 이거 왜이래? 그야말로 남미와 한국의 일맥상통하는 정서가 존재한다는 또 하나의 현장이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 위아더월드 인가봐.
무한경쟁에 반대한다는 듯 느릿하게 걸어가던(?) 기차가 두번째 역에 섰을 때 였다. 뜬금없이 역사앞에서 밴드의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 왠지 모르게 신이 나요. 너무너무 신이나요. 쿵짝 쿵짝 울려퍼지는 살사 음악에 넋을 놓고 있는데 이 밴드가 우리가 탄 기차를 같이 타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그때부터 기차 안은 밴드와 함께 춤을 추는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변신!

기차 전용 밴드는 그렇게 두곡을 연주하더니 다음칸으로 떠나버렸다. 그 흥겨움을 참지 못하고 다음칸으로 달려가서 문을 벌컥 열었는데, 거기는 나이 지긋하신 중년여인석들 전용칸(?)이라고 할만큼 중년과 노년여성들의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흥겨움의 열기는 그곳이 더 들끓고 있었으니.... 소금성당 티켓을 끊던 담당자가 티켓을 끊다 말고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손에 쥐어진 티켓을 들고 추어지는 흥겨운 춤사위에 나는 반하고 또 반했다. 그들 눈에는 밴드 구경온 동양인(=나)이 퍽이나 신기했나보다. 다들 이말저말 말을 걸더니 누군가 내 손을 턱하고 잡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한분. 내 손을 붙들고 살사 스텝을 밟기 시작! 그때부턴 나도 모르겠다 싶은 마음에 같이 흔들 흔들 되도 않는 춤을 신나게.

그렇게 두곡을 신나게 흔들고(?)와서 다시 우리칸으로 돌아왔다. 진작부터 빈병을 손에 들고 목소리를 드높여 노래를 따라부르던 아저씨들은 계속해서 병을 따기 시작. 한국사람들 잔돌리는 거랑 왜이렇게 똑같은지. 물을 마시듯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그렇게 도착한 소금성당은... 아쉽게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금광산 속에 만들어진 교회는 멋있기도 했고 웅장하고 거대하기도 했지만 오늘 하루 중 있었던 일을 강약중간약으로 한다고 비하면 '약'에 해당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정말 하일라이트는 집에 돌아오는 기차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중간에 들린 레스토랑에서였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아저씨들이 본격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짧은 영어와 짧은 스페인어가 몇번 오갔고, 그들은 무척이나 우릴 반겨줬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이런 사진을 남길정도로 말이지.


역시나 사진에서 눈여겨 볼 것은 맥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저씨의 강렬함이랄까?

그렇게 통성명을 마친 뒤 함께 탄 기차는 각별하고 또 각별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저쪽 끝에서 '꼬레아나~심지어 우리 무리엔 버젓한 남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존재는 지워버린 채 꼬레아나스(한국인 여자들)만 불러제끼는 아저씨들의 센스. (스페인어권에선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을 때는 복수로 남성형을 쓴다 여기서 우리를 부르고 싶었다면 꼬레아노스 라고 불렀어야 맞는 표현) 뭐만 있으면 무조건 꼬레아나스! 래. 그게 괜시리 빵터지고 빵터져서, 손인사 나누고 휘파람도 불고 눈인사도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 기차 서비스 왜이렇게 끝내주나요? 밴드가 또 탄거다. 그때부터 정말 끝내주는 춤판이 벌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사업상 전화인 마냥 심각하게 통화하던 아저씨도 바로 핸드폰을 꺼버리고 손수건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 엠빠나다를 팔던 아가씨도 흔들흔들 춤울 추고.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를 불러 제끼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꼬레아나 꼬레아나~
일행 중 한 언니가 튀어나갔다. 좁디 좁은 기차 복도에서 한 아저씨와 맞잡고 살사를! 기차안은 그때부터 흥분의 도가니탕. 한곡 끝나고 일행 언니가 들어오고 나니 다시 휘파람에 꼬레아나 소리에 결국 이번엔 내가 튀어나갔다. 살사는 못추는 덕에 앞에 선 아저씨를 따라서 춤을 췄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목에 두르고 있던 손수건을 풀러서 덩실덩실 같이 따라추는데 이거 노래가 이렇게 길었나? 아무리 춰도 춰도 노래가... 안끝나;;;; 알고 보니 기차 보호차 차를 탔던 경찰 아저씨가 밴드연주하시는 아저씨들에게 한번 더 노래를 돌리라고 부탁했다고. 그래도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연주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너무 부끄러운거다. 수줍게 뺨을 가리고 아저씨들에게 외쳤다. "땡고 베르구엔싸(부끄러워요)!" 그 말에 아저씨들은 박장대소 하며 더더욱 좋아했다는 후문이.
그리고 기차 호위차 탄 경찰은 핸드폰으로 내내 춤추는 우리 일행들을 동영상 촬영했는데 언젠가 유투브에 '로까 꼬레아나(실성한 한국인)'라고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것.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땅 콜롬비아.   
오늘 밴드와 함께 다같이 합창했던 노래 중 하나는 '꼴롬비아 띠에라 께리다COLOMBIA TIERRA QUERIDA(콜롬비아 땅을 사랑해)'
콜롬비아 네 글자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노래와 함께 오늘을 기억하겠지.
나는. 콜롬비아 땅을. 사랑해.






오아시스 바로 앞 야자수 나무 그늘 앞에 앉아 있다.
이곳은 오아시스 마을- 이까

모든 것이 완벽하다. 책속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오후 4시까지는 할 일이 전혀 없는 까닭에
일기 쓰고 불의기억 다시 읽고 점저 한번 사먹고 뒹굴 예정이다.


아! 좋다.
초반에는 서늘한 바람만 불다가 지금은 후덥지근한 사막 바람으로 바뀌었는데 사로잡는 풍광이 너무 멋져서 그냥 의식의 흐름조차 놓어버리고 싶네.
절대 잘생긴 서양애가 내 앞에서 웃통 벗고 썬탠해서 그런건 아니고! 헤헤

호텔 수영장 앞에서 한시간 반을 죽치고 불의기억 2권을 읽다 나왔다. 이러다가 조만간 불의 기억을 두번 완독할 태세. 여행끝까지 쓰겠다 생각했던 하이테크 펜도 바닥을 보인다. 잃어버리거나 심이 빠져서 못쓸 줄 알았는데 잘도 들고 다닌다. 여행이 너무나 무사했단 증거다.

어제부터 자꾸 환타가 땡긴다. 물이 마시고 싶고 과일이 땡기니까 그 중간 선택으로 환타를 잡게 된다. 어제 저녁에는 호텔 직원이 불쑥 자몽 하나를 내밀더니 주고 갔다. 엄청 크고 달게 생겼는데, 난 칼이 없어요 흑흑. 차마 이것까지 말하기는 좀 그렇고 말이다. 


 





샌드보딩을 하고 왔다.
아~ ㅜㅜ 이런 레포츠도 너무 좋아하는데 풍경 마저 너무 좋아... 흑흑
차라리 낮에 한번 하고 저녁 해질무렵에 한번하고 두번 신청할걸...

프랑스 친구들이 '바모스'에 걸맞는 프랑스 표현을 가르쳐줬는데 너무 어려워서 기억을 못했다.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느라 투어 사람들과 떨어진 프랑스 애에게 너무 미안하다



해지는 사막은 아름다웠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왔을 때 또다시 노을 지는 사막을 볼 수 있을까? 문득 고정된 상수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를 떠올렸다. 나는 다시 돌아가서 가족과 추억을 나누고 동네파를 만나고 곰다방서 커피를 마시고 구모전에서 중국요리를 먹고 싶지만,
모두가 변한다. 빠르고 늦음의 차이만 있을 뿐.
그래도 나는 내가 자꾸만 변해가는 것을 알기에
내 변화의 척도를 가늠해줄 수 있는 고정된 장치들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 나는 내 인생에서 커다란 한가지를 결정지었다.

나는. 등산을. (엄청. 지독히도, 무지하게) 싫어한다.

오늘 하루의 시작은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살짝 날이 흐리긴 했지만, 하늘과 맞닿아 있는 띠띠까까 호수의 풍경은 얼마나 절경이었던가. 비록 꼴찌로 배를 탄 덕분에 내 의자 시트는 망가져 있었지만 참을만 했다.
태양의 섬 투어는 투어에 참가한 사람 모두가 처음엔 두시간 가량 등산을 한다. 약 3분의 1지점까지 왔을 땐 북쪽 선착장으로 돌아갈 사람과 태양의섬을 가로질러 남쪽선착장으로 갈 사람으로 나눈다. 이때 선택을 잘했어야 했다. 

여튼 그때부터 죽음의 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가파른 경사길에 저 멀리 바다 같이 끝없이 펼쳐진 호수. 그리고 손뻗을만큼 잡힐만한 구름. 푸른 하늘. 




하지만 정말 그런거 하나도 안보였고요. 안그래도 무겁고 쳐진 몸뚱이를 들고 해발 4000미터에서 산을 오른다는게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산티아고에서 새로산 등산화는 살때부터 발이 꽉 끼는가 싶었는데 고지대에 올라가고 나니까 그야말로 발이 퉁퉁 부어서 신발 앞창 단단한 부분에는 발가락 세개만 들어가는 불상사가! 
숨은 차오르고 갈길은 멀고 넷째 발가락은 부러질것 같고. 
중간중간 산소가 모자란지 머리도 아파오고.

그 언덕이 나오고 언덕이 나오고 또 언덕이 나오고. 경사를 내려갈땐 길이 미끄럽고. 그러다 넘어질것도 같고.
그렇게 한 예닐곱번의 언덕이 나오고 언덕이 또 보였을 땐 정말이지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운다고 해서, 섬 반대편에 대기하고 있는 배가 알아줄리도 없다. 안다해도  오후 3시에 출발하는 일정에는 변함이 없겠지. 
다행히 혜*언니가 나랑 호흡을 맞춰서 걸어주었지만, 정말 울고 싶고 짜증나고 싶은걸 참을 수가 없었다.
크헉 컥 헉헉 학학! 태어나서 그토록 격한 내 숨소리를 들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인 듯.  




그러다 북쪽선착장으로 향한지 한시간 만에 현지인을 만났다. 30분만 가면 남쪽 선착장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나는 행복의 나라 노래를 BGM으로 깔면서 견딜만하다고 스스로를 위로 했으나. 그 뒤로 한시간이 지나도 선착장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더욱더 험한 산봉우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을 뿐.
결국 거기서 만난 다른 현지인에게 길을 물었다. 30분 남았단 소리를 들었다. 한시간 전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왜 다시 30분이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이번엔 진짜겠지 그 믿음 하나가지고 산을 넘었다. 그렇게 가기를 또 다시 30분.

이번에 만난 현지인은 이제 높은데는 끝이라며 축하한단 인사를 건넸다. 그가 태양의 섬을 만든 창조자는 아니겠지만 고맙다고 고맙다고 그녀의 손을 붙들고 몇번이나 인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개의 언덕이 나왔던가?!?!?! 생각 같아선 그 현지인을 다시 붙잡아와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 눈에는 저게 오르막길로 안보이냐고! 설마 저걸 내리막길이라고 부르나요?!?!!?

여튼 체념의 상태로 몇개의 언덕을 더 넘었을 때 마주친 또다른 현지인이 이제 30분 남았단 소리를 했다. 난생 처음 보는 분이지만 그 분의 멱살을 붙잡고 '거짓말! 거어지잇마알!!'이라고 외치고 싶은걸 꾹 참았다. 
엉엉. 모두다 거짓말 쟁이들이야. 헛된 희망 따위 바라지도 않으니까 팩트만을 말해달라고!!!
그렇게 20여분을 걸은 결과 이번엔 관광객을 만났고 그는 15분 정도만 내려가면 북쪽 선착장이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간에 관해서 그의 말은 신뢰할만 했다. 다만 내려갈때의 그 길이 어떠했는지는 두번다시 떠오르고 싶지 않은 악몽인데....

수십미터의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가파르게 내려가는 그 길. 좁디 좁은 골목과 가파른 경사사 사이로 놓여진 그것은?!?!?!? 덩이 덩이 떨어진 커다란 당나귀 똥.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이 자기 집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뿌려놓은 빵가루 마냥 끊임없이 흩뿌려진 양 똥. 
따지고보면, 어차피 그 똥들을 모두 피해서 다닐 수는 없는 일이고 눈 딱 감고 밟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참 간사해서, 막상 눈에 보이면 밟고 느끼게 되는 그 찝찝한 감촉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러니까 안그래도 좁은 길. 흩뿌려진 똥을 피하다 보면 디딜데는 정말 몇군데 없고, 그냥 앞만 보고 전진하면 될 길을 돌아가고 돌아가고 점프까지 해대고.
정말이지 영영 선착장에 도착할 수 없을것만 같았다. 
수많은 똥들을 피해가며 그 높은 경사를 간신히 내려오고 나니 다행히 배는 출발하지 않았다. 

그렇게 배에 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또 다른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격한 등산으로 인해 너무나 격한 운동을 감행한 것일까? 나의 장이 10분에 한번씩 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내보내줘 내보내줘! 며칠 묵은 것들 다 해치웠다고!!'

하지만 내가 있는 장소는 (느림의 미학을 한없이 실천하는 느려터지기 짝이 없는 통통)배!
화장실도 없는 채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망망대호수! 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없이 아득하기만 했다. 고통속에서 끝없이 시위를 펼치는 그것들을 달래며 차마 배가 더 아플까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는 고통이 계속 됐다. 입은 바짝바짝 말라와. 다리는 퉁퉁 쑤셔와. 발가락들은 서로 떼어달라고 해. 

근데 배가 속절없이 가고 있는거다. 풍류도 풍류 나름이지. 이미 배안에 모든 사람들은 다들 쓰러지기 일보직전. (이른 8시 출발로 인한 이른 기상. 그리고 격한 등산. 고산지대로 인한 피로감 백배.) 하지만 배는 속력을 낼 줄 모르고요. 이번 투어에서도 함께한 브라이언은 차마 수영해서 가는게 더 빠르겠단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평생 해본적 없던 멀미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배는 아프고 먹은것도 없는데 속은 메식거리고.

나는 정말이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여기서 스쳐 지나가면 평생가도 기억한번 안해줄 사람들이 나를 '고작 2시간 동안 운행되는 띠띠까까 호수 배안에서 위로 쏟아내다 말고 뒤까지 쏟아낸 동양인'으로 나를 '평생토록'기억하는 것'그런 사람도 있었다~'라며 자기 친구들에게 떠벌리는 대상이 되는거.  

정말 그것만은 면하려고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모르겠다. 배를 움켜잡고 또 움켜잡고 바짝 마른 입안을 우물거리면서 입운동하고. 저 멀리 코파카바나가 보였을 때 폭우치던 내 배는 잠잠해져 갔다. 다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멀미나던 속도 많이 줄었다.

결국 나는 목표한대로,
같은 배를 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금방 기억조차 못할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만세!  

오늘의 결론: 사람이 정신력으로 안되는게 없다.
그리고 난, 등산을 싫어한다.


물이 들어 찬 사막을 봤다.
트럭 천장에 앉아 거울같은 공간을 봤을 때, 문득 작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가 기억난다. 왕언니 선배님이 우유니가 소개 된 네이버 메인을 보여줬었는데, 나는 정말 뭐에 홀린 듯이, 무심결에 말했었다.

"저 저기 갈래요 내년에"

그 말이 현실로 이뤄질줄이야
트럭 위에 타고 마리셀이랑 빠올라 마사에게 끊임없이 외쳤다.
"못믿겠다 언빌리버블!"
실은 보고 온 다음에도 못믿겠다.

 




그러다 저 편에서 구름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맨발에 부딪히는 굵은 소금비는 쓰렸지만, 색다른 날씨를 둘이나 만난 건 행운이었다. 

불규칙한 낙하 불규칙한 알갱이 불규칙이 만들어 내는 리듬
흐려지는 하늘 어느새 서서히 물러나는 구름
시간과 공간의 접점을 온 몸으로 느끼는 몇 안되는 경험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연주소리.

아르헨티나 남자애가 기타보다 작은 사이즈의 악기를 튕기면서 뚱당뚱당. 
내가 악기 들고 다니는 남미 애들 중에, 연주를 잘하는 애를 몇 못봤는데 발군의 실력이었다.
부에노~
칭찬 한마디에 수줍게 웃더니 직접 기타를 매주었다. 나 악기 연주 못해를 스페인어로 말할 자신은 없고...  R.ef 상실이란 노래가 있다. 기타를 두번 치면서 "탕탕! 사랑했던 나의 마음 속에~' 그 흉내를 내줬더니 빵하고 한참을 웃어줬다. 

아마도 나는 우유니 사막 내리는 빗속에서 들었던 그 기타연주를 평생 잊지 못하겠지.


아브라카다브라
모든 것이 말하는대로 이루어 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만큼은 소중하다.





바람이 불 때 하품을 하면 모래가 씹히고
밤하늘의 별은 끝내주지만, 먹는 물을 아껴서 양치를 해야한다.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담요와
보풀이 잔뜩 일어 살에 닿으면 쓰랄리 것만 같은 이불.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스무살 농활 때도 도망가고만 싶었다. 
그럼에도 트럭 위에서 맞받은 시골 바람은 얼마나 기분 좋았던지.
뙤약볕의 더위, 땀과 풀내에 찌들은 내들을 모두 날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 비포장 도로만 달리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루타40을 달릴때도,
검은빙하투어 내내 이리저리 흔들리는데도
나는 계속 웃고만 있었다.
그 옛날 농활때의 기분이 되살아나서. 
 
먼훗날 언젠가 어디선가
낡은 담요. 냄새나는 이불을 덮게 될 때.
나는 우유니 사막의 밤하늘을 떠올릴지 모른다.

토마토 소스의 스파게티. 너무 짠 감자 스프.
뽑기띠도라고 외쳤음에도 한잔 가득 따라진 와인.
이 모든 것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그래서 결론은 오늘밤 베드벅에 물리더라도 잘 참아내자는 것?!?!?!?!?!
푸하하.







칠레 아따까마 쪽에서 출발하는 우유니 투어. 
첫번째 날 : 라구나 블랑까 (흰호수) ->  라구나 베르데 (녹색호수) -> 노천온천 -> 라구나 꼬로나다 (주황색 호수) 

칠레 아따까마에서 우유니로 출발할 때의 준비물 : 유우니 국립공원으로 들어갈 때 필요한 볼리비아 볼(볼리비아 화폐)가 어느정도 필요하다. 물도 많이 싸가는 것이 좋다. 대부분 5리터짜리를 사서 트렁크에 넣고 다닌다. (나처럼 고산병의 위험이 있는 사람에겐 특히나 많이 필요한데 4리터 넘게 싸용한 기염을 토했다.) 여행책자마다 나와있긴 하지만, 휴지나 물티슈, 썬크림, 자외선 차단하는 물품들은 당근 필수사항이다. 햇볕은 미친듯이 따갑고 바람은 미친듯이 춥다. 물이 차 있는 소금사막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쓰레빠를 준비하는게 좋다. 가지고간 모든 준비물이 소금에 절여질 것을 대비해야한다. 


난 투어가 좋다. 정확하게는 투어가 만들어주는 인연이 좋다. 
너 영어하는거 맞니? 라는 소리를 들어보질 않나, 서양애들 얼굴을 구분못해서 어 이아저씨 아까 물은거 왜 또 묻지? 란 생각을 하는 나같은 애들에게도 친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못알아 듣는 얼굴로 멍하니 있으면 (불쌍하게 여기고) 알아서 챙겨주는 투어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푸하하하. 
아까 우유니쪽에서 아따까마로 넘어가는 우리투어 브라질 애들이랑 아침 먹을 때도 느꼈다. 아 투어란 참 좋은거구나! 아침먹고 헤어지는 길. 딱봐도 190가까이 되는 그들이 나란히 줄서서 스페인식 인사를 해줬을 때도, 또 한번 느꼈다.
아! 투어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좋은거구나. 푸하하.


아침한끼 같이한 브라질 친구들. 자기네랑 같이 바이크 타고 아따까마로 넘어가지 않겠냐고 권했을 때, 나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음. 운전면허만 있었다면 지금도 진심으로 그러고 싶음. 
(하지만 어차피 그들은 역방향. 우유니에서 아따까마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여튼 우유니 투어 때 투어 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르헨티나 민박에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스라엘 단체 관광객에 한국인 꼴랑 하나 끼어서 2박3일동안 입다물고 지냈단 이야기, 한국인 단체관광객 4명에 꼴랑 일본애 하나 끼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애매한 웃음만 짓고 외톨이가 되었단 이야기. 일본남자애 일곱명 사이에 낀 우울한 아르헨티나 여자애 이야기. 투어 사람 모두가 스페인어를 할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영어를 써서 영어 못하는 이스라엘 여자애와 한국인을 묘하게 갈라 놓은 미국남자애 이야기.
같이 투어할 한국 사람이 없다면, 되도록 다양한 인종을 만나는게 중요하다고 들었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못하는 나로선 이곳에서 2박3일 쟈크채우기 십상이니까. 

다행히 어제 마사랑 이곳저곳 투어정보 알아보러 다니는데, 마사가 어떤 투어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인종이 좀 다양했으면 좋겠다. 한무더기 단체 관광객은 피하자고 말했다. 다행히 마사는 그럼 그런 투어를 찾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만나게 된 환상의 우리 투어팀!! 꺄악 꺄악! 


1. 마사 (미쯔이 마사하시. 그의 한국 이름은 정기라고 한다) 
일단 난 마사가 없었으면, 우유니에서 죽을 뻔 했다.
아따까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사랑 헤어지고 하루 정도 더 묵을까 했었는데 마사 없이 우유니 투어 참가했다간 정말 송장돼서 나올 뻔 했음. 투어회사를 알아보면서 나는 칠레억양이 섞인 영어를 거의 못알아 들었다. 대게는 5리터의 물을 준비해 온다는 것도, 볼리비아 페소로 환전이 필요하단 것도 못알아들었다. 그냥 투어 회사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만 있었는데 마사가 죄다 챙겨줬음. 나 침낭 없는걸 알더니 침낭 없는 사람도 잘수 있는지 꼬박꼬박 물어주고, 나에게 너 돈 환전해야한다고까지 귀띰. 환전하러 가서는 여기 환율 정말 그지같으니까 쫌만 환전하고 나머지는 볼리비아 넘어가서 하란 충고까지. 다시금 생각해 보지만 정말 마사는 내 생명의 은인임.
 
2. 마리셀
여기나이로 스물아홉이니까 나보다 한살 위인것 같다. 통통한 몸매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시원시원함이 참 좋았다. 예전에 부산에서 근무한적이 있었다면서 몇개 말해주는데 양곱창을 알아서 빵터졌다. 내가 진짜 끝내준다고 하니까, 그게 맛있냐며 진심 되물었음. 이사람이 아직 음식의 진정한 컬쳐쇼크 양곱창 맛을 못봤구나. 한국 데려와서 먹여볼수도 없고 슬프다.  
여튼 마리셀은 내가 못알아 듣고 멍하게 있을 때면 주저 없이 영어로 번역해준다. 너무너무 고맙다.

3. 빠올라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왠지 모르게 해리포터 론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의 소녀. 마리셀과 친구다. 우유니 투어만 세번째래. 오늘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기념으로 맨 앞자리 앉았는데 알아서 선곡하는데, 선곡 존잘이심. DJ이가 따로 없다. 게다가 댄스 뮤직나오면 중간 중간 댄스도 춰준다. 얼마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잠시 쉬는 중. 칠레보단 다시 아르헨티나에서 일하고 싶단다. 비냐델마르 산다기에 나 다녀왔다고 끝내준다고 아는 척 했다. 침낭 없는걸 아니까 자기는 침낭 가져왔다면서 자기 이불을 얹어 줬는데 추운것도 추운거지만 저걸 다 덥고 잤다간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4. 스위스 커플
여자는 컬러테라피 치료사. 채식주의자. 야채는 여자친구가 고기는 남자친구가 알아서 먹어주는 궁합좋은 커플. 남자친구가 무지 개구진데, 완전 익스트림 퍼니맨. 오늘도 굉장히 위험한 곳 다 기어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근데 아주 익살스럽고 사람 기분 안상하게 하는 선까지 농담을 던져서 빵빵 터진다. 

5. 소피아와 소피아의 어머니
산띠아고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프랑스인. 스페인어를 할 때 불어처럼 둥글게 둥글게 발음하는데 정말 발음이 끝내줌. 언제나 상냥하게 웃어준다. 근데 어머니 사진사로 오신거 같다. ㅋㅋㅋ 어머니는 통 사진을 찍지 않으시고 소피만 연신 찍어대네. 

6. 오로라 
오로라는 프랑스 친구. 내가 오로라란 이름을 처음 안건 <별나라 손오공>이라는 만화영화에서였는데, 그 손오공에 나오는 오로라 공주보다 더 이쁘다. 사람들이랑 잘 섞이는거 같지는 않고, 언제나 말없이 니콘카메라를 집어들고 나간다. 


여튼 우리 투어 조는 아주 마음에 든다. 왠지 끝내주는 2박3일 투어가 될 것 같은 느낌. 우유니의 물이 아직 차있어야 할텐데. 오늘밤 빌고 또 빌어봐야겠다. 일단 여기가 친환경화장실이라 물이 안나오기 때문에 세수는 불가능 하겠지만 식수로 어떡해든 이라도 닦아봐야겠다. 아까 물티슈로 얼굴 닦았는데 정말 가관이었음. 흑흑. 
 
 


 





오늘 간헐천 투어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났어야 했는데, 어제밤에는 10시 11시가 다 되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 안그래도 24시간 버스타서 피곤해야 맞는데 잠은 안오고 새벽에 일어날건 걱정이 되고 괴로웠다. 그러다 간신히 잠 들었다가 눈 뜬게 새벽 2시반이었다.

숙소 밖에서 약 30분간 투어버스를 기다리는데 기분이 쏠쏠했다.새벽 별도 떠 있고 달도 떠 있고 운치도 있고. 그리고 여기는 바로 사막!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투어버스에 올라탔는데, 역시나 동양인은 나 혼자. (마사는 간헐천 투어 스킵할거라고 했다) 게다가 투어 가이드 아저씨는 스페인어 밖에 모른다고 한다. 아흙 ;ㅁ;
근데 옆에 앉아 있는 애들이 자기네가 간단한 내용은 영어로 통역해주겠다고 한다. 세살과 파뜨리씨오. 산띠아고에서 대학생이란다. 구세주를 만났다.

투어 버스에서 잠을 안자려고 발버둥을 쳤다. 간헐천 투어는 고도 4000미터까지 올라가는데 자다 깨는데 고도가 훅 올라가 있으면 정말 대책이 없을거 같아서. 화장실 가려고 내렸는데 정말 숨이 안쉬어지더라. 간신히 연신 숨을 들이키면서 버텼다. 껌 씹고 물도 계속 마쉬어주고
(고산병 팁 : 물에도 나름 산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고산병엔 물을 많이 마셔주는게 좋다. 단 화장실을 자주가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화장실을 갈때 숨을 멈출 수 없으므로, 각종 악취를 벌름거리며 모두 들이켜야 한다는 단점이 추가된다)

그러니까 나는 나름 (고산병을) 잘 이겨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헐천 투어하면서 숨 쉬기가 어렵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쉬어지는 것도 아니고
걸을 때 어지럽긴 하지만, 일단 투어하고 있는 간헐천이 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중력이 어그러진 같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재밌기도 했고.
 
새벽 4시에 시작돼서 동트는 걸 바라보는 간헐천 투어는 해발 4000미터까지 올라가는데 무척 춥다.이 투어의 하일라이트는 동트는 새벽에 하는 온천. 
추위와 온천을 대비하기 위해 나는 수영복에 내복 깔깔이까지 다 챙겨서 입고 갔다. 근데도 너무 추워서 '께프리오(추워요)'만 한 이백번 외쳤던가? 그런데 그 추운 와중에서도 반바지 입고 등장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너무 추워보인다니까 피식 웃는다. 스웨덴에선 겨울에 얼음 깨서 수영다며;;;; 할아버지는 10년전쯤 유행했던 '고조 우리 연변에서는 이런것쯤 아무것도 아닙니다.'개그를 떠올리게 했다. 나이불문 인종 불문 남자들의 허세란. 하지만 카일 할아버지는 나에게 무척 상냥했으므로 패쓰!

별거 없는 증기수(?) 폭발과 간헐천을 구경하고 온천에 당도했다. 나 정말 빵터졌다.
물.... 드러워.
이건 온천이 아니라 진흙탕인데;;;; 근데 투어온 서양애들은 죄다들 좋다고 좋다고 물에 텀벙텀벙 들어가는거다. 그 와중에 고개를 절래절래 지으면서 물에 절대 안들어가겠단 표정 짓는 일본애들과 너무 상반되길래 더더욱 웃겼다.
언제나 내 인생의 모토는 이왕이면 경험하고 체험하자 이기 때문이니까, 나는 과감히 옷을 벗어던지고 온천 입수. 근데 물은 너무 뜨겁고 물 위는 너무 차갑고. '아뜨거 아뜨거' 하니까, 투어에서 만나게 된 세살과 빠뜨리씨오 소피아가 웃더라. 그들은 아무리봐도 머드로 봐줄 수 없는 (자갈과 알갱이가 섞인) 진흙을 자기 얼굴에 바르더라. '구아뽀(잘생겼어)'라고 해줬으나, 나도 모르게 '좋냐? 그게 좋아?'라고 냉소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칠레 친구들보다 온천에서 나왔다. 온도차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칠레 친구들 사진 찍어주면서 해뜨는 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나 온천들어가면서 싸왔던 물을 다 마셨던거다. 숨이 안쉬어지니까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머리가 안돌아가고 뒤로 그냥 넘어가 버릴거 같은 느낌이 막든다. 다짜고짜 아무나 붙잡고(심지어 물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음) '아구아 빠뽀르(물 좀)'이라고 매달렸다. 그에겐 물이 없었다. 저멀리 봉고운전기사가 물을 마시는게 보였다. 나는 그 사람한테 다가가서 물 좀 달라고 매달렸다. 근데 그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자기가 마시던 물을 한병 통쨰로 줬다. 다시 돌려주려니까 괜찮다면서 받아가랜다. 흑흑. 지금 생각해도 그 물 없었으면 나 투어에서 살아서 돌아왔을지 모를일이다.

물을 마시고 나서부터 간신히 숨이 쉬어지긴 했지만, 머리는 핑핑 돌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저 멀리 우리투어버스 운전기사가 보이더라. 그에게 우리 차 어딨냐고 물었다. 근데 그 사람이 웃더니 나는 네 운전기사가 아니랜다. 헐! 헉! 비슷하게 생겼다고 내가 착각했나보다. 근데 그때 상황에서 나는 우리 투어차를 찾을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간헐천 투어버스는 2,30대가 와 있는데 여기저기 떨어져 서 있었고 난 한걸음 두걸음 걷는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자, 그 사람이 내 투어 티켓을 보여달라더라. 내 티켓을 받아든 그 남자는 그때부터 2,30대 버스를 오가면서 내 버스를 찾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내 버스를 찾아줬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그 아저씨의 친절에 나는 감복 또 감복. 흑흑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요 ㅠㅅㅠ
아저씨가 찾아준 버스로 돌아가니까 세살 빠뜨리씨오 소피아 얼굴이 보였다. 눈물이 왈칵. 흑흑 얘들아 나 죽을뻔했어. 브라질 친구들은 툭툭 치면서 장난걸고. 인간들아! 나 죽을뻔 했다니까.

여튼 여러 현지인들의 동정을 구하면서 나는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다시 한번 고산병의 두려움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정대로라면 내일 우유니 투어 출발인데, 나 가능할까?

여튼 칠레사람들 짱짱 정말 짱짱! 나의 부질없는 목숨을 구해주었쒀.... ㅠㅅㅠ b 
Chilenos son simpàticos y amables!
(칠레 사람들은 친절하고 상냥합니다.)




피는 못속여
산띠아고에서 아따까마행 버스를 타는데 한 동양인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남미와서 생긴 능력중에 하나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얼굴을 식별하는 능력이다. 딱 보니까 잰 한국사람이다 싶었다. 근데 어랍쇼? 가방이나 옷의 브랜드가 아무리봐도 한국인이 아닌거다. 그렇다고 교포 삘이 나는건 아닌데 말이지....
그에게 웃으면서 말을 걸어보니, 그는 일본인이었다. 마사. 30대 중반으로 봤는데 42세였다. 다시 한번 일본인의 동안에 탄복 또 탄복! 마사와 나는 같은 숙소를 찾았다. 둘이 가서 쇼부치면 좀 더 싸게 우유니 숙소를 묵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유니 투어도 같이 떠날까 한다.

아따까마에 도착하자 마자 약간 어지럼증도 있는거 같고 산소도 부족한거 같길래 내가 고산병 같다고 하니까 (심지어 고산병도 일본어 한자와 한국한자가 같았음) 마사가 코웃음 쳤다. 꾀부리지 말라고. 자기 아르헨티나에서 6000미터에도 올라가봤다 왔는데 여기 2500미터 될까 말까라고. 된다고 전세계 산이란 산은 안타본적 없다는 마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사와 코카잎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사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너무 잘아는거다. 삼성은 물론이고 LG 횬다이(현대;;; 이거 알아듣느라 한참 애먹었다) 한나라당 민주당 노무현 이명박 모르는게 없쒀! 한참 친해진 다음에 그는 웃으면서 말해줬다. 자기 재일교포3세라고. 할머니 할아버지 경상북도 사신다고;;;
그럼 그렇지 피는 못속인다.

마사와 묵게된 호스텔이 무척 마음에 든다. 숀체크 호스텔인데 100배즐기기에 나와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여튼 론리플래닛에는 나와 있다.
여튼 오늘 태어나서 사막은 처음 겪어봤다. 낯선 풍경이 마음에 쏙 든다.
내일 새벽에 떠나게 될 간헐천 투어에서 나의 고산병이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난다. 떨린다. 그리고 무섭다. 고산병으로 우유니에서 돌아가신 60대 주부의 사건 따위는 듣지 않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흑흑




오늘의 곰인형 : 버스에서 만난 까롤리나
아따까마로 넘어오는 버스 내 옆자리에 앉았다. 연신 남자친구와 통화하고 (깨가 쏟아졌다 쏟아졌어 젠장;;) 22살 대학생이라고 한다. 아주 두꺼운 고대문화역사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길래 나도 사학과 졸업했다고 말했는데 나는 영어로 그녀는 스페인어로 말했으니까 통했는지는 의문이다. 사학과를 나오면 뭐하나, 만리장성과 용 중국황제에 대해 나름 설명해주고 싶은게 너무너무 많았는데 그녀는 심볼 조차도 못알아들었다 ;ㅁ; 나의 짧은 영어와 그녀의 짧은 영어가 맞부딪혀서 낸 결말은 서로를 향한 미소와 배려 선물만이 전부. 흑흑.

한밤중에 헤어져서 후레쉬터뜨린 사진밖에 없다 흑흑 미안해 까롤리나~

 




 



안녕하세요? 네루다.
저는 세울에 살고 있는 마음만은 아직 소녀인 녀성이에요.
쏘이 꼬레아나. 라고 하면 될까요? 푸하하.

내가 700페이지짜리 빠블로 네루다 평전을 읽으때부터 생각한건데요.
당신이 인정할 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꼭 한번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군요.

당신과 나는 닮은 점이 많아요!

음 그걸 처음 느낀건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였어요. 이번 여행 무사안전하게 마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6년전 유럽여행 때 일기장을 펼쳐 들었죠. 근데 너무 이상한게 일기 첫머리마다 시작되는 문구가 다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비범한 문구'를 다시 발견한건, 당신이 동생 라우라에게 쓴 편지에서였어요.
당신도 가족에게 편지를 쓸 때면 어김없이 그 문구를 편지마다 집어 넣었더군요. 

돈이 없다.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에서 나의 상황과 처지와 전반적인 모든 상태를 알릴 수 있는 한마디의 문구. 6년전 배낭여행 일기장 시작마다 등장한 그 문구는 가족에게 쓰는 당신의 편지에도 항상 서명처럼 첨부돼 있었죠.  

그 뒤로도 저는 당신에게 많은 부분, 동질감과 공감을 느꼈답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당신의 입장이나 자잘한 사건 사고 때마다 분노하고 격앙된 감정을 표출했던 당신. 당신도 사주를 보면, 저 처럼 불 화(火)자가 많을 거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그리고
산띠아고와 발빠라이소 두군데 있던 당신 집을 방문하면서 저는 또 다시 당신과 나의 공통점을 찾아냈어요. 바로 수.집.벽. 그것도 이쁘고 귀여운거 보면 못참는 수.집.벽. 망명시절 그 예쁜 물건들은 당신에게 꽤 커다란 짐이었겠어요. 저도 물건 세트로 모아두는데 하나 없어지면 잠 못자거든요. 완전 죽어요. 진짜 아끼는거면 흐느끼면서 울 때도 있어요. 같은 거 다시 구할 때가지 인터넷을 뒤지고 뒤지고, 그러다 못 구하면 수년이 흐른 뒤에도 다시금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고문하죠. 그거 어쨌니? 어따둬서 이렇게 못찾는거니? 당신의 일렬로 서 있는 러시안 인형을 볼 때마다, 부엌에 미친듯이 서 있는 조각장식들을 볼 때마다 벽에 박혀 있는 배모양 창문을 볼 때마다 그 모든게 탐나고 예뻐보일 때마다 저는 당신과 저의 공통점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평전을 읽다가
당신이 당신이 나고 자란 곳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당신의 첫번째 딸에게 '말바 마리나 뜨리니다드(뜨리니다드의 자주색 말바꽃)'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만일 제가 당신같은 상황에 처해 외국을 망명해야할 때 가장 그리워 할 것을 꼽아보라면, 저 역시 제가 자란 동네를 고를 거예요. 그곳에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제가 보내온 시간들도 제가 간직한 기억들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곳이니까요. 저는 아마도 제 딸에게 '연희'란 이름을 붙여 주겠죠. 당신 처럼 말이에요. 

방명록에 남긴 문구는 마음에 드셨나요?
저 그래도 나름 당신의 집에다 꼭 남겨야 겠다고 한국에서 부터 준비해서 간 시구예요.
아는 단어는 몇개 없지만, 운율이 참 아름답더군요. 시(詩)가 노래 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 봐요. 당신은 많은 것을 노래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를 했던 사람으로 언제까지고 기억할께요.


Adiós te digo, pero no me voy
me voy, pero no puedo decirle adiós




-tu cariño
(알고 계신진 모르겠어요.
cariño를 한국에서는 '앙증'이라고 한답니다!
바로 제 별명이지요. +_+ 푸하하)


2


결국은 유로피안
에... 음... 그니까..... 그 미남이 잘생겼다고 생각한 것은 엘찰뗀 버스부터였다. 인상 쓰는데도 멋있어. 옆모습이 완죤 조각이야. 털도 제법있어. 푸하하. 나는 다시금 내 취향은 조금 사납게 생긴 코뾰족한 서양인임을 자각했다. 게다가 자기 어머니에게 잘하는 그 모습이 더더욱 훈훈! 게다가 소란한 미국애들에게 한마디 던지길래, 난 진짜 그 남자가 화끈한 라틴 남자인줄 알았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그 미남마저 영어로 단 한마디도 못하길래, 나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아르헨티나 가족이라고 그렇게 굳게 확신했었는데....

바릴로체에서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오소르노 역에서 한번 쉬었다. 출발할 버스가 9시임을 손짓발짓으로 가르쳐준 그들에게 나는 이름을 물었다.  꼬모떼 야마스 (¿Cómo te llamas?) 근데.... 근데...... 정말 한글로 받아 적을 수 없는 모음으로만 이루어진 아주 독특한 이름이었다. 
엥? 스페인어권 이름이 이렇게 어려운 이름이었던가?!?!?!?! 까밀라 끌라라 로사 뻬드로 빠블리또 까밀로 이런식의 센발음으로 이루어진 쌈빡한 이름 아니었어??

조심스레 나는 그들에게 출신지를 물었다. 니네 어느나라 사람이니.

럴수럴수 이럴수. 그들은 프랑스 사람이었다.
버스에서 백번 천번 무차수에르떼(행운을 빕니다) 딴또구스또엔베를레아끼(여기서 만나다니 반가워요) 따위를 외운 나는 등신중에 상등신. 이사람들아 그런건 진작 말해줘야 내가 메르시 봉보야쥐 본뉘 이런거 좀 연습했을거 아냐??!?!? 
더불어 그들이 생글생글 웃어주면서도 왜 그렇게 나에게 말걸기를 힘들어하고 당황해 했는지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여튼 여기에 와서도 남미 남자가 아닌 결론은 유로피안인가보다. 흑흑. 허탈한 마음 감출수가 없네-. 

오늘의 곰돌이
한복 치마 입은 곰돌이를 그 터프가이 아저씨에게 차마 건넬 수는 없어서, 어머니에게만 하나 건넸다. 오소르노역에서 산티아고행 버스 탈때까지만 해도 우린 마지막 까지 같은 버스를 타는 줄 알았는데, 아뿔싸 15분 차이가 나는 버스였다. 버스 타는 일이 워낙 시급한지라 사진 한장 못찍고 헤어지고 말았다. 더불어 15분 뒤에 온다는 나의 버스는 연착의 연착을 거듭한 결과 3시간 뒤에 나타났으므로, 그들을 아니, 그 프랑스 미남을 다시 볼 길은 더더욱 묘연해 졌다. 흑흑



2. 우리 고모들이 왜 오소르노역에?

프랑스 미남의 관할 하 그의 어머니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을 떄였다. 근데 한무더기의 칠레 사람들이 우리 옆에 서서 히히덕 대고 있었다. 딱 봐도 가족 구성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딸 둘 아들 하나. 둘째 딸이 까불까불 하면서 춤을 추길래 나도 모르게 픽 하고 웃었다. 그 대가족은 둘째딸을 후려치면서 야 너 땜에 쟤(=나)까지 빵터지잖아. 라고 하면서 더더욱 신나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선 오소르노 역에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왜이렇게 가족들이 많아. 버스타고 가는 사람 한 명당 스무명 정도는 기본으로 나와서 마중해주는 칠레의 퀄리티. 정겹기도 정겹고 사람사는 동네 같단 느낌이 들어서 마음도 훈훈 표정도 훈훈.
여튼 그러다 프랑스 모자를 떠나보네고 내 버스를 기다리고 섰는데.

나 정말 놀랬다.
왜 우리 고모들이 오소르노 역에 있는거지?!?!?!?!?!?
왜 (목청크고 시끄럽고 수다스런) 우리 고모들이 칠레 오소르노 역에 와 있는거지?!?!?!?!

조카로 보이는 이십대 초반 남자에 하나 버스로 태워보내는데, 고모뻘 되는 여자들(과 그의 자식들)이 우르르 나와서 스페인식 인사 (뺨 부비면서 쪽 소리내기)를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화를 유추해보면 이런거 같았다.

아 고모 완젼 화장품 다 씹힘. 나 뺨에 파운데이션 묻었뜸.
짜샤 고모만한 미인이 어딨다고 고마운 줄 알아!
헐. 말도 안됨.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고모 나이에 고모만한 피부를 유지하긴 힘듬.
헐. 못들은 걸로 하겠뜸.
왜이래 나 진짜 동안인 여자임.

뭐 여튼 이런식의 대화 같았다. 자기들끼리 빵터지고 시끄럽고 떠들어대고 그거 또 받아쳐서 빵빵 터지고. 그쪽 가족의 고모님들이 일단 우리 고모들이랑 너무나 닮았고, 볼륨 세기도 닮았고, 목소리도 닮았으므로 일단 칠레판 우리 고모로 인정!

그 외에도 오소르노 역에 볼거리는 꽤 많았다.
엄마한테 군것질 거리 사달라면서 안사주니까 역바닥에 드러누워 자기 옷으로 걸레질을 하는 꼬마 여자애를 봤고 (역시 사람 사는건 다 똑같다는 진리를 깨우쳐줌)
친구 하나 버스타는데 친구들 열댓명이 몰려와서 기타치고 노래해주는 것도 구경하고. (기타를 너무 못쳐서 깜짝 놀랐단 말을 덧붙이겠다) 바릴로체 오또 산에서 만났던 세명의 뮤지꼬(뮤지션)들도 그랬지만, 참 여기애들은 기타를 못쳐. 근데 꿋꿋해. 구김 없어. 좀 못난 자기 자신이면 움츠러 들어서 표출 안할만도 하건만 구김없이 드러내고 발산하네. 그것도 멋이라면 멋이고 간지라면 간지다.

여튼 오소르노 역의 칠레인들은 세시간 연착하는 버스에도 짜증 한번 부리지 않고
세시간이 지나 등장하는 버스에 박수를 쳐주는 훈훈함을 보여주었다.
사실 난 반바지 차림이라 너무 춥고 짜증났는데, 칠레사람들의 훈훈한 모습에 감화감동해서 도저히 짜증을 낼 순 없었던거 같다.




오전 10시 10분이다. 바릴로체 센트로에 앉아 있다. 버스는 오후 1시 출발이니까 아직도 시간은 정말 널널하다. 생각해 보니 난 이제 칠레로 넘어가잖아? 아르헨티나가 어땠는지 이 시점에서 정리를 시작하긴 해야겠는데 말이지. 일단 스위스가 미친듯이 넓게 늘어나서 우리나에 40배 크기로 놓인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자면 쇠고기?!?!!??!(미안하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부스 데 떼르미날에 앉아 있다.

사람들도 많고 큰 개도 많다. 무려 터미널 안 실내인데도 개가 많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터미널 안에 앉아 있었던건 아니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훌륭하길래 바깥을 좀 서성이다가 터미널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근데 정말로 덩치 좋고 힘좋게 생긴 큰 개 한마리가 오더니 자꾸 꼬리로 내 트렁크를 탁탁 쳐낸다. 처음엔 무시했다. 근데 계속 꼬리로 트렁크를 쳐댄다. 어이가 없어서 트렁크를 치웠다. 그랬더니 당당하게 그 자리에 드러누우시네요. 예 형님, 형님 자리셨는데, 미쳐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게 쭈그리가 되어서 터미널 안으로 들어왔던 말씀.
뭐 사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평등한 동물권이란게 있는거 아니겠어요? 저는 고기는 좋아하지만 동물권은 인정되야할 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모순된 삶을 사는 녀자니까요.


비바 부스!
산티아고 행 버스에 탔다. 일단 심호흡 좀 하고 널뛰는 내 심장 좀 억눌러 볼께요.
얼씨구 어절씨구 비바! 아르헨띠나-! 비바 비바 올레!!

버스가 꽉 차서 바릴로체에 하루 더 묵게 된 게 너무나 감사하다!!!! 하나님 부처님 너무 사랑해요 너무너무 좋아염~ 엘찰뗀에서 바릴로체로 넘어올 때 만났던 버스 최고 미남이랑 또 마주쳤다. 무려 같은 버스다. 가장 먼저 날 알아본건 그 미남의 어머니. 아주머니가 먼저 툭툭 치면서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더라. 나도 아는척하고. 버스표 비교하니까 둘이 같이 오소르노 역에서 대기하다가 버스 타는것 까지 똑같네. 엘찰뗀 버스에선 오만상을 찌푸리던 미남이 환하게 웃으니까 주변이 다 환해지고 버스 짐칸도 환해지고 버스 안도 환해지고 내 마음도 환해지네요.
일단 그 미남과 어머니가 어느나라 국적일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지금 현재로선 국적을 묻는 스페인어를 모르고 있으므로, 스페인어 회화책을 다시 꺼내야겠다.


정말 살기 싫다. 아아 망신 망신 대 망신. 이런 망신이 없다 흑흑.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을 넘는데 세관검사가 있었다. 무슨말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께 프리오(춥네요)'란 말을 걸어야 겠다고 결심 결심을 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도 날 보더니 환하게 웃어주더라. 나 역시 미소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가는 찰나!

바로 앞에 둔턱을 못보고 넘어졌다.
흑.

더 창피한건
"께 빠 소? (영어로 치면 How are you?에 해당하는 안부 표현)"
라고 묻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무이 비엔 (완전 좋아요!)" 정도로 대답한거?!?!?!?!?
무릎에 정말 피가 처절철철철 흐르는데! 완젼 좋아? 완젼 좋아? 완젼 쪼아! 진짜 좋아!?!?!?!?!? 대답을 그따위로 하다니. '아씨아씨(그럭저럭)'이라고 대답했어야지 이여자야!!!!!!! 아님 '께빠소(괜찮니?)'라고 묻는데 피를 철철 흘리면서 '께프리오(추워요)'라고 대답하지 않은거에 대한 안도를 표해야하는 걸까?
뭐 그 때부터 빵터진 어머니와 미남아들은 내내 날 보면서 함박 웃음 지어주고 계시다. 미남의 미소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근자감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걸까?  



이동하기로 마음먹은 날은 버스티켓이 매진돼 있었다. 덕분에 바릴로체에 예정보다 하루 더 묵어야 하는데 내가 묵는 호스텔에 방이 없었다. 묵었던 호스텔의 체크아웃 시간과 묵어야할 호스텔의 체크인 시간에 텀이 있길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바릴로체 센트로에 앉아 있다. 탁트인 파란 하늘과 호수가 보이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못한다. 내 옆에 놓인 배낭과 트렁크 덕분에 심정적으론 갈곳 없는 이민자의 심정. 흑흑

18일 금요일 날 같은 버스를 타고 헤어진 세이지를 마지막으로 며칠째 동양인 콧배기도 못보고 있다. 그토록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낸가 한국말은 커녕, 짧은 영어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어젯밤 같은 방 프랑스 여자애에게 '신, 너 영어 하는 거 맞니?' 라는 굴욕을 당했지만 뭐 난 괜찮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흑흑.

(생각하면 만난다고 방금 세이지와 마주쳤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버스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센트로는 정말 발도장만 찍고 사라진다고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면 깔라파떼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이 많겠지. 갑자기 엘찰뗀 버스 터미널에서 들었던 쓸쓸한 마음이 엄습한다. 에잇! 이 우울한 감정을 떨치기 위해 싸놓은 사과라도 먹어야겠다.)

 


 

오또 산으로 향하는 길
만세 만세! 그토록 소원하던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투어가격을 아끼느라 여행안내소에서 대충 버스 노선을 묻고 빠뉴엘로 항구로 향했다. 유람선은 안타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그냥 항구 구경이라도 해야겠단 심정이 들어서 여기저기 서성이다가. 자리를 잡고 주저 앉아서 싸왔던 점심을 먹었다. 도시락을 먹을 때마다 점점 드는 생각인데. 내가 싸온 샌드위치는 참 맛 없다. 그냥 시중에서 사는 빵이랑 쥬스를 사마시는 게 나을 정도. ㅠㅅㅠ 그냥 아무 빵이나 사먹는 것보다 훨씬 진짜 훨씬, 맛이 없는데 계속 요리를 해야하는 걸까 커다란 의문이 든다.

여튼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가기 위해서 20번 버스를 한 없이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애정행각을 보이는 커플이 보였다. 제길 이놈의 남미 휴양지! 남녀만 있다하면, 부둥켜 있고 얽혀 있네! 속으로 외치며 당연히 나와 일말의 공통점 없는 서양 사람이겠거니 그들을 지나쳤다. 근데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
 
“저기요,”

대체 며칠만에 들어보는 한글로 완벽 표기 가능한 언어인가? ‘꺄악’하는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둘의 손을 얼싸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깜빠나리오 언덕으로 GOGO. 언덕에서 리프트를 타고 전망을 다 구경하고 난 다음에는 잠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기로 했다.



다시 만난 언니 오빠는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여*언니와 철*오빠. 직장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4년차 부부. 둘은 세계 일주를 목표로 한국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둘이 여행을 떠나게 된 동기는 우연히 보게된 BBC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죽기 전에 꼭 봐야할 100가지’를 보고 정말 죽기전에 가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어느 날 내가 계산을 해봤어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운 좋게 휴가를 많이 얻어봐야 1년에 15일이 정도. 그것도 월차 같은 걸 눈치 안보면서 썼을 때 이야기더라고요. 운 좋게 직장이 망하지 않아서, 오래 한 직장을 다닌다고 쳐도 20년. 그럼 15(일) 곱하기 20(년)은 300. 1년도 안 되는 날짜예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전세금을 빼서 딱 1년간의 휴가를 갖기로 했어요.”

그토록 긴 인생에서 딱 일 년. 전세금을 빼서 시작한 세계 여행. 하지만 주변에서 말리는 만류의 목소리도 많았다고 한다. 미쳤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무모한 용기 아니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게 바로 이 여행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거라고 언니와 오빠는 말해줬다.
한국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던 1년이라는 공백. 하지만 인생은 길다. 수십번의 일년이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 수십번 중에서 1년도 짬내기 어려운 삶이란 무언가 고민이 든다.
 
떠나기 전 비행기에서 심심풀이로 읽었던 동물농장의 대사가 떠오른다. 동물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죽어가는 가축들을 일깨우기 위한 지도자의 말이었다.

“영국에서는 어떠한 동물도 태어나서 1년이 지나면 행복이나 여가란 말의 뜻을 모르게 됩니다. 영국에 있는 동물들에게는 자유가 없고 불행과 예속이 전부입니다.”

백여년 전. 당시 노동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쓰였던  저 문장이 나와 내 친구들이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불과 몇시간 전 새벽. 호스텔 입구를 몰라서 헤매고 또 헤맸던 것이 모두 꿈 같다. 간신히 입구를 찾아 자고 있던 직원을 깨우는 민폐 끝에 받게 된 도미토리 룸. 짧은 다리로 2층 침대에 올라가지 못해 나는 고요한 암흑속 침대에 매달려 몇분간 바둥거려야 했다. 서너번의 추락도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나는 간신히 2층 침대 위에 안착. 깔깔이를 입은 채로 꿈나라로 들어갔다.

강렬한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발딱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눈파란 서양인 아저씨 둘이 나를 향해 좌우대칭으로 손을 흔들고 있넹-. 대머리 영국인 아저씨의 이름은 팀. 미국인 할아버지뻘 아저씨의 이름은 탐. 이름을 듣고 빵터졌다.
그리고 나는 초면이고 하나도 안친하다는 무례를 무릅쓰고 둘에게 (그어떤 말라깽이도 살을 찌우고야 마는 저주받은 악마의 간식)'팀탐'을 아냐고 물었다. 그들은 아쉽게도 모르고 있었다. 캐나다산 과자인데 무척 맛있다는 간단한 설명만 덧붙였다.
보기만해도 나 활달해 나 기분좋아 온몸으로 말하고 조증돋는 아저씨 탐은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다. 그에게 짧은 영어지만 '이프유고잉투샌프란시스코~'라며 노래를 불러줬더니 더더욱 기뻐했다. 

오늘의 가장 큰 과제는 떠날 버스표 예매하기였는데, 불행하게도 내가 원하던 날짜에는 버스표가 없다. 할일도 없는데 하루를 더 머무르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게다가 정말 오늘 하루종일 동양인을 단 한명도 마주치지 못하는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슬슬 불행의 화살이 날 겨누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기운내기로 했다.

여튼 오늘의 계획.
1. 저녁을 먹는다. 쇠고기를 먹는다. 배터지게 먹는다. 
2. 없군. 

불의 기억이나 마저 읽어야겠다. 




  
저녁을 먹은 뒤에 쓰는 일기
나이 서른을 먹었지만 신세대 돋게 '헐...?'이라는 한 단어로 스스로에게 반문 중이다. 지금 내가 본게 맞는지, 정말 제대로 본게 맞는지 몇번이고 다시 새기고 있다. 나 지금 팀의 엉덩이를 본거 같아;;;; 내가 유럽유스호스텔에서도 돈아끼느라 대부분 믹스 룸에 있었는데, 그때도 남자 엉덩이를 본적은 없었다. 근데 나 지금 방금 전 이 방에서 물론 살짝 뒤돌아 있긴 했지만 팀의 엉덩이를 본거 같아;;;;; 팀 내가 지금 버젓히 짐 정리하고 있는데 대놓고 옷갈아 입은거 맞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맹세컨데 중요부위는 못보고요 일단 엉덩이를 봤는데요 그게 엉덩인줄 어떻게 알았냐면 썬텐자국난 백인의 피부색이 그대로.....

담배맛은 모르지만, 그냥 오늘은 왠지 담배가 피우고 싶다.

사실 나는 팀을 붙잡고 말하고 싶다. 팀 나를 남자로 아는거 아니지? 아니면 동양인 여자는 여자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건? 너따위로 생겨서 레이디 대접은 바라지 말라는 뜻인가? -_- (그 옛날 그림그린다고 난리 쳤을 때 누드크로키도 다녀봤던 나지만)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튼 일기를 다 쓰고 할일이 없을 예정이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일단 <불의 기억>이나 마저 읽어야겠다;;;





페리코 호스텔에 도착했다. 나의 후각을 자극하던 발냄새와 암내들이여 안녕!
지금은 이렇게 상쾌하게 웃고 있지만 오늘 새벽 웃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


한밤 중에 외치는 "땡고 베르구엔싸"!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예정시간은 새벽 1시 반이었다. 밤에 비몽사몽 버스에서 깼는데 하나둘씩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크로머는 나보다 한정거장 먼저 내리는 크로머가 내리는 뒷모습이 보였다. 근데 어라라? 크로머의 론니플래닛이 바닥에 고이 모셔져 있네. 나는 론니플래닛을 들고 뛰쳐나갔다. 

"크로머! 크로머! 너 책두고 내렸다!"

크로머는 느긋하게 담배피는 중이었다. 그리고 크로머가 내리는 정류장은 앞으로 두시간도 더가야 나온단다. 창피 창피 왕망신. 넓게 펼친 오지랖을 다시 돌돌 말고 싶은 순간이었다.

여튼 난 버스를 다시 탔고, 담배 다 피고 들어온 크로머는 웃고 있었다. 땡고 베르구엔싸.(창피합니다) 아는 말하니까 빵터지면서 책을 챙겨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사건이 여기서 일단락됐다면 오지랖 넓은 동양여자애의 한번의 착각으로 끝났을 것이다.

다시 버스는 달리고 달려서 눈을 떠보니까 새벽 3시. 옆자리를 보니까 크로머가 없다. 건너편 자리를 보니까 세이지도 없다. (세이지랑 나랑은 둘다 바릴로체에 숙소가 있다.) 어라라. 여기가 바릴로체 맞구나. 나는 부랴부랴 배낭을 매고 내렸다. 그리고 화물칸에서 내 트렁크를 꺼내서 질질 끌고 가는데 세이지와 눈이 마주쳤다. 세이지는 굉장히 의아한 눈길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또 여기가 아닌가?!?!? 어리버리하고 있는 사이 뒤를 돌아보니 크로머가 보였다.
짐을 내리고 있는 크로머는 나를 진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 너 (내리는 곳도 이렇게 못찾는데 너의 두달짜리) 여행... 가능하겠니?"
라는 진심이 눈빛에 절절히 맺혀 있었다.  

그 앞에서 '땡고 베르구엔사'로 크로머를 두번 웃기는건 못써먹을 저질 개그였다.
크로머의 걱정을 한몸에 받은채 나는 다시 트렁크를 재저장!
그 옆에 있던 세이지 역시 나를 매우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차저차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크로머는 나보다 먼저 내리고. 내리면서 다음에 내리는 곳이 바릴로체라고 신신당부를 남겨주더라. 우여곡절끝에 바릴로체에 닿았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각. 세이지에게 숙소 예약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노숙한단다. 정말 괜찮겠냐고 물으니까 씩씩하게 괜찮단다. 방한용으로 싸온 깔깔이를 줄까 하다가  너무 최악의 저질패션이라 차마 내밀지 못했다. 

택시타고 오는데 우리 버스에서 내가 꼽은 최고 미남이 엄마와 같이 따라왔다. 내 생각인데 난 인상쓰고 사나워보이는 서양남자가 취향인거 같다. 아까 미국애들 막 떠드는데 좀 조용히하라고 팍 소리지를 때부터 어머어머 저 남자 잘생겼다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안그래도 에어콘도 안나오는 버스 안에서 미국애들이 너무 떠들어대서 나도 짜증이 나던 차였다.)    
밤에 택시타는 게 무서워서 그와 그의 어머니를 붙잡고 숙소가 어디냐고 같이 택시타지 않겠냐고 묻고싶었다. 근데 아까 화장실에서 몇번 마주쳤는데 그와 버스최고미남의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것 같았다. 나는 포기가 빠른 여자니까 바로 포기했다.  
그냥 내 운명을 신에게 맡기고 혼자 택시를 잡아탔다. 다행히 기사아저씨는 친절했다.

그렇게 도착한 페리코 호스텔.
우왕 산장모양을 한 호스텔이 너무너무 이쁘다. 간지 좔좔 주변 동네도 한적하니 너무 좋아.
새벽 4시에 입구에서 벨을 찾을 수 없단 것만 빼면 완벽한 숙소였다.
이대로 호스텔 문앞에서 밤을 새게 되는 것인가?!?!? 그냥 세이지랑 같이 역에서 밤이나 샐껄. 다시 한번 세이지에게 내(남동생) 깔깔이를 주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구나! 이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줄 미리 알았구나 아이고 아이고.
더듬더듬 숙소 입구를 살펴보기를 30여분. 간신히 구탱이에 박혀 있는 벨을 찾았다. 실례를 무릎쓰고 벨을 눌렀다. 자다 깬 호스텔 직원이 눈을 부비며 문을 열어줬다. 2층 내 방으로 들어갔다. 2층침대에는 계단이 없었다. 정말 대롱대롱 매달려서 간신히 2층 침대로 올라갔다. 깔깔이를 벗을새도 없이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크로머와 세이지의 눈빛이 다시 한번 생각난다.
나 여행.... 진짜 가능할까?!??!?!







여튼 간신히 바릴로체 도착하니까 새벽 4시.


악몽의 바릴로체 행 버스안을 추억하며 쓰는 2월 18일 일기

버스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한없는 외로움으로, 앞으로 (두번다시) 한국말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괴로움으로, 나는 버스로 향했다. 근데 어디선가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후지 여관에서 만났던 세이지. 다시보고 눈을 다시 비벼봐도 세이지는 18살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엄연한 '오빠.'(저번 후지여관서 술마실때 어디서 '오빠'란 단어를 알았는지 강조해서 빵터졌다)
여튼 둘은 같이 인사 나누고 짐 싣고, 버스를 타는데...  순간 나는 턱하고 막혀오는 고통과 조우했다.... 
죄다들 60리터 배낭은 껌으로 들고 다닐 것 같은, 야생을 사랑하고 야생을 추구하고 야생에 남겨져도 무병장수할 것 같은 아웃백 사나이(+아가씨)들이 한버스 가득! 한 다스 가득! 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냄새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초조해 하며 내 좌석으로 가는데 곧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어머~ 죄다들 등산화를 벗고 계시네. 

내 옆좌석에 앉아 있는 독일남자애 크로머 역시 발냄새에 동참중이었다. 오늘은 엘찰뗀 트래킹을 7시간 하고, 그 전에는 토레스델파이네에서 3박4일인지 4박5일 W를 찍었다는 씩씩한 크로머. 산악인 크로머... 어머~ 그래서 다들 이렇게 초면인데 샤이함 없이 발을 바깥으로 내놓는구나. 나중엔 후각도 마비되는거 같고, 나만 맡을 수 없다는 억울함도 발동해서, 결국 나도 그 발냄새 행렬에 동참했다는 슬픈 이야기....

밤 10시 넘어서 탄 버스는 달리고 또 달리고. 아르헨티나의 자랑이라는 루타 40번 국도를 달리고 달리고. 28시간 정도의 버스 운행시간. 비포장도로라고 다들 죽을 각오 하라고 했는데 난 비포장도로가 취향인가보다. 완전 신나. 자꾸 대학때 농활기간에 트럭뒷자석 탄것 같은 기분이 든다. 루룰루 신나게 타고 달렸다. 지평선도 보여. 풍경도 색달라 완젼 씬나. 그러나 행복은 점심때에 여지없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바로... 에어콘의 고장.

서양애들은 헐벗고라도 있지. 난 긴팔긴바지에 바람막이까지 껴 입었는데 이게 왠 난린가요;;; 결국 (서양인들 앞에선 한 없이 작아지는 수줍은)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버스 기사에게 한마디 할 수 밖에 없었다. '버스가 데절트네요' 게다가 버스 안이 너무 더우니까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친절까지~~ 나 바릴로체에 새벽 1시에 떨어지는거 왕무서운데 대체 새벽 몇시에 떨어지라고 이런 친절을 베풀어 주시나 흑흑흑.

여튼 고생은 내 옆에 앉은 크로머가 많이 했다. 나는 장거리 버스도 처음인데다가 창가쪽에 앉아 있었으니까 크로머가 내 수발 다들었다! 이걸 일반화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예전 유럽 배낭여행때도 그랬고 독일애들의 특징이 있다. 표정은 완전 무뚝뚝한데 행동은 완죤 친절. 처음 만났을 때도 짧게 인사 나눴는데 애가 표정이 영 밝지가 않더라. 엥 내가 동양인이라서 싫어하나 싶었다. 창가쪽 자리가 내 자리인데다가 새벽에 춥다 싶어서 꼼지락 꼼지락 거리고 있으니까 나를 흘낏 보더니 알아서 '가방꺼내줘?'라고 한다. 근데 표정은 완죤 무뚝뚝. 나는 급 쫄았고요... 그 다음으로 버스에서 주는 도시락이 나왔다. 난 먹을생각이 전혀 없었다 멍하니 들고 있는데 또 무뚝뚝한 표정으로 '올려줘?' 그러더니 알아서 올려준다. 표정이 안좋기에 나는 계속 쫄아만 있었습니다. 여튼 그 뒤로도 나는 잠바를 벗었다 다시 입었다. 가방을 올렸다 내렸다. 그 와중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섬세하게(?) 나를 챙겨주는 그애의 배려는 계속됐다.
아침에 일어난 다음에 창밖만 보는것도 지겹길래 한마디를 던졌다. '구텐 모르겐' 근데 갑자기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어젯밤 그렇게 무서웠던 그 표정은 어디로 갔니? 너 동일인물 맞니? 너무 감동하길래(?) 아는 독일어 단어는 다 말했다 구테라이제. 당케. 비게데스이네. 이리히베디히. ㅋㅋㅋㅋ 그 뒤로도 계속 눈이 반짝 반짝해! 뭐 그게 대수라고 그러니... 크로머는 베를린 근처 지방 아주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단다. 말해줘도 모를거라고. 사실 말해줬어도 몰랐겠지. 내가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건 7년전 독일에 다녀온게 전부란 것밖에 없기에 그거 말해주고 나는 레겐스부르크가 최고였다. 간단한 말밖에 건네지 못했다.

여튼 사막화를 버스에서 느껴보는 기이한 체험을 하며 28시간 예정인 버스는 33시간 넘게 계속 달리고 있었다. -_-




코지 선화 고모님과 헤어진 뒤 엘찰뗀 버스 터미널에 혼자 앉아 있다. 생각해 보면 유럽여행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였다.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고 외로워도 지고. 문득 생각났던게 유럽여행에서 잔세스칸스를 다녀왔던 날이었나? 영국 IN할때 만났던 민혜랑 언니들을 다시 만났다. 그렇게 하루를 시끌벅적하게 같이 돌아다니고 헤어지는데, 어찌나 우울하던지. 근데 뭐 덴마크로 올라가는 길에 정연언니를 만났던걸 생각해 본다면. 헤어지는거야 아쉽지만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믿어봐야겠다.

엘찰뗀 트래킹은.... 암.... 나쁘진 않았다. 선화도 있고 고모님도 있고 코지도 있었으니까 더욱 그랬지. 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로 챙겨주고 웃어주고. 오늘 올라만 한 삼백번 외친거 같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엔 탐스러운 버찌가 한가득 있었다. 근데 고모님이 자꾸 무리해서 따시는거다. 난 왠지 모르게 미국해안서 전복캐다가 몇천만원 벌금문 사건이 자꾸 생각나서 불안했다. 고모님을 말리면서 내려오는데.... 숲길에 배낭 두개가 버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좀 더 내려가보니까 키큰 외국인 둘이서 버찌를 정말 한가방 가득;;; 버려진 배낭이 시사하는 바가 참 커서 한참을 웃었음. 
 

우수아이아까지 내려간 것도 아닌데 이놈의 남반구는 해가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바릴로체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 28시간! 그것도 엘찰뗀을 들렸기 때문에 단축시긴 시간이다. 내리면 새벽 1시인데 강도만나지 않게 해주소서.
여튼 아직까지 여행은 다 좋다. 체력이 저질된것만 빼면 진짜 좋다. 40리터 60리터짜리 배낭메고 친구들과 함께 캠핑장 가는 서양애들을 보니까 마냥 부럽다. 나도 동네파랑 여꼴통이랑 이런데 오고 싶다고요. 이렇게 끝내주는 산과 풍경들을 혼자만 보고 있다니. 한국에서 끙끙댔던 월급 10만원 20만원 야근을 하네 안하네 죄다 부질없고 자잘한 소꿉놀이같이 느껴진다. 왠지 용기가 솟는다. 남은 기간 여행도 최선을 다해서!!! 지평선 28시간 보는것쯤이야 우습잖아?






남반구에서 들통나는 나의 빠순스런 과거 - 오늘의 곰인형 코지
코지랑은 모레노 빙하투어도 같이 한데다가, 엘찰뗀까지 함께했다. 짧은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는데 '알고 보니'란 단어를 쓸만한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일단 1982년생으로 나이가 같았다. 게다가 .... 루나씨 팬. 이란 말에 빵! 나 루나씨 은퇴비디오테이프도 가지고 있다고 종막 기억나냐고. (종막은 한자로 썼다) 코지는 아예 종막 콘서트를 갔다고 한다. 아 놔. 여기서 나의 빠순이 같은 과거를 들킬 줄이야. 내가 "고토바니 데키나이" 노래 너무 좋다고. 오다카즈마사 왜이렇게 노래 잘하냐고. 코지는 일본인 답게 K의 1리터의 눈물 좋다고. 보신탕 이야기랑 남미 남자 좋냐? 브라질리언 아르헨티나 여자들은 왜이렇게 이쁠까 등등 여러가지 이야길 나누었다. 6개월 후에 결혼한다는데 선화랑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근데 왜 여자친구는 떼고 혼자 여행왔니? 가기 전에 곰인형 챙겨줬는데 쳥겨주길 잘한것 같다. 이틀이나 함께한건 정말 긴시간이니까 말이다.



토레스델파이네 일일투어에 와 있다. 여행책자에는 없는 정보였는데, 후지민박에 가보니 토레스델파이네 일일투어가 있더라. 비록 새벽 5시에 출발하고 밤 11시에 돌아오는 강행군이지만 나처럼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4박5일 W코스가 왠말인가. 하루짜리 일일투어는 진정 나를 위한 투어인거 같다. 파하하.
새벽에 버스를 탄뒤 잠을 자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화장실은 진정 해우소구나! 이름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면서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나왔는데 나의 복통이 해결됨과 동시에 바깥 풍경도 달라졌다. 하늘도 개이고 저멀리 산들도 보이고 끝없는 지평선도 있고.

토레스델파이네 트레킹은 진짜 최고! 이거 안했으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을 듯. 작은 과수목같은 나무들이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데 귓가에 사운드오브뮤직 오에스티가 막 흘러나오는거 같아서 완죤 흥얼 흥얼. 흐르는 물은 빙하가 녹은 물이라 죄다 에메랄드 빛. 내가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에메랄드 빛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진짜 에메랄드 색깔이어서 에메랄드 빛이라고 한다. 보석을 원액 그대로 갈아 놓은것 같음. 게다가 저 멀리 펼쳐진 산은 (차마 오르지는 못하겠지만) 어찌나 거대하고 광활하고 담대하게 생겨먹었나요. 푸른하늘 아래 펼쳐진 배경이 정말 말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나는 손가락만 계속 들어 올렸습니다. 
짱짱짱!

산행을 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행여 내가 재수 없는 일을 당해서 (이를테면 가진돈을 모두 털린다든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던지)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를 한것만으로도 나는 이 여행에 쏟아부은 돈 몇백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여튼 오늘 본 것들은 사진으론 절대 표현안되는 절경들이었다. 이런건 직접 봐야해. 죽기 전에 봐야해. 판타지 장르가 있다면 이런 곳에서 촬영해야한다. C.G도 필요 없고 돈도 굳겠지. 여튼 남아메리카는 정말 엄청난 대륙이다. 다이나믹 라틴 아메리카! 께 에르메소! 무이 보니따!

토레스델파이네 트래킹에서 백미인 곳만 버스로 이동해서 사진을 찍는 이 완벽한 내 취향의 투어는 약 두시간의 트래킹을 하고 끝이 났다. 다시 칠레국경을 지나 깔라파떼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고민은 오늘의 곰인형(한개 밖에 안가져왔다)을 누구에게 주느냐다.

기호 1번 제시카.
멕시코 시티 대학교 졸업반이라는 친구. 얼굴이 약간 나탈리 포트만을 닮은 훈녀다. 칠레 국경에서 환전하는거부터 이거저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둘다 혼자 왔기 떄문에 같이 앉게 됐다. 짧은 영어로 토막토막 말하는데도 다 들어주고. 아까 절벽에서 폭포보고 내려올 때 기다려도 주고. 진짜 고마웠음

기호 2번 리짜르도 할아버지
새벽에 버스를 탈때부터 할아버지는 날 보면서 웃고 계셨다. 나 알아서 출국신고서 쓸 수 있는데 자꾸 부인을 불러서 내 출국신고서를 검사해주는 거다. 버스가 쉴때마다 두리번 대면서 걸어다니면 꼭 다가와서 사진 찍어주겠다고... ㅋㅋㅋ 근데 너무 웃긴건 그렇게 챙기면서 내가 짧은 영어로 말걸려고만 하면 혼비백산을 하며 자리를 뜬 채로 부인을 부른다. (부인은 영어 왕잘함)

리짜르도 할아버지가 더 기뻐할 거 같은데, 사실 하루종일 같이 다닌건 제시카고.
아.. 정말 우짜나....


오늘의 곰인형
오늘의 곰인형은 결국 제시카에게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손쓸 틈도 없이 (버스가 2층버스였다) 1층버스에 타고 있다고 내려버렸기 때문에 선택이 필요 없었음.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제시카에게 건냈다. 이제 간신히 숙소다. 밤 10시가 넘는 시각이지만 나는 오늘도 쟁여놓은 쇠고기를 씹을꺼다. 화이팅 화이팅.








많은 걸 봤다. 무지개만 네 번. 빙하가 낙하하는 것 세 번. 빙하위를 걸으면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장관들.(이건 세지 않겠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더욱 특별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깨달은게 있는데, 나에겐 외국인을 식별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거다. 투어 가는 길에 버스 옆에 미국인 아저씨가 앉았다. 짧은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지개도 같이 보고, 아니 빙하투어도 비싸죽겠는데 입장료는 왜 따로냐면서 함께 수다도 떨고. 근데 돌아가는 길에 또 내 옆에 미국인 아저씨가 앉았는데 나에게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또 물어;;; 이걸 왜 또 묻나 싶었더니 자기는 혼자 여행왔대. 아까 그 아저씨는 분명 부인이랑 같이 왔었거든. 결국 그 때부터 나는 그 두 사람을 식별하기 시작했다.
 
남미를 다녀보면 아르헨티나 남자들이 제일 잘생겼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통감하지 못했다. 근데 오늘 모레노 빙하 투어하는데 우리팀 가이드 아저씨가 너무 간지였다. (서양남자들은 썬그라스 벗어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모레노 빙하도 절경인데 가이드 아저씨가 더 절경임. 아저씨가 말하는 영어의 20퍼센트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 자신을 책망했지만 말 잘듣고 쫄쫄 열심히 쫓아 다녔음. (빙하에서 낙오하면 큰일이자나요....)

빙하 투어가 끝나면 모레노 빙하 얼음에 위스키를 넣어서 한진씩 돌린다. 민중의 집 중남미 소모임에서 배운 말 언제 써먹겠나 싶어서 아르헨티나 관광객들에게 위스키 잔을 치켜들고 "Hasta la última gota(마지막 한방울까지)"라고  말하고 쭈욱 들이켰다. 여기저기서 저 동양애가 뭐래?뭐라니?하더니면 원샷이래 그리곤 자기들끼리 빵빵 터지기 시작.  
-진정으로 다행이었다. 열심히 외운거 한번은 써먹을 수 있어서 ㅠㅅㅠ b




동행자가 있어서 더욱 씬나는 투어! 코지, 선화, 고모님








하루를 돌이켜 보며

시작은 최악이었다. 새벽 3시경 배가 너무 아파서 일어났다. 후레쉬 대신 쓰기 위해 아이폰을 켰는데 아이폰이 안켜지는 걸 발견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일단 그 고민은 위급한 고민이 아니었다. 나의 뱃속에서 천둥이 치고 폭풍이 불었고 있었기에-.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그 다음부터 나는 아이폰에게 애원을 시작했다. '아이폰아 아이폰아 왜 안켜지고 그러니? 나한테 삐진게 있으면 말로해.... 응? 응? 너 고칠려면 두달도 더 있어야 한단 말야'
우울해 하다보면 어느새 다시 뱃속에서 천둥과 벼락과 우뢰가;;; 그럼 다시 화장실로! 침대로 돌아오면 다시 아이폰아 아이폰아 울부짖고. 그렇게 새벽을 지샜다. 
그 피로 때문일까(?) 아침에 눈을 떴는데 8시 30분. 근데 또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느새 10시.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근데 바깥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트렁크를 끌려면 트렁크 짐을 비닐로 한번 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숙소 같은 방 홍콩친구 우엉이랑 잎은 아직도 쿨쿨 자는데, 부스럭 부스럭 소리 내려니까 너무 미안했다.(이봐들 아침 안먹니?!?!? ;ㅁ;) 그들에게 미안함을 감수하고 후다닥 짐을 다 싼 시각은 10시 20분. 잠 자는 잎을 깨워서 곰인형을 쥐어주고 안녕을 고했다. '안녕 잎! 나는 여기보다 15페소 싼 후지민박으로 떠나.... 여행 잘해. 건강하고. (너 쇼핑 너무 많이해서 짐이 너무 많다고 큰일이라고 남자친구 우엉이 어제 니 흉보더라. 근데 가방 두개는 좀 심했다. 저 짐 다 들고 이과수까지 어떻게 가니;;;;)'
*진하게 칠한 대사만 말했음을 밝힌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작별하며 비가 휘몰아치는 빠따고니아 평원을 가로질러 후지민박으로 GOGO.

호스텔에서 주는 아침밥도 사양하고 (후지여관으로 가는 길에 배가 아프면 진짜 대책이 없을 것 같았다) 용감무쌍하게 호스텔 문을 나섰다. 근데 후지여관이 유스호스텔촌에서 너무 멀더라;;;;; 트렁크는 무겁고 여기저기 진흙탕 천지라 끌 수가 없고, 비는 세차고 안경은 다 젖어서 보이는게 없고. 게다가 지도에는 빠져 있는 길 투성이. 한걸음 한걸음이 고역이고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가 내 인생에서! 그것도 빠따고니아 평원 한가운데서 언제 비를 맞을 수 있겠는가!!!!!

마음씨를 곱게 고쳐먹어서 일까? 그때 차가 한대 내 앞으로 서더니 금발에 완전 이쁜 언니가 나를 태워줬다. 그리고선 타고 들어간 후지여관은.... 걸었으면 정말 40분은 더 걸렸을 거리. 곰인형을 하루 한개 이상 뿌리지 않기로 했지만, 너무 고마웠기에 언니에게 쥐어 줬다. 금발 언니가 이름을 적어줬는데;;;; 못읽겠다.... 이바나...라고 읽는게 맞긴 한거 같은데, 이거 필기체는 아닌거 같고 뭔글씨야?!?!?!!? 대체 뭔글씨야?!!?!? 여튼 금발언니 너무 고마워요! 언니가 나에게는 깔라파떼 최고 미인임! 아냐 아냐 아르헨티나 최고 미인임!!!!

여튼 그렇게 천신만고 끝네 후지민박에 오니까 우왕! 깨끗해! 그리고 한국집 같애! 아늑해! 완전 좋아! 거기다 한국 사람도 있어 완전 씽나!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날이 활짝 개더라. 그래서 나는 대한항공에 이번에 합격했다는 친구와 깔라파떼에서 가장 큰 슈퍼로 고기와 와인을 사러 출발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이게 왠일! 숙소에 또 한국인이 네명이나 와있네. 진짜 반가왔던건 그들이 아이폰을 썼단 거다. 그들은 나에게 강제시작 버튼을 알려주었다..... '언니 이걸 아직 모르세요?'란 타박이 빈소년합창단이 불러주는 상투스 처럼 울려퍼졌음. 흑흑흑 이래서 한국인이 있어야 합니다!
근심걱정 (설사를 동반한 천둥번 집중호우 내 위장+아이폰 시작)이 해결되고 난 뒤 마주한 깔라파떼의 풍경은 또 달랐다. 어제도 감탄했지만 오늘은 더욱 아름답더라. 호수 구경겸 책을 들고 나가서 한두시간 볕을 쬐고 돌아오고, 새로 온 한국인들이랑 저녁거리 사러 다시 한번 장보러 나갔다.

그리고 저녁에는 후지민박에 묵는 일본인 친구들과 고기 굽고 술 따고 파스타 볶고 피자 만들어서 씬나게 놀았단 이야기.







스릴러 무비를 찍고 아에로빠르께 공항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내선 공항에 와 있다. 멀쩡히 잘 와있긴 한데, 이 느낌을 뭘까? 뭔가 수차례의 위기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것 같은 이 느낌...은 대체 뭘까?!??!?!?

괴담은 민박집에 들어간 순간부터 돌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센뜨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평일 오전이나 낮에는 복작이는 대신 주말 오전에는 사람 하나 지나지 않는 한산한 거리다. 그리고 얼마전 건장한 한국 남성하나가 토요일 환한 오전에 칼을 들이댄 사람에가 싸그리 털렸다고.
일요일 그것도 오전 8시 30분 경에 시내버스를 타야하는 나로서는 간의 부피를 줄여버리는 괴담이 아닐 수 없었다. 출발부터 불안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1. 민박집 같은 방. 세계일주중이며, 나에게 아프리카를 권해주고, '누나 누나'하면서 씩씩한 모습을 보여줬던 '호기심 천국'군이 나를 데려다 주다가 새똥에 맞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새똥은 진짜 새똥이 아니라 소매치기들이 이상한 오물을 묻힌 뒤 '당신 새똥 맞았다면서 정신을 쏙 빼놓고 그 사이 가방 속 지갑이나 카메라를 노리려는 수작이다) ㅠㅠ 호기심천국군이 새똥에 맞은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가방을 부여잡은 채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그리고 그 시점을 경계로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2. 공항으로 가는 시내 버스 안. 버스도 텅텅 비었는데 잘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서서 내 앞으로 온 아저씨. 아저씨 저 안그래도 간이 작아질대로 작아져서 머릿고기만큼 눌렸거든요. 그 아저씨 때문에 트렁크를 손에서 놓지를 못했네. 아저씨 한번 보고, 공항인지 아닌지 창문 한번 보고, 다시 아저씨 한번 보고. 불안 초조하게 한시간을 달렸다. 결국 그 아저씨는 그냥 공항 근처 해변으로 낚시 온 사람으로 밝혀졌지만. (아저씨 의심해서 미안해요!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3. 주머니 속에 넣어둔 80페소가 실종됐다. 이건 아침에 짐챙기다 없어진걸 확인한거니까 숙소에서 옷갈아 입다가 흘린거 같다. 흑흑 80페소면 맛있는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몇덩이임?!?!?!?!!?!? 무려 1200그람 아님?!?!!? 그러면 네끼는 배터지게 먹는데 아흙 아흙


여튼 공항에 앉아 있으니 좀 살만하다. 무사히 도착해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방금 전에 한 가족이 내가 앉은 자리 쪽으로 오더라. 자리를 비켜서 셋이 앉게 해주었다. 근데 아버지로 보이시는 분이 너무 구슬프게 울고 계시는거다. 어머니도 옆에서 흐느끼고 있고. 무슨 일인걸까? 온 가족이 이민가는 것 같은 커다란 짐보따리가 보이긴 하는데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안좋다. 안그래도 며칠 전 메데 지역에서 아르헨티나의 빈부격차를 눈으로 보기도 했고...

 








남들은 탱고슈즈를 살 때에
남들은 아르헨티나에 오면 탱고를 배우겠다고 탱고슈즈를 산다. 나름의 취미를 즐기고 문화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스테이크를 썰어먹을 칼을 샀다. 아까 호스텔 주방을 보니까 스테이크 칼이 없더라. 나는 오늘 꼭, 반드시, 기필코, 고기를 먹어야하는데 말이다. 남들은 몇십페소짜리 탱고슈즈를 사는 마당에, 4페소가 아까워서 고기를 포기해야 쓰겠나? 오늘 산 부위는 초리소. 주로 아사도 해먹는 부위다. 숙소에 굵은 소금이 없어서 가는 소금으로 간을 했지만 역시 고기가 끝내준다. 먹으면서 울면 추하다는데, 울고 싶었음. 맛있어서. 

아르헨티나 산 고기여 너는 왜 그리 아름다운가!!!?!??!?


본래 후지민박에서 묵을 예정이었는데, 방이 꽉 차서 가질 못했다. 내일은 가서 투어 정보 좀 얻고 해야겠다. 오늘 이동한 것도 없는데 발과 무릎 관절 쑤신다. 푹 쉬는 걸 목표로 쉬어야겠다.



오늘의 곰인형
깔라파떼 공항에서 내리면 후지민박에 방이 있는지 전화를 해야하는데 동전이 없었다. 이걸 어쩌나 종종종 대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아주머니가 자기 돈 넣고 전화를 걸어주는거다. 친절도 이런 친절이. 너무 고마운 마음에 곰인형을 꺼내주니까 그 자리에서 자기 열쇠거리에 바로 걸고 얼굴에 부벼보기까지;;;; 심지어 리무진 타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주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