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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a!
Un poco mal. Muy Bien.



인어공주 사람다리 달고 다닌 고통을 느낀지 이틀째
어제 또 일기를 못쓰고 잤다. 한인 민박에 오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보내는 시간이 태반.... 수다 떨면서 밤은 밤대로 지새우는데, 시차 때문에 새벽에 눈뜨기 일쑤. 게다가 다리는 어제보다 더 쑤시고 아파오고 있다. 인어공주의 고통이 이 정도였을까? 아프다고 말도 못했을 텐데, 새삼 그녀가 더욱 불쌍하다.
 오늘도 역시 나는 아메리칸 델리에서 카페인을 들이부은 맛있는 꺄페꼰라체를 들이키고 있다. 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여유 있게 맞이하는 아침 식사는 이것이 마지막. 미친 설탕을 뿌린 빵들도 마지막 흑흑. 그러나 나는 오늘 꼭 고기 요리를 먹을테야.
지금 온몸에 꼭 끼는 옷을 입은 여자를 봤다. 어제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제법 웃음이 난다. 남미 여자들이 옷 입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1. 마음에 쏙 드는 옷을 발견한다. 옷을 산다. 사이즈를 불문하고 산다. 맞지 않아도 산다.
2. 옷을 입는다.
   (여기서부터 한국여자와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한국여자였다면 그 옷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갖은 노력을 해서 옷에 자기 몸을 맞추겠지.)
3. 옷을 내 몸에 맞춘다. 
 
그야말로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 아아 나는 남미 땅에서 발상의 전환을 배운다. 사람나고 옷 났지 옷나고 사람난게 아니다.



레꼴레따 구경과 땅고쇼를 보고 난 뒤
레꼴레따 잔디밭에 앉아서 사람들이 연주하고 춤추는걸 여유롭게 감상했다. 내가 진짜 이러려고 여기 왔구나. 내가 정녕 남미에 왔구나 가슴 설레더라. 비록 땅고는 아니고 보사노바 풍의 연주였지만, 뭐 여기가 남미라는 인증 아니겠나 싶다.

게다가 인*언니 덕에 본 땅고는 어땠나? 인*언니가 땅고 추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아다 준 덕에 식사도 하지 않고 단돈 50페소에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땅고 참피온들의 쇼를 볼 수 있었다. 땅고에 대해선 모르지만, 그래도 오기 전에 유투브에서 땅고 영상도 무지 찾아보고, 음악도 들어보고 했는데... 아이고 아이고. 나 세상에서 그렇게 박진감 넘치고 스릴넘치는 춤은 처음 봤어요. 에로틱이 느끼하지도 않고 어쩜 그렇게 절도 있게 박자 딱딱맞추고 화려한가요.
연주도 연주지만 나 정말 아르헨티노 들이 그렇게 멋있는줄 오늘 처음 알았음. 꽃달고 춤추는 언니들도 어찌나 예쁘던지. 가슴이 선덕선덕. 끝나고 뚜리스따(관광객)이라는 철판을 깔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BUT! 무대에서 볼땐 그렇게 크고 멋있어 보이던 사람들이... 그냥 평범한 아르헨띠노로 변신하는 순간이었음.



두번째 곰인형 : 레꼴레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할아버지.
버스 안에 있는데 뭔가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다, 그 분이 내 옆에 앉을 때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뚫어져라 그야말로 나를 인식하고 타셨다. 한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거다. 옆을 돌아보니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신 부에노스 할아버지가 한 스무번쯤 윙크를.... 빵하고 터지니까 어디서 왔냐면서 환영한다며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의 성함은 아마도르. 남미 사람 답지 않게 쉬지 않고 말씀하시는데 20퍼센트 정도 밖에 못알아들었다.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곰인형을 선물하니까 너무 좋아하셨다. 이 곰인형이 입고 있는게 한국인 전ㅌ통 의상이라는 말 정도는 해드리고 싶었는데. 회화책을 좀 찾아봐야겠다.  




땅고가 끝나면 평범한 아르헨띠노로 변하는 땅고의 마법!



아침 10시
어제도 아침을 해결했던 센뜨로 아메리카노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식사를 때우고 있으니 된장이라면 된장질이다. 하지만 팁을 포함해서 11페소. 2500원도 안되는 돈에 까페꼰라체 크로와상 세종류 탄산수 후고 한잔이 나오는 된장질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까페 또르또니도 그렇고 이곳 까페에는 카페인을 들이 부엇나보다. 어제도 커피 한잔에 두근두근대더니, 오늘도 짱이다. 두근두근 고동소리가 여행의 낭만을 더해주는 구나. 코딱지만한 소소한 일도 심장 뛰는 소리와 듣다 보면 신나고 재미나고 박진감 넘치게 기억되는 법.

어제는 5월광장 어머니회의 데모 모임에 다녀왔다. 수십년전부터 한결같이 같은 구호를 외친다는 것. 그 현장을 직접 보는 것. 다시 한번 이번 여행지로 남미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슬슬 라보까로 출발해야겠다.

 




오후4시. 
 마요거라 까페 또르또니 건너편에 앉아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벤치는 돌로 됐는데, 무척 시원하다. 겨울엔 아마 더 시원하겠지 -_-.
방금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꼭 해봐야할 것 서른가지 중에 한가지인 지하철(Subte) A선을 타봤다. 150년의 역사 답게 나무로 만들어졌다. 문은 손으로 열고 닫아야한다. 창문은... 다 열려 있다. 아무도 닫을 생각을 안한다. 근데 그게 낡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 운치 있는거다. 은은한 조명. 나무로 된 의자. 그리고 그 옆에는 백발 성성한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니까 그야말로 유럽의 살롱에 앉아 있는 느낌.  
아직까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설레는 느낌.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잔뜩 기대된다. 아아 짜릿해라~ 



*첫번째 곰인형.
라보까에서 64번 버스를 같이 기다려주던 대만 아주머니와 아저씨 부부.
처음엔 중국인인 줄 알고 대화를 텄다. 오래도록 오지 않는 버스를 함께 기다리고
어숩잖은 영어 한자(?)가 뒤엉킨 이야기를 했다. 대장금을 알고 계시기에 한복 입은 곰인형도 무척 반가워하셨다. 

 

<불의 기억 3권>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340p

1977년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 아이레스

자식들에 의해 다시 태어난 여인들,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은 그리스 비극의 합창대이다. 사라져버린 자식의 사진을 머리위로 쳐들고 정부청사 앞 오벨리스크를 돌고 또 돈다. 많은 군대 병영과 경찰서와 교회를 순례했을 때와 똑같은 집념으로 끊임없이 돈다. 그 많은 울음으로 메마르고, 그 많은 기다림으로 절망한 몸으로 돈다.

"나는 자식이 살아 있다고 믿으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한 여인이 말하고 모든 어머니가 말한다.

"해가 점점 높아지면서 나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정오가 되면 아이는 내 가슴에서 죽는다. 날이 저물면 아이는 다시 살아나며, 나는 곧 돌아올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고 식탁에 아이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밤에 아이는 다시 죽고, 나는 절망하며 잠든다. 이튿날 눈을 뜨면 아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을 '미친 여인들'이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녀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정상인 이 나라에서 달러는 값싸고, 어떤 사람들 또한 값싸다.
미친 시인들은 죽음으로 가고, 정상의 시인들은 침묵을 찬미하며 칼에 입을 맞춘다.













토론토 0시 32분
토론토 공항의 동양인 여자는 바로 인경 언니였다. 노트북으로 네이트온 하는 걸 보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우다다다 한국말을 쏟아냈다. 푸하하.
땅고 선생님이고 아르헨티나만 무려 3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경 언니는.... 언니는..... 언니는.....;;;;  음... 무려 서른살까지 방송 작가였다고 한다. 서른살에 방송일의 불투명함을 느끼고 관뒀다는데.... 이거 이거 나의 고민과 너무 맞닿아 있는거 아닌지. 결국 나도 이 여행을 끝으로 관둬야겠다라고 결심하는거 아냐?
인영 언니에게 나의 여행계획 표를 보여줬는데, 언니가 빵터졌다. '버릇 남 못주고 촬영스케쥴짰구나 그래, 섭외는 다 됐니?'라고. 나도 한참 웃었다.
언니가 스케쥴을 보면서 말해주길 시간이 딱 두달이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면 리마와 키또를 빼고 보고타로는 비행기로 넘어가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일주일이나 남게 되고 있고 싶은 곳에 좀 더 있고 새로운 곳을 추가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도 있었고 말이다. 언니가 뿌노에서 아만따니 섬 투어를 강추해줬는데, 이야길 들으니 나도 급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캐나다를 떠나 칠레 산티아고행 비행기에 앉아 있다. 이번에는 창가 자리로 앉았는데 찬바람이 새로새록 스며들어오네. 다행히 옆자리는 비어 있어서 대 만족이다. 여튼 드디어 남미 상공에 떠 있는 기념으로 이 여행의 시작점이 어딜까를 생각해 봤다.

단연 첫번째로 꼽히는 게 축구의 신(神) 마라도나 였다. 길거리에서 바이올린 켜면서 탱고 추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외쳤다. 저건 가서 봐야해! 죽기 전에 봐야해!
두번째로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불의 기억> 정도가 되겠다. 근데 사실 이 책 선물받고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남아메리카 땅을 직접 밟고 싶단 생각은 안했는데 말이다. 내용 자체가 비극의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고, 혁명의 열기가 너무 펄펄 끓어서. 그 땅에 있으면 나도 휩쓸릴거 같고 그랬다.
여튼 그 두 개가 아프리카 보다는 남아메리카를 선택하는데 한몫했다. 결과가 어떻든,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칠레 산띠아고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길 칠레 시간 오전 10시 55분
길고긴 (35시간정도 되는) 2월 8일이 끝났다. 나 저녁 6시에 비행기 탔는데, 진짜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출발 전에는 시차 적응을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 따위. 장거리 비행기가 모든걸 해결해 줍니다~ 그야말로 몸빵으로 때우는 인생이다. 주희 말로는 대륙간 이동이 노화의 최고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대륙을 넘나드는 이동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피곤하지 않아.

공항에 내리면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다. 2시간 걸리긴 하는데, 그냥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도 구경해보고 돈도 아끼고. 근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가 굉장히 의문이다. -_-
장기 여행은 두번째이기 때문에 자꾸만 예전 유럽배낭여행이 생각난다. 그떄 영국으로 어떻게 in했더라? 같은 민박집으로 이동하는 언니들을 우르르만났고, 다같이 지하철 타고 이동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런던에는 형석이가 있어서 마음 편히 시작했기도 했고. 부활절이 끼어 있던 런던은 다 좋았다. 아주 드물게 날씨도 화창했고 공원도 좋았고 구획된 작은 가정집들도 사랑스러웠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어떨까.



불행이 자꾸 내 주변을 서성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
자꾸만 불행의 화살이 내 주변을 쏴대고 있다. 어제는 충북 아주머니가 비행기를 못타시더니 이번엔 인경언니 트렁크가 도착하지 않는 불상사가;;;; 거기다 리무진 버스는 파업 중이라 운행을 안한단다.
물론 나야 시내버스 타고 이동할 예정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자꾸만 드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불행의 화살이 실은 나를 조준하고 있었는데, 애꿎은 내 옆사람들이 죄다 맞고 있는거 아냐?!?!?!? 이러다가 내가 제대로 한방 맞는거 아냐?!?!?!?!


첫번째 숙소 남미사랑에 도착했다.
엉망진창인 나라 아르헨티나에 와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근데 여기서 엉망진창은 부정적 의미가 절대 아님!

공항에서 숙소에 도착하기까지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내가 동전 2페소를 버스통에 넣는 법을 몰라서 헤매였고, 결국 내 대신 카드 찍어주는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 때부터 버스 안에 모든 사람들은 나만 바라보고 수근덕 수근덕.
하뽀네소 하뽀네사 이런 소리가 들리더니, 자기들끼리 아는 일본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카와이-' 이 단어가 나왔을 땐 나도 모르게 빵터졌다. 하지만 나는 시크한척 창밖만 내다봤다.(왜냐면 스페인어를 못하니깐요 흑흑 ;ㅁ;) 여튼 두시간 남짓 수 많은 아르헨트노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가방 쓰러지지 말라고 잡아주는 사람들부터 내가 한마디 하면 백마디로 대답해주는 아르헨티나 아주머니(물론 알아듣는 말은 없었습니다. 흑흑) 시내 구경하는 기분도 쏠쏠하고. 야자수가 가로수로 서 있는 이국적인 느낌도 신선하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정말 제대로 균형을 갖춘게 없다는 점이다. 수백년은 되어보이는 스페인식 건물 옆에 현대식 아파트가 뒤죽박죽 섞여 있고, 벽면이 거의다 헐어있어도 애써 고쳐서 획일화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근데 그게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애써 고치지 않는다. 낡아버리고 퇴물이 되어도 밀어내고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그 가치만으로 인정받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이곳에 있으면 소모되고 버림받는 인생 같은건 없지 않을까? (건축이 사회를 반영한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재개발과 재건축이 판치는 한국이야 말로, '퇴물이 되면 꺼져'라는 구호처럼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버스 안을 들여다 봤는데, 흑인 백인 인디오 그리고 황인종(=나)까지 뒤엉켜서 인종의 전시장 같다는 느낌이 한가득. 이방인으로 있지만, 지켜볼 수 있는게 너무 좋았다.

버스에 내려선 잠시 사고(?)가 있었다. 내가 묵을 숙소는 800번대. 센트로 가까이였는데, 친절이 너무 과한 아저씨가 2700번대에서 내려줬다. -_-;;; 버스를 다시 타려면 동전이 있어야하는데 동전이 없었다. 결국 그냥 걷기로 했다. 여기 100번지 정도면 100m가 넘는 거리인데, 결국 2km가 넘는 길을 트렁크를 끌고 배낭을 매고 걸어 왔다.
그러면서 또 다시 느낀건. 아! 여기는 보도블럭도 온전한게 없구나. 한국에선 과거 80년대 시절 전경과 대치하고 있으면 데모꾼들이 보도블럭을 깨서 던졌다는데, 여기도 데모 하나요? 맨날 하나요? 보도브럭 던지고 그러나요?!?!? 심지어 중간에 보도블럭이 제멋대로 디자인을 바꿔;;; 트렁크가 보도블럭에 적응하느라 고생좀 했다.나 역시 2km를 걸어오는 동안 트렁크 바퀴가 나가는게 아닌가 걱정 좀 하고. 

여튼 그렇게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다. 아직까진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무척 마음에 든다.
사워하기 위해선 슬리퍼로 쓸만한 신발이 필요하다고 간절히 느꼈다.





시작이다.
다들 여행의 첫날을 이동하는 날로 잡는지, 도착한 첫날로 잡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6년 만에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분명 나에겐 모험(?)이었으므로 나는 오늘부터를 여행의 첫날로 잡아야 겠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예상밖의 일을 경험했다.
아 놔.... 비행기 티켓 보는 법을 모르겠더라. 어느게 게이트 번호이고 어느게 좌석번호인가.-_-;; 으앙 엄마! 방송생활 4년이 나를 이렇게 삭막하고 멍청하게 만들었어요. 지금이야 한국공항 한국사람 천지라지만, 당장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깔라파떼 행 비행기를 탈 땐 어쩌지? 아무나 툭툭치고 그냥 티켓만 백번 들이밀어?!?!?!?

아! 예상 밖의 일은 또 하나 있었다. 내 여행경로에 콜롬비아가 쿠바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보험회사에서 여행자 보험을 들 수가 없었다. 콜롬비아가 그렇게 위험국가인가? 수 없이 반문했는데 기억해 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콜롬비아를 각인했던건 94월드컵. 자살골 넣은 선수 귀국선물로 총알세례를 퍼부었었지. 뭐 그런 기억이 기억나긴 하는데.... 근데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으면 보험금이라도 있어야 남은 가족들에게 쓸쓸한 위로라도 되는거 아닌감요? 보험사에서의 퇴짜는 콜롬비아 가서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만은 나를 소심하고 겁많은 애로 만드는데 한몫하셨다. 콜롬비아 여행객은 보험사고객대접도 못받는 외로운 존재;;;; 갑작스레 콜롬비아를 넣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브라질과 이과수 폭포를 뺀 과감한 결정이었는데 말이다. 그냥 리마에서 점핑 쿠바에 도전해 볼 걸. 아니다! 브라질은 언젠가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브라질 월드컵도 있겠다. 하지만 왜이리 힘이 빠지고 들고 있는 하이테크펜이 천근만근짜리 방망이로 느껴지나요..?

한국시간으로 따지면 지금쯤 잠을 자고도 남을 시간인데, 왜이렇게 잠이 안올까? 이 비행이 제일 긴 비행이기 때문에 조금 자둬야할텐데. 방금 꺼내 읽은 책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한마디를 읽었다.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 6년 여의도에서 견고해질대로 견고해진 나의 성을 얼마나 허물 수 있을까? 기대해봐도 좋을것 같다.



6000피트 상공 성층권에서 마저 쓰는 일기
한시간 정도 간신히 눈을 붙였는데 사람들이 다 깨있다;;; 하는수 없이 나도 깼다. 이제부터 잘 시간이라 지금 자둬야하는데... 나는 왜이리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일까. 벌써부터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게 생각났다.

롯데월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지금 비행기 흔들리는게 딱 롯데월드 후렌치레볼루션의 움직임과 같아요~. 지금 흔들리는대로 조금만 더 흔들리면! 그러다가 헤드백같은데 좌우로 좀 부딪혀 주다가 하강하면 바로 후렌치레볼루션! 비행기니까 좌로꼬고 우로꼬고 180도 회전은 좀 힘들수도 있겠구나.
여튼 되살아난 기억을 더듬어본 결과, 놀이동산 안간지 3년이나 지났다. 이쯤 한 번 갈 떄가 됐지. 아무리 그래도 비행기에서 놀이동산의 정취를 느끼는건 좀 아닌거 같기도 하고.

벤쿠버에서 토론토까지 이동할때 한국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토론토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더욱 없겠지. 아! 짧은 스페인어로 기내식이나 제대로 골라 먹을 수 있을까? 세관 작성서는 어떻게 쓰지?
해야할 걱정목록은 한아름. 부디 성층권 상공의 해가 빨리 지기만을 바랄뿐이다. 



벤쿠버 공항 토론토행 비행기 안이다. 캐나다 시간으론 2월 8일 오후 1시 30분. 집에서 오후 3시에 출발했는데 아직도 2월 8일이다. 심지어 2시간 당겨졌어! 시간을 벌었습니다 어머니! 여튼 시차에 대한 감회는 각설하고!

일단 걱정이 돼서 미치겠다;; 벤쿠버행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충북사시던 아주머니가 아직 안오셨다. KOREA 스펠링도 못쓰시던 분이시라, 내가 챙겨 드리겠다고 했다. 근데 잠깐 캐나다 사람에게 내 짐 어느 공항에서 찾냐고 묻고 있었는데, 그 사이 내 뒤를 따라오시던 아주머니는 빡꾸를 먹고 사라지셨다. 대체 아주머니는 뭐에서 걸리신걸까? 담배? 여권번호? 세관? ㅜㅅㅜ
20여분 넘게 기다렸으나 끝끝내 아주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결국 지금 비행기는 출발하고. 나는 세 좌석 중 한 좌석을 독차지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흑흑흑. 괜찮으실꺼야. 그래도 벤쿠버 공항에는 한국인안내원도 있었어.... 흑흑

잠시 내렸던 벤쿠버. 공항 건너편 침엽수 숲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곳에 살면 동화같은 마음씨가 생기고 동화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복작복작한 한국을 벗어나니 어디든 좋은 세상같이 느껴지고 그렇다.
집에서 공항버스로 가기 직전 아이폰을 사면서부터 한시도 놓지 않았던 게임 스머프빌리지를 폴더 안으로 넣었다. 금댕이의 추천으로 시작한 갓핑거도 집어 넣고. 한국에 도착해서 이 두개를 다시 시작하면 진짜로 컴백느낌이 날것 같다. 동네파 애들은 지지리 궁상이고 지긋지긋하다고 구박하겠지. 허나, 지금으로선 그것마저 기대된다.


토론토 시각 밤 10시 35분
토론토 공항이다. 한국인의 자취를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아니다. 저쪽에 동양인이 하나 앉아 있다. 어느나라 사람인지 동태를 슬슬 살펴야겠다.









읽어야 할 책도 더 있고, 봐야할 영화도 있고
공부해야할 것들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며칠은 더 빈둥대며 텅빈 생활을 해야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조금은 이르고 성급하다고 느껴지는 출발!
여튼 반갑다.  

뭐 대단하다고, 연락주고 만나주고 걱정해준 사람들 고마워요.
다시 만나게 될걸 뭘 그래요.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고마웠어요.ㅎㅎㅎ
두달여의 빈자리는 만나서 채우기로 해요!


만두에게
만두. 너도 알겠지만
난 얼마간 자신에게 답을 내릴 수 없어서,
내자신을 긍정할 수 없어서.
비뚤어지고 소심하고 작아지고(몸집이 작아졌단 얘기는 아니고) 움츠러들 때가 있었어.

오늘 네가 준 엽서를 보는데 왈칵 코끝이 시큰시리더라
차마 너 보는 앞에서 울면 그야말로 서눈물 취급 받을 것 같아서.
(그건... 우리사이에 치욕이잖니....ㅋㅋㅋㅋ)
'어맛 일주일도 더 된 감기가 안떨어지네' 콧물 드링킹 하는 척 훌쩍이고 넘어갔지.


하지만 네가 써준 엽서에
와, 나 정말 감동먹었다고.
'감동한 게' 아니라 '먹었다'고.
(능동은 1%도 안들어간 채, 네가 내게 해준 말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치도록 감동이 넘실대며 밀려왔다고 ㅠㅅㅠ )

우린 때때로 느끼하지만,
그 기름기가 서로 용해되고 녹아들만큼 잘어울려서 참 다행이야.
진짜 진짜 다행이야.

떡볶기는 다녀와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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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유
내가 알고 지내는 남자애들을 표준집단 비교집단으로 삼을만큼 많이 않다고 할 수는 없으나, 최근 만나는 남자들마다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있기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사항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유.
기) 초반 그들은 조금 심드렁한 자세로 관심 없다는 듯이 일관한다.
"아이유? 귀엽지"

승)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좋아한다고 말 못하는 그네들의 딱한 심정이 꼴 보기 싫다면,
단 한마디만 던지면 된다. 이 한마디면, 백이면 백! 석유먹은 종이마냥 아주 화르르 화르르 타다 재가 되버리는 꼴을 감상할 수 있다.
"근데 걔 노래 잘해?"

전) 이때부터 쏘쿨은 내다버린채 침튀기며 아이유의 3단창법에 대해 그녀가 가진 음악성에 대해 10분 20분 30분 썰을 푸는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결) 너무 웃긴게 마지막 마무리는 다들 한결 같다는 거다.
"나 아이유는 여자로 좋아하는게 아니야. 오빠 같은 마음(누구마음대로 오빠인진 모르겠다)으로 곁에서 잘해주고 이뻐해주고 싶은거지"
부정을 거듭하면 긍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근데 자꾸 부정을 거듭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하니까 나로선 긍정이라고 추측할 수 밖에.... 솔직히 나는 옥택연이 좋다. 남자로 좋다. 근데 왜 니들은 아이유가 여자로 안좋은지 모르겠다.
(설마 그정도면 '이쁜게' 아니고 '귀여운'건 아니겠지.-_-)

덤) 요즘엔 가사가 참 노골적이다. 그냥 속마음을 다 말하면 가사고 노래고 그렇다.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케에에에"
부정적인 자세를 버리겠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작사가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받아들이겠다.



2. 과거의 연인
서른줄에 들어서다보니 엑스보이프렌드와 엑스걸프렌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여기서 또 말도 안되는 여성과남성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를 하나 내리자면, 과거남자애 대한 여자애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라는 거다.
그(딴)놈 때문에 흘린 내 눈물이 아깝다는 둥, 지금까지 연애하고 있으면 어쩔뻔 했냐는 둥. 진작 헤어지고 또 헤어졌어애 했네, 그때 결정을 백번 천번 후회하지 않네 등등. 지나간 과거에 안타까운 연민과 현재에 대한 안도 뿐이다.

근데 너무 웃긴게 남자애들인데, 대다수 과거 여자에 대한 애틋한 향수만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때 내가 잘했어야 했는데, 다시 연락했었어야 했는데, 내가 무심했지, 내가 죽일 놈이었지. 그리고 내리는 결론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다시 한번?

근데 또 내가 처한 상황이 특수하다보니, 남녀가 섞여 있는 자리가 아닌, 남자들만 우르르 모였거나, 여자들만 우르르 있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대화만 듣고 있다.  대게의 이성애자 남자라면 여자를 만나서 연애한 것이 당연하고, 대게의 이성애자 여자라면 남자를 연애한 것이 당연한데
과정은 같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왜 그리 판이하게 다른지 손들고 누구한테라도 좀 묻고 싶다.


3. 결혼의 순서.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단골 화제다. 근데 정말 빵터지는 건 여자애들이 말하는 결혼의 순서와 남자애들이 말하는 결혼의 순서가 정반대라는 거.
여자 - 1. 둘이 먹고 살 수 있을 법한 능력을 가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2. 사랑하니까 결혼을 한다.
남자 - 1. 사랑을 한다. 그러니까 결혼을 한다.  
          2. 결혼을 했으니까 둘이 먹고 살수 있을만한 능력을 갖춘다. 

내가 이쪽저쪽 말을 들으면서 너무들 평행선을 달리시는 것 같아서
여자애들한텐 남자애들 의견을, 남자애들한텐 여자애들 의견을 전했다.
돌아오는 것은 바가지로 드링킹할 욕 뿐이다. 너는 세상을 모르고 철이 안들었고, 너는 속물적이고 물욕적이란다.
이렇게 중간에서 낀세대로 살 것이 아니라 언제 한번 자리를 마련해서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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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말 좀 들어보시죠"




  • 긴말 않고 오늘을 잊지 않겠습니다 ㅎㅎ(me2mobile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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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등심도 잊지 않겠쒀요 ㅎㅎ(me2mobile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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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 이것도 ㅎㅎ(me2mobile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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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인에 슈퍼동네파 등장 ㅎㅎ(me2mobile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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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네기 홀 공연과 자꾸 겹치던 아바나의 풍경들. 아바나 벽에 써 있는 그말을 아직 믿는다.(me2movie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동트는 홍대

20세기 소녀 2011. 1. 30. 23:58
만두에게

네가 올 날도 머지 않았구나. 대만에서 남은 마지막 밤은 잘 보내고 있니?
묵은 체증이 가시는게 아니라, 한국 오기 싫어서 너무 싫어서 침대에서 곡을 하는 네가 되길 빈다.  그만큼 너의 두달이 꽉꽉 차서 즐거웠길 바란단 의미야.

나는 이번주 토요일 밤을 홍대에서 보냈어.
근데 보통 홍대에서 보냈으면 건하게 취한 환락과 유흥의 의미를 포함하잖아. 근데 그런 '홍대'가 아니라 진짜 '홍익대'였다고. 이금댕이 다녔던 그 대학 말야. 그 문헌대 돌바닥 위에서 밤을 지새웠지.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하고 한달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번 토요일이 두번째 밤샘이었어. 평소에 찾아가지는 못하고, 당원분들 나가는날 나가서 삐죽 얼굴 비추고 오는 게 전부이지만 말야.


일요일 새벽 홍대 농성장을 나서는데 그때까진 동이 트지 않았어.
7612 버스를 타고 지나는데 거리가 참 한산하더라. 한산한 홍대거리라니, 흔하지 않은 풍경이지. 그리고 그 위로 천천히 해가 들기 시작했지.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중앙 차선 위로, 괴물같이 들어섰지만 허물처럼 비어져있는 롯데 시네마 사이에, 보기만해도 애틋한 두리반 건물 위에, 이십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린나이 빌딩 위에.

그때 느꼈지.

아! 휴가다.
그 무엇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무엇을 하든 나의 선택에 달린.
무엇보다도 사무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고생하고 있을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며 죄책감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다시 맞이하는 인생의 방학.

그 탁트이고 활짝 열린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남미 여행을 떠나기가 아쉬울 정도였어.

두달 만에 만나는 서울은 어떠니?
우리 동네는 또 얼마나 변한 것 같니?

일요일 아침 느꼈던 그 자유로움이 너무 좋아서,
두달 여행 뒤에도 뜨는 아침해를 다시 보고 싶을 것 같아.






앙증은 핸드폰번호 딸 때 만큼은 선수야 선수. 거부할 수가 없어.
란 소릴 들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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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바로 이런 사람....)

친구의 결혼식에서, 혹은 길거리를 지나치다 만난 우연한 기회에서, 핸드폰을 들이미는 나는 주저함과 망설임을 몰랐다. 언제나 담대하고 용맹했다. 10수년 전 학교에서 각종 비행과 일탈 그리고 외모로 말미암아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오빠라 불리던 남자애도, 애틋한 미모로 여자애들의 가슴 설레던 남학생도 거칠것이 없고 가릴것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러한 용기(만용?)을 부리게 한 것은, 고런 멤버가 좀 끼어야 연말에 있을 반창회(?)가 성황을 이룬다는 진리 때문이었다. 남들에게야 오빠였고, 미소년이었지 사실 학교 다닐때 그들중에 날 설레게 한 사람은 없었다고!
 
그렇다면 정작 내가 번호 따여본적은 있는가.






있다.
세번.
모두 여자들한테;;;;


이 경험을 가능케 했었던 건 <개청춘> 덕분이었다. 개청춘은 인디다큐멘터리 계의 <시크릿 가든>이었나봐.... 길가다 낯선 얼굴이 '저 혹시...'라고 말하면 '넵! 개청춘 보셨죠?'라고 응수하는게 익숙해져갔다. 연락처를 원하면 연락처를 주고 나중에 시간되면 차나 한잔 하자고 진심을 다해서 말했었는데, 정작 다들 번호만 따가시고 함흥차사 모르쇠 였다.
그러다가 며칠 전 작년 봄에 우리 집앞에서 내 번호를 따간 풋풋+상콤한 연대(여학)생에게 연락이 왔었다. 이제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간다는 상콤이는 겨울방학. 나는 여행을 기다리며 무기력하게 방바닥을 긁는 백수. 그리하여 엊그제 연희동에서 우리는 만나고야 말았다.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깊고 나름 자신의 미래를 길게 내다 볼 줄 아는 상콤이 한테 진짜 뻥안까고 많은 걸 배웠다. 나 대학때는 어땠더라? 상콤이에게 늙으니 꼰대마냥 '저 학교 다닐때는 말이죠..'라고 주섬주섬 기억을 말하다 보니, 언뜻 언뜻 스치는 장면들이 꽤 됐다. 말할때마다 후회와 그리움이 뒤범벅. 더 넓게 볼 걸. 도망가지 말 걸. 그때 좀 더 잘할 걸. 대화로 해결할 걸. 그러다 보니, 내가 상콤이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일반적인 줄서기의 삶을 택할것이냐, 이탈을 꿈꿀것인가. 입으로야 그런 삶이 싫다, 진저리 난다. 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역시 나부터가 이명박이고 나부터가 모순이고 그렇다.
결국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금 내 상태가 어떤것인지 진단불가능한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피드백 되고 반성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상념들이 많다.

사람이 스물다섯을 전까지 만나는 사람들이 A,B,C라면 스물다섯 이후에 만나는 사람들은 A다시, B다시, C다시 라고 들었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반복해서 만난다는 이야기다. 그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아직 서른.
그 누구에게라도 번호 따이는 것에 주저하지 않겠다.
그 누구라도 번호 따는 것에 망설이지 않겠다.
새로 만나고 새로 배우고 부딪히고 싸우겠다.
아직 누려야할 많은 것들에 용기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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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도 춥다는 염장아닌 염장 엽서를 보내온 만두에게

백수가 되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폭풍같은 스케쥴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
나도 답을 내릴 수 없는데 니가 답해줄 수 없는 물음이겠지. -_-

지난주에는 부산을 다녀오고, 금요일에 출근 아닌 출근을 했다가 이번주 월요일 화요일은 1월에 마무리한 기획안을 가지고 대전에 워크샵(?)을 다녀왔어. 열한시간 무의미한 회의를 진행하면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들을 내가 얼마나 알차게 사용할 수 있을까 같은걸 분통 터뜨리며 아쉬워 했지.
 
어제는 도난방지(?)용 자물쇠 두개와 쇠줄로 된 개목걸이 (유럽에서는 기차 화장실 갈때마다 선반에 칭칭 묶어두는 역할을 했는데 남미에선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신촌-홍대지역 헌책방을 순례하며 여행지에서 읽을 문고판(?) 책들을 샀어. <불의 기억> 하드커버 양장본 3권을 들고가는 마당에 실천문학사에서 <체게바라 평전>을 들고 가는건 너무 오바(?)라고 판단하고 있었지.
(난 체게바라 평전에 대해서 아주 학을 떼는데, 대학 다닐때 반운동권학생회 애들이 빨간색 표지의 체게바라 평전들고 다니는 걸 너무 자주 봤거든. 토익책 토마토 따위와 함께 놓인 빨간 표지를 봤을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아니? 그날 이후로 그 책은 두 번 다시 펴보지 않았어)

여튼 신촌 북오프에 시공사 디스커버리에서 나온 체게바라 관련 책이 있더라. 시공사 디스커버리의 최악의 발번역과 억지스런 조합, 구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고 가볍단 이유 하나만으로 골랐다.ㅋㅋㅋ 산타 끌라라까지 가는 마당에 스페인어로 "아스따 라 빅또리아 시엠쁘레!"라고 외쳐는 봐야하지 않겠뉘? 푸하하하. 아이콘으로 박제 되어버린 것이 우습다. 우리끼리 체게바라에 대해 말도 많았지만 되새길 수 있는건 되새겨 보고 싶어.

헌책방 순례에서 가장 대박은 목표했던 잉카 문명에 관한 책을 구한거였어. 민중의 집에서 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소모임에선 가서 느껴보는것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답사가 더 맞는 체질인가봐.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믿고, 알아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오얀따이 땀보에서 마추픽추로 넘어가는 잉카 트레일에서 이 책을 꺼내 읽겠어. 고산병으로 심호흡좀 하면서 코카잎좀 질겅이지 뭐.

역시 너에게 편지를 써야 여행 준비할 맛이 나는구나. 푸하하
그럼 나는 추스린 마음을 들고 다시금 여행준비에 매진하겠어~

어제 엽서를 전해주던 엄마가 만두 너 언제 돌아오냐고 묻더라.
어제 금환이랑 소소하게 수다 떨고 커피마시면서도 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
우리가 네 빈자리를 기억해주는게 부담은 아니겠지.
여튼 어서 돌아와서 네가 겪었던 소소한(?) 대대한(?) 일상들을 나눴으면 좋겠구나.
기다리고 있을께. 공항 들어올 때 두꺼운옷 칭칭 동여매는 것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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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날씨는 아직도 엘 깔라파떼!
앙증으로 부터

줄서기

20세기 소녀 2011. 1. 2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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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학교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게 '줄서기'다.
그 줄을 따라 학년을 따라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을 가고 스펙을 쌓고 취업을 하고.

팔리기 위한 삶.
팔려나가려고 안간힘 쓰는 삶.
팔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삶.

열맞춰 나란히 전시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푸른 바닷속에 살았던 어제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탈이란 쉬운것 같으면서도 참으로 어렵고
소모되지 않으려면 뭘해야할지 알 수 없다.


 
-2011.01.19 자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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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2mobile me2photo) #

    me2photo

  • 남미여행 잘하라고 후배가 선물을 흑흑 ㅜㅜ(me2mobile me2photo) #

    me2photo

  • 퇴사 중인 버스길 뒷걸음질하면서 퇴사하기로 한걸깜빡했다 짐이 너무 많아서 잘못췄음 박스 엎었을지도 ㅎㅎ(me2mobile) #
  • 모닝콜을 라비앙로즈로 할까 진심 고민중(me2movie 인셉션) #
    인셉션
    인셉션
  • 예전에 읽었던 체게바라 평전 앞부분과 많이 겹치는구나. 체의 루트와 내 루트가 약간 유사해서 (시계방향) 우쭐해졌음. 하지만 유사한 고생은 하고 싶지 않은데…(me2movie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 영화는 진작 보고 갈 생각이 있었는데, 소설책도 선물 받았다. 주발이는 펑펑 울었다는데 나는 펑펑은 아니고 눈물 몇번 훔치고 말았쒀. 마지막 네루다의 그 시는 영어 번역이 아니라 스페인어 그대로 나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me2movie 일 포스티노) #
    일 포스티노
    일 포스티노

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본격 백수 첫날에 돌입하여 만두에게

그러고 보면 올해 시작하고 너에게 편지를 제대로 쓴날이 손에 꼽...아보려고 했는데 없구나.
ㅋㅋㅋ 회사를 오후출근 하는 바람에 나의 근무시간은 고작 4-5시간이었고 그 시간 내에 모든 업무를 해치우려고 하다 보니 폭풍 업무 돌입!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 회사 끝나고는 너도 알잖니. 그 시간만큼을 절대 양보 할 수 없는 동네파들과의 시간인거. 푸하하.
그리하야- 나는 백수 첫날에 돌입하였단다. 비록 우리동네를 내리쬐는 아침해가 너무 밝아서 9시에 일어났지만 말야.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백수 생활인데 이번주 나의 저녁 스케쥴은 '화수목금토'가 꽉 차고 말았다는 불행한 소식이 하나 추가야;;; 백수되면 만나자고 연락을 죄다 뒤로 미룬자의 처참한 결말이지. 여행 도착해서 초조하고 촉박한건 딱 질색인데,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너무나 많구나 준비하면 할수록 느껴. ㅠㅠ

여튼 오늘부터 대략적인 비용 일체와 이동구간/ 머무를 코스를 알아보고 있는데 벌써부터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 가면 뭘해야겠다 저곳에 가면 뭘해야겠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

하지만 오전 10시부터 책상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제막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깔라파떼로 이동했을(?) 뿐이란 거. 깔라파떼에서 빙하를 걷는 기분은 어떨까? 생각만해도 염통이 쫄깃해져 오는데 부풀어오는 나의 심장을 빵! 하고 터뜨려 버린건 엄청난 고비용! 푸하하.
이번 여행결심 중 하나는 돈소리 덜하기 인데, 과연 그렇게 될까 의문이다.

여튼 요즘 한국은 깔라파떼와 다를바 없는 날씨를 선보이고 있단다. 여행가기 전에 적응하고 가란 뜻인가 봐;;; 대만도 춥다고 하는 너 이지만, 한국은 무시무시한 한파 속에 있단다. 무려 10일 넘게 영하 10도 아래로 넘어가는 날씨를 선보이고 있어. 우리가 초등학교때 배웠던 3한4온따위 죄다 거짓말이 돼가고 있다고!!! 우리집 예전같이 방에 불 안때고 그런짓 안하는데 집에 있어도 추워. 화장실 가는게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넌 상상조차 못할꺼야.
이번주 수/목 부산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부산도 무려 영하 7-8도에 수도가 얼고 대난리라는 소리를 들었어. (난 정말 여행가면서까지 내복을 입고 싶지 않다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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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곳은 남극 근처이지만, 사진은 북극여우로 ㅎㅎㅎ)


교과서에 나온 말조차 죄다 거짓말이 돼버리는 세상이야.
확실한 것 하나 없는, 변하지 않는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무사하기 힘들다는 남미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
다시가고 싶다고 다시 가고 싶다고 발동동 구르며 내 침대위에서 하이킥 하고 싶어.

이제 다시 몰입해서 여행계획 짜야게구나 적어도 오늘 아르헨티나 여행준비는 끝낼 참이야.
배운지 9년 되는 엑셀 더하기를 어떻게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얼굴 못본지 꽤 되니 보고 싶단 낯간지러운 말도 던져본다!
(지금 부끄러움에 낯붉히고 있음ㅋㅋㅋ)



마음만큼은 엘깔레파떼 모레노 빙하 위에서
체감온도 엘 깔레파떼 모레노 빙하와 다를바 없는 서울에서
-만두 너를 보고파 하는, 네가 돌아올 날을 손꼽아보는 앙증




회사 퇴직 기념으로 이런저런 선물들을 많이 받았다.
후배 보*씨가 라틴아메리카 문학 소설책을 두권이나 선물했고,
귀여운 동물 시리즈 다섯개를 사고도 눈을 못떼던 나를 위해 버니, 금댕, 도도가
미니어쳐 두개를 더 사줬다.

본래 나는 퇴직하면서 내 짐이 든 종이 박스를 들고 뒷걸음질(?) 출을 출 계획이었으나,
나 다니던 회사 그렇게 악독한 회사 아니었는데, 너무 악독하게 보일까 참기로 했다.
ㅋㅋㅋㅋ
(그나저나 그 큰 박스 들고 춤췄다가 넘어졌으면 정말 큰일 치뤘을 듯)

동네파들과 축하주 한잔 하려고 했으나, 황열병 예방접종 관계로 관뒀다.
나의 목숨과 건강은 언제나 소중하니까요.
대신 신나게 먹어줬다. 크라제 버거를 먹고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얹어 먹고 국대 떡볶기로 마무리. 날이 춥다. 이런 겨울 체온으로 뺏기는 열량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은 정녕 먹는 것 밖에 없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열심히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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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회사 마지막날이다
방송일을 하다보면, 대게는 짧게 6개월 길게 일년 옮겨 다니기 바쁘단다.
하지만 난 딱 두군데서 일한게 전부다.

처음 일한 직장은 k본부 가장 큰 외주사였다.
두번째 직장은 그토록 원했던 본사 역사팀이었다.
역사팀에선 다시 K본부 가장 큰 외주사가 새로 차린 회사로 이동했다.
회사 이름도 위치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적응시간 따위 필요 없었다.

매번 마지막이 오면 나는 어떠했나?
정말 우스운건, 마지막 날의 나 였다. 만나고 헤어지면 다시 만날날이 있는법인데, 마치 그날이 오지 않을것 처럼 마지막날보다 펑펑 울었다. 역사팀에서 지금 회사로왔던 날이 생각난다. 진짜 많이 울었었다. 섭섭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울었다. 아침에 일어나다 말고 울 정도 였으니까, 말 다했다.

자꾸 그날의 나를 떠오르는건, 그날 '오늘의 나'를 그려보기나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처음과 마지막엔 생각이 많다.
내일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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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무한도전을 보고나서부터 였다. 나는 왜 MBC 개그맨이 아닐까?를 되뇌였다. 정총무가 쏘는 (결과적으로 노찌롱이 쏘게되었지만) 초밥이 먹고 싶었다. 게살이 한가득 올려져 있는 초밥을 먹으며 한글로 표현할 수 없는 비명을 되뇌이고 싶었다.

나도! 나도! 나도!!!!!! 꽃등심초밥 먹고 싶다고!!!!!!!!!!!!!!!!!!!!!!!!!!!!

그로부터 며칠간 눈을 감으면 초밥 그림이 떠다니고 입을 다물면 초밥의 촉감이 느껴졌다. <미스터 초밥왕>의 온갖대사와 장면이 생각났다. 나도 감겨있던 눈을 뜨며 밥알을 튀기고 눈물콧물아밀라아제를 쏟아 내며 일색인 맛을 칭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무실에 앉아 고뇌한 나는 다음의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서른평생 살면서 명품빽을 샀어? 비싼 화장품을 써? 그렇다고 성형을 했어?!?!?
먹고 살자고 이토록 깨알같이 고생하는데 초밥도 혼자 못사먹어!?!?!?!?!?
결국 네이버 길찾기에서 여의도에서 김뿌라 스시까지 가는 대중교통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러던 찰나!
집에 들어간다는 마망에게 전화가 오고
집에 간다는 그녀를 낚아 채 연남동 김뿌라 스시를 찾고야 말았다. 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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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있던 침과함께 드링킹 해줬던 미소시루!



그리고 시작된 천국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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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은 남자들이 먹고 있던 볶음누들도 엄청 떙겼는데
오늘의 초밥 세트를 먹었더니 배가 터질 것같아서 차마 누들을 더 시키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정초부터 속썩인것도 있고, 언제나 동네파 일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은기에  
마망의 초밥값은 내가 계산했다.


새해 결심은 못되겠지만, 먹고 싶을 땐 쓰고 싶을 땐 주저 없이 쓰겠다.
즐거운 오늘이 있어야 즐거운 내일이 있는 법이다.


  • 항공권이 너무도 나를 괴롭힌다 누가 좀 도와줘 흑흑 ㅠㅠ #
  • 국가 최고 위정자가 정신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권력의 최대 정점의 선 자의 폭풍 미친짓. 아주 유쾌하게 봤음.(me2movie 조지 왕의 광기) #
    조지 왕의 광기
    조지 왕의 광기
  • 어떤 여성들은 세상에 복수해야만 할 이유가 있지요.(me2movie 시카고) #
    시카고
    시카고
  • 사랑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아직 알순없지만 인연이 끝난후에 후회하지는 않겠지 알수없는 거잖아(me2movie 이터널 선샤인) #
    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
  • 살사를 배워가고 싶습니다. 글로 배워갈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ㅁ;(me2movie 더티 댄싱 - 하바나 나이트) #
    더티 댄싱 - 하바나 나이트
    더티 댄싱 - 하바나 나이트

이 글은 앙증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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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로 디지털 카메라 구입
CANON IXUS 960
가격도 무난했고,
DSLR에야 턱도 못미치지만 포커스 인 아웃이 가능해서 대만족.

동부 이촌동 지나는 길
찍어놓고 이거 10m 뮤직비디오 아니냐며 자화자찬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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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파에게 길고긴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내가 억지 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모두 나를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마냥 고마웠다. 흑흑.

솔직히 나에겐 트라우마가 하나 있다.
나 대학교 4학년 때 한학기 휴학하고 배낭여행 다녀와보니까. 대학 내내 같이 다녔던 애들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서로 까대(?)고 있었다. 스물세살에 차마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표현이지만 정말 서로 까댔(?)다는 표현 외에는 적합한 표현이 없었다. 과사람들은 우리 열댓명이 평생 갈 인연이며, 진짜 친한 애들인줄로만 생각했기에 더 창피했다.
그렇게 싸우고 있는데 중립이란게 없다. 결국 나도 내욕했다는 소문에 분노폭발(?) 그 사실을 제공한 한쪽 편들고 넘어가면서 졸업식날엔 나머지들을 썡까고 말았다;;; (아아 유치해 ㅠㅠ)

그게 꼭 6년 전 일인데, 이번에 나는 또 배낭여행을 간다. 행여 6년전 트라우마가 그대로 실현되는게 아닌가 적잖이 불안했다. 이번에 대판 삐지면서 만두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날 한껏 안심시켜주었다.

"걱정마. 걔들은 다 커서 만난거고, 우린 이미 서로 알만큼 아는 사이니까 그런일 없을거야."

예상대로 동네파애들은 넓은 아량으로 나의 모난 마음을 다 감싸주고 받아주고 토닥여주고 흐극흐극ㅜ_ㅜ 우린 마치 다시 만난 연인처럼(?), 재결합한 부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여튼, 동네파에게 큰은혜 입었다.



올해 첫시작을 내 제법 큰 역경(?)으로 시작하고, 그 역경을 빠져 나오니 또 다른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란항공의 예약건(?)이라든지(ㅠㅠ), 여행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의문. 준비할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에 대한 불안(초조안달복달다리떨기...)
그리고 시간이 남다 보니 최근 당한 일(?)에 대한 분노 정도가 되겠다.

연도는 작년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1차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2차자리부터 낀 당 송년회에서 나는 목청이 찢어져라, 목소리야 쉬어라. 껄껄껄 큰소리로 웃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느즈막한 시간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옆자리 앉은 한당원이 조금 취해계셨다.

첫마디를 꺼냈을 때, 거기서 단칼에 끊어버렸어야 했는데;;;;

"여자들은 연애할때 대체 왜 그러죠?"

대화주제가... 내 서른 인생과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이었다.
하나의 집단군을 놓고 절절한 평가를 내릴 때는 내가 해당 집단군이 되어 변명과 옹호를 덧댈것인지, 아니면 반대집단이 되어 가열찬 분노를 함께 토론할 것인지 영민하면서도 민첩한 판단이 중요하다. 빠져나갈거라면 초반에 치고 빠져나갔어야 한다. 1분 이상 들어주고 난 뒤에 뒷모습을 보여주는건 창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 4시를 넘긴 시간 소주 맥주 뒤섞여 마신 상태에서는 그 판단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분은 연애하는 여자들의 고루하고 낡디 낡은 습관과 행태에 대한 가열찬 비판을 시작하셨다. 왜 뭐든 사달라고 하는지에서 시작됐다. 이십여분 가까이 떠들어대셨는데, 솔직히 어떤 내용이었는지, 초반에만 듣고 나머지는 멍하니 소주병에 그려진 효리 언니만 들여다 보고 있어서 기억은 안난다.

쫄대로 쫄아서 소금을 소태로 부은것 같은 묵은지돼지찜을 한입 떠먹었다.

"죄송합니다..."

남아 있는 소주 반잔도 들이켰다.

 "근데 저는 연애를 한번도 못해봐서요..."

아니, 연애 못한것도 서러운데 내가 왜 연애하고있는 여자애들 몫까지 사과까지 하고 앉았지? 니미... 근데 그 분 눈초리가 '그럼 그렇지...'란 눈초리였음. 그때부터 열이 빡 받아 있었다. 그때 자리를 떴어야 한다. 초반에 석봉어머니 떡 썰듯 단칼에 끊고 그 자리를 끝냈어야 한다.

이야기는 번지고 번져, 나중에는 왜 엠넷에 원서를 넣지 않느냐는 역사 프로그램을 하려면 이런 아이템을 해야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냥 무슨일한다고 할때 논다고 거짓말할 걸...내가 왜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인생 설계까지 듣고 프로그램 아이템에 대한 지적까지 받아야하지;;;; 그러다 다시 한번 엠넷에 원서 진짜 안넣을꺼냐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사람아! 김수현이 연예오락프로그램 대본쓰는거 봤어? 무도 작가가 드라마 쓰는거 본적있냐고?'라고 들이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자리를 깽판 놓을 순 없는 노릇이라 참고 있는데,  마지막 한마디가 나를 경악시켰다.  

"근데 역사다큐 작가가 있긴 있어요?"

불끈 쥔 산만한 내 주먹을 간신히 방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거기서 한마디 더 나왔으면 난 짜디짠 김치짐을 뒤짚어 없었을지도....





서른살.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동네파와는 달리) 세상이 날 내버려 두지 않는다. 흑흑.

 


 


얼쑤 절쑤 어절씨구 저절씨구~!
깊은 고독의 심연에 빠져 있는 나를 동네파가 구해주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외롭지 않다!
후배들 퇴근 안시키는 메인이 될 가능성은 저 멀리 날아갔다.
앞으로도 나의 퇴근 후는 직장 동료들이 아니라, 동네파와 알콩달콩 채워가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이금댕에게 '제발 화풀라는' 카카오톡 사과 메세지가 왔으며, 나의 상태가 어떤지 떠보는 서눈물의 전화도 와 있다. 더 이상 똥고집을 부릴 정당함이 전혀 없는 나는 화 다 풀렸다고, 내가 오바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남겼다. 조금은 낯뜨겁지만 우리의 화해는 <청소년 영화>같이 교훈적이고 도덕적이고 훈훈하게 이루어 질 듯 하다.
오그라들어도 상관없다. 나의 소중한 친구 9명은 건재하니까!

 +저녁에 김마망이 조용히 네이트 메세지를 남겼다. 괜히 나 혼자 힘든척 동네파 모든 짊 질머진 척 오바한것 같다.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반성하는 바이다.




나이를 먹어가는건 바보가 돼가는 과정인 것인가?
뎡이와 허세를 집까지 초청해서 비행기 표를 끊으려 했으나, 아직 새로 발급받은 여권을 찾아오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여권을 새로 발급받으면 여권번호가 바뀐다는 사실을 난 이제야 알았다. -_- 나 이 추운 날씨에 그것도 둘이나(한창 때 신혼부부를)을 왜 불렀니? 지난주에 급하다며 급하다며 여권 사진은 왜 새로 찍고 여권발급 새로 받은거니?

솔직히, 지능의 쇠퇴를 인정해야겠다.
인정하기 싫은데 스페인어 숫자는 몇날 며칠째 외우기를 반복하는데 세이스(6)와 씨에떼(7)을 헛갈리고 있다. 젊을 때에도 그닥 잘돌아가는 머리는 아니었지만 더더욱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

뎡와 허세를 알았던건 두사람이 사귀고 있기 전부터였지만, 부부가 되어서 보여주는 둘의 모습은 예전과는 좀 다르다. 주변 부부들 중 단연 손에 꼽을 만큼 사이가 좋다. 보고 나면 만나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희귀한) 둘. 결혼을 비롯한 가족조직에 별 관심 없는 나도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그 옛날 첫사랑 떄문에 불치병 걸려서 콱 죽고 싶다던 그 애들은 어디로 갔나요? 그네들의 인생을 보면서 연애로 상심한 사람들에게, 해줄말은 딱 하나다.

"괜찮아. 사랑 때문에 안죽어."



이집트에서 의료봉사를 가 있는 김*석이 네이트로 말을 걸었다.
안그래도 요즘 유럽 여행 일기장을 끼고 사는데, 런던과 캠브릿지에서 함께했던 김*석과의 4박5일 기억이 새록새록 나던 참이었다.(당시 그는 어학연수중이었다) 우린 정말 신이 내린 기회(금도끼 꺼내는 산신령처럼 나타난 할아버지의 양보)로 맘마미아 정중앙 좌석에서 뮤지컬을 함께 봤으며, 캠브릿지에서 펀팅하다가 주변의 비웃음을 함께 사고, 버킹검 궁전 근위병 교대식 안그래도 큰목청 웃음이 빵터져 전세계 관광객의 눈총을 받았다. 그리니치 천문대 개똥밭에서 굴러다녔던게 누구더라? 다행히 그때도 부끄러움과 수치를 알 때라 '오뚝이'는 안했다. 
'서른'으로 시작하는 초반인 만큼 서로의 나이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마치고 현재 한국 연희동의 정황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주변에서 '결혼'이라는 멍에를 스스로 뒤집어쓴 몇몇은 왜 그리 갑자기도 많이 생겼는지. 김*석이 카이로로 사라질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사라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그 의외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나로선, 더욱더 사무치기에 더더욱 뜻깊은 대화였다.

본래 문화란 비하해선 안될 문제이지만, 김*석이 갑자기 터뜨린 불만이 하나 있었다. 평생토록 이를 닦은 적이 없다는 이집션들에 대한 불평. 다른건 다 참겠는데 그것만은 견딜수가 없다고.
가볍게 보기를 내봤다. 어렵지 말라고 4지 선다도 아니고 2지 선다로 내놨다.

"골라."
1. 평생토록 이닦지 않은 이집션 여성
2. 나.

한동안 네이트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뒤로 수십여분간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까지도 김*석은 답을 골라내지 않았다. 내가 교회에 아직까지 다녔다면 김*석에게 '독신의 은사'를 세숫대야만한 향유그릇 가득히 부어주라고 하나님께 기도할텐데. 아쉽다.



대길 오빠가 대상 타서 참 다행이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나의 기도 제목은 단 하나였다. 기도가 이뤄져서 다행이다. 우리집 티비 죽이는데 이 화질로 <추노> 못본건 정녕 평생 한으로 남을것 같다.
 


여행 준비는 선택의 연속이다.
캐리어를 끌지 4.5리터 배낭을 새로 사서 이고 다닐지.
아이폰4로 그냥 드립다 사진을 찍을지, 디카를 새로 사야할지,
안그래도  강도당할지도 모를 상황, 총들이민 강도들에게 '선물'로 주고 덜 아깝기 위해 쓰던 디카 수리해서 쓸지. 수십개의 갈림길에 서 있다.
여튼 어떤 선택이든 무사 귀국으로 결론났음 싶다. 정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침에 날 눈뜨게 한건 신년 문자 메세지였다.
서른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연락 한번 제대로 안한 아이들까지 뉴스속보 이미지에 '이제서른입니다'를 자막 넣어서 돌리고 그러더라. 계란 한판에 촛불 꽂은 이미지는 어젯밤에 받았다.
여튼 나는 서른의 첫날인 '오늘'을 유난떨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작정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새해 첫날이라는 것 말고도 '1'자가 엄청 많이 들어가는 특색이 하나 있구나. 나 초등학교 때 1학년 1반 11번이었는데 말이다.)

지금 나는 동네파 몇몇에게 삐져 있는 상황이다. 어제 찜질방을 가기로 한 단체 약속에서 거의 모두가 늦는 바람에 입이 잔뜩 나오고, 눈이 쌜쭉해져서 성질을 성질대로 부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실, 이런 상황은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 안될만큼 낯설다.
동네파 중 여럿을 상대로 삐쳐있는 건 내 인생 최초의 일이며, 자칫 잘못하다간 노처녀로 늙어 죽을 판에, (심지어 평균수명 백세 이상-_-) 서른부터 백살까지 입에 쟈크 채우고 고독을 칡뿌리 질겅이듯 씹어댈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건데, 이대로 삐진채로 우리들의 관계가 끝나는건 아닌가 촘 많이 걱정된다.

여튼 오늘 운동장을 돌면서 앞으로 시작된 서른 인생에 동네파가 없다면 어떻게 될 지를 계산해봤다. 여러가지 장면이 그려졌다. 그 중 단연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진 장면이 (구체적일 수 있다는 건, 현실 반영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하나 있었다.

나는 메인 작가가 된다. 퇴근을 해서 집에 간다고 해도 딱히 만날 친구도 할 일도 없는 나는 남친,친구들,가족들과의 약속이 미어터지는 서브들을 집에 못가게 하고, 그들에게 같이 술먹자고 하고, 최신영화를 보자고 한다. 그야말로 진상 오브 더진상;;;
나중에 서브들끼리 네이트 미니미 대화하기로 내 욕하는 걸 발견하고는 광분 또 광분! 지난대화보기까지 클릭해서 하나하나 읽어보며 분노와 복수를 뼈에 새기고 웅담을 씹는 심정으로 지난대화들을 모두 프린트해서 후배들에게 보여주며 두껍게 하고 빨간색으로 밑줄그은 부분 (->내 욕)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시켜??!?!!?!?
아아! 여기까지 상상하다가 너무 암담+비참해서 관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 1일에서 내일로 미뤄진 신년회는 참석하지 않을 요량이다. (알량한 자존심이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다.)
대신 오늘은 정녕 술약속을잡고 싶다. 근데 술상대를 구해야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오줌싸개는 부산에 놀러갔으며, 신실해진 뎡이는 술보다는 찻잔을 마주하고 싶겠지. 뚱토는.... 모르겠다... 나 역시 술독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뚱토 (술)그릇의 크기와 내 (술)그릇의 크기는 좀 다른것 같다. 이를테면 맥주 3000 피쳐와 포도주 제조하는 양조장의 술통은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여튼 그 다음으로 계산한게 섭맨인데, 섭맨은 진탕 마시기 보다는, 취기가 오를만 하면 '자! 마셨으니 가자!'를 연발해서 별로다. 차라리 내가 얼근하게 취해서 만난다면 모를까.
결국 친구들 얼굴을 돌리고 돌린 결과 생각해 낸게 유*관이었는데, 그가 비연애 중이라면 나랑 술을 마셔줄 것이고,  연애중이라면 마셔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유*관의 얼굴을 떠올릴 즘에 생각해 낸게 있다. 오늘 내가 술을 먹으면서 털어놓고 싶은 고민은 남자애들은 좀처럼 공감하지 못할 '민감하고 델리케이트하고 센서티브'한 문제란 거다.
아무리 부연설명을 붙여가며 세시간 네시간 떠들어대봤자 남자애들은 이해 못할 걸. 네버.
그냥 뚱토한테 연락하는게 최선인거 같다. 우린 어깨동무하고 술에 건하게 취해서 사나이들처럼 신촌을 누빌거다. 오늘!


손가락 뿌러지도록 일기장에 일필휘지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확인해보니 김도도다. 어제 미안하다고 앞으로 늦지 않겠단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김도도가 사과해준게 너무 고마우면서도 이상하게 삐딱선을 탄다. 너만 유일하게 사과했단 식으로 쏘아붙였다. 사실 다른 애들도 사과해야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도도가 말해줘서 사과하는건 싫다. 엎드려 절받기는 싫은거지. 그렇다고 영원히 삐질 수도 없고..... 방송계에서 최고 진상으로 손꼽히는 선배로 남을 내 모습이 선하게 보인다.

절벽 아래로 투신해 온몸이 360여개로 박살난 듯한 기분인데
이 와중에도 스머프 빌리지 스트로베리는 잘도 익는구나! 스트로베리, 블루베리, 오이, 토마토, 옥수수 다 익으면 뭐하니? 레벨 업되도 자랑할 친구 하나 없는데....ㅠㅠ 어쩜 스머페티를 키우게 되더라도(지금 레벨에서 7단계 이상 올라가야 가능한 아이템) 자랑할 곳 하나 없을지 몰라. 흑
 
기분이 꽝이다.
심지어 올해 계획 중 하나는 무려 "주변사람들에게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 되기" 였단 말이다.
아아~
정녕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동네파와 함께 하고 싶지만 알량한 자존심때문에 동네파를 지워버린 내가 밉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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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닥 가득 일기장에 써놨지만, 결국은 술 상대를 구하지 못하고 치즈볼만 우적우적 씹으며 집에서 쥐죽은 듯이 잤다.





1. 남미 여행 무사귀환 (실은 1번부터 10번까지 모두 '무사귀환'만 적고싶다.)
*여기서 '무사귀환'이란 총들이대는 강도안만나고, 칼들이대는 강도도 역시 안만나고, 큰 돈 소매치기 없고, 가방 강탈 없는 것을 의미한다.

2. 책 25권 이상 읽기 (무리한 권수 설정은 몸과 영혼을 괴롭히기만 할뿐)
+정기구독하는 시사IN, 한겨레21등 주간지도 좀 더 꼼꼼히 읽기

3. 만두와 함께 공동작업 열심히 (정식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Muchas gracias!)

4. 주당 50이상 쳐주는 프로그램에서 일하기
(20대 직장인 평균 연봉은 안되더라도, 돈 좀 만져보고 싶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내 연차 그럴때 됐다. 암~ 됐고말고!)

5. 한 달에 한번 그림그리기 (곰팡이 슬어가는 화구에 물을 묻힐것!)

6. 또 다른 적금 저금 마련하기
(엄마와 아빠 해외 여행 대비 몇년 후 있을 또 다른 여행도 대비)

7. 언제나 구성공부 원고 공부! 원고 베껴쓰기 인상깊은 말들 적어두기

8. 쓰고 있는 블로그/손일기/미투데이/트위터/유저스토리북 꾸준하게 이용

9. 당 활동 열심히 각종 데모 참가 열심히

10.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되기
(그러나 정초부터 동네파에게 몹쓸짓해서 틀려먹었음)

2011년을 맞이하여 결심하게 된 평생을 지키고 싶은 계획 하나!
아무리 궁하더라도 매경-조-중-동의 이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되지 않겠습니다.
(정녕 이 약속. 평생 지켜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공일일년 새해 소원
하나.
가족의 화목 건강 동네파 한명한명 모두의 행복을 빕니다.
둘. 나이는 잊고 언제나 용기 낼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셋. 몹쓸 사람 천벌 받고, 착한 사람 복을 받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정녕.

서른을 31시간 앞둔 시간, 만두에게

사실 난 나이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는데, 다들 스물로 시작하는 시점과 서른으로 시작하는 시점에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잖아. 나도 한번 그래보기로 했어.
 
오늘 나는 스물아홉을 하루 반 남겨두고 스물부터의 10년을 정리해야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어.

내가 언젠가 결혼식하고 싶다던 <살롱 드 마랑>이란 까페 기억나?
밤하늘이 천장으로, 인테리어로 북극성과 각종 인공위성 별빛을 박아 놓은 서울에 몇 안되는 까페. 어제 아는 사람들과 살롱 드 마랑에 갔어. 작은 까페 바깥에서는 소복한 눈이 서울을 뒤덮었지.

맥주가 나오고, 안주가 나오고, 한명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불렀어. 낙킹온헤븐스톤, 유 아 마이 선샤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귀에 익은 팝송들. 모두 따라 불렀지. 그러다 누가 불나비를 부르기 시작하는 거야. 아! 난 진짜 눈을 꼭 감고 시큰거리는 코끝을 꾹 참았어. 

나 딱 스무살 때거든.
단대 애들이 춤추면서 문선하던 노래. 스무살 이전의 나와 스무살 이후의 나를 구분짓는 노래. 노래에는 신비한 힘이 있지. 그래 그래서 날 그시절 그때로 돌려보내주더라고.
그리고 만두야, 내 말 이해할 수 있겠니? 그때가 그리운건 아닌데, 그때의 ‘내’가 그리워. 부딪히고 깨어져도 스스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시절의 내가 말야.

“친구야 가자! 가자! 자유 찾으러. 다행히도 나는 아직 젊음 이라네” 
스스로가 청춘이라고 정의하는 한 그 청춘은 다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해.
서른이란 숫자는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고
십수년을 쓴다해도 쓰고도 남을 '용기'도 가지고 있지.
나는 아직 청춘의 한때라고 확신해.

부디 몇 번을 산산조각 나 깨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기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기를. 

그 촌스러운 불나비 가사에 덧대여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밤이었어.

추신) 그밤 서눈물이 다모토리라면서 조하문의 노래 <눈오는밤>의 제목을 물어보더라.
우리 모두 흩어져 있지만, 이 노래를 부를때 만큼은 모두를 떠올리며 신나게 부르자.
 네가 빨리 대만에서 돌아와, 눈오는밤을 함께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절. 내 마음 속에 추억만 남아, 오늘도 눈오는 밤 그날 생각하네"


눈 녹듯

소소한 수다 2010. 12. 28. 12:29

요즘 내가 얻은 결론인데,
세상 모든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은 "부자"고,
여자 주인공은 "부자인 남자주인공"이 유일무이하게 온몸바쳐 사랑하는 여성인 것 같다.
오만과 편견 보면서 그 도도하던 베넷양 마저
마크 다아시의 정원(과 호수 거기 딸린 거대한 집)을 보곤 사랑에 빠져버리잖아?

물질 보고 빠지는 사랑은 거짓이라고 누가 그래?
세상 모든 이야기가 부자로부터 시작해서 부자로 끝나는구만.
난 친구의 친구보고 졸부스타일 같다고 욕했다가,
그애가 내게 쏜 꽃등심에 어린 핏물을 보며
'성격 참 시원시원하니 좋네'라고 눈녹듯 마음풀고 지껄였다고;;;



요즘은 맘이 허하다.
강박오빠가 한 말을 자꾸 곱씹고 있다.
어떤 대상을 소중히 여기다가 또 다른 소중한 것들이 생기는건 막을 수 없는 거라고.

사람 마음이란게 그렇게 간사하다.
매일 수 없고, 매여서도 안되고 부유하듯 둥둥 떠다닌다.
'책임'을 부여하고 싶은데, 놓아줄 수 밖에 없게 마음이라고 체념한다.  
나에게 소중했던 것들이 언제까지 소중할 수 있을까,
내게는 아직 소중한데, 나만 남겨두고 모두들 다른 소중한 것들이 생겨버리면 어떡하나.
혼자 남겨지는 건 정말 싫다고 생각한다. 

동네파 크리스마스가 성황리에 끝났다.
우리 앞으로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가 몇번 남지않았는데,
몇몇은 소홀하고, 몇몇은 파티자체를 귀찮아 하고.
그런 마음들이 뻔히 들여다 보여서 화가 났다.
새벽까지 선물을 포장하며 공들인 내 마음이 참 부질없고 보잘것 없어 보여서
괜시리 빈정대고 툴툴댔다.

하지만 나 역시
어제밤 소복소복한 눈은 그토록 예뻤는데, 아침 진흙탕 거리에선 진저리 내지 않았나?
가볍고 얄팍한 마음.
내가 가는 길을 나도 모르기 때문에, 평생을 고정해줄 주춧돌이 필요하다.


공짜밥

20세기 소녀 2010. 12. 24. 15:49


<지식채널 E 공짜밥>

저 아이들 앞에서,
가난을 부끄러워 말아라,
가난 앞에 당당해라 는 소리를 해댈 수 있는지
멱살을 잡고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