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누군가또여긴어딘가
십수년전 듀스 노래 가사를 입에 담은 건 아침에 눈떴을 때였다.
깨질것 같은 머리와 비어 있음에도 매식거리는 위장. 술에 쩔여져 노곤노곤해진 몸을 다독일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제 신촌길바닥에 버려두고 온 기억의 조각을 다시 찾을 필요성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위험수위까지 넘어간 것이 한두번은 아니나,
총 4차까지 달렸던 긴 여정 속에서 절반가까운 시간이 망각의 저편으로 넘어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니까 1차 때도 나름 천천히 선방하면서 달렸고 2차 다모토리에서 이문세 노래 따라 부를 때까진 좋았는데 말이지.... 3차 횟집에서부턴 정말 기억나는 장면이 몇개 안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핸드폰을 열었다.
망했따.
고등학교 때 동창이었던 애들한테 전화돌렸던 흔적이 핸드폰 통화목록 언저리에 흩뿌려져 있었다. 가정이 있건 없건 애가 딸렸건 말건 새벽 1시에 이리저리 전화해서 나와라 왜못나오냐 주정주접을 떨었음이 분명한 기록들;;;;
페이스북을 열었다.
새벽 2시반에 글을 올렸다. 집에 좀 보내달란 글이다. 대체 술에 취해서 이런글은 왜 쓴걸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정말 졸려서 미칠것 같았는데, 애들이 자꾸 집에 못가게 했던게 장면이 언뜻 스친다.
핸드폰 케이스를 봤다. 오병강의 명함이 왜... 들어있지? 오병강은 어제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한참생각했다. 새벽 4시반에 신촌에 등장해 내 택시를 잡아줬던 흐릿한 그림자. 단신의 키로 추정하건데, 오병강맞는거 같은데... 더불어 내가 오래간만이라며 얼싸 안고 신촌바닥에서 소리소리를 질렀던게 기억났다.
두통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짜내며 고뇌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어제 3차까지 함께한 그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맥주로 달렸던 그녀는 제법 멀쩡한 편에 속했는데, 어제 다들 취기가 말못할 정도였단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한 녀석이 울기까지 했다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난다;; 정말 안난다. 그정도 자극적인 장면이면 기억이 나야 정상 아닙니까요?!?!!?!? 흑흑 어디갔니 기억아! 어디로 도망가서 제자리를 못찾니!!
그리고 충격적인 증언이 또 하나 나왔는데;;;
술자리에 있던 두 놈이 과거 추억에 대해서 아웅다웅했단다. 그건 예전 우리반이었다가 이전퇴학다녔던 A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참을 아웅다웅하는데 내가 벌떡 일어나서 판결을 내려주겠다며 A의 친구 B에게! 새벽 1시 40분에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다는 거다;; 새벽 1시 40분에 가정있는 남자한테 전화해서 A의 연락처를 따내는 퀄리티....
아 인셉션같은 기술을 배울수만 있다면 B의꿈속에 들어가서 전화통화했던 내용을 싹다 지워버리고 싶따아. 아아. 왜그랬니 대체 왜 그랬니!!! ㅠㅠ
낮에 몇몇 놈들에게 전화가 왔다.
덕분에 스스로찾아내지 못했던 기억의 조각을 몇개 더 건졌다.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말들을 어제 몇시간동안 지껄였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 놈들 너무 소중하다느니, 사랑한다느니, 우리 고등학교 최고였다느니, 니들과의 추억이 너무 값어치 있다느니...
수십만원을 쥐어준다해도 내뱉기 힘든말을 단돈 2500원짜리 소주마시면서 무슨깡으로 잘도 내뱉은거니...? 너무 졸린데 애들이 집에 안보내줘서 막 벤치에서 졸고 그랬던거 기억나는데 아아! 죽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보통 고등학교 때 거국적으로 모이는 모임은 추석 설에 있는데,
다음번엔 주최하지 않을 예정이다.
뭐 어차피 내가 연락 안돌리면 술자리가 아예 안생기니까....
애들 연락돌리고 시간맞춰나가는게 은근 귀찮았는데 이럴땐 장점이군.
최근들어 필름 끊길때까지 마시는 술자리가 계속되고 있는데,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스타일이니 앞으론 그냥 술을 안마시는게 최고의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왜그랬니왜그랬어왜그랬었니... 아아...